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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골 편지

걷는 다는 것은

작성자소양강|작성시간13.03.21|조회수187 목록 댓글 4

걷는 다는 것은
두 발로 풍경과 마음을
한 땀 한 땀 박음질한다는 것이다
 
걷다 잠시 뒤돌아보면
풍경과 마음이
날실과 씨실로 어우러져 짜여진
옷감 한 자락
하늘 가득 강물처럼 흐른다
 
걷다 집으로 돌아오면
세상으로부터 찌들은 낡은 옷자락
바람결에 사라지고
내 영혼에 들어와 박힌 맑은 옷 한 벌,
길 위에서 얻어 입은 날이다.
 
*전향 시 <걷는다는 것은> 전문
 
산막골에 들어와 봄을 만끽하고 있다. 봄볕과 자주 만나고
그동안 승호대를 두 번 다녀왔다. 봄기운을 가득 품고있는 곧 터질듯한
산동백, 더러는 이미 초개[初開]한 것도 보였다. 산수유는 꿈쩍도 안하고 있는데
산동백이 더 서두르고 있다. 늘 한발 앞서 산수유가 먼저 기세를 올렸었다.
산책을 하며 전향 시인의 시 '걷는다는 것은'이 떠올랐다.
'세상으로부터 찌들은 낡은 옷자락 / 바람결에 사라지고 / 내 영혼에 들어와
박힌 맑은 옷 한 벌, / 길 위에서 얻어 입은 날이다.' 그렇다 영혼에 들어와
박힌 맑은 옷 한 벌을 얻어 입은 듯 그렇게 상쾌함이 감도는 산책의 뒷 맛이
개운하고 깨끗하다. 아마도 숲이 새롭게 태어나려는 이른 봄날이라 더욱
그렇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저 맑은 기운들, 영기[靈氣]의 충만함을
체감하기에는 요즘이 제 때라고 여겨진다.
 
수백, 수천, 수만, 수천만, 수억의 함성이 터져나오기 직전의 고요, 그 함축된
기운이 팽팽한 숲이다. 봄을 어지럽히던 황사도 없다. 거친 바람도 밤에만 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낮엔 시침을 뚝 뗀 채, 온화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
봄비도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며 얌전하게 왔다. 일교차가 심한 건 애교같다.
걷는 다는 것은 돗자리를 말아걷 듯 공간을 거둬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책을 읽듯 사물에서 새로운 감성을 일깨운다. 그들이 전하고 싶은 의미를 내 속으로
거둬담는 것이 독서를 하며 새로움에 눈뜸과 닮았다. 그보다 더 생생하고 직접적이고
생동한다. 살아있는 삼라만상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시인은 굽이를 돌 때 마다 화첩이
펼쳐진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대자연만한 스승이 어디 또 있겠는가.
 
산방 처마밑을 살피니 떡쑥이며 왕방가지똥이 새로솟은 것인지 아니면 겨울을
견딘건지 당당한 모습이고 돋나물이 흙을 비집고 나오는게 보였다, 어디 그뿐이랴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꽤 많은 풀들이 제법 푸른 기운을 넓혀가고 있다.
이런 미세함을 살피는 관찰도 새봄을 확인하려는 즐거운 일과 중에 하나가 된다.
냉이도 여기저기 제법 많이 보인다. 이거 먹으면 야생이니 약이나 다름없다. 시장에
나오는 것들은 거의 다 재배한 거다. 개망초도 잎이 나왔다. 싹이 돋는 것들은 독초라도
먹어서 탈이나지 않는다는 어른들 말씀이다. 모두가 나물이다. 맛이 있느냐에 따라
선택되어진다. 생식을 하니까 올 봄엔 먹거리가 어느 때보다 풍부해질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몸과 살고있는 땅이 따로가 아니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다.
 
동의보감을 보면 약보다는 식보[食補]요, 식보보다는 행보[行補]라 했다.
움직여야 하고 걸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했다. 스스로 돌아봐도 내 병은
마음의 화기와 움직이기 싫어하는 습성으로 부터 비롯된 것임을 안다. 그나마 걷는
걸 좋아했어도 실천이 부족했다. 빛이 안보였던 절망속의 강촌시절도 틈만나면 혼자
산보를 하며 자신을 다스렸다. 화필을 잡기 전, 나를 구원한 것은 강촌의 자연과 독서와
산보였다. 고민이 깊어지면 걸었다. 걸으면 생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비관보다는 긍정
하는 쪽으로 바뀌고 들떴던 심경이 차분해졌다. 그래도 못 견디겠으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혼신을 다해 몸부림을 치고 산의 영성[靈性]에 기대었다. 그러면 영혼이 정화되고 
기운이 다시 났다. 심신이 병들지 않고 나를 보전한 영약이었다.
 
중국 명나라 때 뛰어난 화가이자 명필이고 문인이었던 동기창은 그의 저서 화선실수필
[畵禪室隨筆]에서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를 언급했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 길을 걸어라는 뜻이다. 독서를 통해 삶을 전방위로 깊이 이해하고 만리 여행을 하며
머리와 가슴으로 뿐 아니라 몸으로 직접 체험하라는 의미겠다. 완성된 삶을 위해 제시된
이 방식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는다. 머리에 지식만 꽉찬 것도 위험하고 몸으로 체험한
것만 옳다며 신봉하는 것도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계 4대 성인 중
소크라테스만 예외고 석가며 공자며 예수도 평생을 길 위에서 살았다. 그 분들의 진리의
말씀은 길에서 터득했다 하리라. 그렇기에 울림이 크고 곰감하게 되는 것일게다.
 
교통편이 발달하여 온갖 탈 것들이 넘쳐나지만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 해서 말타고 달리며
보는 것은 수박 겉핧기로 취급했다. 스치며 지나는 것은 안 본거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하물며 더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를 탄다든지 세계를 일일 생활권으로 만든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여행은 오로지 걷는 수단 뿐이었던 때에 만리 여행과는 질과 양으로도 비교가 안된다.
소크라테스도 사는 도시를 벗어나지 않았어도 늘 걸었다. 칸트의 규칙적인 산책은 유명하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걷는 것을 즐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토벤을 묘사한
그림 중 산책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젊은시절 유일하게 꿈꿨던 것이 전국을 도보로 일주
하는 것이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처럼 방방곡곡을 걸어서 다녀보는게 소망이
었다. 대동여지도를 만들듯 내 나라 산하를 화폭에 다 담고 싶었다. 먹고사니즘에 붙잡혀
시도조차 못해봤다. 몸이 붙잡혀 있으니 마음이라도 떠돌아야 했다. 정작에 정신은 안주하지
못한 방랑객으로 살아왔음이다.
 
두루 넓게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세히 깊이보는 것도 중요하다.
걷는 다는 것은 두루 넓게 보는 일과 자세히 깊이 보는 행위가 함께 들어있다.
같은 길을 걸어도 매일이 다르다. 아니다. 시시각각 다르다. 그걸 알면 자연과 더불어 살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요. 모르면 지루하고 답답하며 견디지 못한다. 어디서 살든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권태롭거나 재미없거나 반대로 흥미롭고 새로우며 활기찰 수 있다.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 나날이 새롭고 또 새롭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걸으면 그 새로움이 보인다. 느껴진다. 눈이 떠진다. 눈에 잘 안띄는 작은 들꽃의 피어남에서도
가슴 떨리는 감동을 받는다. 낙엽이 허공을 휘저음에도 내 안에 잠자던 파장이 깨어난다.
영혼의 맑은 옷 한 벌 자주 입기위해 부지런히 많이 걸어야 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건강가까지 챙기면 금상첨화 아니랴. 서두르기 보다는 느린 것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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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미생각 | 작성시간 13.03.21 어쩌면 그리 제 마음과 제 삶을 들여다 보신 것 같은 말씀인지.. 오랜만에 주신 글의 한글자.. 한글자가 너무도 소중하게 가슴에 와닿습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빠름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빠름을 포기한다는 것은 천천히 간다는 것이며, 천천히 간다는 것은 주변을 살핀다는 것입니다. 느리게 가고, 천천히 가면서 보이는 것들을 차곡차곡 새겨나가는 것.. 그 과정에 발견되는 것들이 결국은 내 삶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는 것을 깨우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요.. :)

    천천히, 느리게 걷는 맛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길 바랍니다. 그들이 결국 희망이며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고미생각 | 작성시간 13.03.21 문득 트위터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인디언 종족들은 울화가 치밀고 억울함이 생기면 걷고 또 걸었답니다. 그렇게 걷다가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다시 방향을 되돌려 돌아갔다고 하더군요. 그 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만 새삼 생각해보니 걷는다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거듭 깨닫게 됩니다.
  • 작성자아프로만 | 작성시간 13.03.22 법정스님 걷는 뒷모습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resentvill&logNo=1008251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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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프로만 | 작성시간 13.03.22 걷는다는 것은, 세살부터 여든까지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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