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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골 편지

율곡매[栗谷梅]를 그리며

작성자소양강|작성시간13.09.18|조회수86 목록 댓글 0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율곡매 작업에 착수해서 완성하느라 다 보냈다.
강원서학회전에 낼 작품이다. 60호 크기, 매화 연작 세번 째가 된다.

도산월매도 전지크기와 80호 대작에 이은 율곡월매도, 달이 계속 등장함도
화제로 넣는 시와 상관이 있다. 율곡매는 백매에 가까운 홍매여서 고민이
컸다. 그 애매한 색조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였다. 진홍색이나 백매였다면
안해도 될 문제다. 화폭도 그랬다. 서학회 공문에 규격이 가로 70cm로 제한
을 줘서다. 세로가 더 넓어야 뿌리로 부터 갈라진 세 등걸로 된 율곡매를
담기에 적당하고 그리하면 오죽을 곁들일 구상이었다. 애초 도산매와 같은
80호에서 60호로 크기를 줄인 연유다. 옆에 비단 안 붙이는 표구형식을
전제로 세로140cm에 가로를 90cm까지 늘렸다.
 
율곡선생의 글을 세세히 접하지는 못했으나 매화시가 있다는 말도 못 들었다.
선생의 시를 율곡매에 화제로 넣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닐 것이냐.
퇴계선생의 지극한 매화사랑과 거기에 따른 매화시첩이 있음에 비해 율곡선생
과 매화에 얽힌 이야기는 과문해서 겠지만 들은바 없다. 기록에 의하면 오죽헌
의 율곡매는 어머니 신사임당과 선생의 숨결, 손길이 닿은 매화다.
이런 염원이 전해져선가 선생의 매화시를 지인의 도움으로 만날 수 있었다.


* 매화 가지 끝의 밝은 달 (梅梢明月) - 栗谷 李珥
 
梅花本瑩然(매화본영연)    매화는 본래부터 환히 밝은데
映月疑成水(영월의성수)    달빛이 비치니 물결 같구나.
霜雪助素艶(상설조소염)    서리 눈에 흰 살결이 더욱 어여뻐
淸寒澈人髓(청한철인수)    맑고 찬 기운이 뼈에 스민다.
對此洗靈臺(대차세령대)    매화꽃 마주 보며 마음 씻으니
今宵無點滓(금소무점재)    오늘 밤엔 한 점의 찌꺼기 없네
 
 
  
 

역시 글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여실히 담겨있는 시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선생의 청고단아한 인품이 고스란히 스며있어서다. 시에 세심[洗心]이 아니라
세령[洗靈]이라 했다. 당신의 도행[道行]이 어떤 경지에 이르러 있는가를 알게 한다.
선비의 기상과 품성이 절로 나타나고 있다. 군자, 대인의 풍모가 은은하고 향기롭다.
당신이 살아온 곧고 맑은 생애가 매화시에도 그대로 배어있다. 도의 구현이라 하겠다.
선생이 역사 인물로서가 아니라 정겹고 살갑게 가까이 다가옴은 율곡매를 치며
매화시를 만났기 때문이리라. 어지러운 시대에 당신을 향한 그윽한 그리움은 여운
같은 것일 터이다.
 
먹작업으로 등걸과 가지를 쳐놓고 하루 쉬며 숨을 고른 후 꽃 작업에 들어갔다.
월매여서 몰골법으로 꽃을 그려넣어도 되나 먹선으로 꽃잎을 친 후 그 안에 채색하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 배우고 초기에 많이 쓰던 방식이다. 백매에 가까운 연한 분홍빛에
봉오리들은 붉은 빛을 곁들였다. 살구꽃빛 같이 보이기도 한다. 가지의 원근에 따라
꽃도 원근이 나타나도록 마음을 썼다. 달은 한지 뒷면에서 스프레이를 써서 선명하기
보다는 은근한 맛이 나도록 했다. 밤샘작업을 하며 집중할 수 있었다. 선생의 매화시를
쓰며 한글 번역도 이어서 곁들였다. 감상자를 위한 봉사라 하겠다. 당분간 매화 연작을
도산매, 율곡매를 토대로 화폭의 크기와 구성도 다양하게 계속할 생각이다.
 
생전에 노학자 퇴계를 뵈러 청년 율곡이 천리길을 마다않고 며칠을 걸어가 이박삼일을
묵으며 도산서원에서 학문을 논했다. 우리 역사에 드믄 감동적인 장면이다. 단 한번의
만남이었다. 이런 그들의 정신이 어린 매화가 어찌 의미롭지 않겠는가. 그래서 08년도에
그린 10호 정도 율곡매 작품엔 퇴계의 매화시를 곁들이기도 했었다. 드높은 경지의 만남
이다. 제대로 화폭에 담았느냐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런 의도를 시도해본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수준미달의 청와대 대변인 인사부터 시작해 장관후보들 자질부족
낙마에 민생과는 상관없는 30년 간 열람이 금지된 엔엘엘에 관련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불법 공개며 국정원 대선개입 불법 사건, 일본 극우교과서보다 더한 친일적이란 평가를
받는 한국사 왜곡 교과서가 국가기관의 검정을 통과한 사안, 불평등에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 갑을이라는 문서를 통해 보편화된 양상과 수준은 말이 거칠어지고 화를 참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 최초의 여대통령은 그 특유의 침묵의 정치로 어쩌다 하는 말은
유체이탈화법을 구사, 소통은 사라지고 불통의 정점을 지킨다. 도무지 희망이 안보인다.
언론, 교육, 종교, 정치, 사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온전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상식조차
무너진 세상임에랴. 오로지 금전만능주의만이 활개를 친 결과물이다. 인본주의가 죽었다.
 
암담한 심사를 풀길없으니 도산매와 율곡매에 몰입하며 마음을 의탁하고 싶은 무의식이
작용하여 연작을 해나간다고 할 것인가. 자신에겐 엄정하고 타인에겐 위 아래를 가리지
않고 어질었으며, 권력과 물력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생애를 일관되게 살았다. 청빈의 삶,
율곡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를 형편은 커녕 먹을 양식도 없더란다. 고위직을 지낸
대학자가 손수 대장간에서 농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퇴계선생도 천원권 지폐에 겸제그림
으로 나오듯 서너칸 초당에서 기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 소박과 절제와 매화를 사랑
하는 여유롭고 고매한 풍류가 한없이 귀하고 아름답다. 그분들 정신의 표상으로 율곡매가
오죽헌에서, 도산서원에 도산매가 부박한 세태에 눈여겨 보지 않더라도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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