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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그림책 20] 표정과 감정이 선명한 인물들 - <커다란 순무>

작성자시몽|작성시간11.07.13|조회수74 목록 댓글 0

  이 그림책은 줄거리가 아주 간단합니다. 굉장히 큰 무를 여럿이 힘을 모아 뽑는다는 것이지요. 정말 간단하지요?

  협력이라는 덕목을 가르치기 위해 이용되기도 하지만, 원래부터 도덕성을 알리기 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이 그림책을 읽게 하거나 지도한다면 이 책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집니다.

 

  세상에서 처음 보는 커-다란 무

 

  이야기는 놀라움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에서 처음 보는 커다란 무! 여기에 어떻게 해야 뽑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거리가 더해집니다. 할아버지가 뽑지 못하자 할머니가 돕고 손녀까지 합세하지만 꿈쩍않는 무. 긴장감을 줍니다. 그러나 개, 고양이, 쥐가 줄줄이 뒤따라 붙는 장면에선 웃음이 납니다. 이 유머는 어린이들의 공감을 사며 이 이야기를 성공시킨 열쇠가 됩니다. 마침내 무를 뽑는 성공의 만족감까지.

  이야기 전개의 수법 또한 뛰어납니다. 옛이야기 특유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서술입니다. 줄거리를 진행시키기 위해 사용된 반복의 묘미 또한 기막힙니다. 반복이 진행될 때마나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일직선으로 명쾌하게 올라가고, 그 과정에서 무를 잡아당기고 쉬는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묘사가 잘 조화되어 하나의 목적으로 향하고, 드디어 무가 뽑히는 결말로 모아집니다.

 

  <커다란 순무>들여다보기

 

  할아버지, 할머니, 손녀가 커다란 무를 등에 메고 있는 표지 그림에 개, 고양이, 쥐가 뒤따르는 화면이 뒷장으로 연결되어 그려져 있습니다. 안표지에는 커다란 무 그림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첫 장을 펼치니 할아버지가 보입니다. 무를 심고는 빨리 자라기를 바라며 진지하게 땅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몸집이 건강하고 농부답게 굵고 단단한 손가락을 가진 할아버지가, 단단한 양 다리로 대지를 힘있게 꽉 밝고 있습니다. 허리를 구부리고 조그만 무의 싹을 들여다보는 표정이 소박하기 그지없습니다. 농부의 표정이 이처럼 진솔하게 살아있는 그림은 어린이 그림책에서는 좀처럼 볼 수 잆는 훌륭한 것입니다. 여리고 귀엽게만 그려서 어린이의 비위를 맞추려들지 않고, 이야기의 세계를 직시하는 회화적인 사실력으로 거짓없이 표현된 '할아버지'가 어린이의 시선을 꽉 잡아버립니다.

  무가 정말 커다랗게 자랐습니다. 화면밖으로 비어져 나오도록 커다랗게 그려진 무가 정말 실감납니다. 할아버지가 좋아서 춤을 춥니다.

  할아버지가 무를 뽑으려고 무잎을 잡아당깁니다. 큰 손, 버티고 선 양 다리와 몸에 힘이 넘칩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수수한 노동복과는 대조적인 빨간 옷의 할머니가 나타나 화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할머니 또한 농부의 아내답게 얼굴과 손이 건장합니다. 두 사람이 힘을 모아 무를 뽑으려는 모습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부부의 모습이 전해집니다.

  두 사람의 힘으로는 무가 끄떡도 안합니다. 할머니가 손녀를 불러옵니다. 다리를 뻗고 손을 짚은 상태로 쉬고 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잇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화가의 뛰어난 역량이겠지요. 이 화면으로 긴장감은 잠시 숨을 돌립니다.

  이제 세 사람이 힘껏 잡아당깁니다. 다시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힘의 세기가 앞 장면 때보다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몸과 얼굴을 뒤로 힘껏 젖힌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세도 다릅니다. 할아버지의 자세와 같은 방향인 손녀의 모습에는 리듬이 있고 젊음이 넘칩니다.

  안되곘는지 손녀가 개를 데리고 옵니다. 농가에 어울리는 양치기 개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쉬는 모습은 그들의 나이를 느끼게 합니다. 이번엔 할머니와 손녀가 잡아당기는 자세를 바꾸었습니다. 두 개의 잎사귀를 양손에 쥐고 있는 할아버지는 온몸의 체중을 실어 힘을 줍니다. 손녀의 몸짓에도 힘이 실려 있습니다.

  개가 다시 고양이를 부르러 간 사이 할아버지는 땅 위에 누워버립니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정말 고양이 손도 아쉬는 정경입니다. 이젠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손녀는 피로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온 개와 고양이는 힘이 넘칩니다. 뒷다리로 서서 개의 꼬리를 잡은 고양이의 모습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개나 고양이가 잡아당겨도 별로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상식의 세계와, 이야기 속 허구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차이가 웃음짓게 하지요.

  이번엔 고양이가 쥐까지 데려옵니다. 모두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당혹스런 표정입니다.

  열 두번째 장면, 지쳤지만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의지가 보입니다. 쥐의 모습이 귀여워 절로 웃음이 납니다. 고양이의 득의에 찬 표정도 좋습니다. 커다란 무가 약간 기우뚱해졌지요. 그리고는..........설명이 필요없지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깨동무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표지 그림으로 이어집니다. 그 뒤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표정이 풍부한 인물들

 

  같은 제목의 그림책이 여러 권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이 단연코 빛나는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이야기의 흐름과 책이 옆으로 길게 만들어진 형태가 잘 어우러집니다. 무가 화면으로쿠터 베어져 나온 표현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장면 또한 이야기 전개에 알맞게 할당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성공 요인은 화가의 데생력 있는 표현, 특히 뛰어난 인물 표현력입니다. 단순히 데생이 좋은 것뿐만 아니라 표정이 풍부하여 이야기 속 등장 인물의 감정을 선명하게 표현한 점이 돋보입니다. 흙냄새를 느끼게 하는 색채와 분위기도 뛰어납니다.

 

이렇게 저렇게 그림책을 분석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역시 어린이들입니다. 이 그림책을 읽어주었을 때 어린이의 표정, 반응, 그 뒤의 어린이 생활속에 재현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그림책을 어린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림책과 어린이, 마쓰이 다다시 지음, p105~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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