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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그림책 28] 아기의 첫그림책 - 만1세 이전의 아기

작성자시몽|작성시간12.01.31|조회수85 목록 댓글 0

  "아기에게 생후 몇 개월부터 그림책을 주면 좋을까요?"

  10여년 전, 젊은 엄마들에게 아기들이 몇 개월경부터 그림책에 관심을 보였는지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평균 10개월이란 결과가 나왔습니다. 물론 아기가 10개월이 되기 이전부터 그림책이 준비되어 있음을 전제한 결과입니다.

 

  사물 그림책?

 

  예전에도 아기를 위한 그림책은 있었습니다. 대부분 두꺼운 종이에 울긋불긋한 색깔로 아기 동물이나 장난감 차같은 탈 것을 그린 것들입니다. 귀여운 그림, 몇 마디 말이 쓰여진 책이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져도 '아기책이니까.'하고 넘겼지요. 또 아기들도 꽤 흥미를 보였습니다. 컬러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전에는 이런 휴의 그림책도 아기들의 시각체험에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처음으로 만나는 색채, 그림의 세계니까요.

  아기가 처음 보는 그림책에는 어떤 내용과 표현이 담겨 있어야 좋을까 많이 생각했지만 당시엔 결론을 얻지 못했습니다. 동물이나 탈 것을 그린 '사물 그림책'이 적당하다는 정도였죠. 그림은 사실적인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봉제완구처럼 귀엽고 유치원 표현의 그림이 그려진 예전의 아기 그림책은 곤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처음 만나는 그림이 형태도 변형되고 색깔도 달콤하기만 하면서 부자연스럽다면 좋을 리 없겠지요.

  실물에 가깝고 아름다운 그림을 제공하는 것은 아기를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아가 처음 만나는 그림책은 쓸데없는 배경이나 세부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 그리고자 하는 대상 자체만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사물 그림책'이 좋다고 결론내린 것입니다. 실제로 만1세쯤 될때 사물 그림책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 아기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그림책은 유아가 보는 그림의 책'이라는 생각에 지나치게 기운 결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기와 어른의 관계

 

  아기가 7~10개월이 되면 호기심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림책을 보여주면 강한 관심을 보입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그림책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어른이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여러 가지 작용을 해야 아기의 관심이 그림책으로 쏠립니다. 아기의 성장을 기대하는 어른들의 마음이 그림책을 통해 아기에게 전달되니까 아기의 반응이 그림책에 대한 흥미나 관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단계의 그림책을 지적 요소가 강한 '사물 그림책'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게 아닐까요. 왜냐하면 아기와 그림책의 직접적인 관계에만 주목하여 그림에 대한 반응만 파악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아기와 어른의 관계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 1세가 되기 전부터 지적 교육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 무의식중에 지적인 주입식 교육의 출발점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아기를 위한 그림채그이 참다운 의미를 변질시키고 그릇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림책은 아기에게 부모와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게 해주고 몸과 마음을 굳게 연결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림책은 이렇게 아기의 성장에 필수적인 것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때문에 그림책은 아기의 언어체험을 한층 더 깊게 하기 위한 시각적 소재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기와 엄마의 언어는 열쇠와 열쇠구멍

 

  1979년 도쿄에서 열린 '유아개발 심포지엄'에서 동경대학 교수이자 소아과 의사인 고바야시 노보루교수는 <뇌의 발달과 환경 - 모자 상호작용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언어란 매우 이상한 것이어서 유아의 머릿속에는 이미 표정, 손짓, 몸짓 등으로 정보교환이 가늘한 프로그램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적당한 때에 적당한 자극을 받음으로써 '말하기 언어'로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엄마입니다. 엄마는 아기가 생각하는 것을 가장 잘 압니다. 예를 들면 아기가 야옹 야옹이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때 엄마는 그 야옹이 장난감 고양이인지, 그림책 속의 고양이인지, 그 집에 있는 고양이를 말하는지를 바로 압니다. 그러니까 "아 그래, 이 그림책 속의 고양이 말이구나."하고 아기와 대화를 합니다.

   아기가 생각한 것과 엄마가 말하는 것이 마치 열쇠와 열쇠 구멍의 관계처럼 꼭 들어맞지요. 이런 관계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아기의 언어는 발달되어 갑니다."

  아기의 언어와 엄마의 언어가 열쇠와 열쇠구멍의 관계처럼 꼭 맞아떨어지도록 자꾸 되풀이되는 가운데 그 그림속의 영상이 살아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그림의 영상을 통해 무엇을 가르친다든가 알린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영상을 부모와 자녀가 공유하면서 언어를 주고받고 마음의 교류를 강화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지요. 이런 확신이 어린이의 성장을 촉구할 수 있습니다.

 

  엄마 언어는 마음의 영양

 

  태어나서 7개월까지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구나!"를 느끼는 것은 일생을 통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아기가 사랑을 확신할 수 있도록 그림책은 아기의 성장을 촉구하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아기를 기르는 엄마들은 강요당하거나 교육적으로 배려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성 본능으로 아기에게 말을 건넵니다. 젓을 먹이면서, 기저귀를 갈면서, 목욕을 시키면서, 안아주면서 엄마들은 쉴새없이 무언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말이며, 그러기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언어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으면 참으로 따뜻한 말이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그럴 때의 엄마 손길은 한없이 부드럽고 세심하며 아기의 정신을 안정시키고 쾌감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이런 그킨십이 이루어지는 동안 귓가에서 엄마의 부드런 언어가 되풀이해서 들린다면 그 언어가 아기의 신체속에 자리잡는 것은 확실합니다. 엄마의 젖을 먹고 영양을 섭취하듯, 아기는 엄마의 언어를 들으면서 마음의 영양을 얻어 '인간'으로 성장해 갑니다.

  나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기 때문에 상식적인 선에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모유는 육체적이고 모국어는 정신적이라는 구별은 무의미합니다. 양자가 미묘하게 서로 혼합되어 심신의 성장과 안정에 작용한다고 생각됩니다. 전문가가 아닌 우리들은 유아의 성장을 지나체게 분석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이렇게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림책을 아기의 지적인 성작을 꾀하는 도구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와 함께 얘기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아이를 성장시키는 길이라고 이해하기 바랍니다.

 

 

  바르고 조화롭고 안정된 그림

 

  특별히 아기만을 위해 만든 아기용 그림책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기가 흥미를 갖는 것이라면 어떤 책이라도 좋습니다. 다만 그림이 너무 싸구려거나, 색채가 천박하거나, 좋지 않은 봉제완구 인형처럼 모양이 찌그러진 것은 피해야 합니다. 모양이 바르고 한눈에 '참 아름답다'라고 느낄 수 있는 조화롭고 안정된 그림이어야 합니다. 아기가 흥미를 보이는 장면의 그림을 함께 보면서 말을 걸어주면  그 그림은 아기에게 유익한 작용을 합니다.

  딕 부르너의<아기 토끼 미치>시리즈는 이야기보다 그림이 좋습니다. 정면을 보고 있는 안정된 디자인은 아직 눈의 초점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아기들의 주의를 강하게 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딸리 첫돌이 지났을때, 적당한 그림책이 없을까 하고 서점에 갔더니 '아기가 처음 만나는 그림책'이라고 쓰여진 그림책이 눈에 띄었답니다. 미피였지요. 책장을 몇 장 넘겨보고 난 뒤 이 책이면 자기 딸도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온 엄마는 가슴 설레며 딸을 무릎에 앉히고 천천히 읽었습니다.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딸아이는 그림은 빤히 들려다보고 있었고 엄마는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나갔습니다. 그 어머니는 딸아이와 본 첫번째 그림책을 잘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열네 살 소녀가 된 딸리 어느 날 우연히 벽장 속에서 그 책을 찾았습니다. 얼마나 많이 보았던지 낡고 낡아서 누더기처럼 너덜거렸습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그토록 좋아했던 그 책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그 책으로 글자를 익힌 것도 아니니 지적으로 기억될 만한 근거는 없지요. 하지만 책을 들고 글자를 읽어가기 시작하더니 목소리는 점점 감정을 실었습니다. 소녀가 읽는 억양은 옛날 엄마가 소녀에게 읽어준 것과 너무나 같았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 소녀는 "엄마, 이 리듬을 기억할 수 있어요. 머리가 아니라 내 몸 속 아니면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것 같아요."라고 말했답니다.

 

  엄마의 목소리로 체득하는 자연의 리듬

 

  음악적 리듬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지요. 피아노 악보에 표기되는 리듬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계와 인간계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감지하는 리듬입니다. 낮과 밤, 밀물과 썰물, 활동과 휴식.........자연계에는 정교한 리듬이 있지요. 인간의 몸과 마음도 살아가는 가운데 이러한 리듬이 배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소녀가 어딘가 자신의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던 언어와 리듬은,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정감 넘치게 읽어주었기에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이 아닐까요. 그냥 보여줬다면 이런 영향을 볼 수 없었겠지요. 엄마의 감수성과 애정이 있었기에 언어도 힘을 발휘하고, 리듬이 있었기에 영상도 생생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귀와 눈의 체험이 일치될 때 아기의 입에서도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글자를 읽을 수 없는 유아가 그림책 문장을 줄줄 외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것은 단순히 언어를 외운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는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세계를 생생하게 보고. 느끼고. 강하게 공감하는 것입니다. 영상이 부풀대로 부풀면 그 영상과의 공감의 언어가 되어 재창고되는 것입니다.

  이 연령대의 유아는 자신의 영상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모방을 아니라 창조적인 활동입니다. 글자를 읽기 이전에 귀를 통한 언어체험을 풍부하게 했기 때문에 길러진 상상력입니다. 일찍부터 혼자 글자를 읽게 하고 그림책을 읽도로 길러진 어린이는 안타깝게도 이런 능력이 자라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그림책, 마쓰이 다다시 지음, 140p~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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