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어린이와 그림책 32] 좋은 그림책이란

작성자시몽|작성시간12.04.23|조회수102 목록 댓글 0

  어린 시절 꽃이나 벌레의 한 부분을 크게 확대해 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겁니다. 그 신선한 충격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토막으로 남아 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돋보기나 현미경에 닥치는 대로 비춰보고 싶었던 유혹도 기억나겠지요.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이와 비슷한 체험이 아닐까요. 그림책은 유아가 일상생활에서 늘 보아온 것을 확대경으로 비춰보았을 때 신선한 발견과 놀라움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육감에 작용하는 것

 

  어린이는 많은 것을 봅니다. 호기심이 강하기 때문에 동물원이나 유원지에 데리고 가면, 입장하자마자 두리번거립니다. 어디부터 볼까, 무엇부터 하며 놀까 하고 조급해합니다. 동물원에서는 빨리 모든 것을 보려고 그저 동물 우리 속을 들여다보며 전진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나도 큰 미술관에 갈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볼것을 미리 정하거나 누구 작품으로 초점을 좁힙니다. 다 봐야지 하는 마음 없이 다니다가 뜻하지 않았던 작품을 발견하거나, 별로 의식하지 않았던 화가의 매력적인 작품을 발견하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요.

  그러나 '좋은 작품을 많이 보면 볼수록 눈이 날카로워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납득이 갑니다. 미술, 음악, 문학 작품은 많이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이 이 때까지 보고 들은 수많은 것들과 새로 접한 것을 재빨리 무의식적으로 비교하여 평가하는 '감'이 작용한다고 할까요. 그것은 언젠가 피부감각처럼 몸의 일부분이 된 듯 좋은 것을 가려내는 반사신경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좋은 것이란 참다운 것, 믿을만한 것, 마음을 움직이는 것, 볼수록 빨려드는 것,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것, 품위 있는 것, 자기 세계가 열려진 듯 느끼게 하는 것 등등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오감만이 아니라 예리하게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마음의 표현인 '육감'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상은 인식보다 먼저 와닿는다

 

  "그림을 볼 때 나는, 제일 처음엔 하나의 전체로서 본다. 주제가 무엇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전반적인 인상이 먼저 와닿는다. 그것은 전체의 상태와 펼쳐진 폭, 형태, 색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 최초의 충격은 순간적인 것이다. 만약 위대한 작품이 가게 전시장에 걸려 있다면, 시속 30마일로 달리는 버스의 차창으로 흘끗 본 것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단언한다."

 

  영국의 유명한 미술사가인 케네스 크라크가 <회화를 보는 법>의 서문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크게 공감했습니다. 시속 30마일이면 약 시속 50킬로미터입니다.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종합적인 힘이자 아름다움입니다.

  그림책도 좋은 작품을 되풀이해서 보고 있으면 보는 눈이 밝아집니다. 그 위에 미술과 문학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이 더해지면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단지 미술과 문학에 대한 이해를 잘한다고 해서 그림책을 충분히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해서 종합적으로 보는 힘이 없으면, 그림책이라는 작품세계를 전체로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림책의 종합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관건은 그림책을 만든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과 관련됩니다.

 

  자, 보고 싶던 것 보여줄게요

 

  그림책은 여러가지 사물과 사건이 하나의 주제 아래 만들어진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날마다 별 생각없이 보고 느끼고 이상하게 여겨지던 것이 확실하게 보이고 깊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동물이나 식물, 탈 것, 장난감 곰처럼 친근한 존재, 친구관계, 언어의 재미, 색의 아름다움, 여러 가지 모양, 이야기라는 신비한 힘으로 또 다른 세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항상 무엇인가 보이고 있지만 그냥 지나쳐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유아기 때부터 인공적인 시각적 자극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싫증나도록 보게 되겠지요. 실제로는 싫증날 정도로 보고 있지 않은데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그림책이란 어린이의 기분에 맞추어서 무엇을 어떻게 제시하고 말하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볼 수 있고 보다 깊이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평소 보고 싶고 듣고 싶고 체험하고 싶다고 느낀 것을 '자 여기에 있어요.'하고 제시해 주는 그림책을 발견했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 그림책을 선택하는 사람, 그림책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때, 어린이와 마음의 교류가 가능하고 어린이의 신뢰와 공감을 얻을 것입니다.

 

 

 

 

                                                       어린이와 그림책, 마쓰이 다다시 지음, 168p~171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