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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그림책 34] 그림책의 그림을 보는 안목

작성자시몽|작성시간12.11.12|조회수82 목록 댓글 0

  그림책의 그림은 문장을 설명하는 보조적인 역할이 아닙니다. 그림자체로 책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주제가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글자를 읽지 못하는 아이도 혼자도 그림책을 읽고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림만 현란할 뿐 아이들을 이야기 세계로 데려가지 못하는 그림책은 머지 않아 아이들한테 버림받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림의 감상자가 아니니까요.

 

  이야기 전개에 적합한 크기인가

 

  언젠가 런던의 한 백화점에서 유리장 속에 진열된 3~4센티미터 쯤 되는 작은 동물 인형들을 보았습니다. 나무를 깎아서 색칠한 수제 인형인데 모두 양복을 입고 있었지요. 작은쥐. 토끼, 다람쥐.....낯이 익어서 한참을 자세히 들여다 보다가 "아아, 피터래빗!" 하고 탄성을 질렀지요. 젊은 점원 아가씨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금부터 80여 년 전 영국의 한 젊은 여성이 사랑하는 남자 어린이를 위해 장난꾸러기 아기 토끼 이야기를 쓰고, 거기에 수채화로 그림을 곁들여 <피터래빗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여성이 바로 베아트릭스 포터인데, 이 그림책은 후에 그림책으로 출판되었고 전세계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책이 되었지요. 자그마한 문고본 정도의 크기로 얼핏 보기에 조촐한 그림책입니다.

  토끼들은 사람처럼 양복을 입었습니다. 엄마 토끼는 바구니를 끼고 우산을 들고 시장에 갑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말 토끼가 있습니다. 토끼들의 몸짓에 토끼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어요. 사람 얼굴을 토끼 얼굴로 바꾸기만한 단순한 의인화와는 다릅니다. 이야기에도 그림에도 토끼 자체의 성격과 생활이 우러나 있어, 작은 책 속에서 자연스러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토끼들의 귀여움은 겉보기만이 아닙니다. 울고 있는 아기 토끼는, 진짜 토끼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감정을 가진 존재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토끼들의 세계가 생생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포터의 그림은 억지로 귀엽게 그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어린이의 감정을 잘 아는 이가 어린이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담아 쓴 것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 책은 어른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크기입니다. 다른 화가가 피터 래빗을 그린 큰 판형의 그림책도 있지만, 포터의 작은 그림과 비교해 보면 훨씬 싱겁게 느껴집니다. 그녀는 작은 책이 더 귀엽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그 크기가 자신의 세계를 그리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필요한 것만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여백을 충분히 남긴 포터의 그림이야말로 진짜 <피터래빗 이야기>의 세계라는 것을 그림책을 되풀이해서 보는 가운데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림책의 모양은 큰 것이 좋다든가 작은 것이 좋다든가 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려도 하는가,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는 어떤 모양이 가장 적합한가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이지요.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딕 브루너의 <아기가 처음 만나는 그림책>도 크기가 작습니다. 판형도 정사각형이어서 다른 책들과는 모습이 아주 다릅니다. 단순한 줄거이에 밝고 뚜렷한 색채, 간경한 모양과 선으로 그려진 이 책은 2~3세 유아에게 꼭 맞는 책이지요, 첫 장을 열어보세요. 정사각형의 한가운데 서 있는 토끼는 작가의 디자인 감각을 살려 안정된 모습으로 공간에 딱 들어앉았습니다. 이것은 이야기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고 보는 아기들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버지니아 리 버튼의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시공주니어)는 반대로 가로 31센티미터, 세로 23센티미터의 대형 그림책인데, 기관차가 도망치면서 모험을 한다는 활달한 이야기를 표현하기에 큰 모양이 적합하기 때문이지요.

  또 완다 가그의 <백만마리의 고양이>(시공주니어)는 옆으로 긴 모양의 그림책인데, 백만마리의 고양이를 줄줄이 이끌고 다니며 펼쳐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보면, 작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에 효과적인 색채인가

 

  아이들에겐 그림책의 표지를 열면 신비한 세계가 열립니다.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가서 즐거운 체험, 신나는 모헙을 하다가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 비로소 현실세계로 돌아오지요,. 그러니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담겨 있느냐가 중요하지 색채의 다양성, 귀여운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흑백 그림도 이야기의 내용과 일치할 때 아이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집니다.(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가스 윌리엄스의 <흰 토끼와 검은 토끼>(다산기획)를 봅시다. 노란 밀들레 외에는 검은색, 엷은 하늘색,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숲속에 사는 하얀 토끼와 검은 토끼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그런 색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만약 여기에 빨간 꽃이나 초록색 나무를 잔뜩 그렸다면 이야기의 조용한 분위기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도 잃었을 것입니다.

  마리 홀 엣츠의 <나무 숲 속>(한림출판사), <또 다시 숲 속으로>(한림출판사)도 흑백 그림입니다. 한 남자 어린이가 숲 속에 놀러갔다가 동물들과 만나는 공상 이야기인데, 어린이의 마음속 세계를 그려내는 데에는 검은색이 정말 효과적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림책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세계를 어린이 마음속에 펼쳐주기 위한 책입니다. 외형의 호화로움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그 그림이 진정 이야기 전달이라는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엄마들이 평소에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어떻게 즐기고 기뻐하고 감동하는지를 '아이의 기분과 눈으로' 공감하는 경험을 가지십시오. 훌륭한 그림책을 충분히 봄으로써 높은 안목을 기르십시오.

 

 

 

 

                                               어린이와 그림책, 마쓰이 다다시 지음, 176p~1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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