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보다 듣기가 먼저(읽어주기의 중요성)
이 현(목원대학교 교수)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르면,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듣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말하고, 읽고, 쓰는 단계를 밟는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발달 단계는 그 어느 단계도 뛰어넘을 수 있는 단계가 없다. 기던 아이가 앉고, 앉은 뒤에 선다. 그리고 걷고 뛴다.
우리는 아이들을 기르면서 이러한 발달 단계가 순차적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독서 교육에 있어서는 많은 엄마들이 이러한 단계를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독서란 많이 들은 뒤에 듣는 귀가 열리면 그때서야 읽는 눈이 생긴다. 귀와 눈으로 많은 것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넘쳐야 비로소 쓸 수 있는 손과 힘이 생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엄마들은 제대로 듣기 교육이 안 된 아이에게 급하게 책을 읽히려 하고, 아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곧바로 쓰기부터 요구한다. 하지만 일어서지도 못하는 아이가 뛸 수 없듯이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단계를 제대로 밟지 못했으면 첫 단계인 듣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큰 아이 진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나는 초등학생인 진아에게 5세용 그림책부터 읽어주기 시작했다. 다 큰 아이가 유아실에서 그것도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면 주변에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이의 듣는 귀를 열리게 하기 위해서 그런 눈치쯤은 무시했다. 내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고, 차츰 그림책에서 시작된 읽어주기는 분량이 많은 동화책으로 옯겨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책을 읽고 말하는 아이로 변했다.
듣기의 중요성은 이미 의학계에서도 증명된 사실이다. 미국 의학계에서는 태어난 지 6개월이상 된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주면 아이의 머리가 좋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부모가 한 단어, 한 구절 읽어줄 때마다 수 천 개의 뇌세포가 반응하면서 세포 간 연결 구조가 더욱 단단해지고 그 간격이 조밀해져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단계에서 언어 인지 능력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듣기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말하기를 제대로 한다. 누구나 말을 한다. 그러나 말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서 잘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듣는 관정에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난 뒤에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증명보다 대문호 괴테의 어린 시절의 한 일화는 듣기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잘 말해주고 있다. 괴테의 어머니는 밤마다 괴테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 일부러 늘 절정 부분에서 멈췄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음날 읽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방에서 나갔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바로 그 뒤에 전개되는 이야기를 괴테 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도록 비워두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읽어주는 책 내용을 들으면서 내용을 이미지화한다. 실험에 따르면 글자를 눈으로 보면서 머리 속으로 이미지화하는 것보다 들으면서 이미지화하는 것이 훨씬 크다고 한다. 이때 발휘되는 능력이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을 통해 주인공과 이야기하고, 동화의 내용을 자신의 일로 여겨 울고 웃으며 자신의 것으로 변화시킨다. 상상력은 이성과 논리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관련이 있는 능력이다. 자유분방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바로 이 상상력에서 나온다. 상상력이 있는 아이들에게서 창의적인 생각이 튀어 나온다. 창의력은 창조와는 다른 개념이다. 기존에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응용하는 능력이 바로 창의력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다른 유를 변형하는 것이 창의력이다. 사과가 익으면 떨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뉴턴에게는 위대한 발견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단순히 언어 발달 단계 중 한 단계인 듣기의 과정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듣기를 통해 상상력이 발달하고 상상력을 통해 창의력이 커지게 되는 중요한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모든 지적 능력의 바탕은 바로 듣기에서 시작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안다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기적의 도서관 학습법/이현 지음/기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