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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칼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작성자티끌나|작성시간24.04.25|조회수5 목록 댓글 1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8:7,8>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러 예수님은 속히 오신다고 했다. 속히 오신다고

하신 그 분은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진 후에 오시므로 이천년이 걸려서

오셨다.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 뭘까?

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좀 길어지므로 결론적으로 짧게 말하리라.

 

말씀은 비유로 봉해져 있다. 따라서 원한이란 택하신 자들답게 비유로 봉한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한 자신들의 무지에 대한 회한의 원한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그 절대적 목적이 택하신 자들에게 말씀을 풀어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왕과 제사장 반열로서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정부를 출범시켜 천년통치권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온 세상 인류를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는 일이다.

이것이 택하신 자들(의로운 자들)에게 원한을 풀어주시는 일이 된다. 

 

이같은 목적으로 예수님은 다시 오시는데, 이 때의 상황이 어떠하다 했는가?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셨다.

이는 인자가 올 때에 말씀을 깨달아  알고 있는 자들이 아무도 없겠다는 뜻이다.

당연하지 않는가. 왜냐면 봉한 말씀은 예수님만이 풀어주시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초에 한 사람 예수님(재림)으로부터 반석에서 영생하는 말씀의 생수가 터지고,

그 생수는 택하신 자들 반열에게 공급되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천년통치 때

그 영생의 생수는 온 인류에게까지 충만하게 마시워질 터이므로

말씀의 흐름이나 혹은 영생의 순서는 태초부터 정해진 창조의 프로그램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때의 막바지에 이르러 여러 부면에서 혼돈이 극에 달한 요즈음,

생명수를 주시는 최초의 한 사람 오늘의 예수님의 실존을 천방지축으로

깔아뭉개는 신흥종교인들(자칭재림주) 까지 나타나 

우리주변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혼돈에 혼돈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들은 보이는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 자기네와 같은

아들들에게 오기 때문에, 현재 말씀을 풀어내고 있는 자기네와 같은

아들들의 말씀을 잘 들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요즘에 그런

자들이 여기서도 저기서도 수두룩히 줄줄이 사탕처럼 줄줄이 꿰어져 있다.

 

그들의 주장이 어디서부터 기인되었는가 살펴보았더니 

아마도 그들은 특히 신종 여호와증인들이라고나 할까?

여호와 증인들은 가시적 예수님의 오심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하늘에서

1914년부터 이미 말씀으로만 통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증들은 하늘에서 통치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 오는가 하면,

여증들의 본부가  미국소재의 웟치타워에 있는데 그 본부는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있고, 그 남자들에게 말씀이 내려와서 온 세계사람들에게

파수대를 통해 전파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들도 현재 말씀을 풀어내고 있는 자기와 같은

아들들에게만 말씀이 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의 경로가 남자들이든 아들들이든 그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왜 성경을 왜곡하고 날조하면서 예수님의 가시적 오심을

부인하는가 이다. 재세시 예수님의 천국비유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마21:35-39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좇아 죽였느니라 ]

 

이렇게 그들은 오늘의 예수님이 싫은 것이다. 자기가 곧 상속을 모두 받는

예수님이 되고 싶은 심산인 것이다. 말로는 아들들, 아들들 하지만,

그 아들들은 곧 자신 하나에게 해당시키는 탐욕일 뿐이다.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말씀만 자기와 같은 아들들이 직접 받는다고 하는

그 탐욕을 폐기처분 하도록,

이제 성경을 들어 예수님이 육체로 오심을 명백히 밝혀주리라.

 

 

[사52:13-15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이사야 52장에서 그분의 모습이 어떠하다 했는가?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보고 놀란다고 했다. 그런데 후에는 어떠하다 했는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라 했다.

 

이는 그분이 현재 육체로 이 땅에 오셨으나,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는

때가 있는데 그 때의 모습은 인생의 평균치가 못된 상한 모습이므로

사람들이 놀랄 지경인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그분의 신분이 드러날 때는

예전의 그 모습을 전격적으로 뒤엎는 모습으로 나타날 터이므로 또 다른

새로운 놀라움이 있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예수님의 오심을 부인하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자 하는 자들은,

즉 자기와 같은 아들들의 말을 들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던

열왕들은 그 분 앞에서 할 말을 잃을 것이니, 그 입들이 봉해진다고 했다.

 

이렇게 그 한분에 대해서 세세히 알려주는 기록이 있음에도 그분의 오심과

실존을 짓밟아 까뭉개버리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늘의 그런 악한

세상을 향하여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사53:1-12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53장에서도 그분의 모습이 어떠하다 했는가?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올라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도무지 흠모할 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이사야 52장과 같은 말이 된다.

 

이 같은 이사야 52장과 53장의 기록이 예수님의 초림 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의 초림 때는 갓난 아기 때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찬양을 받고, 예물도 받고, 기대를 받고, 성인이 되어서는 그분의 일거수일투족에

많은 무리들의 놀라워하는 시선이 집중되어 혼잡을 이룰 정도로 인기충천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 때의 행보와 기록일지라도 그것은 결국 재림 때에 대한

상징과 비유비사가 되기 때문에 모든 성경기록은 거의 오늘의 재림 예수님에

대한 기록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멸시받고 천대받고 간고와 질고속에 헐레벌떡 하므로 사람들로부터

싫어 버림을 당했다고 했다. "우리" 라고 하는 택한자반열까지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다고 했다. 우리는 그분의 외로움을 짐작이나 할까? 

아니 짐작까지 하라고 요구하지 않을 터,

다만 그 이하는 독자들이 잘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렇게 그 한분에 대해서 세세히 알려주는 기록이 있음에도 그분의 오심과

실존을 짓밟아 까뭉개버리겠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늘의 그런 악한

세상을 향하여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천년 전, 초림 예수님은 그 이름이 "예수" 였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무리들처럼  예수님은 오늘날 보이게 오시지 않고 그 말씀만

자기와 같은 아들들에게 오기 때문에 자기와 같은 아들들의 말씀을 잘 들어야만

구원받는다고 한다면,  여전히 예수님은 그냥 예수라는 이름으로 있으면 된다.

 

그런데 계시록에서 알려주고 있듯이 이제는 예수가 아니고 "새 이름" 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재림 예수님은 새 이름으로 반드시

보이게 오시는 분임에 틀림없다. 이사야 62장 2절에서도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것이라" 라고 했다.

즉 예수님은 그분의 새 이름이 홍길동인지, 혹은 철수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가시적으로 오신다는 뜻이며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극비로 오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경기록을 무시하고 자신을 만방에 드러내는

엉터리 자칭 재림주들(적그리스도)로 북세통을 이루며, 여호와의 증인같은

경우엔 오늘의 재림주는 이 땅에 재림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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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늘지키미+ 작성시간 24.04.25 💖마음을 담고 정성을 담고 따스한 정성을 담은 따듯한
    차 한잔으로 오늘 하루가 사랑으로 가득한 하루 되시길 바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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