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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작성자보산|작성시간13.05.27|조회수27 목록 댓글 0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은 여러번의 빗나간 종말론을 주장하여 많은 신자들이 미혹하였으며,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인 교리로 징집거부를 하게함으로서 병역기피자가 되어 취업도 못하며 결국 한 개인의 장래를 망치게 하고, 수혈을 거부함으로 가족이 생명을 잃게 되며 아이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함으로 학교에서 처벌을 받게 되며, 국가와 사회라는 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와 사회의 체제를 사단의 왕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개인의 생일마저 지내지 못하게 교회가 막고 있으며, 교회는 각종 규제를 통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위반하는 신도들을 제명시키고 축출하는 그러한 행위까지 서슴치 않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공식적 기관인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는 1884년 럿셀 목사로 더 잘 알려진 찰스 럿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이 "시온 워치타워 책자협회"라는 이름 하에 통합할 때 생겼다. 럿셀은 위치타워 성서책자협회를 설립하였고 초대 회장이 되었고(1896) 이 사람에 의해, 여호와의 증인이 조직체로서 출발하게 되었다.

자신이 확립한 이론을 전파하고자 시온 워치타워 출판사를 설립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파수대"의 모체가 되었으며, 이들은 "신세계역"이라는 자신들에 의하여 수정된 성경을 사용한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 교리가 외부적으로 잘 알려져 있어서, 현재는 그 숫자가 많이 감소되었다고 전해진다.

여호와의 증인의 주요 이단교리는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삼위일체의 부정: 예수는 피조된 하나의 신이고 아버지 하나님보다 열등한 수석대행자이며 천사장이고,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며 인격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에너지, 혹은 활동력이다.

둘째,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않으며 어떤 종류의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즉 형벌을 받는 지옥은 없으며 사후 영혼의 세계는 없다.

세째, 수혈을 거부하여야 하며, 군대(집총)를 거부하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여야 한다. 국가와 사회는 반하나님의 조직이며 거부하여야 할 사단의 체제이다.

네째, 예수의 부활은 영적인 부활이며, 이미 재림하였다.

다섯째, 오직 여호와의 증인만이 구원을 받으며, 천상구원자가 144,000명이고, 지상구원자는 종말 후에 지구의 땅을 분배받는다.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이미 전에 "지방교회의 양태론"이라는 제목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단일신론주의이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며 예수는 피조물이고 열등한 신, 천사장으로 간주하며, 성령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운, 에너지라고 주장한다.

또 지옥에 대해서는 초보문답실에서 별도의 제목으로 전에 자세한 글을 올린 것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라며 중복되는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견해에 대해서, 무엇이 비성경적이며 무엇이 성경적인지를 몇가지만 변증하여 보기로 한다.

1) 예수님이 하나님보다 열등한 신인가?

2) 군대를 거부하는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3) 예수님이 영적으로 부활하셨는가?

먼저 이 세가지를 연구하여 보자.

1) 예수님이 하나님보다 열등한 신인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전통적인 삼위일체는 성부와 성자, 성령이 모두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물론 삼위의 온전하신 하나님은 상호교류가 가능한 각각의 인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은 유일한 한분이시라는 것이다. 인간의 논리로 이해는 다소 어렵지만, 성경의 많은 기록은 분명히 삼위일체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그대로 요약한 것이 곧 삼위일체가 된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며, 하나님보다 열등한 피조물로 본다.

위의 이사야9장6절의 구절은 예수님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성경귀절이 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구절에 대해서 변명하기를, 이사야서에서는 "전능하신"(almighty)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께 사용되지 않는 "능하신"(mighty)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이사야의 이 구절은 예수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능하신 하나의 신"이므로 하나님보다 열등하다는 것이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게베르"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과 달리, 여호와 하나님에게도 이 "능하신"(게베르)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다.(참고, 신10:17. 느9:32. 습3:17. 단11:3, 히:게베르)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게베르)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신10:17)

-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게베르)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여(느9:32)

만일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그러한 주장을 따르자면, 성부하나님마저 전능하시지 않고 그냥 능하신 하나의 열등한 신이 되고 만다. 그들은 결국 입을 다물고 답변을 하지 못한다.

또 본문 이사야9장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나 답변조차 없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많은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다.(삼위일체라는 제목의 글을 참조하라)

-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9:5)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6)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요1:1)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요20:28)

-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일5:20)

-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3)

-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1:3)

-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이러한 성경구절에 대해서 여호와의 증인은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다음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예수가 하나님께 창조되어진 열등한 피조물이라고 하는 두 번째 성경적인 근거이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잠언8:22-24)

즉 여호와의 증인들은 잠언의 "지혜"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단정하고, 여호와께서 태초에 예수를 피조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잠언에서 언급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속성 중 "지혜"를 강조하는 문학적 표현기법로 사용되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즉 솔로몬은 잠언서에서 지혜를 의인화 시킴으로 인하여,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잠언에서의 "지혜"가 예수님을 의미한다면, 잠언의 다른 구절에서도 "지혜"가 예수님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아래 구절에서 "지혜"를 그리스도로 해석하면 그것이 모순된다는 것이 곧 밝혀지게 된다.

-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히며(잠1:20)

-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

-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잠7:4)

-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잠8:12)

그리스도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힌 적이 없으며, 개미에게서 그리스도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며, 또한 그리스도가 누이가 되지 않으며, 그리스도가 명철로 주소를 삼지 않는다.

즉 잠언에서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볼 수가 없다.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말하며, 그 지혜를 강조하기 위하여 의인화시킨 것이다.

그래서 잠언서는 솔로몬의 지혜서라고도 불려진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성경구절만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하며 자신들의 교리를 정당화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 군대를 거부하는 성경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최근에 양심적 군대거부에 대해서 호의적인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 되어진다. 만일 양심적 군대거부가 타당하게 된다면 누구나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할 것이다.

본인은 통신 상에서 여호와의 증인 한사람을 만났다.

본인이 군대를 거부하라는 말이 어느 성경에 있느냐고 질문 하였더니, 그는 곧 아래의 구절을 올렸다. 그리고 본인에게 무식하다고 힐난하는 것이 아닌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전쟁은 연습지도 말라는 이사야의 교훈은 전혀 생각도 나지 않는가?
과연 이사야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전쟁은 연습도 말라"고 했을까?
대단한 성경변질이다. 이사야에는 그런 구절이 전혀 없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사2:4)

아마 여호와의 증인이 인용한 성경은 이사야2장4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사야2장4절 바로 앞에 있는 2절을 보게되면....

"말일에(in the last days)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사2:2)

다시 말하자면 전쟁을 연습치도 말라는 교훈이 아니고, 말일(in the last days: 종말)에 전쟁을 연습치 않게된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다시 말하여 종말적으로 말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산이 모든 산에 굳게 서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다시는 전쟁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종말적인 예언의 구절이다.

이것을 변질시켜 "전쟁을 연습치도 말라"라고 성경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병역기피의 타당성을 아예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계시록21장 23절에서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필요없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우리는 지금 형광등과 전깃불을 다 없애버려야만 한다고 하면 그것은 정신이상자라고 불릴 것이다.

종말적으로 예언하여, 그 성에 해와 달의 비췸이 필요없다는데, 지금 현재부터 전깃불을 다 끄고 살자는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가?

항상 이단들은 비성경적인 교리를 짜맞추기 위하여 성경구절을 찾아 인용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군대를 거부하여야 한다는 성경적인 근거로 인용하는 두 번째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

과연 윗문장이 군대를 가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되는가?

과연 이 문장이 검을 가진 자는 다 검으로 망한다는 뜻일까?

똑같은 성경구절이 요한복음에도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18:11)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고 하시며 만류한 이유는, 전쟁을 하지 말라거나 군대를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연적인 예정을 이루기 위함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때가 차매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함이다.

그러한 필연적인 인류 구원의 일을 베드로가 검을 들고 방해를 하고 있으므로, 열두영의 천사를 부르실 수도 있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라고 하신 것이다.

과연 윗문장이 군대를 가지 말라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가?

예수님이 잡혀가심을 보고 베드로가 칼을 빼들었을 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마26:54-55)

즉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검을 거두라고 한 것은 군대를 거부하라거나 전쟁을 하지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연적인 예정을 위하여 그것을 만류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런 구절도 있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막8:33)

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이라고 하며 꾸짖으셨는가?

예수님은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그것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말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일을 생각치 아니하고, 예수님을 만류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은 이렇게 질문하였다.

만일 여호와의 증인이 성경을 그런 식으로(필요하면 부분적으로 인용하는 방법대로) 해석한다면, 아래 문장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물론 우리는 그런 이상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아야만 한다.

그러나 위의 마26:52과 요18:11을 군대 가지말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마10:34는 군대를 가라는 뜻으로 해석하여야할 것 아닌가?

만일 칼을 잡는 사람을 군대가는 것로 해석한다면, 예수님이 이스라엘 중에서 그 믿음을 찾기가 어렵다는 로마 백부장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를 만난 로마 백부장은 구원받지 못하는가?

군대를 갔던 전세계의 청년들은 예수를 믿어도 모두 멸망 당하였는가?

최근에는 양심적 징집 거부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종교상의 이유로 징집을 거부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징집은 국민의 국방의무이다. 종교상의 이유로 징집을 거부하는 것이 합리화된다면, 군대를 거부하기 위하여 모두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세금을 내야하는 의무도 양심상의 거부를 한다면 면제하여 줄 것인가 묻고 싶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것도 이해가지 않는다.

어느 기독교인도 국기를 신앙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기는 단지 국가의 상징일 뿐이다.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아무도 국기를 섬기지 않으며 신앙적 경배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십계명을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이 해석한다면,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도 말아야만 할 것이다.

비행기(새의 형상)도 배나 잠수함(물고기의 형상)도 만들지 말아야만 하며, 조작가나 미술가는 예술작품도 만들지 못하며, 공예품같은 인형이나 악세서리등도 만들지 말아야만 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회나 국가체제를 사단의 역사로 간주한다. 증인들의 자녀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다가 제적을 당하면 학교를 그만 두라고까지 가르치며, 군대를 거부하다가 전과자가 되어 취직이 못되어도 그것을 당연한 양심이라고 여기며, 천국에서 상이 크다고 가르친다.

게다가 피를 먹지 말라는 것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여, 수혈을 거부하다가 목숨을 잃는 것을 자랑이라고 가르치며, 혹시 정신을 잃어버릴 경우에 대비하여 수혈거부증을 미리 작성하여 품에 갖고 다니라고 가르친다.

3) 예수님의 부활이 영적인가?

성경에 의하면 그 몸은 신령한 몸(고전15:44)이요, 썩지 않는 몸이며(15:53), 영광스러운 몸(15:43)일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은 결코 뼈와 살이 없는 영혼만이 아니었다.

요한복음에서도 손과 옆구리를 보였다고 기록되어있으며, 누가복음에서는 손과 발을 보이며 만져보게 하였기 때문이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

예수님의 부활체는 살과 뼈가 있었으며 그러므로 영이 아니셨다.

더욱이 눅34:41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생선을 먹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부활 후 40일 동안을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하셨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올라가셨는데, 성경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주님의 재림은 가시적, 신체적이 될 것이다.

다만 성경에서 우리는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고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된다"(고전15:42-49)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빌립보서3:21에서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신다"고 기록되어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모습이 신체적, 가시적이었다면 우리의 부활 모습도 신체적, 가시적이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추측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 안에서 추측되어질 뿐이며, 부활 후의 모습에 대해서 우리가 임의로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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