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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기도원 / 장운철 기자

작성자보산|작성시간14.03.24|조회수52 목록 댓글 0

할렐루야기도원- 김계화 원장의  성령수술, 집단행동, 매독, 교회 세우기, 명예 목사 사건들 / 장운철 기자   

할렐루야기도원 김계화  원장(51)은 소위 '성령수술'이라고  하는 안수 행위로 유명(?)하다. 암과 같은 불치병이  김원장의 안수만 받으면 낫게 된다는 것이다. 성령 수술이라는 것은 김원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셈이다. 그 외에도 할렐루야기도원을 거론할 때마다 생수 문제, 매독 사건, 집단 행동  등의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본지는 이미 창간호(93년 10월호)에서  할렐루야기도원에 대해 심층적으로 취급한 바 있다.  김원장의 안수 행위를 비롯, 할렐루야기도원에서  일어나는 비성경적인 행위들을 지적한 것이다. 본지의 창간호 보도 후 최근 몇 년간 김원장은 할렐루야기도원 산하에 교회를 세우는 작업을 해왔다. 김원장은'명예'라는 말이 붙은 졸업장, 목사,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또한 무당과 의형제를 맺었다는 것과 연예 사건도 발생됐다. 아무튼 할렐루야기도원 김계화 원장과 관련된 뉴스는 끊이지 않았다.   성령수술, 성령의 불?   기자는 할렐루야기도원 김계화 원장의 안수 행위 등을  취재하기 위해 경기도포천에 위치한 본부  기도원을 수 차례 방문했다. 지난  8월 21일(목) 오후 2시,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할렐루야기도원. 6백여 평의  본당에서 김원장의 마이크 소리와 신도들의 함성이 방문객을 압도할 정도로 들려왔다. 먼저 집회장으로 갔다.   

3천여 명의 신도들로 가득 찬 본당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김원장의 말 한 마디마다 신도들의 '아멘' 등의 외침은 기계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난 오후 3시 경.  4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김원장의  성령 수술이라는 안수를 받기  위해서다. 그 남자가 등장하는  장내는 순간 조용해졌다. 긴장된 순간이다. 단상 위의 남자는 두려움에 찬 모습이다.   김원장의 안수 행위를 도와주는 한  여신도가 그 남자의 웃옷을 젖혔다. 가슴이 보이도록 위로 올린 것이다.  김원장은 그 남자를 암환자로 신도들에게 소개했다. 그런 후 그 남자의  병이 "낫는다"는 등의 몇 가지 멘트를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그 소리에 신도들은 다시 열광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장내는 전자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찬송이 다시 시작됐다.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다.   이 때 김원장의 안수 행위는 시작됐다. 김원장은 알아듣지 못하는 "샤! 샤!"와 같은 소리를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질렀다. 단상 위의 남자는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몸을 흔들고 있었다. 김원장은  그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김원장은  그 남자의 가슴에 약 10cm 크기의 상처를  냈다. 상처 부위는 붉은 핏자국이 났다. 김원장은 그 자리를 계속해서 자신의 손톱으로  수 차례 긁었다. 그런 후 그 환부를 4-5차례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김원장의  손이 남자의 환부를 때릴 때마다 피가 흘러나왔다. 바닥으로  튀기기도 했다. 그 남자는 어쩔 줄  모르며 '아멘'이라는 소리만 반복해  질러댔다. 자신의 살이 찢겨지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참는 것인지 아무튼 그는 정신이 나간 듯했다.   김원장은 자신의 오른손을  피가 흐르는 그 남자의  환부에 살짝 올려놓았다. 달걀 하나를 잡은 듯 약간 구부진 모양으로 손을 오므렸다. 김원장은 그 남자의 환부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은 채 신도들을 향해 몇 가지 멘트를 계속했다. 피를 본 신도들의 반응은 광적으로 변했다. 김원장이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을 '진실'로 믿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잠시후 김원장은 그  남자의 환부에서 붉은 색의 조그마한 이물질  하나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신도들에게  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암 덩어리'라고 말했다. 그러자 본당은 신도들의 '아멘' 소리로 흔들릴 듯했다. 김원장은암 덩어리라는 작은  이물질을 신도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손을  좌우로 움직였다. 심지어는 공중으로 던져 보이기까지도 했다.   

김원장의 안수는 이런 식으로 끝났다.  단상 위의 남자는 여신도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갔다.   과연 김원장이 꺼냈다는 그 이물질이 정말 암 덩어리일까. 할렐루야기도원 신도이자 목사인 한 사람은 "그것은  암 덩어리가 맞다. 현미경으로 확인도 해 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충배 박사(연대세브란스병원 외과의사)는 "암 덩어리가 피부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와 같은 일은 의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가능치 못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김원장의 안수 행위는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마치 비디오를 통해 재방송을  보는 듯 예전의 모습과 흡사했다.  집회 순서나 진행 방법도 비슷했다. 온몸 곳곳에 가제가  붙어 있는 신도들이 많이 있는 것도  그렇다. 본당 장식도 그대로다. 강대상 뒤편  예수그리스도인 듯한 대형 그림이 붙어 있는 것도, 김원장이 매년 하나님께 받았다는  말씀이라는 글귀가 크게 붙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글귀는 스티커로 제작돼 매년 초 1백원 짜리 동전에 붙여 세뱃돈이라는 이름으로  신도들에게 나누어주는데 그것도  여전하다. 금년 말씀은 '강건'이라고 한다.  음침한 기도굴에서 시간을 보내는  신도들의 모습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다.   할렐루야기도원의 '생수 문제'도 변하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다. 신도들은 생수가 나온다는 우물가 주변에 자리를 틀고 기도를 한다. 우물가 주변은 그런 신도들로 항상 붐빈다.  김원장은 "박태선의 은사가 이쪽으로 옮겨졌다"는 직통계시성 주장을 했다. 즉 병 치료를 위해 먹고, 마시고, 바르고 심지어 죄를 사하는 데까지 사용한다는 박태선의  이단적 생수의 능력이 자신에게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김원장의 생수 주장은 그가 박태선의 생수  문제를 모르고 하는 말이거나, 그가 받았다는 계시가 잘못되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아무튼 할렐루야기도원의 우물가에는  신도들이 그 물을 떠가기 위해서  항상 장사진을 이룬다. 신도들은 그  물에 신비함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  물은 기도원 소속 탱크로리 차에 의해 전국 지부 기도원으로 수송되기도 한다.   할렐루야기도원의 모습은 대체로 예전과 비해 별반 변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 가운데 집회 후  신도들의 개인 안수장소를 공개된 공간인 본당에서  별도의 방으로 옮겨졌다는 것이 눈에 띈다.  

개인 안수 시간을 통해서 김원장은 신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그 장소가 비공개 장소로 바뀌게 된 것이다.   김계화 원장의 안수  행위와 관련,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신도들은 김원장이 안수를 할 때  김원장의 손에서 '성령의 불'이 나간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김원장의 손에서 '연기'도 나온다고  선전하고 있다. 소설이나 무협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할렐루야기도원에서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할렐루야기도원 홍보지인 '할렐루야신문'(97년  8월 28일자)에는 "김원장의 손에서 연기가 나와 그의 연기를 김원장은 물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 사람이 함께 보았(다)"며 그와 같은 현상을 '이적'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김원장도 자신의 손에서 그러한  이적이 일어난다고 여기는지 만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행동을 취하곤 한다.  그는 신도들의 손이나 환부로부터  약 10cm 정도 이격하여 자신의 손을 올려놓은 채로 10여 초 남짓 긴장된 순간을 연출해 낸다. 신도들은 이 때 성령의 불이 김원장의 손에서 나와 환자의 환부로  들어간다고 믿는 모양이다.   성령의 불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비디오 테잎이 본사에 접수됐다. 할렐루야기도원에서 홍보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지난 85년 11월 21일  이리시민회관 집회 장면의 녹화 분이다. 이 테잎에는 김원장이 신도들에게 안수해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소위 '성령의 불'이라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당시 집회는 야외에서 열렸다. 김원장의 안수를 받기 위해 몰려드는 신도들로 인해 집회 시간은 예상보다 늦어졌다. 집회장에 어둠이 깔리고 신도들은 안수를 받겠다고 계속 줄을 서고 있었다. 비디오 카메라맨은 김원장의 손을 클로우즈업했다. 그때 김원장의 손은 빛이 나고 있었다.  

주변은 어둠이 내려앉아 컴컴한데 김원장의 손바닥만이 거짓말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비디오 테잎의 해설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것은 성령의 불"이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정말 김원장의 손에서 불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기자는 그 테잎을 다시 천천히 틀어 보았다. 그러자 미처 보지 못했던 장면이 잡혔다. 성령의 불이라고 말한 그불빛은 김원장의 손바닥뿐 아니라 손목 일부와 그의 옷소매 끝자락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또한 김원장이 손을 틀면서 뒤로 뺄 때 그  불빛은 김원장의 손바닥에서는 갑자기 없어지고 손가락  사이로 보이면서 사라졌다. 즉 김원장의 손바닥을  향해 아래서 위로 누군가가 랜턴을 비추 고 있는 모습과 같았다(사진 참조). 재차 그 장면을 보았지만  그 테잎에서 소개한 성령의 불이라는 것은 '조작'일  가능성이 컸다. 취재중 기자는 당시 그 집회에 참석했었다는 할렐루야기도원 전 신도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 집회 때 직접 김원장의  손에 랜턴 불빛을 비추었다고 말했다. 그 테잎에서 설명하는 성령의 불은 '가짜'라는 것이다.   

집단 행동, 매독 사건   김원장의 안수 행위로 인해 신도들이 '매독'에 걸렸다는  사건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93년 3월  MBC-TV 'PD수첩'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한  이 사건은 그후 여러 매체를 통해서 확산됐다. 김원장의 안수로 인해 오히려 '매독'이라는 불결한 병이 옮겨졌다는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였다. 기도원측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나왔다.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3천여 명의 신도들이 몰려가 집단행동을 취한 것이다. 기도원측의 집단행동은 매독 피해자라고 나선 신도들의 집에까지도 이어졌다.  기도원측 집단행동자들 가운데는 자기 몸조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환자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의 집단 행동 때문인지 MBC와 중아일보 등 일반 매체들이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매독 사건은 이렇게 해서 끝나는 것으로 보였다. 기자는 당시 매독 사건의 피해자 한 사람을 만나보았다. 그는  '할렐루야'라는 이름조차 거론하고 싶지  않다며, 할렐루야기도원에 대해 상당히거부 반응을  보였다. 또한 당시 상황을 회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매독을 치료중이라고 한다.  매독 사건은 사실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할렐루야기도원의 집단행동은  'MBC 사태' 외에도 여러  건이 더 있었다.  즉 김원장은 필요하다면 집단행동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김원장측의 최근 집단행동은  금년 2월 예장(합동) 총회회관 앞에서 있었다. 합동 교단 소속  한 교회에서의 세미나 내용을 문제 삼아  총회회관으로 김원장과 신도들 2천여 명이 대거  몰려간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합동교단 소속 청량교회에서 세미나 중  모 강사가 김계화 원장에 대해 명예훼손성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빌미로 기도원측은 합동교단을 상대로  집단행동을 취한 것이다. 기도원측이 교계 단체를 향해서 집단행동을  취한 것은 이번 건이 처음이다. 즉 교계를 향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피력하겠다는 의미다. 기도원측은 이날 집단행동을 통해서  합동교단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지난 해 '이단성이 짙다'는 할렐루야기도원에  관한 총회의 결의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으로 밝혀져 재결의하기로  했다고 그들의 홍보지를 통해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합동측의 입장은 기도원측과  다르다. 강사 선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 노회 관리의 미흡한 부분에 대해  사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단성이 짙다'는 할렐루야기도원에 대한 총회의 결의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할렐루야기도원의 집단행동은 MBC, 중앙일보, 합동측 교단 사건외에 서울 여의도 소재 한국증권금융 사건, 경남  울주 사건, 세검정 사건, 매독 피해자 사건 등 상당 수에 달한다. 한국증권금융 건은 기도원측의 저축추진부장인 간부 신도 박종덕 씨가 횡령한 것으로 알려진 89억여 억원을  금융사에서 배상하라며 여의도 당사를 찾아가 집단행동을 취한 것이다. 울주 사건은 경남 울주군 지역에 기 도원을 짓겠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반대를  하자 기도원측 신도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 몸싸움까지 일어 나는  등 소동이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사건은 조선, 한국, 국민, 중앙일보 등 주요 일간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세검정 건은 할렐루야기도원 초창기 주택가에 자리한 세검정 기도원 시절, 기도원 내부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는 찬송과 기도 소리 등에  지역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동네 입구에 신도들이  모두 몰려나와 집단행동을 취한 것이다. 세검정 건은 할렐루야기도원의 집단 행동이 초창기부터 있었던  것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매독 피해자 건은 기도원측이 집단행동을 함에 있어 개인과 단체를 가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매독 피해자  박모씨의 집에까지 20여 명의 신도들이 찾아가 매독사건을 사과하라는 등의 집단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할렐루야기도원의 집단 행동은 그들의 16년 역사 동안에 2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난 셈이 된다.     

 교회 세우기, 명예 목사안수 사건  

 김계화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교회 세우기' 작업을 해왔다. 집단 행동까지 불사하면서 전국에 걸쳐 지부를 세웠던 기도원이 교회의  이름으로 간판을 바꾸어 다는 식이다. 기도원의 교회 세우기 작업과 때를 같이해 김계화 원장도 '목사'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신학교 두 번 출석으로 졸업장을 탄 것은 물론, '목회학 박사' 학위까지 남플로리다 신학대학이라는  곳에서 받은 것이다. 그의 졸업장, 목사, 박사학위 앞에는 공통적으로 '명예'라는 말이 붙었다.   할렐루야기도원 지부 교회는 현재 13개다.  지난 해 3월 27일 대전 지부 기도원이 '학사의 교회'(안달남 목사)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교회 세우기는 서울 성내동의 '기도의 교회'(이성우 목사, 96년 5월 12일), 강원도의 '은혜교회'(이광채  목사, 96년 9월  18일), 미국의 'LA초대교회'(이석환 목사, 96년 9월  22일), 경상도 영주의 '화목교회'(이효진 선교사,  96년 10월 26일), 제주도의  '은총교회'(류직렬목사, 96년 11월 2일),  경북 성주의 '실로암 교회'(이순태 전도사, 96년  11월 15일), 인천의 '할렐루야교회'(이충부 목사,  97년 2월 21일), 세검정의 사랑교회(97년2월 23일), 대구의 '반석교회'(이순태  전도사, 97년 5월 16일), 서울 미아리의 '베들레헴교회'(강의호 선교사,  97년 5월 20일),  광주의 '갈릴리교회'(홍재두  목사), 부산의 '감사교회'(박도경 목사, 97년 8월 13일) 등이다(자료 1 참조). 석 달 에 두 개씩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할렐루야기도원의 교회 세우기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나타난다. '교회부터 세우고 보자'는  식의 모양이 됐다는 것이다. 교회 책임자  중 '선교사'라는 직책이 우선 특이하다. 강의호, 이효진 씨가 선교사라는 직분으로 되어 있다. 기자는 강의호 씨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강씨는  선교사라는 직분의 의미에 대해 "이사장으로 있다가 사역지가 생겨 선교사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즉 할렐루야기도원에서 말하고  있는 선교사라는 직분은 평신도로서 교회를  맡게 될 경우 붙여진다는 것이다.  강씨는 "김계화 원장이 신학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가운데  목사가 됐다"는 기자의 지적에 "바울  사도도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며 발끈했다.  그는 자신도 필요하다면 바로  '목사'가 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선교사'라는 직분으로 할렐루야기도원 산하 베들레헴교회(서울 미 아리 위치)을 책임지고 있다.   교회가 세워지고 책임자들이 있지만,  사실 할렐루야기도원 지부 교회들의 정신적인 대표는 김원장  한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지부 교회 책임을 맡고 있는 목사, 전도사,  선교사 등은 조력자에 불과하다.  지부 교회를 소개할 때면 '할렐루야기도원'이라는 명칭이 따라  붙는다. 인천 할렐루야교회 건물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새로 생겼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홍보물이다. 이 현수막에도 '할렐루야기도원'이라는 이름이 들어 있어 한 눈에 보아도 이 단체가 할렐루야기도원 지부 교회임을 알 수 있다. 김원장은 전국 지부 교회를 많게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적게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는다.   김계화 원장이 목사가 된  것은 어쩌면 전국 지부 교회 목사,  전도사, 선교사 등을 통솔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다. 그는 금년 1월 7일 예장(Y측)이라는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지난 86년 12월 모 신학교를 졸업, 지난  해 12월에 이 교단에서 실시한 목사고시를  통과했다고 한다. 지난 해 2월 미국 남플로리다 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도 전해졌다.   기자는 예장(Y측) 교단 총회장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김원장의 신학교 졸업과 목사 안수 배경에 관해  교단의 공식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총회장은 "신학 수업 두 번만에 졸업을  할 수 있는가"는 질문에 "명예 졸업이다"며 명예 졸업은 수업 일수가  차지 않아도 졸업을 할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김원장의 목사 안수 건에  대해서도 "명예 목사다"며 희한한 변명을 했다. 자신 이 직접 김원장에게 목사 안수를 해주었다는 그는 그러면서도 "명예 목사와 (보통)목사는 다르지 않다"고 말해 실질적으로  목사직을 남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형식적인 신학교 졸업, 명예 목사  안수 등을 볼 때 김원장과 이 교단측과의 사이에 어느 정도 '기브 앤드  테이크'가 있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같은 의문은 김원장이 신학교 두 번 출석으로 졸업장을 받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말에서도 발견된다.  김원장은 그의 간증집 <외길가게 하소서>에서 "게다가 학교측은 저에게 공로패까지 주었습니다. 학교 발전을 위해 공이 많았다는 겁니 다. 사실 학교측이 저에게  은근하게 기대하는 것도 많았습니다"라고밝히고 있다. 즉  학교측의 은근한 '기대'에 적절한  '공'을 세웠기 때문에 학교측으로부터 졸업장뿐 아니라 공로패까지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의문에 대해 문제 학교의 대표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남산 도깨비 무당과 의형제 결의   취재중 기자는 '남산 김여인'으로 알려진 소위  '도깨비 무당'과 김계화 원장이 의형제를 맺었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하게 됐다. 김재연(49)이라는 본명을  가진 이 무당은 지난  8월 2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약 6년 전  김계화 원장과 의형제를 맺었다"며 김원장과 자신과의 관계를 밝혔다. 의형제를 맺은 후 이 무당은 평균 2-3주에 한 번 꼴로 포천에 위치한 할렐루야기도원 집회에 참석했으며, 김원장도 1년에 한두 차례씩 도깨비 무당 집을 방문했음도 확인됐다.   김원장과 무당과의 '소문'에 대해 할렐루야기도원 신도들은 대체로 '그런 말을 들어는 봤는데 실상은 사실과  다르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남산에서 '도깨비 문화원'이라는  제법 큰 간판을 달고  영업(?)중인 무당 김재연 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원장과  김여인과의 관계가 단순히  말로만 '의형제'를 맺은  정도만은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김원장은 김무당의 의견을 적지 않게 기도원 운영에 적 용해왔다는 것이다.   할렐루야기도원의 본부 격인 포천에 위치한 기도원 강대상  벽면에 붙어 있는 예수그리스도 모습이라는 큰 그림은  무당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또한 무당은 어느 날 "기도원 강대상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는데, 최근  개원한 광주지부 기도원에  '움직이는 강대상'이 만들어 진  것이다. 포천 기도원에 있는 기도굴은 김원장이 무당 집에 있는 지하  기도굴을 보고 모 방한 것으로 김원장의 대표적인 '모방 아이디어'라고  한다. 기도굴과 관련, 김원장이 무당과의 관계를 간접 시인한  적도 있었다. 할렐루야기도원 전 신도인 김정희 씨의 말에  따르면 김원장은 지난 93년 11월 할렐루야기도원  지부장 연수회 때 "포천 기도굴은 무당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시인했다는 것이다.   김원장과 무당이 만나게 된 동기는  상식을 뛰어넘는 대목이다. 약 6년 전 할렐루야기도원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한 사람을 데리고 무당이 김원장을  찾아간 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이 때 김원장은 무당에게 "꿈에 당신을 보았다"며 '의형제' 맺을 것을 먼저 제의했다고 한다. 이후 무당보다 2살 연상인 김원장이 "동생!"하며 무당에게 친근함을 표현하며 접근한 것을 무당이 응했다는 것이 다.   김무당은 두 사람  사이가 보통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듯 자신들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기도원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김원장이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 행사에 참석해 줄 것을 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김원장이 무당을 찾아온 때는  지난 7월 말경. 사전 연락없이 들러 잠시 머물다 갔다고 한다. 김원장과 김무당과의  대화내용은 주로 건강이나 가족 이야기 등 생활  이야기 정도. 그러나 각자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관심있는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고 한다.  한 번은 김원장이 무당에게 "나하고 같이 일하자"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무당은 당시 "각자 하는 일이 다르다"며  'NO'라는 사 인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원장으로부터 '동역'의 요청을 거절했다는 무당은 요즘은 그 생각을 다시 하는 듯 하다.     "2001년에는 우리 둘 사이에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그 사람은 나를 도와야되고, 나도 그를 밀어야 된다. 서로 도와야 될 상황이 올 것이다."   무당은 자신과 김원장과의 관계가 2001년이 되면 새롭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괘를 갖고 있다. 무당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김원장은 모르고 있지만 때가 되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생각이라고 한다.   연예 사건   무당과의 의형제 결의 사건과 함께 최근 김계화 원장의 발목을  잡는 것이 소위 '연예 사건'이다. 할렐루야기도원  16년 동안 62개의 기관으로 성장했다는 단체의 대표자인 김원장의 사생활이 화제거리가 된 것이다. 김원장과 연예 사건의 상대자는 김원장의 측근이자 전 한국체육대학 학장이던 송석영 씨다. 김원장 못지 않게 송씨도 사회적으로는 공인의 자격을 갖춘 인물로 이번  사건은 사실 여 부를 떠나서 두 사람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적지 않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5년 5월  경, 두 장의 편지 사본이 할렐루야기도원과 관련된 각종 단체 및 개인, 전국 교회와 각 언론사에 무작위로 전달되면서 시작됐다. 이 편지는 발신인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편지는 서울과 일본  사이에 오간 것으로 보이는 팩스의 내용을 복사한 것으로 94년 12월  16일 19시 59분이라는 발신 일과 시간이 찍혀  있었다. 이 편지의 내용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면  겁이 나지요" "함께 꼬옥  껴안고 구름 위로 높이  올라가 포근하고 따뜻한 솜의 구름에  누워 뒹굴며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땀이  뚜욱뚜욱 떨어지던 어젯밤" 등으로 두 남녀 간의 애뜻한 사랑 고백이 담겨져 있었다.   이 편지 사건에 대해 전 기도원 간부였던 김정희  씨는 "그 편지는 김계화 원장과 송석영 씨와의 불륜 편지"라고 규정했다. 그는 최근 출간한 "할렐루야기도원 김계화의 정체"라는 책을 통해서도  그 사실을 밝혔다. 그 편지 사건이 발생할 당시 그는 김원장과  함께 일본 집회에 참석했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 사건은 94년 12월  16일 집회 차 일본을  방문한 김원장이 일본에서 서울로  팩스를 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사용설명이 일본어로  되어 있는 팩스 기계를 김원장이 오작동을 해 기계 내에 남아 있던 그  내용이 당시 할렐루야기도원 일본 지부장인 이미좌 씨에게 발각되면서 발생됐다는 것이다. 이후 김원장을 잘 아는  간부들이 필체 확인 등을  통해 편지의 당사자는 김원장과  송석영 씨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할렐루야기도원은 이번 '연예 사건'을 통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원장의 사촌 여동생인 김정희 씨와 일본 지부장 이미좌 씨 등 간부급 신도 10여 명을 포함해 일반 신도 2백여 명이 탈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 사건의 당사자인  송석영 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전혀 말하고 싶지 않다"며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답을 했다. 또한 그는 "나하고 취재한 것으로 하지 말아달라"며  사건 자체가 거론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그동안 할렐루야기도원 김계화 원장에 대한 한국교회의 연구  및 매체를 통한 보도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해 예장 합동측의 "이단성이 짙다"라는 연구 결과를 비롯해서 예장  통합, 예장 고신 등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비기독교적인 단체" "신비주의 행위" 등의 내용으로 지적했다. 최근에도 할렐루야기도원에  관련된 서적이 출간되는가  하면 교계 언론을 통해서도 관련 뉴스가  이어지고 있 다.   할렐루야기도원 김계화 원장은 계속된 한국교회의 지적을 무시한  채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히려 한국교회를  향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기자는 김계화 원장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김원장의 입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다. 할렐루야기도원  사명자라는 김영기 씨가 "자신의 책임 하에 인터뷰를 연결시킬 수 없다"며 기자의 취재를 막았다. 한 여신도는 기자의 인터뷰 신청 메모를 김원장에게 전달했다 한다. 그러나 김원장은 메모를 보고는 '노 코멘트'였다고 전했다.

<자료 1> 할렐루야기도원의 지부 교회 명단 교회명       책임자      장소       창설일 학사의 교회(안달남 목사)-대전.     96년 3/27일 기도의 교회(이성우 목사)-서울 성내동 96년 5/12일 은혜교회(이광채 목사)-강원도        96년 9/18 LA초대교회(이석환 목사)-미국      96년 9/22 화목교회(이효진 선교사)-영주        96년 10/26 은총교회(류직렬 목사장로)-제주도     96년 11/2 실로암교회(이순태 전도사)-경북 성주   96년 11/15 반석교회(이순태 전도사)-대구          97년 5/16일 베들레헴교회(강의호 선교사)-서울 미아리  97년 5/20 갈릴리교회(홍재두 목사) -광주 감사교회(박도경 목사) -부산            97년 8/13일 인천할렐루야교회(이충부 목사)          97년 2/21일 사랑교회     - 세검정               97년 2/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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