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 2015 가을호(제54회) 신인상 수상자
최성기(崔聖基) 시인의 수상작품 및 詩 심사평
일념(一念) 외 2편
최 성 기
바람 모습 볼 수 없지만
철 이른 단풍 한 잎 떨어져
그 방향 그 감각 알려주네.
그대 고운 마음자리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있어
과거세 미래세 진미래세(盡未來世)
지어온 알음알이
미진(迷津)의 나룻배로 떠돌고 있네.
이 숨 끊어지는 날
아미타불 명호 쟁쟁히 들린다면
연꽃 속의 하늘 음악
그대 사랑으로 안고 가겠네.
심향(心香)
길월(吉月)*의 햇살이
가슴으로 들어 앉아
오래된 그대 안부 새삼스레 꺼내들면
바람은 넌지시 풍경(風磬)소리 흔들어
그리움을 깨운다.
아직도 거기 그렇게 있을까?
이 산 넘어 넘어, 저 강 건너 건너
적정(寂靜)한 내 마음 천지를 열람한다.
서쪽으로 기우는 낮달 위에
그대 젖은 눈시울 그려 보아도
‘자성번뇌서원단(自性煩惱誓願斷)
자성불도서원성(自性佛道誓願成)’
염불소리만 잦아들 뿐.
그래도 아직은
청량한 바람 부는 차안(此岸).
천년송(千年松) 소리 없이
향기로 배어든다.
*길월- 음력 2월로, 초봄을 뜻함.
낙엽
가을 해가 저 멀리서
느지막이 뜨는 것은
그대 내게서 멀어진 탓이리라.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것도
내가 슬픈 미소 지으며 옷깃을 여미는 것도
저 산들이 깊게 골 패인 가슴을 드러내는 것도
못내 잊지 못할 그리움 때문이리라.
빛바랜 사진 한 장 움켜쥐고
골짝마다 능선마다 헤매고 다니는 것은
이승 인연을 버릴 수 없는
중생도(衆生道)의 거미줄 탓이리니.
울지 말아라.
몇 장 남지 않은 그대 체온
지갑 속에 차곡차곡 채워 두리니.
한 잎 낙엽으로 떠나는 그대
이렇게 담담히 보내고 난 뒤에
나, 혼자 돌아서서
이 가을을 그리워하리라.
詩 심사평
최성기님의 응모작 10편 가운데 <일념> <심향> <낙엽>을 신인상 수상작으로 뽑았다.
최 시인은 스님(법명 일공)으로 범패를 전수 받아 동국대학교(경주)의 평생교육원 불교무용교수로 있으면서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사람이라서, 그의 시는 주제적 깊이와 언어적 아름다움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일념>은 짧은 시형 속에 인연의 깊은 정감을 군더더기 없이 잘 나타내고 있다. 볼 수 없는 바람은 단풍 한 잎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시적 착상이나 이승 떠나는 날 연꽃 속에서 들리는 하늘 음악을 그대 사랑으로 지니고 가겠다는 비유는 아주 멋진 절창이다.
<심향>은 법당에 앉아 불도를 닦으면서도 쉽게 버릴 수 없는 이승 인연을 고뇌하는 불자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인연의 향기가 천년송의 향기처럼 짙게 배어나고 있어서 미적 정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낙엽> 역시 이승 인연을 쉽게 버릴 수 없는 중생들의 속앓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몇 장 남지 않은 그대 체온/ 지갑 속에 차곡차곡 채워 두리니’ 라는 언어 표현의 미감은 남이 쉽게 흉내 내지 못할 것 같다.
우리나라의 선시(禪詩)가 과거에는 한시(漢詩) 위주라서 대중과의 접촉이 어려웠는데, 이제 일공스님의 시를 대하니 한글 선시로도 쉽게 중생을 제도할 길이 열릴 것 같다. 정진과 대성을 빈다. 심사위원/양명학(글). 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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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해는 뉘엿 지고
그리운 사람
어찌 그렇게도 생각나는지
지는 해
다시 돌아오라 한들
오지 않을 건 뻔하고
그냥
그리운 사람에게
달려가면 될 일을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저의 졸시(詩)를 문학예술이란 이렇게 귀한 자리로 불러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과를 깎아 먹는 방법도 모르면서 덥석 받아 챙기기만 한 듯 송구하기만 합니다.
흐르는 세월 숱하게, 어쩔 수 없이 보내놓고는 언제나 아쉬워하는 우(愚)를 범합니다. 그래도 이젠 또 다른 인연의 굴레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니 그리운 사람에게로 달려 나아가렵니다.
출가자로서 선시를 여여하게 펼치지 못하더라도 선배시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조금씩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세상의 훈훈한 바람은 붑니다. 늘 세상의 좋은 인연들께 감사하는 마음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