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강남의 오렌지족이란 말이 유행했다. 굳이 부언하자면 외국경험이 많은 강남의 부유한 젊은이들 정도.
지금은 오뢴쥐로 바뀌고 너도나도 외국경험이 많다보니 특별할 것도 없는 사문이 되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김정희가
오리지널 오륀지족이 아닌가 싶다, 조선왕족의 일가로 부유하게 태어나 어려서부터 과거공부는 안하고 중국 책이나
읽고 있어 아버지한테 꾸중을 많이 듣고 자랐다.
" 씰데없는 노자 도덕경이나 읽고 있으면서 과거시험공부는 언제 할래 ?"
그의 관심은 오로지 청나라(중국의 변천사가 한-수-당-송-원-명-청이다) 에서 유행하는 최신학문이었다.
오죽했으면 중국 북경을 가보고 싶어 늦은 24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한후에 아버지를 따라 북경을 갔겠는가.
조선시대 중국으로 사신들이 오갈때 역관-지금의 통역사-들이 동행하였다. 김정희가 역관시험에 누구누구를 청탁한
글이 있는데 이렇게 역관들과 친분을 쌓은 이유중에 하나가 그들을 통하여 중국서적들을 쉽게 구하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그때까지의 역관들은 수준이 낮았으나 이상적이란 인물은 한문과 문화에 조예가 깊어 차츰 역관이상의 외교관
역활까지도 수행할 정도였다. 그러하니 김정희와 인연이 닿아 사제지간의 관계를 형성한다. 김정희는 그를 통하여 귀한
서적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최신 동향과 지인들의 근황까지도 들을수 있었다
조선시대는 밀고 당기는 당파싸움과 제대로의 왕권이 이어지지 못하는 수렴청정과 대리청정이 그칠 날이 없었다.
김정희 집안도 몰락하고 그도 제주도로 유배를 떠난다. 정승네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어도 정승이 죽으면 문앞에
새장을 칠 정도로 사람이 적다는데 김정희도 다를게 무엇이었겠는가. 그저 노승이나 가까운 형재 지인들만 간간히
서신을 왕래할 뿐이였다,
공자의 말씀에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세한연후송백지후조)-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가 있다. 권력이 있을땐 누가 내 사람인지 알수없으나 이렇게 추풍낙엽이 되고 보면 비로소
진정한 우군을 알게 된다. 유배기간 동안에도 열심히 그를 보필해준 송백이랄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역관 이상적이였다.
중국에서 귀한 책을 구해 당시 권세가에게 갖다주지 않고 제주도 김정희에게 보냈고 김정희는 그 감사함을 공자의 글
첫 두글자인 세한도로 보답한것이다. 이상적의 노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세한도를 중국에 가져가 그가 아는 지인 16명의
당대 문인에게 보여주고 세한도제영(감상문)을 받아오는데까지 이른다.
세한으로 시작하는 공자말씀을 신라시대 김유신도 쓴 기록이 있으니 세한도에 담긴 정신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오래됐는지 알수있다. 이 정신은 고려,조선까지 이어져 수많은 선비들에게 정신적 교훈이 되었으며 김정희에 이르러 그림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세한도란 명칭은 중국에도 많은 그림으로 남아있으며 김정희는 당시 미술을 경원시하는 조선의 풍토를
개탄하며 중국의 회화 문화를 익히고 제것으로 재창조하여 세한도에 담아내게 된다.
일제시대에는 세한도는 후지츠카 지카시에게 넘어가 일본까지 건너가게 된다. 이에 손재영이 공습중인 도쿄까지
찾아가 간신히 찾아온다.며칠후 후지츠카집은 폭격을 맞아 홀랑타게 되는데 마냥 기뻐하지도 못하는 것이 추사 연구의
시발점이자 최고의 전문가가 그였다는 데에 있다.
책을 펼치면 한문도 많이 적혀있고 날짜까지 정확하게 고증하느라 내용이 딱딱하다. 그러나 호언하건데 왠만한
소설책도 이 책만큼 흥미진진하긴 힘들 정도로 재밌다.
국민학생이 그린거 같은 그림 한장. 그속에 숨어있는 역사를 끄집어내는 저자의 박학다식과 열정에 박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