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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명상

아버지와 나

작성자어쭈구리/광주|작성시간10.11.13|조회수63 목록 댓글 0

아버지의 연인과 나/송영욱


나는 눈 속에 반항기만 가득 담은 중학교 2학년이다.

오늘도 종례시간에 수업료 이천 팔백 원을 안냈다고 독촉을 받았다.

아버지가 K 은행에 있다는 것을 아는 담임선생님은

내가 써버린 것으로 오해 하셨는지 나를 쳐다보시는  눈이 가늘고 깊어졌다.

아버지는 언제 봤는지 기억도 없다.

K은행 광교 지점 감정계에 근무한다는 말만 들린다.

모자를 눌러쓰고 방과 후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답십리 종점 가는 신흥교통 버스를 탔다.

버스는 전농동을 돌아 답십리 극장 쪽으로 가고 있다.

버스 속에는 양쪽으로 길게 붙어있는 의자에는 사람들이 다 차 있었고

군데군데 서있기도 헸다. 차장이 악착 같이 질러대는

“오라이”

소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었다.

그러다 우연히 듣게 된

옆에 서있는 키 큰 여인과 키 작은 여인의 대화

‘그 속에서 아버지 이름이 튀어나올게 뭐람!’

다른 여자의 이름까지 내 비쳤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에서 불이 일었다.

다짜고짜 그 여인의 손을 움켜쥐고는 서슴없이 내 뱉었다.

“야 내려!”

악마가 아름다운 영혼을 물어뜯듯 작지만 싸늘하게 말했다.

그 여인은 내 명찰과 내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며 흠칫 놀랬다.

아버지와 나는 붕어빵처럼 닮았다.

“야~! 개XX!~ 남의 남자 후려냈으면 잘 간수해야지.”

“어딜 돌아다니며 이름을 팔고 지랄이야!”

“더럽게........”


처음으로 두꺼비 두 살짜리를 병째 들이키며

당진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친구 이정X의 자취방에서

저녁 늦게까지 노래를 불러댔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 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후로 나는 박건이라는 가수의 그 노래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통금이 가까워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얼굴이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말이 아니다.

외할머니께서 오늘 돌아가셨다는 전보가 와 있었다.

어머니는 그날 밤 택시를 대절해서 친정으로 가셨고

나는 다음 날 학교에서 겨울 방학식을 마친 다음 외가에 가기로 했다.

외가 안채 큰방에 외할머니의 시신이 안치 되었다.

이 밤이 지나면 영원한 이별이었다.

마당에는 호두나무를 베어 큰 모닥불을 놓았다.

어려서 올라가 놀던 호두나무도 이제 늙어서 더 이상 호도를 맺지 못하자

일군이 베어 놓았다가 초상집 마당에 서늘한 기운을 없애주는 모닥불이 되었다.

불에 타드는 호두나무를 보며

불꽃 속에서 외할머니 모습을 찾아 회상에 잠겼다.

외할머니 치마만 잡아당기면

호두, 곶감, 다식이며, 지나가는 엿장수 엿판까지 뭐든 다 나오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나는 날개 꺾인 새처럼 생기 없이 불꽃만 바라보고 있다.

“오늘밤이 다가면 다시는 외할미를 볼 수 없다!”

외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며 병풍 앞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말로만 듣던 시신 썩는 냄새가 아주 심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밤 새워 외할머니 곁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매서운 겨울 아침 장지로 향하는 행렬은 길었다.

*요요와 *영정이 앞에서고 뒤이어 행상이

그리고 상제들과 *만장이 길게 따라 나섰다.

*발인제를 지내고 집을 출발해서

장지까지는 이십 여리가 넘는 것 같았다.

가면서 노재 또한 대여섯 번을 지냈다 .

나는 외할머니의 영정을 모시고 요요 뒤를 따라서 장지에 갔다.

뒤따르는 상여가는 길을 진두지휘하는 요령잡의 구슬픈 가락을 들으며…….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하~”

“북망산이~”

“어허~ 어하~”

강바람이 귀를 잘라 가는 것 같았다.


송영욱의 자유 시선<개불알꽃에 매달린 작은 십자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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