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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제안 시리즈

[합본] 독도의 진실 - 21~23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08.07.26|조회수1,290 목록 댓글 19

[해설/합본] 독도의 진실 - 21~23 합본입니다.

 

 

[해설] 독도의 진실 - 21

 

모 행정신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독도의 진실 시리즈를 연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단 한 분이라도 더 독도의 진실을 아셔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승락했습니다. 주로 관공서의 공무원, 금융기관과 읍, 면, 동, 통, 반장님들과 이장님들까지 읽으신다고 하니 더욱 잘 된 일입니다. 주간으로 발행하기 때문에 이번 월말 쯤 1회분이 게재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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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외교전이지만 1960년대에는 달랐습니다.

 

전쟁 상황과 한 치의 다름도 없었습니다. 실탄이 장전되고 발사되고 포탄이 날아 다녔습니다.

독도는 우리 국민들이, 선배님들이 피를 흘리며 지켜 낸 우리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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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홍순칠 대장이 이끄는 독도 의용수비대는 곧 바로 교전상태에 돌입했습니다.

 

독도에 접근한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을 돌려 보낸 후 며칠도 지나지 않은 7월 12일, 일본은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PS9 함을 독도에 급파했습니다.

 

일본 순시선이 독도에 상륙할 기미가 보이자, 독도 의용 수비대는 보유한 경기관총으로 일본 순시선을 집중 사격했다. 일본 순시선은 물러갔다. 이 전투가 독도 의용 수비대 최초의 전투였습니다.

 

홍순칠 대장은 첫 전투에서 장비의 보충이 시급함을 깨달았습니다. 소총으로 순시선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지요. 홍 대장은 다시 육지로 나가 어렵게 M2 2정과 박격포 한 문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8월 5일, 동도() 바위 벽에 '(한국령)'이라는 글자를 크게 새겨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지금도 독도에 가면 홍순칠 대장이 새긴 이 '(한국령)'이라는 석 자를 볼 수 있습니다.

 

1954년 8월 23일, 독도에 접근하려는 일본 순시선과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격렬한 총격전 끝에 일본 순시선은 물러갔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11월 21, 이번에는 1,000t급 일본 순시선 3척 및 항공기 1대가 합동 작전으로 독도를 공격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박격포가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박격포탄 하나가 일본 순시선 갑판 위를 때려 버린 것입니다. 일본 측의 피해는 컸다. 무려 16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일본 해, 공군은 물러갔습니다.

 

1956년, 대한민국 정부가 6.25의 상흔을 씻고 정신을 추스렸습니다. 독도 수비를 경찰이 맡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의 국토 방위를 언제까지나 의용 수비대가 맡을 수는 없는 일..... 홍순칠 대장과 독도 의용 수비대원 33명은 1956년 12월 30일 무기와 임무를 국립 경찰에 인계하고 고향인 울릉도로 돌아갔습니다. 

 

최후까지 남아 있었던 독도 의용 수비대원 33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

 

고성달, 구용복, 김경호, 김병렬, 김수봉, 김영복, 김영호, 김용근, 김인갑, 김장호, 김재두, 김현수, 박영희, 서기종, 안학률, 양봉준, 오일환, 유원식, 이규현, 이상국, 이필영, 이형우, 정원도, 정이관, 정재적, 정현권, 조상달, 최부업, 하자진, 한상용, 허신도, 홍순칠, 황영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자랑스러운 이름들은 우리는 한 번 소리내어 읽고, 이미 돌아 가신 분들에게는 예를 갖추어 초혼, 명복을 빌어드려야 합니다. 이 분들 중 열 다섯 분은 2005년까지 생존해 계셨다고 합니다.

 

독도 의용 수비대의 활동 요약

 

1952.01.18  이승만 대통령 독도 동쪽으로 '평화선' 선포
1952.08.10  일본측 불법 영토비 제거
1953.04.20  독도 의용수비대장 조직 경비개시(수비대장 홍순칠)
1953.06.24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 귀향 조치
1953.07.12  일본 해상 보안청 순시선 발포, 격퇴
1953.08.05  대한민국 영토비 (한국령) 건립
1954.08.05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발포, 격퇴
1955.11.21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3척, 항공기1대 발포,격퇴

1956.04.08  국립경찰에 무기와 임무 인계

 

이 분들은 피로 독도를 지켜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독도를 지킬까요.

 

우리는 정부의 의지와 약속 이행을 감시하고 일본이 심어 놓은 세력들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외국에 나가시는 분들은 민간 외교관으로써 이 모든 진실을 알고 일본의 간계한 장난을 막아내야 합니다. 특히 지도 분야와 관광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앞장 서야 합니다. 

 

<독도는 우리 땅>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하여 독도에 방파제를 만들고, 독도 해양 관광호텔이 건립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독도에 방파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은 1953년 홍순칠 대장의 호소로부터 시작된 독도의 숙원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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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픽션, 즉 허구가 아닙니다.

실제 상황을 재구성한 "사실史實" 즉, 논픽션입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하여 한국 경찰이 독도에 상륙한 후, 경찰 역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였습니다.

독도에 상주하게 된 경찰은 이승만 대통령이 선포한 평화선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 어선은 보이는대로 모조리 나포해 버렸습니다.

 

이승만 라인, 일명 평화선은 우리나라 어업을 구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국내 어선을 모두 더한 총톤수는 10만 t. 그나마 대부분이 무동력선이었을 때, 

일본은 총톤수 200만 t에다 그 중 상당수가 한국 경찰선보다 빠른 ‘첨단’ 선박 이었습니다.

 

맥아더 라인이 사라지면 한국의 어업이 침몰할 것은 뻔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을 선포해 버린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어민들에게 ‘이승만 라인’을 무시하라고 하자 한국 정부는 군함까지 동원해 ‘평화선’을 넘는 일본 어선을 가차 없이 나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어민이 숨지기도 했습니다. 1961년까지 나포된 일본 어선은 300척이 넘고 억류된 일본인은 4000명에 가까왔습니다.

그렇다고 평화선이 어업의 보호만을 노린 건 아닙니다.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시킨 것이 절묘했습니다. 강화조약의 ‘일본이 포기할 지역’에 독도를 넣어 달라는 요구가 거부되자 선수를 친 것입니다. 다급해진 일본은 열흘 뒤 ‘한국의 일방적인 영토 침략’이라며 ‘독도 문제’를 쟁점화했으나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뒤였습니다.

항일 투사 이승만의 쾌거인 평화선이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 조인(1965년 6월 22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우리 국민은 울분을 토했습니다. “얻은 것은 돈이요, 잃은 것은 평화선이다.”......  (동아일보 2006-01-18  에서 일부 인용)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22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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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독도의 진실 - 22

 

 

도대체 독도 주변에 무엇이 있길래 일본이 저토록 군침을 흘리는 것일까요. 우선 독도 근해의 광물자원과 어업자원, 그리고 석유의 매장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번 풀어 보겠습니다.

 

독도 근해의 미래 에너지, ‘메탄 하이드레이트’(Methane Hydrate)

 

<독도의 진실>에서도 몇 차례 언급한 엄청난 양의 ‘메탄 하이드레이트’(Methane Hydrate), 이 것 때문에 일본이 저렇게 발광을 한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도대체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무엇이며, 독도 근해의 매장량은 어느 정도이며,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메탄 하이드레이트’(Methane Hydrate)는 바닷속 생물과 미생물이 죽어 썩으면서 장구한 세월동안 분해되면서 물과 만나 순수 메탄을 함유한 상태로 바다의 수심에 의하여 높은 압력에 의해 얼어붙은 고체연료입니다. 석탄과 석유와 비슷한 조건에서 생성되었지만 가스와 물이 만나 얼어 붙었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릅니다.  

 

생긴 걸 보면 하얀 색으로 ‘드라이아이스’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물론 드라이 아이스는 불을 꺼지만,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릅니다. 얼음이 활활 타오르니까 마술같은 현상이지요. 높은 압력과 낮은 기온에 의해 물분자 안에 얼음 상태로 갇혀 있는 메탄가스가 그대로 기화되어 불 타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탄 하이드레으트는 '불 타는 얼음(Fire Ice)'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불타는 얼음, 메탄 하이드레이트 (사진출처 : 부산일보 2005-07-23)

 

한 마디로 마술같은 미래 에너지 자원입니다. 세계 전역의 부존량도 넉넉하여 전 인류가 에너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하니, 가히 꿈의 미래 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자원화하는 데에는 채굴비용이 문제가 됩니다. 심해의 해저에서 광물같은 얼음 덩어리를 캐 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이를 채굴하는 기술이 점점 개발되면서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2012~2015년에 상업생산을 한다는 정보도 있더군요.

  

그 중 최근에 개발된 기막힌 채굴 방법이 하나 있어 소개하겠습니다.

 

지금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무엇입니까? 네, 바로 이산화탄소입니다. 이 이산화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메탄 가스를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은 분자 구조가 비슷합니다. 이 성질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즉, 천연의 메탄 하이드레이트에 이산화탄소를 분사하면 얼름으로 둘러싸인 메탄 하이드레이트에 이산화탄소가 들어가면서 메탄이 빠져 나옵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습니다. 실험실에서 이산화탄소 100개가량 댈 경우 메탄 64개가 회수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비용 회수면에서 엄청난 것입니다. 기체가 고체로 바뀔 때 200배 정도로 압축되는 것을 적용하면 메탄 얼음 1ℓ에서 200ℓ의 메탄가스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수적인 효과도 엄청납니다. 지구에 과잉 공급된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바다 속에 쏘아 이산화탄소는 가두어 버리고 메탄 가스를 채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구 온난화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깔대기만 갖다 대면 가스를 모을 수 있다?

 

그 외 다른 방법으로도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채굴할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온도차를 이용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얼음 상태로 존재한다고 했죠? 얼음을 녹여 버리면 되겠죠? 해저와 해수 표면의 물의 온도는 차이가 많습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바다 표면의 물을 심해로 쏘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온도 차를 이용하여 얼음을 녹여 버리는 것입니다. 얼음은 녹고 메탄 가스는 분리되어 방출되고.... 거대한 깔대기로 방출되는 가스를 포집하여 운반하면 됩니다. 쉽죠? .... 모든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방법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방법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험도 있습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한꺼번에 녹아 메탄 가스가 일시에 방출되면 지구 온난화가 더욱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절하는 기술도 동시에 개발되어야 안정적으로 채굴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 해 줄 것 같습니다.

 

꿈의 에너지원 ‘메탄 하이드레이트’(Methane Hydrate), 얼마나 매장되어 있나.

 

울릉도와 독도 부근의 해저에 6억t에 이르는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매장되어 있다는 보고도 있는데, 아직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계산해도 우리나라에서 30년간 쓸 수 있는 양입니다. 체계적으로 조사하면 매장량은 엄청날 것이라고 합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 아래에는 석유가.....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유체 투수율이 낮아 석유의 덮개 암(Cap Lock) 구실을 하므로 석유 유전의 발견에 중요한 표식입니다. 해저 석유나 가스의 경우, 대부분 이 메탄 하이드레이트 아래에 매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독도 근해의 석유의 매장 가능성에 대하여 긍정적입니다. 적어도 천연가스의 매장은 거의 확신 상태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정보는 없지만, 모르는 일입니다. 혹시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될지.....

 

독도는 왜 황금어장인가 - (1) 

 

유독 울릉도 독도 근해를 황금어장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재미있는 학설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해저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곳은 거의 모두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죠?

 

해저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곳은 대부분 메탄 하이드레이트나 메탄 가스가 분출되는 곳입니다. 이 메탄 가스를 유독 좋아하는 플랑크톤이 있는데, 이 플랑크톤을 작은 새우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하는군요. 이 쬐끄만 새우들을 작은 물고기들이 잡아먹기 위하여 모여 듭니다. 이 작은 물고기들을 큰 물고기들이 잡아 먹기 위하여 모여들고.... 쉽죠?

 

한 때는 일본 어부들이 독도에서 물개를 엄청 잡았습니다. '물개' 하면 번쩍 떠오르는 단어가 있죠? 네... 해구신과 정력! 일본인들의 남획으로 독도 물개와 강치의 씨가 마르다시피 했습니다. 6년간 무려 15,000 마리를 잡았다고 하니, 그 규모에 입이 벌어집니다. 한국 호랑이가 멸종한 것도 일본 사냥꾼들 때문인 것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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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어부들의 물개 납획 장면 - 이 때문에 독도 물개의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6년간 무려 15,000 마리를 잡았다고 하니, 그 규모에 입이 벌어진다.)

 

독도 근해는 말로만 황금어장이 아닙니다. 물개 정도가 아니라 온갖 종류의 어족 자원이 다 모여듭니다. 고래는 물론,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어류가 다 모여드는 어족 자원의 보고입니다.

 

'우리 어민들을 위해서....' 정도가 아니라 <미래 어족자원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독도 근해를 한일 공동 어로수역으로 지정한 신한일어업협정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전 세계가 눈치를 줘도, 그린피스 회원들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눈 딱 감고 실험용, 연구용이라면서 고래잡이(포경어업)를 계속하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연구는 무슨 연구입니까. 다음 날 바로 경매에 붙여버리면서....  일본인은 자기네 영토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곳의 환경 보호 따위에는 관심 없습니다.

 

독도는 왜 황금어장인가 - (2) 

 

독도는 천혜의 황금어장입니다. 여기서 천혜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것은 정말 하늘에서 내린 혜택임이 분명한 과학적 현상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8월 17일 한국해양연구원 유신재 박사는 “독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울릉분지 바다의 기초생물 생산량이 동해의 다른 곳보다 20∼30% 높다”며 “그 이유가 울산과 감포 앞바다에서 일어나는 바닷물의 용승현상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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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승 현상이'라는 어려운 단어 빼고는 이게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용승 현상이란  해류가 흐르다가 어떤 특이한 장애물을 만나면 아래 부분의 물이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현상을 말하는데, 해양연구원 이재학 박사는 이를 “커피잔에 스푼을 넣어 저으면 물이 잘 혼합되는 것처럼 독도도 주변 바닷물을 잘 섞는 역할을 한다”며 “바다에는 심해에 영양분이 많은데 이들이 독도 효과 덕분에 위아래로 고루 퍼질 수 있다”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인 ‘저널 오브 마린 시스템스’로부터 게재 승인을 받았으며 하반기에 공식 발표될 예정인데, 유신재 박사는 “울산 앞바다에서 심해의 찬 바닷물이 위로 올라오면서 풍부한 영양분을 함께 끌어오고 이를 먹고 번식한 플랑크톤이 해류를 따라 울릉분지로 흘러오면서 물고기가 많이 살게 됐다”고 설명습니다.

자, 이재학 박사는 독도 주변에서 위, 아래 바닷물이 섞이는 현상을 발견하고 ‘독도 효과’라는 이름을 붙여 5월 열린 한국해양학회에서 발표했는데, 정말 고마운 것은 이 현상에 <독도 효과>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렇게 '독도'라는 단어가 학술대회든, 심포지엄이든 널리 퍼져야 하는 것입니다.
  

천혜의 자원을 가진 독도.... 독도는 유사 이래 단 한 번도 우리 땅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독도를 두고 주권의 50%나 일본에 넘겨 버린 신한일어업협정, 일본이 국제법상 독도 영유권자라고 주장을 하면서 맹렬한 활동을 하는 동안 우리가 강요당한 ‘침묵외교’, ‘조용한 외교’.....

 

지금이라도 정부는 신한일어업협정을 폐기하고 독도를 기점으로 배타적경제수역을 선포한 뒤, 우리의 영토와 우리의 해역에서 자유롭게 어로 활동을 하고 자원도 탐사하여 후손에게 떳떳한 조상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입니다.

 

 

감사합니다.

 

 

2008.07.23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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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독도의 진실 - 23 <국제법>

 

 

독도가 100% 우리 땅이 되려면 국제 사회에서 용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지금처럼 독도의 국제법상 지위가 위태로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일본은 독도를 거의 침탈 성공한 상태이며, 이미 50% 정도의 독도 주권은 이미 일본으로 남어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이른바 '21세기 현대판 매국노'들의 작태를 고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앞에서 살펴 본 바, 조선시대까지야 독도는 '완벽한 우리 땅'이었으니, 거론치 않겠습니다. 문제는 해방 이후의 과정은 우리가 빠짐없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21세기 현대판 매국노'들의 준동을 감시할 수 있고, 독도를 <완전하고도 무결한 우리 땅>으로 되찾아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독도의 국제법상 지위를 논해 보겠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독도는 한국 땅>임을 전 세계가 인정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연합국에게 항복할 때, 연합국이 내 건 아주 중요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과거 무력으로 불법 점령한 모든 외국 영토에서 철수한다”는 1943년 카이로선언을 무조건 수용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주도하에 맥아더가 이끄는 연합군사령부는 공고 677호를 통해 “강점했던 외국영토에 대한 관할권 소멸을 명한다. 한국의 경우 본토를 포함해 제주도, 울릉도, 거제도, 독도 등이 이에 해당 된다”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맥아더를 일개 미군 장군으로 취급하면 안됩니다. 그는 연합국 사령관 신분이었고, 이 때 연합국이란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주축국을 제외한 거의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말합니다. 카이로 선언에 따른 맥아더의 고시는 이 모든 나라의 합의나 다름 없었습니다. 아래 지도를 보십시오. 아래 지도에서 녹색 계열은 모조리 연합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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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 땅'으로 규정한 맥아더 연합국 사령관의 고시는 법적으로 연합국 전체(위 녹색 계열의 모든 나라)의 승인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독도는 한국 땅'임을 전세계가 인정한 것입니다.

 

미국 정계에 스며 든 일본의 로비

 

이어 6.25 전쟁으로 우리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1951년 연합국은 일본과 전후처리를 합의하기 위하여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논의하게 됩니다. 물론 1차 부터 5차 초안까지 당연히 '독도는 한국 땅'이었습니다.

 

이 때,  미국의 일본정부 고문 시볼트(W. J. Sebald)란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마디로 일본의 로비에 녹아 뼈까지 흐물흐물 해 진 작자였습니다. 그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건드립니다.

 

- 독도를 일본에 귀속시켜서 미국 공군의 기상관측소 및 레이더 기지로 사용하는 것이 미국에게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의 구미가 당긴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6차 초안의 주석에 느닷없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석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뉴질랜드가 즉각 브레이크를 걸고 나옵니다.

 

-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카이로 선언에 위배된다. 지도를 보낼테니 봐라.

 

영국은 미국에게 지도를 보냅니다. 아래의 지도가 그 때 영국이 미국에게 보낸 지도입니다. 극비가 풀려 공개된 6차 초안시 영국이 미국에 보낸 지도..... 여러분도 함께 감상하시지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6차 초안시 영국이 미국에 보낸 지도, <독도는 한국 땅>임이 확실하게 정리되어 있다.)

 

영국 등 다른 나라가 반대하자 미국은 밀어 붙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갑니다. 그 이후로 7차, 8차.... 계속 초안이 만들어 지지만 독도 문제는 일언반구도 거론되지 않습니다. 연합국들 내부에서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독도는 한국 땅>으로도 표기하지 못하고, <일본 땅>으로도 표기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넘어가게 됩니다.

 

위에서 보듯,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들고 나오면서 어거지를 부리는 것은 모조리 엉터리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엉터리라도 계속 되풀이하여 로비하고 세뇌하면 넘어가는 것이 국제 현실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독도를 날로 먹으려던 계획은 좌절되었지만, 독도가 한국 땅으로 명확하게 표기되지 못한 것 만으로도 일본의 로비는 '성공작'이었던 셈입니다. 이 '절반의 성공'으로 일본 정부 당국자의 입은 귀 밑까지 찢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제법상으로는 여전히 <독도는 한국 땅>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독도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었으니, 그 전의 맥아더 고시는 실효할 수 없었고 법적으로 여전히 <독도는 한국 땅>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분노한 이승만, 어림없는 짓 하지마라! 

 

외교에 밝은 이승만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이상하게 흐른다는 낌새를 눈치채고 엄청나게 분노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되면 독도는 우리 땅임은 분명하지만, 일본의 간계에 의하여 아리까리한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태가 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어 <먼저 먹는 쪽이 임자>인 상태가 되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엄청난 결단을 내립니다. 원래 독립투사로 일본을 싫어했던 이승만, 배짱도 엄청난 대통령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되기 전, 1952년 1월 일명 평화선, 이승만 라인을 선언해 버린 것입니다. 이 때는 정부가 부산에 피란 중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후 13년간 일본 선박이 독도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일본 선박이 보이면 모조리 나포했습니다. 사상자가 나와도 눈도 꿈쩍 하지 않았습니다. 해안에서 50∼100마일에 이르는 해상에 선을 주욱--- 긋고는

 

- 이 선을 절대 넘어오지 마라. 국제법상으로도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이다.....

 

일본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습니다. 기껏 무주공산無主空山 (먼저 먹는 쪽이 임자) 비슷한 상태로 만들어 놓았더니 이승만 대통령이 조약 발효도 하기 전에 선을 그어 버렸으니.... 일본은

 

- 국제법상으로 무효다. 일본 어민은 한국의 이승만 라인은 무시하고 조업하라.

 

는 지시를 내렸지만, 한국 정부는 발효도 되지 않은 조약이 무슨 소용이 있나...며 군함까지 동원해 ‘평화선’을 넘는 일본 어선을 가차 없이 나포했습니다. 사람이 죽고 다쳐도 이승만은 코털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1961년까지 나포된 일본 어선은 300척이 넘고 억류된 일본인은 4000명에 가까웠습니다.

 

미국도 난리가 났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압력도 넣고 별 짓을 다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조치로 <독도는 우리 땅>임이 재천명, 재확인되었고, 우리나라는 우리의 영토 주권을 확실하게 지켰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도 독도가 빠져 있으니 이전부터 영유권을 가진 우리가 독도의 주인이라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국제법'이라는 것도 한 나라의 주권 의지는 당해내지 못합니다. 홍순칠 대장의 독도 의용수비대가 활약을 한 시기도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 선포에 힘 입은 것입니다. 정부와 민간이 이렇게 호흡이 맞았던 시기도 흔치 않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우리 땅 독도'에 손 대지 말라.

 

박정희 대통령의 혁명정부가 들어서자, 일본은 또 다시 '기회가 왔다.'라고 판단하고는 미국을 살살 움직입니다. 한 마디로 박정희 대통령을 우습게 본 것입니다.

 

1965년 5월 17일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딘 러스크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이 등대를 설치해 공동 소유하는 방안을 제의한 것입니다.

 

- 한.일 양국이 등대를 설치하여 이 등대를 공동소유 하는 것이 어떤가.

- 있을 수 없는 일이다! (Just could not work!) 독도는 양보할 수 없는 한국 땅이다.

 

사실, 그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음해하는 말들이 오죽 많았습니까? 근거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일본과의 밀약설이니 JP가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는 발언을 했다느니.... 그러나 이 모든 루머는 최근 기밀해제된 미국 국무부 문서 ‘1964-68 미국의 외교관계 29편’ 363호를 통해 공개됨으로 인하여 모조리 거짓말 이었음이 들통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저런 이야기를 꾸며 댄 것일까요.  

 

독도 폭파설은 JP의 발언이 아니라, 일본 외무성 이세키 유지로 국장의 발언이었습니다. 1962년 9월3일, 일본 외무성에서 열린 한-일 예비절충 4차 회의에서 이세키 유지로 국장은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라며 “크기가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파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누군가 JP에게 뒤집어 씌워 버린 것입니다. 

 

박정희의 훈령 - 독도에 대해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말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은 62월 11월 8일 한일협정을 위해 일본에 나가 있던 JP에게 훈령을 보내 "일본이 독도 문제를 제기하면 회담 현안이 아님을 지적하라"고 지시했음이 2005년 8월 26일 외교부의 비밀문서 공개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65년 6월엔 주일대사에게 긴급 공문을 보내 "독도 문제에선 조금도 융통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시했음도 밝혀졌습니다.

 

국제법상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평화선', 일명 이승만 라인은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독도의 국제법상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된 채, 전두환 정권으로 넘어 갑니다.

 

 

 

오늘의 주제 <국제법>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24편에서 전두환 대통령 이후의 국제법상 독도의 지위를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23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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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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