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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본] 독도의 진실 11~20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08.07.26|조회수1,397 목록 댓글 10

[해설] 독도의 진실 - 11

 

 

독도의 진실 - 10 을 쓰면서 과연 우리의 공군력도 써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독도의 진실을 쓰는 이유가 "독도는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있는 그대로 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공군력을 비교 하겠습니다. 비교 자체가 무의미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공군력.... 2008년 현재의 한국 공군력으로는 독도 상공에서 일본과 맞짱을 뜬다....는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설마.... 하시는 분들은 비록 수박 겉 핧기 식이지만 본 글을 세심하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현대는 "레이더 전戰 시대"입니다. 레이더는 군軍의 '눈'입니다. 눈(레이더) 없이는 전쟁을 수행할 엄도도 내지 못합니다.

지상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레이더도 중요하지만, 하늘에서 적의 지상을 내려다 보는 레이더는 더욱 중요합니다.

 

현대전을 수행함에 있어서 조기 경보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바로 하늘에 높이 떠서 적의 지상을 내려다 보면서 적의 동태를 한 눈에 감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기 경보기가 일본에는 17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조기 경보기가 단 한 대도 없습니다.

 

 

2008년 현재, 한국과 일본이 독도 상공이든 어디든 한 판 벌이게 된다면 한국 공군은 전멸합니다.

 

독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의 주력기인 F-15K가 출격하겠지만, 

이륙과 동시에 일본 조기경보기에 발견되어 추적 당합니다.

한국 영공에 있을 때 공격하면 전쟁이 확대되니까 공해상으로 나올 때만 기다립니다.

 

동해상 12해리만 벗어나면 일본 F-15J 개량형에서 날아오는 AIM-7스패로 미슬 한 방에 날라갑니다.

(과장 조금만 보태면) 한국 공군 전체가 모조리 출격해도 모조리 다 날라갑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입니다.

독도 영공에 도달한다구요? 그건 전시가 아니라 일본이 그냥 봐 주기 때문에 사진도 찍고 뭐 그러는 겁니다.

 

아니, .... 우리 공군은 여태껏 조기경보기 한 대도 확보 안 하고 뭐 했냐구요?

2012년까지 4대가 들어 옵니다. 우리 공군의 숙원인 조기경보기.... 

도깨비뉴스 국방전문 리포터 신인균 님의 글에 사진이 있어서 붙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스펙이 또 다릅니다. 일본은 미국과 같은 레이더를 얹었는데,

한국이 들여오는 것에는 조금 떨어진 성능의 레이더가 달려 있습니다. 레이더 사진 모양만 봐도 좀 다르죠?

 

지금까지 반미, 반미 외치셨던 분들.... 반성하셔야 합니다.

미국은 일본에는 항상 한국보다 쬐끔 앞선 것만 팝니다. 기분 나쁘면 한국에는 돈 줘도 안 팝니다.

 

여기에 기절초풍 할 만한 일이 또 벌어집니다.

일본이 F-22 랩터를 50대나 사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1대에 3,000억원짜리 랩터....

 

이 F-22 랩터라는 놈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스텔스" 기능이 뭔지 알아야 합니다.

"스텔스"란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는 기능을 말합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으니 격추될 일도 없습니다.

 

저 F-22 랩터란 놈의 레이더 반사 반경이 말벌 정도의 크기라고 하니, 레이더는 있으나 마나 합니다.

성능 좋은 레이더로 보면 깜빡 깜빡 보였다 말았다 합니다. 진행 방향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이러니 어떤 미사일로도 잡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적의 눈은 감겨놓은 상태에서 자신은 300Km 밖에서 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공할 무기인 F-22 랩터를 상대할 전투기는 아직 지구 상에는 없습니다.

적의 전투기는 F-22 랩터에 탑재하는 공대공 미사일의 숫자만큼 무조건 격추시킵니다.

 

F-22 랩터에 탑재되는 공대지 미사일은 더욱 무섭습니다. 여기까지만 하죠.....

 

참, 기왕 이야기 나온 김에 또 하나 중요한 무기 하나만 더 알고 넘어 갑시다.

전자폭탄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이 놈은 전기가 켜져 있는 모든 기기를 파괴시켜 버리는 무기입니다.

 

원자탄이 폭발할 때, 주변의 전자기기가 모조리 다운되는 현상을 보고 미국이 개발한 무기인데요,

이 F-22 랩터에 탑재된 전자폭탄 EA-6B가 전자재밍을 펼치면 그 지역의 모든 전자기기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지금 쳐다보고 계신 PC, 모니터, 핸드폰, 자동차, 테레비, 냉장고, 형광등....

전원이 들어와 있는 모든 전자기기는 못 쓰게 되어 버립니다.

미사일을 쓰지 않고서도 구축함의 엔진이 정지될 정도라고 하니 그 영향력은 짐작만 하십시오.

 

일본이 이 F-22 랩터를 보유하는 순간, 동북 아시아의 힘의 균형은 한 방에 무너집니다.

다시 한 번 도깨비뉴스 국방전문 리포터 신인균 님께 감사드리면서 사진을 붙입니다.

 

 

일본이 이 F-22 랩터를 사겠다고 나서자 우리보다 더 펄쩍 뛴 쪽은 중국입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 이것은 또 다른 전쟁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미국에 압력도 넣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미국이 일본에 F-22 랩터를 팔았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물론 한국도 사겠다고 나섰지요. 그런데 미국이 한국에 F-22 랩터를 팔까요?

 

딱 하나 장담합니다. 만약 미국이 한국과 일본 동시에 F-22 랩터를 판다면

미국은 한국 판매용은 반드시 일본 판매용보다 스펙을 다운시킬 것이라는 것은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

대저 일본의 대미 로비력이 어떤지 짐작만 하십시오.

 

하나 다행스러운 일은 이 가공할 무기가 미국을 겨냥할 것이 두려워

민주당의 발의로 2015년까지 외국 수출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대미 로비력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잊지 맙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F-22 랩터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니, 한국의 공군력에 대하여 이야기를 별로 하지 못했군요.

별로 강조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도 전투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라이센스 방식'으로 로열티를 주면서 생산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기술력은 축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다행스러운 것은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스텔스' 기능에 대한 기술의 축적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17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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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독도의 진실 - 12

 

 

독도의 진실을 쓰고 있는 중, 예상 외로 반가운 뉴스가 하나 들어 왔군요.

이혜훈 의원 및 여야 의원 32명이 공동발의로 "독도는 우리 땅"을 법제화하여 공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중 참으로 반가운 소식은

(1) 독도 기점, 12해리까지 독도 영해로 선포하고 (안 제2조).
(2) 독도 기점, 24해리까지 독도 접속수역으로 하며 (안 제3조).

(3) 독도 기점, 200 해리까지 배타적경제수역 EEZ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안 제5조).

 

여태껏 이런 법률 하나 없었다는 것이 신기하죠?

우리가 가진 법 중에 독도를 우리 영토로 규정한 것은 우리의 영토는 '한반도 및 부속도서로 한다'는 것이 전부였을 겁니다.

 

특히 독도를 기점으로 200해리(약 370Km)를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선포한다는 것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이 법이 통과되면 필자로서는 평생의 '소원' 하나가 풀리는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히 돌아 보아야 할 것은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법'일 뿐...... 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법'에 의하면 북한 전역도 우리의 영토지만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일본 지자체인 시네마 현의 '법'인 시네마 현의 고시에 따르면 '독도는 일본 땅'인 현실을 우리는 한 시도 잊으면 안됩니다.

 

'선언적' 규정의 법도 나중에 국제사법재판소에 갈 때를 준비하는 의미에서 아주 중요하지만

힘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지피지기知彼知己'해야 '백전백승戰百勝'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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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진실 - 11을 쓰고나서 반응을 살피니,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F-22 랩터에 대한 공포증이 이는 것 같군요.

그러나 우리는 냉정하게 알 것은 모조리 알아야 합니다.

 

F-22 랩터가 일본에 판매되고 나면 현재의 전력으로도 일본과 공중전이 벌어지면 전멸을 면치 못하는 입장에서

힘의 균형이 작살나고, 대통령이든 관료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 힘이 빠지는 현상을 방지하긴 어렵다는 것.

 

그래서 중국과 해상 영유권 공동대응을 하든, 일본의 유엔안보리 진출을 막는 로비를 펼치든

주권국으로써 일본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또 다른 무기(외교력)을 손에 들고

다방면으로 냉정하게 대처해 나가면서 독도에 '해상호텔'을 건립하는 수준까지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야 됩니다.

 

F-22 랩터가 성능이 뛰어 난 만큼 가격 또한 엄청나게 비싸서 미국 팬타곤도 183대의 생산만 허락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가격이 다소 싸면서 F-22 랩터의 성능을 어느 정도 흉내 낸 F-35가 인기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살 수 있으면 일본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일본이 공통으로 F-35를 보유하더라도 우리는 일본에 비하여 열세적 군사력 균형을 맞출 수는 있습니다.

아래는 수직이착륙형 F-35의 개념도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가격은 F-35A가 450억원, F-35B는 600억원, F-35C는 550억원 정도인데, 각종 옵션을 추가하면

1,000억 정도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우리 예산으로는 허리가 휠 지경이지만 F-22 랩터에 비하여 엄청 싸죠? ^^;;)

 

F-35B는 수직 이착륙형, F-35C는 항공모함 탑재형으로 둘 다 이륙시간이 짧아 활주로가 짧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기종은 2006년 12월 첫 비행을 했고 F-35A, F-35B는 2011년, F-35C는 2012년에 실전배치될 것이라고 하니

우리 공군도 구매를 서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공군도 구매한다는 보도를 본 적은 있습니다. 사진을 붙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독도의 진실-11,12를 보면서 느낀 점이 무엇인가요? 자꾸 돈, 돈 하죠?

맞습니다. 냉정하게 봅시다. 현대 공군력은 돈에 의하여 좌지우지 됩니다.

돈 많은 나라가 무기 경쟁력에서 결국 이깁니다.

 

그러면 일본에 비하여 돈은 적은데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있습니다.

 

첫째는 정신력, 둘째는 기술 개발력 입니다.

둘 다 우리나라가 자신 있는 분야입니다.

 

비록 빨간 물에 최면을 당하긴 했지만 공산 베트남은 정신력 하나로 부자나라 미국을 이겼습니다.

(미국은 아직 이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폐허에서 일어 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하면 됩니다. 

 

자, 이제 우리나라의 가능성을 봅시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일본 수군을 공포로 떨게 했던 이순신 장군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나라 입니다.

 

2006년부터 필자가 독도 관련 자료를 수집하면서 감동한 것이 셋 있습니다.

 

그 중 첫번째는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순항 미사일을.....

보통 미사일이 로켓 엔진을 사용하는 반면, 순항 미사일은 항공기에 탑재되는 '제트 엔진'을 사용합니다.

 

당연히 항속거리가 길어 공포의 대상입니다. 물론 북한 미사일 기지를 목표로 개발되었지만

우리 미사일 '천룡'의 경우 중국, 일본 전역을 사정권 안에 몰아 넣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개발한 것은 한국형 하푼 'SSM-700K' 입니다. '하푼'은 함대함 미사일을 말합니다.

수 번의 시험 발사를 통해 '전투 사용가능' 판정을 받고 충무공이순신급(KD-2) 4번함인 왕건함에 처음 탑재되었지요.

물론 일본의 이지스가 이걸 잡느냐 못잡느냐는 운용능력에 달렸겠지만, 이것도 여러 발을 쏘아대면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 이후 현무 시리즈, 천룡 시리즈 등이 개발되었습니다. 지금도 개발 중입니다.

반면에 일본은 공격용 무기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미사일 체계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독도 문제가 전면전이 아니라 공중전 또는 구축함끼리의 실력행사라면 한국이 밀리겠지만

만약 총력전으로 비화된다면 한국 내 중장거리 미사일의 3분에2만 써도

일본 해군과 일본 본토의 중요시설을 거의 파괴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보유한 다수의 이지스함과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포함하면 

우리나라가 날리는 중장거리 미사일을 대부분 격추할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때는 미사일의 성능과 보유 대수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20발을 날린다고 볼 때, 일본 이지스 1대가 17발을 잡으면 남은 3발의 미사일은 일본 본토를 타격합니다.

이렇게 보면, 이지스나 패트리어트 숫자보다 더 날리면 된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우리가 미사일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는 것 자체가 극비이기 때문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성능 또한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개발한 미사일은 저고도 순항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레이더의 추적을 피하면서 아주 낮게 날게되면 페트리어트가 엄청 고생을 하게 됩니다.

 

미사일의 성능, 보유 대수 등 이렇게 알쏭달쏭한 상태는 아주 고무적입니다.

그 자체로써 전쟁억지력과 외교협상력을 높이기 때문이지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17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해설] 독도의 진실 - 13

 

'독도의 진실'을 쓰던 중, 또 하나 기쁜 소식을 접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에 거주하는 두 명의 한국계 여성이 '독도'를 구했다는 기쁜 소식.

정부가 놓친 너무나 중요한 일을, 민간인 여성이 해냈습니다. 이 맛에 대한민국 국민(?)하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주일대사를 소환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미국 수도 워싱턴의 의회도서관에서

'독도'의 검색주제어가 '리앙쿠르 암석(Liancourt Rocks)'으로 소리 소문없이 바뀔 뻔했으나,

한국계 여성 두명의 재빠른 대응으로 의회도서관이 명칭변경을 보류했다고 합니다.

 

사실 외국에 나가면 나도 모르게 애국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외국에 나가 보신 분이면

누구나 공감하실 것입니다. 특히 외국인과 국제 결혼을 하신 분들도 언제나 고국을 그리워 하고, 고국을 위한 일이라면 

자신의 일을 젖혀 두고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이야기 할 때,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혈통주의', '순혈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골 농가의 한국인 2세는 대부분 이미 혼혈입니다. 유대인도 '혈통주의', '순혈주의'를 버린지 오랩니다.

 

블랙 쥬이쉬 (검은 유대인)은 화이트 쥬이쉬, 옐로우 쥬이쉬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자신이 유대인인 것을 믿느냐'는 것을 유대인 판별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미 국제화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소리 소문 없이 '독도'를 구한 "자랑스러운 한국 여성" 두 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문화일보 기사를 인용합니다. (문화일보 워싱턴 = 최형두 특파원 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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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16일로 예정됐던 미 의회도서관의 주제어 변경 회의를 가장 먼저 포착했던 사람은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책임자인 김하나씨. 북미 동아시아도서관협회 한국분과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14일 워싱턴 주미대사관과 조지 워싱턴대학 동아시아어문학과장인 김영기 교수에게 이 사실을 긴급히 알렸다. 주미대사관에는 의회도서관이 16일 주제어편집회의를 열어 독도를 '리앙쿠르 암석'으로 바꾸려 한다는 사실을 전하며 신속한 외교적 대응노력을 주문했다.

이와함께 워싱턴에서 오랫동안 한국문화 알리기에 노력해온 김 교수에게도 민간차원의 대응을 부탁했다. 앞서 북미·호주·뉴질랜드·프랑스에 있는 한인 사서 연락망을 통해 이 문제를 협의한 뒤 북미동아시아도서관협회 한국분과위원회 이름의 공문을 의회도서관에 보내 "이 문제는 한·일간의 영토분쟁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며 강력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16일(한국시간) 오전 문화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오늘 미 의회도서관이 우리 요청을 받아들여 앞으로 미국 지명위원회나 국제지명관계위원회에서 이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주제어변경을 보류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의회도서관의 조치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또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부터 대응을 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의회도서관의 주제어 변경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독도(주제어 번호 151)가 리앙쿠르 암석이라는 주제어로 바뀌는 것보다 상위 주제어가 '한국의 섬'이 아니라 일본해의 섬들(주제어 번호 550)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렇게 될 경우 독도가 일본해에 포함돼 있는 일본 군도로 여겨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이 문제를 처음 포착한 것은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사서정보. 매주 한차례 히데유키 모리모토라는 일본계 사서가 보내는 정보인데 지난주 보낸 e메일에서 "직접적인 도서정보는 아니지만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알려준다"며 의회도서관의 주제어변경회의 일정과 내용을 전해줬다. 매주 오는 e메일이어서 놓치기 쉬웠지만 김씨의 눈에 띈 것이 행운이었다.

워싱턴에서 김 위원장의 연락을 받아 한국 언론과 교민사회에 문제의 심각성을 전파한 김 교수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의회도서관측은 미국 지리원(NGA)과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이미 독도 명칭을 '리앙쿠르 바위'로 변경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며 "하지만 이 과정에는 일본측의 조용하고 오랜 노력이 숨어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용 끝)

 

이런 조그마한 사실이 독도를 지키고 독도를 구합니다.

지도 상의 표기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놓친 일을 민간이 나서서 구했다는 사실,

우리 역사는 이러한 것을 기록해야 하며, 위 두 분의 여성은 우리 땅 독도의 역사에 자랑스럽게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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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쁜 나머지 이야기가 잠시 다른데로 흘렀군요. 이제 다시 주제로 돌아 갑니다.)

 

필자가 독도 관련 자료를 수집하면서 감동한 두 번째는 우리나라가 "스텔스 기술"의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스텔스 기술이란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기술인데,

그 중 하나는 적의 레이더에서 발사되는 전파를 엉뚱한 방향으로 반사하도록 설계하여 

적의 레이더로 전파가 되돌아 가지 못하게 하여 숨어 버리는 설계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적의 레이더에서 발사되는 전파를 흡수해 버리는 도료(페인트) 기술입니다.

 

후자가 말하자면 전파를 흡수하는 도료를 발라 레이더에서 발사한 전파가 되돌아 가지 못하게 흡수해 버리는 기술인데

이 기술을 한국이 자력自力으로 개발한 것입니다.

 

이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1999년 스텔스 기술 개발에 착수한 지 9년 만의 일로,

한국이 일단 스텔스 기술 보유국 대열에 바짝 다가 섬에 따라 일본과 중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ADD는 스텔스 기술의 핵심 분야인 레이더 전파흡수 재료를 자체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파 흡수 재료를 공군의 F4 전투기와 전투기 축소 모형에 부착해 극비리에 시험을 실시한 결과

"성능 양호" 결론을 내렸습니다.

 

군 당국은 개발된 전파 흡수 재료의 구체적인 재질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항공기의 기체나 장비에 칠하는 도료나 부착할 수 있는 특수 필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깜짝 놀랄 이야기를 하나 전해 드리죠. 

어차피 군軍의 극비 사항은 외부에 알려주지 않으니 확인할 방법도 없겠지만

거의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읽어 주십시오.

 

우리는 은연 중에 '황칠'(黃漆) 이라는 말 많이 쓰죠?

 

옻칠만 아시는 분들께는 좀 생소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 황금 빛 나는 '황칠'(黃漆)이 스텔스 도료 기술의 핵심입니다.

한반도 서남 해안에서만 나는 이 황칠나무의 수액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자파를 완전히 흡수하는 신비의 물질인데

황칠 나무의 수액을 말리면 황금빛으로 변하고 조선시대에는 이 나무의 수액을 중국 황제에게 진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황칠 수액이 바로 스텔스 도료의 연료라니.... 신비의 전파 흡수제 스텔스 도료....

생각해 보십시오. 활용 분야는 엄청납니다. 한국은 이제 그 답의 일부를 찾아 낸 것입니다.

 

원래 최초로 이 비밀을 발견하고 활용한 것은 일본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전파흡수제로 개발했는데, 미국이 스텔스 기술을 개발하면서

이 황칠나무 수액 원료를 미국으로 가져 가 스텔스기 도료의 원료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황칠나무를 일본으로 가져 가 전략적으로 키웠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국의 황칠이 주로 자생하는 지역이 전라남도 완도와 보길도, 진도 등 전남 도서지역과 해안 일대인데

화산재로 주로 구성된 일본의 지질에서 키운 황칠나무에서는 더 이상의 수액이 나오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땅의 힘(땅심)은 다른 나라와 좀 다릅니다. 대한민국.... 축복받은 나라 아닙니까?

일본으로서야 팔짝 뛸 일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더욱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 것입니다.

 

아래는 한국이 스텔스 전투기의 핵심 기술을 개발했다는 외국 언론의 인용 보도문입니다. 

 

write_calender("2008/05/13 18:33"); MAY 13
[Tech] Korea develops core technology for Stealth Fighters.

  사용자 삽입 이미지


According to Korean news agency Yonhap, Korea has developed the core technology for radar-evading stealth fighters. Korea is preparing for a test flight of a fighter equipped with the latest technology. The Agency for Defense Development (ADD) successfully conducted a test flight of a miniature fighter equipped with the technology late last year. The ADD is preparing for a test flight of an F-4 fighter equipped with the technology, the agency said. South Korea has a plan to begin purchasing up to 60 stealth fighter jets, like F-22s or F-35s, in 2012 for deployment until 2019.

Via : Fareastgizmos

 

우리가 이 기술을 이전받기 위하여 얼마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국방부는 차세대전투기(FX) 사업 당시 미국 보잉, 프랑스 라팔 등에 이 스텔스 기술 이전을 요청했지만

깨끗하게 거절 당한 바 있습니다. 그걸 우리 자력으로 물질을 찾아내고 개발에 성공한 것입니다.

 

자....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선 무인 정찰기에 활용하고 각종 미사일에 적용한 후 항공기 및 함정에 적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물론 기체 설계 기술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완벽하진 않겠지만 레이더로 잘 보이지 않는 미사일....

일본이 요격을 자신 할 수 없는, 패트리어트도 요격을 100% 장담할 수 없는 미사일을 보유한다는 것.

 

그것의 전쟁 억지력과 외교 교섭력 향상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러니 어찌 제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17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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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독도의 진실 - 14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미국보다 뛰어난 스텔스 도료 기술을 확보했다는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위협입니다.

더구나 한국은 원천기술 하나로 응용을 하는 데는 귀신같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 위협은 더 커집니다.

스텔스 도료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 외 5국이지만, 이것을 무기에 적용시킬 기술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한국 뿐입니다. 

 

물론 우리가 스텔스 도료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F-22 랩터나 F-35를 도입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지만,

미국이 그 가공할 무기를 외국에 팔 때 스펙다운 시킬 것은 분명하고, 특히 한국에 팔 때 일본보다는 스펙을

한 단계 더 다운 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전력 부족분을 무엇으로 메꿀 것이냐가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무인 스텔스기의 개발입니다. 적의 레이더에 탑지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속도가 빠를 필요가 없고 탑재 미사일의 중량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도의 기술보다 레이더에 '보이지 않는' 이점은 살리고 각종 단점을 보완하면 됩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순항미사일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순항미사일은 무인 항공기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여기에 스텔스 도료를 바르고, 스텔스 기체 설계 기술만 더하면 됩니다. 

 

무인 스텔스 공격기는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음으로 인해

전술정보화면·헬멧조준시스템·조종사사출좌석·산소공급장치 같은 장치가 필요없습니다.

이 같은 장비 절감, 중량 감소, 개발기간 단축은 곧장 개발비용 감소로 이어집니다.

 

무인 스텔스기는 현재 우리 기술로도 충분히 개발, 제작 가능합니다. 개발 기간도 짧고, 돈도 많이 들지 않습니다.

일본에 비하여 "돈 없는 나라"인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절묘한 대책입니다.

 

우리나라 국방과학연구소(ADD)에 무인 스텔스 연구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예산과 인력이 배치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시급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사진은 미국의 무인스텔스기 X-47A, X-47B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필자가 독도의 진실 자료를 모으면서 감동한 세번째 이슈는 한국이 초고성능 레이더를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것입니다.

 

<독도의 진실-11>을 읽어보신 분들은 일본이 운영 중인 '조기 경보기'의 위력에 대해서 아셨을 겁니다.

예를 들어 전투기가 발진할 때 조종사들이 가장 신뢰하는 데이터는 지상 관제소에서 보내 주는 정보입니다.

그러나 지상 관제소의 지상 레이더에서는 적진까지 엿볼 수는 없습니다.

 

'레이더' 하면 대부분 빙글빙글 도는 지상의 거대한 발신 안테나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 지상 레이더는 공중에 잡히는 물체를 파악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산에 레이더를 설치해도 적진을 들여다 보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단점을 보완하고 하늘 높이 떠서 적진을 손바닥처럼 들여다 볼 수 있는 공중 관제탑이 바로 조기 경보기입니다.

조기경보기가 무서운 것은 조기경보기에 탑재된 레이더와 그 레이더의 분석력(컴퓨터) 때문입니다. 

 

만약 일본의 공중도발이 있으면 우리는 독도와 가장 가까운 대구 비행장에서 전투기를 출격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조기경보기는 우리 전투기가 대구비행장을 이륙 함과 동시에 추적을 시작합니다.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불쌍한 우리 전투기는 공해상으로 나감과 동시에 격추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조기경보기가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들여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체의 레이더 기술만 있으면 자체 제작도 가능합니다.

조기경보기는 (속도는 무시하기 때문에) 대부분 초고성능 레이더를 보잉 747 여객기에 얹어서 사용합니다.

이 레이더 기술과 컴퓨터 분석력만 있으면 우리 기술로도 조기경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기술 ; 국내연구팀 ‘40cm급 고해상도 영상레이더’ 개발

 

보통 인공위성에서 찍는 사진의 고도의 해상력을 가진 광학 카메라(렌즈를 이용한 카메라)입니다.

그래서 구름이 잔뜩 낀 날이나 눈, 비가 오는 날은 촬영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이더 전파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구름이 끼거나 말거나, 눈보라가 치거나 말거나, 낮이나 밤이나 적진을 살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 영상레이더를 개발한 것입니다.

 

가민호 한국산업기술대 전자공학과 교수팀과 삼성탈레스는 40cm급 합성개구레이더(KPU-STC)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래 개념도를 참조하십시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 동아일보)

 

특히 영상레이더(SAR)는 기존 레이더와 달리 땅 위의 물체를 3차원 사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얕은 바다를 운항 중인 잠수함까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SAR는 지하자원을 찾거나 재난 현장을 파악하는 데도 쓸 수 있습니다.
금속은 특히 전파를 잘 반사하기 때문에 금속 자원을 찾는 데 유리합니다.

 

2010년 발사될 아리랑 5호 위성도 1, 2호와 달리 광학 카메라 대신 이번에 개발된 영상레이더(SAR)를 달고 우주로 갈 계획입니다.

1, 2년 뒤에 고속 디지털 칩이 개발되면 우리가 만든 레이더의 구조를 조금만 바꿔도 최고 12.5cm급의 영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영상레이더(SAR)가 조기경보기 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으나,

우리의 레이더 기술이 군사 선진국을 따라잡고 있다는 확실한 자료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시간이 문제일 뿐, 스텔스 기술에 이어 레이더 기술까지 우리는 일본, 미국과의 격차를 줄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19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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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진실 - 15

 

 

자료를 수집하면서 저는 우리 해군 함정명에 안용복 함이 있었음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첫 슈퍼 이지스 함인 안용복함..... 결국 세종대왕함으로 바뀌었지만,

그 분을 추모하기 위하여 별도의 주제로 짧게나마 언급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해군 함정의 명칭에도 역사적 인물들을 사용되고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함, 충무공이순신 함, 을지문덕함.... 여기에 <안용복 함>이라는 함명도 당연히 들어가야 했습니다.

<독도를 구한 영웅 안용복>.... 대한민국 해군 함정의 이름으로 명명되기에 걸맞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영웅의 이름입니다.

 

지금이나 조선 시대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땅 독도를 '왜倭'로 부터 결정적으로 지켜냈던 안용복은

비천한 '노비출신'이라고 비명에 적혀 있습니다. 다른 문헌에는 능로군이라는 기록도 있고, 상인이라는 설도 있는데

그 중 "'안용복이 일본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왜관을 출입하던 상인'이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안용복이 상인이었던, 하급군인이이었던 간에 당시 "양반"이라는 귀족이 아닌 평민이었던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독도를 구한 영웅"이라니.... 우리는 그를 꼭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땅 독도를 위하여.....

 

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안용복은 "성격이 괄괄하고" 물러 섬이 없는 사람이었고

별도의 선단을 조직하여 일본으로 건너 간 기록으로 보아 상당한 배짱과 리더십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지 채 100년도 되지않아 왜군倭軍이나 일본 해적에 대한 공포심이 만연해 있었던 당시로서는

안용복의 행위는 거의 자살에 버금가는 행위였지만,

안용복은 신념 하나로 일본을 굴복시키고 독도와 울릉도를 되찾아 옵니다.

 

임진왜란 때 우리가 취한 전법 중 중요한 계책의 하나로 청야지계淸野之計라는 것이 있습니다.

왜군이 머무는 곳 사방 300리에 사람을 소개시켜 버리고 먹을 것을 하나도 남겨 놓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이 청야지계로 인하여 왜군은 엄청나게 굶어 죽었습니다.

 

이 청야지계淸野之計로 왜적을 골병(?)들여 재미를 본 경험이 있는 조선 조정은 울릉도에 왜구(해적)가 들끓자

강원도와 울릉도에 출몰하는 왜구를 근절시키기 위하여 울릉도에 청야지계와 비슷한 공도空島정책을 실시합니다.

섬을 텅 비우라는 공도空島정책..... 울릉도의 주민은 소개되고 그 큰 섬이 텅 비어버리게 됩니다.

(참으로 멍청한 짓 같지만 당시 상황으로 볼 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울릉도라는 커다란 섬이 비게 되자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의로

울릉도와 독도를 탐사하러 간다는 문서를 보내 조선 조정의 허락을 구합니다.

조선 조정은 한 마디로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 땅이다, 택도 없는 소리하지 말라"는 국서를 주어 돌려 보냅니다.

 

그러자 일본의 '오타니'라는 가문과 '무라카와' 가문이 일본 막부를 상대로 간 큰 사기(?)를 칩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무인도"라 규정하고 도해면허를 신청한 것입니다. 뒤로 막대한 뇌물을 쓴 것은 물론이고....

막부의 도해면허 한 장을 얻어 낸 두 가문은 70년 동안 울릉도와 독도의 자원으로 일약 일본 돗도리 현의 거부가 됩니다.

 

이 두 가문이 사기쳐서 얻은 종이 한 장으로 수 십년 동안 울릉도와 독도의 자원을 노략질을 하면서 한참 재미를 보고 있는데,

70년 만에 조선 어부들과 정면으로 조우하여 맞짱을 뜨게 됩니다. 

 

조선 어부들의 거센 기세에 놀란 저들은 일단 철수하여 일본 막부에 청원합니다.

- 조선 어부들이 불법적으로 우리를 쫓아 내었으니, 대책을 세워 주시오.

 

그러자 뇌물로 인해 정신을 잃었다가 이 청원으로 뜨끔해진 일본 막부는 황당한 해결책을 내 놓습니다.

- 은인자중하여 종전대로 고기잡이에 힘 써라..."

 

이게 무슨....

울릉도, 독도에 가서 조업을 하라는 말인지, 말라는 말인지.... 조선 어부는 어떡하라는 말인지....

조선 어부가 저렇게 덤비는데 어떻게 은인자중을 하라는 말인지, 그냥 두들겨 맞으라는 말인지..... 

 

낙심한 두 가문의 힘이 빠진 것은 당연지사. 살살 숨어 다니면서 조업을 계속하다가

이듬 해인 1693년 3월, 조선 어부들과 또 다시 정면으로 부딫히게 됩니다.

 

두 나라의 어부들은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담판을 했지만, 쉽게 결론이 날리 없었습니다.

이 때 조선 어부 측은 두 사람의 대표를 지정하여 일본 막부에 항의를 하러 갑니다.

이 두 사람의 대표가 바로 안용복과 박어둔이었습니다.

 

우리의 울릉도에 해당하는 돗토리현 오타니 가문에 도착한 안용복 일행은 융숭한 대접을 받습니다.

돗도리현 번주는 막부에 보고합니다.

- 이 일을 어찌 하오리까....

 

일개 조선 백성의 기개에 눌린 일본 막부는 "울릉 비일본계非日本界"라는 공식 외교문서를 발행합니다.

- 울릉 비일본계非日本界"(일릉도.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

 

그러나 대마도(쓰시마) 번주에 의하여 일이 요상하게 틀어집니다.

쓰시마 번주는 안용복의 신분상 허점을 간파하고는 막부의 외교 문서를 강탈해 버립니다.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 막강한 일본 막부를 또 한번 속이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러고는 안용복 일행을 조선 동래부에 인계하면서 국경을 넘은 죄인으로 몰아버립니다. 안용복은 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조선 조정에다 대고 사기를 치면서 공갈합니다.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이후, 

공식적으로 대마도는 경상도 산하 우리나라 지방 관아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 조선의 공도 정책으로 이러이러하니 죽도는 일본 땅 다 된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조선 어민의 출어를 금해 주십사...... 

 

조선 조정이 가만.... 보니까, 임진왜란 때부터 대마도 도주의 사기행각으로 보통 골머리를 앓은게 아닌데다가....

이게 일본 막부의 생각이 아니고, 쓰시마 번주의 장난이라는 것을 눈치챕니다.

 

- 안용복이 막부에서는 잘 대접 받다가 쓰시마에 와서 표류민 취급을 받았다?

- 안용복이 막부로부터 무슨 외교 문서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 이거 이상하다... 조금 더 알아 봐라....

 

결국 조선 조정은 막부에서는 울릉도,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것을 인정했는데, 쓰시마 번주가 엎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야, 쓰시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막부에다 너희들의 장난질을 알리면 너희 번주는 배를 갈라야 하지 않을까?

쓰시마 사신들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습니다. 

 

영의정 남구만은 정식 외교 문서를 발행합니다.

- 우리나라의 경지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 땅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침범하지 말라.  

 

대마도 도주는 혹 떼려다 혹 붙인 셈이 되었고, 2년을 넘겨 옥살이를 한 안용복은 석방됩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2년으나 넘게 한 안용복이 이를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성격이 괄괄한 그는 참지 못합니다.

- 이 교활한 놈들....

 

석방된 안용복은 30여 척의 선단을 만들어 울릉도로 조업을 나갑니다. 

이런 걸 보면 안용복은 비록 평민이었지만, 상당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대구모 선단을 이끈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조업 중인 왜인들을 몰아 내 버립니다.

- 여기는 조선 땅이다. 나가라.

 

그들이 독도로 도망가자 독도까지 쫓아 갑니다.

- 우리 땅, 독도에서 나가라.

 

그러고는 이 일을 확실히 매듭짓기 위하여 다시 일본으로 건너 갑니다.

이 때 아무래도 관직이 필요했던 그는 울릉.우산 양도의 감세장이라는 당시 조선에는 없는 직책을 사용합니다.

 

그는 돗도리 번주를 만나 큰 소리를 칩니다.

- 3년 전, 막부의 문서를 받았는데도 대마도주와 당신이 위조하고 불법으로 어로행위를 했으니...... 

- 내가 직접 막부에 가서 당신들의 사기행각을 고발하겠소. 

- 막부(일본정부)가 대마도 도주더러 배를 가르라 할지, 내 목을 자를지 한 판 붙어 봅시다.

 

깜짝 놀란 쓰시마 번주의 아버지는 돗도리 번주에게 사정합니다.

- 이 사실이 막부네 전해지면 내 아들이 배를 갈라야 하오.

-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상소가 올라가지 못하게 해 주시오.  

 

일본 막부(정부)는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게 되고, 마침내 결론을 내립니다.

- 울릉도, 독도는 일본이 빼앗은 것이 아니니, 돌려 주고 말고 할 게 없는 조선 땅이다.

- 단지 일본으로서는 일본인이 건너가서 고기잡이 하는 것을 금지 할 따름이다.

 

막부를 속였던 사실이 더 이상 들통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쓰시마(대마도)는 

더 이상 조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이 국서를 조선에 보내 모든 진실을 알립니다.

1697년 1월, 울릉도.독도는 조선 땅임을 일본 정부가 공식 확인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일본인은 울릉도, 독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나타날 수 없었습니다.

일본 국법인 막부(일본정부)의 명을 어겼을 때는 스스로 배를 가르거나 사형을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

 

이 모든 일을 해 낸 분이 바로 조선의 평민 안용복 님입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이라는 것.

지금이야말로 제 2, 제 3의 안용복이 나타나야 할 시대입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해군 이지스함 안용복함은 세종대왕함으로 이름을 바꾸어 푸른 바다를 누빌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17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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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독도의 진실 - 16

 

 

최근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이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습니다.

- "독도는 우리 땅"일 뿐만 아니라, <대마도도 우리 땅>이다.

 

지금은 좀 억지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대마도 반환을 위하여 국가적으로 나선 경험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8월 18일과 9월 9일 그리고 1949년 1월 8일

이승만 대통령은 줄기차게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합니다.

 

이어 1951년, 비록 나라는 전쟁 중이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 작성시

미국 국무부에 보낸 문서를 통하여 대마도는 한국 땅이니 돌려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향후 대일강화회의에서 대마도 영유권을 관철시키기로 하고

당시의 언론은 이러한 움직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 플레이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대마도를 접수할 준비까지 했던 것입니다.

 

사실, 대마도 영유권 문제가 나오면 일본이 유리할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일본은 몸이 달았습니다.

일본 요시다 내각은 한국 측의 이러한 움직임에 당황하여 외무성 산하에 대응 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미국 연합군 최고사령부 맥아더의 바지 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6.25 전쟁 중인데다 맥아더가 나서고 해서 유야무야 되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나서서 주장할 정도로

우리의 <대마도 영유권>은 역사적으로 우리 땅임을 주장할 근거가 충분합니다.

 

대마도는 상당히 척박한 땅입니다.

지금도 가 보면 대마도는 돌무더기 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 이 섬의 원주민들은 신라인들이었습니다. 거기에 먹고 살기 어려운 왜인들이 하나 둘 이주해 옵니다.

지금도 인구가 몇 만 밖에 되지 않는 섬에 왜구들까지 자리를 트니 먹고 살 식량이 부족해 집니다.

 

농토가 없고 살기가 힘드니 자연 약탈이 만연하게 됩니다. 사람이 굶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인가에 있으면 도적이 되고 산에 있으면 산적이 될 판이니, 바다에 있는 대마도가 해적이 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해적질 말고는 생계 대책이 막연해 집니다. 대마도는 서서히 해적의 본거지로 변질됩니다.

 

해적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고려, 조선으로서는 당연히 대마도는 정벌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419년 세종대왕 1년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 정벌은 사실 3차 대마도 정벌이었습니다.

 

1418년 대마도 도주 사다시게의 사망을 전후하여, 척박한 대마도에 엄청난 식량난이 발생합니다.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은 예사였던 시절, 기근이 들면 자식을 바꾸어 잡아 먹기도 했던 대마도였습니다.

 

사다시게의 뒤를 이은 그 아들 사다모리는 조선과 명의 해안에서 약탈해 온 식량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황금보다도 귀한 쌀이 가마니째 실려오는 것을 본 사다모리는 묻습니다.

- 이게 어디서 난 쌀이고, 어디서 구한 보리냐.

- 조선, 명나라 해안 지방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대마도는 원래 일본과 조선, 명나라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무역으로 먹고 사는 지방이기 때문에 

'가져 온다'는 말이 '사 온 것'과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 또 해적질을 했구나....

 

당시 대마도는 교역할 물건조차 없어 굶주리고 있었는데 이게 어떻게 조달된 식량인지 뻔한 일,

이런 해적 행위가 언젠가는 조선과 명의 정벌을 부를 수도 있지만, 일단 먹고 살아야 하는 사다모리는 눈을 감습니다.

- 알았다. 

대마도 도주가 이 모양이니 당연히 대마도를 근거지로 한 해적 행위는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왜구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조선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임금은 세종으로 바뀌었지만, 군권은 당시 태종에게 있었습니다. 상왕 태종은 선전포고문을 발표합니다.

 

- 대마도는 본래 우리 나라 땅인데,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1350년)으로부터 변경에 뛰놀기 시작하여

   마음대로 군민을 살해하고, 부형을 잡아 가고 그 집에 불을 질러서,

   고아와 과부가 바다를 바라보고 우는 일이 해마다 없는 때가 없으니......

 

이어 태종의 주도 아래 장천군 이종무를 삼군 도체찰사로 명하고,

경상, 전라, 충청 3도에 있는 병선 227척과 병사 1만7천 명을 거느리고 음력 4월에 출병하도록 명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군단급 정벌이었습니다. 

 

1419년 6월 19일, 조선을 출발한 정벌대는 20일에 대마도에 도착했습니다.

대마도를 살펴 본 이종무는 이게 사람이 사는 섬인지, 벌거벗은 원시인들이 사는 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 짐승들이 사는 섬이로다.

 

이종무는 상왕 태종의 항복 권고문을 사다모리에게 보냅니다.

-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예속했으니,

   본디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


- 다만, 그 땅이 심히 작고, 또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는지라,

   이러므로 왜인으로서 그 나라에서 쫒겨나서 갈 곳이 없는 자들이 다 와서, 함께 모여 살아 굴혈을 삼은 것이며,

   때로는 도적질로 나서서 평민을 위협하고 노략질하여, 전곡 (錢穀)을 약탈하고,

   마음대로 고아와 과부, 사람들의 처자를 학살하며, 사람이 사는 집을 불사르니, 흉악 무도함이 여러 해가 되었으니....        

 

이종무는 사다모리가 항복할 때까지 살륙전을 펼칩니다.

왜구를 수색하여 1백여 명을 참수하고 2000여 호의 가옥을 불태웠고,

131명의 명나라 포로들을 찾아내고, 29일에는 가옥 70여 호를 태우고 명나라 사람 15명과 조선인 8명을 구출했습니다.

 

대마도 도주 사다모리는 애원했습니다.

- 사람의 씨를 말릴 적정이오? 살려 주시오.

 

이종무는 과연 이런 척박한 섬에서 살륙전을 계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생결단으로 덤벼드는 왜구 때문에 우리 측 희생자도 180명이나 나왔습니다.

- 이런 땅을 정복해 봐야 유지비가 더 들어 간다. 대마도 도주는 반드시 항복 해 올 것이다.

- 우리 측 희생자도 만만치 않다. 미개한 놈들은 득실로 달래야 한다. 철수한다.

 

조선군이 철수하자, 대마도 도주는 고민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통일이 되지 않았던 시절, 분명 조선은 어마어마한 대국大國이었습니다.

더구나 왜국倭國들은 조그만 나라들로 찢어져 있었습니다.

 

사다모리의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산과 대마도는 불과 45Km, 대마도와 일본 규슈와의 거리는 무려 132Km....

 

- 조선은 가깝고, 왜국倭國들은 멀다.

- 조선은 크고 힘이 세고, 왜국倭國들은 작고 약하다.

- 우리가 조선의 침공을 받았을 때, 왜국倭國들 중 하나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 우리는 신라인의 후예, 이 섬은 어차피 조선 땅이 아닌가.

 

대마도 도주 사다모리는 결단합니다.

- 조선에 항복하고 복속하여 조선의 한 지방이 되자. 그것이 대마도가 영원히 사는 길이다.

 

대마도는 정식으로 조선에 항복하고, 조선에 복속하여 조선의 한 지방이 되기로 결정합니다.

이종무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 조선의 신하로 받아들여 주시오.

 

조선 조정은 영토에서 얻어지는 조공보다 식량 등, 유지비가 더 드는 지방을 하나 받아 들이기로 결정합니다.

- 왜구를 없애는데 드는 비용으로 생각하자. 원래 계림(신라)의 땅, 우리의 땅이고 우리 신민들 아닌가.

 

원래 신라의 영토였던 대마도....

이때부터 대마도는 완전하게 경상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경상도찰사의 관할 아래 놓여지게 됩니다.

 

조선 조정은 조선의 영토가 된 경상도 산하 대마도에 식량을 공급하기 시작하고

대마도 도주는 경상도의 한 지방으로써 매년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대마도는 그 이후로도 계속 조선의 한 지방으로 남아 있다가

임진왜란 때 일본의 편에 섰다가 다시 조선과 일본 사이를 오락가락 하다가 메이지 유신 때 일본에 강제 병합됩니다.

 

일본에 강제병합 되기 전까지 대마도는 분명히 법적으로 우리 땅이었습니다.

조선에서도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신라시대 때 부터 우리 땅임을 분명히 하고

그런 이유로 조선의 한 지방으로 받아 들여 관직을 수여하고 조선인이 된 그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대마도가 우리에게 영토를 가지고 복속해 온 것은 우리의 정벌로 강제 병합된 것과 다릅니다.

대마도 정벌 이후, 대마도가 스스로 영토를 가지고 복속해 온 것입니다.

오히려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 강제병합 했으니,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할 땅입니다.

 

대마도에는 매년 8월 아리랑 축제가 열립니다.

대마도 원주민은 우리 가야족의 아리나(허씨)족族입니다.

 

대마도 원주민의 DNA를 조사해 보면, 한국인과 같습니다.

대마도에서 쓰는 언어 중, 한국어에 뿌리를 둔 언어가 30% 정도나 되며 지게, 총각 등 똑 같은 언어도 많습니다.

물고기만 먹는 왜구들과 다르게 대마도에서는 제주도 흑돼지가 지방 토산 음식의 하나입니다. 

 

자, 위의 자료들을 근거로 이제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대마도는 과연 누구의 땅입니까.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영유권 주장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근거 있는 일이었고,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의 발언도 국제적으로 시도해 볼 만한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분명히 <대마도는 우리 땅>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마도 지도, 우측 "경상도"라는 글 위에 누군가 노란 칠을 해 놓았군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입니다. 대마도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토였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장보고급 잠수함, 이종무함이 물살을 가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19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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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독도의 진실 - 17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들어보면 <신라장군 이사부>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사부 장군에 대해서 물어보면 화끈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우리가 집니다. 잘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물어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현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리 <독도는 우리 땅>을 아무리 외쳐봐야 누군가 조금 논리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야, 근거도 있어, 자, 봐...."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할 말이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 측 논리와 역사적 사료가 아무리 정확하고 확실해도 모르면 집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독도의 진실>을 쓰게 되었는데, 이걸 학술적으로 풀면 아무도 읽지 않습니다. 어렵고 지루하다는 겁니다.

쉽게 쓰고, 재미있게 써야 독자들이 읽습니다. 

 

학술적이고 역사적인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독도의 진실>의 일부 문체는 소설 형식이나 대화체 형식을 빌어 쓰기도 합니다.

 

일본의 1억 2천만 인구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일본의 어거지 논리였던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공감대가 퍼져나가면서 세계에서 퍼진 일본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암암리에 작업을 합니다. 일본인이라는 의무감 하나로 스스로 알아서 합니다.

 

최근 미국 수도 워싱턴의 의회도서관에서 '독도'의 검색주제어가 '리앙쿠르 암석(Liancourt Rocks)'으로

소리 소문없이 바뀔 뻔한 사건도 세계에 퍼진 일본인들의 작품입니다.

다행히 우리 민간인 여성 두 분이 이걸 막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무서운 현실을 자각시켜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정부 대 일본정부가 하는 일도 많지만, 이제는 국제화 시대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과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개인이 외국에 나가면 우리 각 개인은 대한민국 민간인 외교관이 되는 것입니다.

 

민간인 외교관으로서의 우리..... 우리가 모두 <독도의 진실>을 알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 가능할 때, 독도는 진정한 <우리 땅>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신라장군 이사부(異斯夫)>에 대하여 쓰겠습니다.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읽게 하기 위하여 대화체 형식과 소설체 형식을 빌겠습니다.)

 

아슬라주 阿瑟羅州 (지금의 강릉) 주백에게 지증왕이 물었다.

- 우릉도于陵島에 우산국(于山國)이 있다고 들었다. 물산物産은 풍족한데 조공을 바치지 않으니 오랑캐가 아니냐.

   저걸 복속시켜야 우리 후방이 편해진다. 

 

사실 울릉도, 독도 지역은 어족자원이 상상 외로 풍부하여 대나무 하나만 빠트려 놓아도

다음날 전복이 새카맣게 붙어 올라오는 천혜의 어산漁産 자원의 보고寶庫였습니다.

 

주백이 답하여 가로되,

- 우산국은 나라國라 하기보다는 고대부족읍락(古代部族邑落)인데

   거기에 육지에서 살기 힘들거나 수탈에 쫒겨 넘어간 백성들이 가세하여 무시못할 세력을 이룬 것 같습니다..

 

지증왕이 되물었다.

- 그런데 복속치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

- 원래 '섬 것'이라는 것이 미개하여 왕화王化의 은덕을 입지 못한 관계로 조세나 조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군사가 치러가면 산 꼭대기로 피신했다가 방심하면 삼삼오오 내려와 괴롭히고

   오히려 물자를 약탈해 들어가는 천한 족속이옵니다.

- 알았다. 이사부를 들게 하라.

 

지증왕은 이사부 장군을 불러 명했다.

- 저걸 쳐라. 원래가 미개하다 하니 계략을 써서 치되,

   우리 군사나 저들을 심히 상하게 하지 말고 저들을 순화시켜 왕화王化를 입게 하라.

 

전쟁이라는 것이 적을 치고 목을 따서 겁을 줘야 복속되는 것인데 저 사나운 족속을 심히 다그치지 말라니,

아무리 왕화王化도 좋지만 참으로 힘든 주문이었습니다. 며칠의 고민 끝에 이사부 장군은 부관에게 명했다.

 

- 군사를 쓰지 말고 저걸 쳐라 하니, 사나운 짐승을 풀어 놓을 수 밖에 없다.

   너, 얼마 전에 서역에서 들여 온 사자를 본 적이 있느냐?

 

당시 신라는 세계 전역과 교역을 하는 나라였습니다.

각종 서역의 물자와 사자, 낙타 같은 동물까지 거래되거나 진상되고 있었습니다.

 

-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나운 짐승을 어찌....

- 천금千金을 주고라도 사야 한다. 우리 군사나 저들을 상하지 않게 하라는 주군의 명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울릉도에는 호랑이나 사자는 고사하고 뱀도 한 마리 없는 평화로운 섬이라는 것에 이사부는 착안했습니다.  

그러나 서역에서 들여 온 사자는 신라의 기후와 생존조건에 순응치 못하고 죽어 버린 후 였습니다.

부관은 죽은 사자의 시신이라도 사서 끌고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죽은 것 아니냐.

- 기후와 먹이가 달라 죽은 것이온데 장군의 명이 지엄하여 이거라도 끌고 온 것입니다. 

- 하는 수 없지. 잘 했다. 저것을 앞 세운다. 그리고 저걸 본 뜬 나무 조각을 만들도록 하라.

 

아침 어스름, 우산국 사람들은 바다에서 물 안개를 헤치고 새카맣게 몰려 오는 신라 병선을 발견했습니다.

각 병선에는 함거같은 커다란 짐승의 우리가 실렸는데, 그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세운 사자가 보였습니다.

 

- 아니, 저게 뭐냐.

- 저런 짐승도 있나.

 

개중에는 아침 안개 사이로 사자의 이빨을 살핀 시력 좋은 사람도 있었고 대처에 나가 사자라는 짐승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 이빨 봐라. 엄청난데..... 이빨 하나가 창 날만 하다.

- 저 정도 큰 입이면 사람 머리는 한 입에 삼킬 수도 있겠다.

- 저게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사자'라는 짐승이다.

 

두려움, 공포만큼 전염성이 강한 심리도 없습니다. 우산국 병사들이 서서히 공포에 젖어 들고 있을 때,

병선 한 척이 앞으로 나오더니, 덩치 큰 장수 하나가 내렸습니다.

 

- 여기 수장은 나오라. 저 사나운 사자를 여기 풀어 놓으랴?

 

이사부 장군의 목소리는 공포로 찌들어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우산국 사람들과 새벽 안개를 뚫고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우산국은 복속되었습니다.

이 순간부터 울릉도는 가시거리에 있는 독도와 더불어 신라의 왕화를 입어 우리나라 영토가 되었습니다.

 

......

 

위에서 가시거리란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라는 뜻입니다.

실지로 우리나라 정사(正史)인 ’세종실록지리지’와 ’고려사지리지’에 수록된 우산(于山)무릉(武陵) 현 울릉도 에서

’맑은날 울릉도에서 우리의 바다 조선해와 독도가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일본은 다시 시비를 걸어 옵니다.

 

일본의 외무성 관리였던 가와까미 겐조(川上建三)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고

1966년대 해군에서 가시거리를 측정하는 공식을 사용하여 독도는 한국 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공식을 해군에서는 가시수평선이라고 하는데 좀 귀찮지만(?) 공식을 한번 써 보면, D=2.09*(H^0.5+h^0.5) 입니다. 

D=시달거리(視達距離, 단위 해리),(1해리=1852m), H=물체의 해면상 높이(m), h=눈높이(m) 인데

가와까미 겐조는 시각(눈)의 기준점을 선박에서 쓰는 해발 4미터로 잡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합니다.

 

가와까미 겐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국측의 이한기 교수는 겐조가 얻어낸 30.3해리의 시정거리를 산출하는데

사용한 눈 높이 4m는 선상 갑판의 높이 2.5m에 키 1.5m인 사람이 서서 관찰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 것임을 지적하고,


독도의 해발고도가 174m 이며, 울릉도와 독도의 거리가 47.4 해리이므로, 이 값을 이용할 경우 키가 1.7m 이상인 사람이

해발 100m 이상의 높이에서 독도를 쳐다 본다면, 얼마든지 쳐다 볼 수 있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참고로 울릉도 성인봉은 해발 984m 이며, 울릉도에는 100m 이상 되는 곳이 수두룩 합니다.

 

그러자 가와까미 겐조는 울릉도는 숲이 울창하여 해발 200미터 이상은 올라가기 힘들다고 반박합니다.

성인봉까지도 얼마든지 올라가는데.... 가와까미 겐조는 헛다리를 짚은 것입니다.

 

이에 울릉군청 직원이 열(?) 받았습니다.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김철환 님이 울릉도에서 독도 사진 촬영에 성공한 것입니다. 

 

김철환 님은 맑은 날이면 울릉도에서 92㎞ 떨어진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날은 1년중 30~40일 정도며

해발 100m 이상 동쪽고지에서는 어디서나 육안조망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아래 사진은 울릉도 북면 천부리 석포마을(해발 360m)에서

(니콘 FM 2 랜즈500mm, 노출 11, 속도 30/1초)으로 독도를 촬영하여 공개한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울릉도에서 바라 본 독도 ; 촬영 :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김철환 님>

 

이 문제를 다시 연구한 학자들이 있습니다.

 

한일 근대사의 실증적 연구에 앞장 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은 "일본은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보인다고 한다. 진실은 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 하나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6개월여에 걸쳐 작업을 했습니다.

 

그 결과 다시, 독도를 촬영했습니다. 사진과 함께 기사를 인용합니다. (한겨레 | 기사입력 2008.07.21 09:51)

 

문제는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이 육안 관찰과 동일한 가이다. 또 디지털 사진의 경우 조작이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우선 실제로 울릉도에서 찍은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장소에선 나뭇잎을 앞배경으로 놓고 찍었으며, 디지털 조작이 불가능하고 표준 감도인 100의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했다. 망원의 문제에 대해선 사진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사용한 일반기자들이 흔히 찍는 70~200mm 렌즈의 경우 육안으로 보이지만 사진으로는 담지 못하는 경우는 있어도, 사진으로 보이는데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사진은 인간의 눈을 따라갈만한 해상력을 갖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 사진은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연구원쪽은 또 울릉도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거주해온 지역을 사진 촬영장소로 택해서 특별한 곳에서 매우 제한된 특정한 시기에만 독도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태호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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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장군 이사부 이후의 각종 사료를 인용합니다. (아래)

 

930년(고려 태조13년) 백길(白吉) 토두(土豆)등이 우산국을 대표하여 특산물을 바침으로,

조공에서 각각 정위(正位), 정조(正朝)의 관위를 수여함으로써

신라에 귀복되었던 울릉도가 그대로 고려에 복속(服屬)되었습니다.

1015년(고려 현종9년)에 동북여진이 우산국에 침입하여 농사에 큰 피해를 입히자

관리 이원구로 하여금 농기구를 보내주도록 하였으며, 4년후에 또 다시 여진족의 약탈이 거듭됨에

본토로 피난 온 우산국 백성들에게 명주(溟州:강릉)의 관리가 양식을 주어 이들을 보호하도록 한 사실도 있습니다. 


고려 성종때에 지방제도가 군현제도로 정비함에 따라,우산국도 고려의 한주현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1031년(덕종원년)에 우릉(羽陵) 성주의 아들인 부어내다랑(夫於乃多郞)이 조정에 특산물을 바쳤는데,

이때 조정에서 울릉성주라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1140년(고려 인종19년)에는 명주도감창사가 본토에서 볼 수 없는 우릉도 특산물을 임금께 올렸고

이를 통해 우릉도 명주도감창사가 관활하는 지방조직에 편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종때는 독도를 '우산도'(于山島)라고 불렀습니다.

 

1425년(세종7년)에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라는 직명을 주어 울릉도와 독도를 관장토록 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50페이지 세째 줄입니다.

 

(잉용 끝)

[출처] 독도 - 신라 장수 이사부(異斯夫)가 확정지은 우리 영토|작성자 햇무리

 

......

 

 그 이후로도 한 순간도 변함없이 독도는 우리 땅 이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울진현군 지도.( 1531)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20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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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독도의 진실 - 18

 

 

독도의 진실 시리즈를 17편까지 썼을 때, 한나라당과 정부의 당.정 회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조용한 외교'를 탈피하고 적극적 능동적 독도 유인화 정책을 실시한다고 하니

독도의 진실에서 주장해 온 대책들이 상당부분 빛을 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제 보이지 않는 일본의 '대응', 즉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독도의 진실 01, 03 등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2006년,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의회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타 내

한국의 정, 관, 학계에 뿌린 정황이 포착됩니다. 이것이 첫번째 장애물로 다가 올 것입니다.

 

우리 내부에 잠복하고 있었던 "신종 친일 세력"들이 학술을 빙자하고

국제법을 방자하면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나올 것입니다.

정부와 국민은 이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두번째 가상할 수 있는 것으로 이명박 정부를 향한 일본의 로비력입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출범한지 1년도 안됩니다. 의욕도 많겠지만, 취약점도 많을 것입니다.

일본의 로비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약한 부분은 건드리고 일본 돈의 위력을 보여 줄지도 모릅니다.

 

세번째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의 국제적 위치와 대미 로비력입니다. 일본은 미국과 상상 외로 가깝습니다.

우리 내부에서 10년 동안 반미, 반미 외친 것에 대한 부메랑을 일본은 이용할 것입니다.

미국을 앞 세운 일본의 공세를 우리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소화해 낼지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씩 하나씩 차분하게 정부가 발표한 대응책을 논해 보겠습니다.

 

당.정 회의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우선 '실효적 지배'라는 단어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대신 '독도 영토 수호 대책'이라는 용어로 변경키로 했습니다.

 

여기에서 독도를 "영토"로 표기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 정부와 국회가 법적으로 확실히 독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순간,

독도 주변 12 해리는 우리 수역이 됩니다. 누구든지 우리 영토를 침범하면 경고 후, 사살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독도를 기점으로 200해리(370Km)를 배타적경제수역 EEZ으로 선포할 수 있습니다.

아직 거기까지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럴 법적 근거를 갖춘 것입니다. 당.정 협의는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를 법제화 하는 후속조치가 즉시 나와야 하며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국민은 이를 감시해야 합니다. 말만 내질러 놓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할 뿐이며

일본이 한국을 더욱 우습게 보는 계기만 제공할 뿐입니다.

 

당정 회의는 "해저 광물질 조사단 구성과 활동"을 천명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이루어 질 것이냐....는 두고 보아야 합니다.

2006년 일본이 해양 측량을 위한 조사선을 독도 근해로 보내기로 했을 때의 양국의 긴장상태를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일본의 도발이었고, 우리 측의 강경 대응으로 일본 조사선은 물러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바다에 우리 배가 해저 광물질을 조사 한다는데는 일본이 할 말은 사실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 일본이 그런 나라였던가요. 반드시 생트집을 잡아 난리를 칠겁니다.

 

우리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말고 서서히 잔행하면 됩니다. 절대 대응할 필요 없습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입니다. 과연 오늘의 결의대로 진행 할 것이냐....는 두고 보면 알겠지요.

 

해저 광물질 조사단 구성과 활동....

이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아시는 분은 아실 것입니다.

 

엄청난 미래 자원 메탄 하이드레이트. 우리나라가 30년간이나 쓸 수 있는 미래자원. 석유에 목 맬 필요가 없는 나라.....

세금도 교육도 의료도 한 방에 해결될지 모르는 지하자원을 우리는 조사할지 모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일입니다.

 

독도 접근권 보장 방안 확보...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국민이 우리 국토를 가는데 무슨 허가가 필요합니까.

당연히 입도를 규제하는 모든 규제는 풀려야 하며 누구든지 자유롭게 독도 땅을 밟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자면 방파제 보수 및 신설 등 물리적으로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방파제만 손 대도 일본이 난리가 났었는데, 이번에는 일본이 발광을 하더라도 밀어 붙여야 합니다.

세찬 파도로 부터 독도를 보호하기 위한다는 명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해양 호텔 건립.... 이거야 말로 독도 영유권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입니다.

독도의 진실 - 06 편에서 잠시 인용합니다.

 

(인용 시작)

우리 땅에 우리 호텔을 짓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객실 규모 15실, 20실의 소규모든, 조금 크게 짓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독도에서의 하룻 밤....." 프리미엄까지 붙을 일 아닙니까?

당연히 관광객도 몰릴 것이고 호텔 종사자들은 자연스럽게 독도를 생활의 기반으로 삼게 됩니다.

주민등록도 옮겨 놓고, 예비군 훈련도 독도에서 받으면 됩니다. 참, 독도에도 인터넷이 깔려 있다는 것은 아시죠?

 

비록 예약 신청자 전원을 모실 수는 없겠지만

독도의 경제활동이야 증명하고 자시고 할 필요조차 없을 것습니다.

 

자연보호가 문제가 된다구요? 

이것이 바로 환경부 등의 관료가 독도의 유인화를 막는 논리입니다.

 

솔직히 말합시다. 하려고 하는 의지가 문제지,

지금 과학은 그런 것 쯤은 100% 무난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는 배 편을 통하여 실어 내 버리면 됩니다.

 

지금도 독도에는 이미 사람이 사는 가옥도 있고, 경찰이 머무는 건축물도 있고, 등대도 있습니다.

소규모 호텔 하나 더 짓는다고 독도의 환경이 망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독도의 유인화를 막는 억지 논리에 더 이상 우리의 소중한 국토를 일본의 먹이로 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독도의 유인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독도를 기점으로 배타적경제수역 EEZ을 자신있게 선포하면 됩니다.

일본이 가장 두려워 하는 시나리오....가 바로 이런 아이디어입니다.

(인용 끝) 

 

이와 함께 당정은 독도 수호를 위해 향후 ▲독도 정주마을 및 독도 사랑 체험장 조성 ▲수도권 독도 박물관

▲독도 종합 해양기지 ▲안용복 장군 기념관 건립 ▲서도의 어업인 숙소 확장 사업 등을 추진키로 했다고 합니다.

 

이 중, 독도 종합 해양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현재의 독도 상태를 조금 업그레이드 하는 것에 불과한 국내용 립서비스라 보지만,

그래도 이게 얼마나 대견한 일인지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독도에 해병대를 주둔시키기로 했다가 조금 더 검토해 본다고 했는데 하는데,

해병대든 뭐든 독도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치입니다.

변방의 국토 수호는 군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겁내지 말고 밀어 붙였으면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DJ 정부 때 맺은 신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지 않으면 빛을 발하기 힘듭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보고 독도기점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선포한 것도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신한일어업협이 존재하는 한, 이것이 잘 못 되었다고 반박하는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독도의 유인화를 가속화시키고 곧 바로 신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한 후,

독도 기점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독도는 우리 땅>을 완성시키는 완결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독자님들를 위하여 대한민국 박사모의 성명서를 함께 싣습니다.

 

 

[성명] 독도에 대한 당.정 회의 결과를 적극 환영한다,

 

독도를 사랑하는 국민과 더불어 대한민국 박사모는

일본의 독도 침탈 및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하여

<독도의 진실>을 지금까지 17편이나 연재히면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였다.

 

이에 대하여 20일 오늘, 정부와 한나라당은 당정회의를 열고

독도 수호를 위해 해저광물질조사단 구성과 활동, 국민의 독도 접근권 보장,

해양호텔 건립 등 독도관광 상품개발 등 `독도 유인도화' 대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나라당은 독도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현재 경찰력 대신 해병대 파견을 강력 제의했다고 하고,

정부는 독도경비 인력 대체에 따른 영향과 효과 등을 따져 신중히 검토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또한 반드시 실천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이에 대한민국 박사모는 한나라당과 정부의 발 빠른 대응책을 적극 환영하며

특히 독도 유인화의 결정체인 해양호텔 건립 등

독도관광 상품개발에 대하여 감동을 느끼며 환영한다.

 

특히 독도 유인화 및 독도 해양호텔 건립은

2008년 7월 15일, <독도의 진실 - 06> 편을 비롯하여 수 차례나 주장해 온

대한민국 박사모와 국민의 염원이었던 바, 이의 건립 계획을 온 몸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보아온 바,

또 다시 이러한 정책이 말로만 그쳐서는 안된다는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

 

오늘의 결론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하며

독도에 해양 관광호텔이 들어 설 때까지

우리 대한민국 박사모는 국민 감시자가 되어 당.정의 실천 여부를 지켜 볼 것이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 박사모는

당.정의 독도 관련 대책 회의 결과를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 정부 때 체결된 신한일어업협정이 폐기하고

독도를 기점으로 하는 배타적경제수역 EEZ 선포하기를 기다린다.

 

이 못된 협정이야말로 반드시 폐기되어야 할 매국적 협정이며

독도를 우리 기점으로 하는 새로운 한일 어업협정의 체결이야말로

독도 문제와 우리 해양 영토 수호의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신한일어업협정이 폐기되고 독도를 기점으로 하는 배타적경제수역 EEZ 선포되어

우리 해양 영토 주권이 바로 서고

 

이를 근거로 한 한,일 간의 새로운 한.일 어업협정 체결과

진일보한 새로운 한.일 관계의 정립으로

진정 미래지향적인 한.일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가 펼쳐지기를 학수고대한다.  

 

 

2008.07.20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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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독도의 진실 - 19

 

<독도의 진실>이 책으로 출판될 것 같습니다. 8.15 광복절에 맞추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인세 수입이나 다른 조건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이 독도의 진실을 바로 알고, 독도를 지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그저께는 전체를 정리하느라 좀 바빠 계속해서 <독도의 진실>을 쓰지 못했는데 그 동안 <독도의 진실-18> 등에서 우려했던 일이 실지로 발생하고 있는 듯한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국내에 잠복해 있던 '일본의 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2006년 고이즈미가 일본 의회에서 특별 승인받아 집행한 자금의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국민의 표를 먹고 사는 일부 정치권이야 원래가 표리부동(?)하여 언제라도 말만 바꾸면 되니까 좀 덜하겠지만, 관계와 학계의 반격이 보통 수준이 아닐 것입니다.

 

우선 독도 영토수호 문제에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160톤급 '독도 관리선'의 톤수를 늘린다는 것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독도 영토수호와 큰 관련없는 이런 배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160톤이든 16톤이든 1600톤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다를 떠 다니는 선박 한 척으로는 독도 영토 수호에 아무런 영향도 미지치 않습니다.

 

독도에 내국인의 자유 왕래가 가능해지고, 해양관광호텔이 들어서게 되면 독도를 왕래하는 선박은 소형, 대형 가릴 것 없이 늘어 날 것이고 그 때쯤이면 이른바 '독도 관리선'이 과연 뭐 때문에 필요한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한 마디로 화려한 립서비스라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각종 대책들의 말미에 독도 서도에 콘크리트 계단을 정비한다는 기사가 있는데 여기서부터 반대하는 논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예 : 조선일보 2008.07.21 A4면 기사) 여기에 "이 계획들은 일본의 대응 수위에 따라 추진 속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부당국자의 말을 인용하여....

 

어느 '정부 당국자'가 이런 정신 나간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일본의 대응 수위에 따라 추진 속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라고 발언했다면 이건 기절초풍 할 일입니다. 이번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안 하겠다는 이야기입니까.... "일본의 대응 수위가 높아지면" <안 하겠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차라리 일본 당국자에게 "자, 지금부터 대응 수위를 높여 달라. 그러면 없던 일로 뭉개버릴테니...." 하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외교에서 이런 속 보이는 발언을 한 정부 당국자는 즉시 해고해야 합니다.

 

그 뒤를 이어"해양호텔은 현실성이 떨이진다.", "구조물 설치는 일본이 가장 민감해 하는 부분인 만큼 상당 수준의 외교적 마찰이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 "이번 조치는 당연한 조치이지만...."으로 시작해 놓고는 "한편으로는 일본 내 극우파의 발언권을 강화시키는 효과도 있어 일본의 대응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학자까지 있습니다. 

 

필자가 이미 이틀 전에 미리 이런 반격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해 놓았지만,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2006년 4월 27일, 노무현 대통령까지 임석한 가운데 독도와 신한일어업협정에 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박OO라는 학자가 참석합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 학자 중 유일하게 UN 해양법재판소의 재판관이 된 사람이었는데, 이 중요한 회의에서 그는 신한일어업협정과 독도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소위 학계의 권위자라는 사람이 이런 소리를 내질러 버리면 대통령도 넘어가게 됩니다. 실지로 그 회의는 열지 않은 것만도 못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 박OO 재판관은 우리나라 신한일어업협정 체결 당시 외교부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사람인 것 같은데, 자.... 냉정히 따져 봅시다. 이 박모 재판관은 일본 서남대 교수를 겸직 중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 지기도 했는데, 한.일 양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협정 체결에 쟁쟁한 국내의 해양법, 국제법 전문 학자들을 배제시키고 구태여 일본과 개인적인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을 외교부 자문으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선정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분명한 관계와 학계의 유착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필자는 이런 희한한 우연이 앞으로도 숱하게 발생할 것을 감히 예견합니다. 그것도 독도와 공동어로수역 문제에 집중해서 발생할 것입니다.

 

또한 감히 장담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않으면서면서 그냥 "떠들면 안된다. 국제 분쟁 지역화 된다.", "조용히 아가리(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논리도 엄청나게 퍼져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과 신종 친일매국 세력이 퍼트린 대표적인 유언비어임에도 말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독도 관리선 같은 이야기는 집어 치웁시다. 한 마디로 독도에 방파제를 설치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모두 헛소리나 다름 없습니다. 방파제가 없어 배를 못 대는데, 무슨 정주마을이고, 무슨 호텔이며, 무슨 독도 사랑 체험장입니까. 1년에 고작 3~40일만 접안 가능한 곳에 저런 시설들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사람이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는데 저런 시설 지으면 뭐합니까. 소중한 국가 돈, 바다에 내 버릴 일 있습니까?

 

지금 독도에는 1997년 11월, 172억원을 들여 만든 선착장이 하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접안시설이 망망대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풍랑이 조금만 일어도 접안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당연히 선착장을 보호할 방파제는 필수조건인데 일본의 방해와 항의로 방파제를 짓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도 방파제를 짓겠다고 했을 때, 일본의 항의와 방해가 얼마나 심했습니까. 그 때도 결국 말 잔치로 끝났지요.

 

이런 섬에 들어가 살라구요? 1년에 적어도 300일은 접안이 가능해야 사람이 살 수 있는데, 지금 상태로라면 일반 국민은 들어 가 살지 말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맹장염이라도 걸리면 그대로 죽어야 합니다. 1년에 고작 3~40일, 바다가 잔잔한 날이 아니면 나올 수도 없고, 들어 갈 수도 없는 섬으로 방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방파제 짓는 것이 뭐가 힘든 일이냐구요? 그러나 이게 가장 힘든 일입니다.

 

지금 독도 서도西島에 계단이 무너져내려도 그 동안 보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구요? 돈이 없어서요? 고작 6억 5천만 원이 없어서요? 이 문제를 솔직히 말씀하시는 정치인, 관료 나으리가 하나도 없는 것은 왜 그럴까요?

 

독도에 배가 안심하고 접안 할 수 있는 방파제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벌써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깁니다. 그런데 방파제 이야기만 나오면 일본이 파르르르 떠는 것입니다. 완천히 알레르기 반응이죠. 일본이 파르르 떠는 이유는 단 하나 입니다.

 

독도에 안정적인 방파제가 만들어지면 한국인들의 내왕이 증가할 것이고, 당연히 정주 인구도 늘어 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일본의 독도 침탈 계획에 엄청난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독도에 방파제가 만들어져야 호텔도 지을 수 있습니다. 손님없는 호텔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독도 해양 관광호텔이 지어지면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무시로 방문할 것입니다. 독도 해양 관광호텔은 독도를 배경으로 열심히 홍보할 것이고,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대사관, 영사관, 관광공사, 무역진흥공사, 우리 관광회사의 해외지점에 독도 해양 관광호텔 팜플릿만 배치해도 그 홍보 효과가 어떨 것 같습니까. 우리 땅....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국제적으로 용인받게 됩니다. 왜 일본이 방파제 이야기만 나오면 파르르 알러지 반응을 나타내는지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구조물 설치는 일본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라서 안된다? 무슨 이런 망발이 있습니까. (이 사람, 한국 사람 맞습니까?) 우리 땅에 우리 건물, 구조물 짓는다는데, 누가 이런 한 여름 장마에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 내부에서 이런 논리가 나오면 일본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봐라, 한국 사람들도 우리 일본 땅에서 구조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반대가 심하지 않느냐...." 할 것 아닙니까? 제발 이런 정신 나간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 내 극우파의 발언권을 강화시킬 것이다...는 논리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일본의 우경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고, 하라고 해서 할 위인들이 아닙니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됩니다. 상대할 가치 없는 일에 상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 일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진짜 분쟁 지역이 되는 것은 아니냐, 전쟁이라도 터지는 것은 아니냐....고 걱정하실 분이 계시겠군요.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지만, 그럴 일은 전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내부만 안정되면 절대로 국제 분쟁지역화 되지도 않을 것이고,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일본은 상대가 약할 때 치고, 상대가 강하면 고개를 숙이는 민족입니다.

 

우리의 영토 수호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일본은 약해질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22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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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독도의 진실 - 20

 

 

대한민국 영토 독도를 수호하는 것이 정부의 일인 것처럼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 독도를 지킨 분들은 정부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과 저 같은 국민들이었습니다.

우리는 ↓ 이런 분들의 후예입니다. 이분들이 바로 1953년부터 독도 방파제를 만들자고 주장한 바로 그 분들입니다.

 

홍순칠. 6.25 참전 용사. 육군 특무상사 출신.

제대 후, 민간인 신분으로 독도 의용수비대 대장을 자임.

 

1966년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은 홍손칠 독도 의용수비대 대장에게 공로훈장을 수여하고, 대원들에게는 방위훈장을 수여했다.

 

............................ 

 

6.25 전쟁.... 독도는 비어 있었다.

군인도 경찰도 독도에는 한 명도 없었다.

 

일본 어부들이 무시로 출입하면서 어로 행위를 하고, 독도에 일본령이라는 글자까지 새겼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가 세운 독도 어민 위령패도 파 내어 없애버렸다.

 

울릉도 주민들은 생존의 터전이자 황금어장인 독도를 일본에 내어 줄 수 없었다. 당시 정부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은 것만 공표했지, 그 험한 독도를 방위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때였다. 울릉도 주민 스스로 어장을 지키기 위하여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조국이 위기에 빠질 때,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나라를 지켜 온 우리의 역사는 되풀이 되었다. 

 

홍순칠이 등장한 것은 이 때였다. 그는 스스로 독도 의용수비대를 조직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독도 사수를 위해 피 끓는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다. 건강부터 체크했다. 

 

- 맹장 수술은 했나.  

- 바빠서 못했소.

- 그럼 당장 병원에 가서 맹장부터 짜르고 온나. 독도에서 맹장염 걸리면 치료할 방법이 없다. 그대로 죽는다.

 

유원식, 정원도, 김병열, 양봉준, 이규현, 이필영, 김영호, 서기종 등 6.25참전 경험이 있는 총 45명의 청년들이 홍순칠 휘하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독도에 가기 전에 맹장 수술부터 받았다. 3명을 제외한 전원이 6.25 참전 용사라는 것은 기록에 나오는 사실史實이다.

 

- 돈 좀 보태 주시오.

- 뭐하는데 쓰시게?

- 보트도 사야 되고, 박격포, 직사포, 기관총, M1 소총, 실탄도 사야 됩니다.

- 니, 6.25도 끝났는데, 전쟁치러 가나.

- 독도를 지켜야 됩니다. 왜놈들이 독도에서 회를 치고 있소. 독도는 우리 땅이오.

- 군인, 경찰은 뭐하고?

- 그 사람들 정신없소. 빨갱이하고 싸워야 될 것 아니오. 독도는 우리가 지키고.....

 

배를 소유한 선주들은 독도의 중요성을 잘 안다.

독도에서 어로활동을 하는 경북 지방 어민들과 울릉도의 선주들은 왜놈들에게 황금어장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한 푼, 두 푼.... 독립운동 자금처럼 돈이 모였다.

 

그래도 부족한 것이 돈.... 대원들이 각자 무기를 준비했다. 미군부대에서 빼기도 하고, 정부와 군부대에 설명하고 돈 주고 사기도 했다.

 

45명의 인원을 두 개의 2개 전투분대와 보급대, 수송대, 후반지원대 등으로 편성하고 2분대가 한 달씩 교대로 근무하기로 했다. 0.5t 보트 한 척, 박격포, 직사포, 경기관총 각 1정, M1 소총 20정과 실탄 2만 4천발로 무장했다고 당시 기록은 전한다. 단, 이 무기들이 처음부터 완비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6.25만해도 지긋지긋한데 또 다신 전쟁터로 떠나는 사람들.... 비장감이 들수 밖에 없었고, 일제 치하에서 그 잔혹함을 경험한 사람들의 대일對日 공포증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홍순칠은 심리전에도 능했다. 우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줄 필요도 있었다. 장수는 여유를 보일 줄 알아야 하는 법.

 

- 니 뭐 믿고 이래 설치노.

- 이래봐도 내 끗발이 갑오(9)요. 최고의 끗발이지.

 

실지로 홍순칠의 군번을 끗빨로 따지면 갑오, 숫자로 9가 된다.

그는 6.25 전쟁에서도 전상을 입었을 뿐, 살아 남았다. 요즘 말로 상이용사였다. 그는 늘 농담처럼 말했다.

 

- 내 번호가 갑오여. 절대 죽지 않지. 6.25 때, 총알, 폭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져도 난 살았어. 

- 나만 따라 다녀. 절대 죽지 않아.

 

때로는 농담 한 마디가 분위기를 바꾸는 법.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하여 독도에 갈 독도 의용수비대원에게 대장 홍순칠은 웃으면서 용기를 불어 넣을 줄도 알았다. 그의 군번 끗발이 갑오(9)라는 것과 그가 이런 농담을 가끔 했다는 것도 기록에 나온다. 그들은 1953년 6월 독도에 상륙하여 독도 수호 임무에 임하기 시작했다.

 

애로사항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당장 마실 물이 부족했다.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독도 상륙은 쉽지 않았다. 지원하러 온 쪽배가 일렁이는 파도와 싸우다 돌아갔다. 동지들은 눈으로만 인사하고 돌아갔다. 며칠 후면 다시 오겠지. 빗물을 받아 마시면서 버텼다. 비가 오지 않으면 그대로 목을 태웠다.

 

식량이 떨어지면 미역이나 해초를 뜯어 먹었다. 땔감도 비에 젖어 쓸 수가 없었다. 파도가 심하여 해초도 뜯어 먹을 수 없는 날은 그대로 굶으며 오들 오들 떨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여름이면 깔따구라는 곤충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옷을 뚫고 그대로 물어 뜯었다. 깔따구의 영향력은 뼈속까지 파고 들었다.

뼈가 쑤씨고 벌겋게 부어 오르면서 며칠이고 사람을 괴롭힌다.

 

1953년 6월 25일. 미군 표식을 단 일본기가 독도 상공을 순회했다.

 

- 비행기다. 미군기를 달았다.

- 미군이 여기에 올 리 없었다. 일본기다. 속지마라. 전투준비! 고사포!, 고사포!.....

 

홍순칠은 속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그는 대단한 판단력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울릉도에서 실어 온 통나무에 검은 칠을 한 가짜 대포로 비행기를 겨냥하고는 조준을 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돌려댔다. 일부 대원은 M1 소총을 들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쏘았다. 총구에서 실탄이 발사되고 연기가 피어 올랐다.

 

위장 미군기인 일본기는 의용수비대가 위장용으로 가져다 놓은 대포가 진짜 고사포인 줄 알고 물러 갔다. 만세 소리가 독도에서 터져나와 동해로 울려 퍼졌다. 

 

일본기가 미군기로 위장하고 독도를 침범한 것은  1953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3차례. 독도 의용수비대가 활동 개시 한 바로 그 달이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

- 교전국도 아닌데 정찰기에 총질을 하고 고사포를 겨냥할 수 있소?

 

한국 정부는 저것들이 왜 저러지? 남의 땅에 와서....하고는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그런데 왜놈들이 거긴 왜 갔지?' 정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한 마음 한 뜻, 한 몸이었다.

 

 

  

 

 

이 글은 픽션, 즉 허구가 아닙니다.

실제 상황을 재구성한 "사실史實" 즉, 논픽션입니다.

 

.........................

 

전화가 왔습니다. 나가 봐야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22

 

대한민국 박사모

회장 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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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사해 | 작성시간 14.03.20 제가 인용좀 하겠습니다 출처는 박사모로 하고요 내용이너무좋아서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유연희 | 작성시간 14.07.03 수고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최진우 | 작성시간 15.03.20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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