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개념과 중요성

작성자물맷돌|작성시간23.03.19|조회수6 목록 댓글 0

예배의 개념과 중요성

 

1. 예배의 개념과 문제점

 

(1) 예배의 문제점들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 예배 참석자들의 상당수는 드리기보다는 복 받기 위하여 비는 예배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복 받기를 빌고 병 낫기를 빌고 출세하기를 빌고 권세 잡기를 빌고 드리기보다는 받기만을 위하여 치성을 드리러 예배당에 찾아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고사성어가 인용되는 곳이 교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목적이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옛날 전통 방식대로 정한 수 떠놓고 새벽마다 치성드리던 우리 조상들의 토속 신앙의 연장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예배가 아니고 우상 숭배며 무속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주권자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는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부흥과 복음 전도의 능력 구하는 기도를 싸잡아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 복 받지 말고 잘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며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요한삼서2)

그러나 예전 구습대로 치성드리는 방식은 이제 고쳐 져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2) 원인

이와 같은 문제들이 왜 생겼을까요. 그리고 왜 고쳐지지 않고 있을까요.

그것은 첫째로 초창기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의 환경과 전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보다는 빵이 필요했던 그 당시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은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으며, 예수 천국을 전하기보다는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 받기 위하여 예배하고 복 받기 위하여 기도하고 복 받기 위하여 헌금하고 봉사도 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일부 목사님들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대형 교회는 초창기 성전 건축을 하면서 열흘 먹을 식량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건축 헌금으로 드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한국 100대 재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곧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는 말씀으로 재물 얻는 비결? 을 성도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모습들을 종종 봅니다.

복 받기 위해서 달려 나온 사람들이 비법을 배우고는,

새벽기도라는 이름으로 치성을 드리고(새벽기도를 폄하 하거나 반대하는 뜻이 아님)일천번제라는 공을 들이고 구제도 복 받기 위해서 전도도 선교도 오직 복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6:7.8)” 고 말씀 하십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또 다른 이유로는 우리 고유전통과 결합한 천주교의 잘못된 교회관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천주교를 거론 하는 것은 개신교 성도의 상당수가 천주교와 기독교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보다 200년 먼저 들어온 천주교의 잘못된 교리로 말미암은 조상제사를 효도의 연장이라고 하여 허용함으로 영적 간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 하여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 (대상 5:25)]말씀으로 그 땅 백성들의 신(조상신)들을 섬기는 것은 영적 간음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복적 사상과 이기적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일입니다.

 

(3) 문제 해결 (개념 정립)

예배[禮拜]라는 용어의 우리말은 예()를 다하여 절()한다라고 했으며

국어사전에는

예배[禮拜]=개신교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숭배를 나타내는 의식, 거룩하고 성스러운 대상에 대하여 경의를 가지고 절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볼 때 예배는 무엇을 구하거나 비는 세속적 종교 행위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높여 드리는 성도로서 해야 할 최고의 행위입니다.

또한, 마음과 몸을 가지고 최대한으로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미하며 경배와 복종의 생활이 예배자들의 삶에 있어서 근본이 되어야 하며 순종과 복종이 있을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예배는 신실한 신앙인이 하나님의 영화로운 존엄성을 인식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굽어 엎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때에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께 경외와 찬양과 감사와 존귀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자는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것처럼 순종하는 종의 자세로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어야 합니다.

위와 같이 신실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말씀에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바라심과,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53:11)” 하심과 같이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하심과,

이사야 53장 말씀대로 이 땅에 오시어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예수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된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 26)”는 말씀같이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 드려지는 예배라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배자는 사명자로 세우심을 받아서 첫째, 선교사역에 적극 동참하며 둘째, 예배의 행위는 지극히 평범한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예배와 생활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을 인식해야 하며 예배와 생활과 믿음이 하나 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1:6)

 

2. 예배의 중요성

예배는 성도의 본분으로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성도가 당연히 해야 할 행위입니다.

말씀의 순종으로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0:25)] 성도가 부득불 해야 할 의무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로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는 말씀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예배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예배가 얼마나 중하고 귀한지 자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드려지는 예배에서 성도들을 향한 섬김과 가르침이 있어야 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13:1-15)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시며 섬기신 예수님께서 천국을 선포하시고(4:17) 산상보훈(5:1-12)을 비롯하여 많은 설교와 말씀으로 또는 비유로 가르치시고 기도로 행함으로 본을 보이심을 보게 됩니다.

 

섬기는 것과 가르치는 것,

섬기는 것은 아랫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행위이고 가르치는 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행하는 행위인데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세상적 상식의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유주의가 성행함으로 마땅히 있어야 할 질서와 권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세상의 상식적 기준으로 판단하고 이해하고 결정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다워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잘 섬기는 일은 가장 잘 가르치는 일입니다.

예배자의 자세로 가르치는 예배자(설교자, 목사), 드리는 예배자 즉 성도의 해야 할 바를 잘 가리켜야 합니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4:14-15)”는 말씀은 사도(가르치는 예배자, 목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알게 하는 말씀이지만 목사님들이 잘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을 섬겨달라는 말로 오해될까 하는 염려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가 보내신 이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를 공궤 하는 것입니다.

이웃사랑도 형제 사랑도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며, 이 사랑의 원리를 가르치는 일 또한 예배의 중요함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12:1)”는 말씀은 모세의 간음과 미리암의 비방에 대한 말씀입니다.

일반 상식으로 생각할 때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요, 아론은 그의 형으로서 동생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12:8)”고 도리어 미리암과 아론에게 진노하시고 떠나가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12:9-10)”

왜 진노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사람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권위에 도전함 때문입니다.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들을 생각할 때 교회의 질서와 성도의 도리 그리고 권위에 대한 부분의 가르침의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가르치는 예배자(목사님)는 제2 3의 많은 미리암이 생겨난 다음에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12:13)”하고 기도하기 전에 잘 가르치는 섬김을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영적 공동체로, 사랑의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교회가 세워져야 하며 교회는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정확 무오 한 말씀이요 사람의 신앙과 생활을 규율하는 최고 유일의 법칙이나 규범으로서 신앙하고 그 진리임을 가르쳐야 하며 예배와 교육 선교와 교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잘 가르치는 것 또한 예배 중의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예배의 개념과 예배의 중요성을 깨닫고 예배에 성공하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음과 함께 인생도 성공할 것입니다.

예배 없는 신앙이란 자기 수양에 불과하며 신앙이 없는 예배란 아무 의미를 가져올 수 없는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글:안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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