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설(輪迴說)과 토속신앙(土俗信仰)의 모순과 함정

작성자물맷돌|작성시간24.04.20|조회수0 목록 댓글 0

윤회설(輪迴說)과 토속신앙(土俗信仰)의 모순과 함정

 

불교의 대표적인 교리 가운데 하나가 윤회설입니다.

이 윤회설을 주장한 사람은 불교 창시자 부처(석가모니불)입니다.

부처는 누구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득도(得道=깨달음)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과거 7불이라 하여 비파시불(毘婆尸佛시기불(尸棄佛비사부불(毘舍浮佛구루손불(拘樓孫佛구나함불(拘那含佛가섭불(迦葉佛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불교 창시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은 기원전 560년경 인도 북부 네팔 국경지대 사카국 카필라성에서 전반 왕과 왕비 마야부인 사이에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왕자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悉達多 喬達摩)입니다.

마야부인은 싯다르타가 태어나고 일주일 후 산후병으로 세상을 뜨고 싯다르타의 이모가 왕비가 되어 싯다르타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는 당시 풍습에 따라 16세에 동갑인 사촌 야쇼다라와 혼인하여 아들 라훌라를 얻었습니다.

왕자는 성인이 되기까지 왕궁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평온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싯다르타는 인생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괴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문출유(四門出遊왕궁의 네 개의 문밖을 출입하게 된 싯다르타는 궁내에서 보고 느끼지 못했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새에게 잡아먹히는 벌레의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되고 상여(喪輿)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그물 속에서 살아 있는 동안 끝없는 고뇌와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이며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허무한 인생보다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진정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결국그는 29세에 가족과 지위를 모두 버리고 출가합니다.

49일을 참선한 끝에 깨달음을 얻고 득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무신론적 윤회 사상입니다.

신은 없는데 인생은 윤회(짐승도 되었다가 숲과 나무도 되었다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육도윤회(六道輪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짐승은 조상들의 윤회 과정이므로 살생을 금한다고 합니다.

(사상이 있는데 전생에 좋은 업 즉 선행과 공덕이 쌓였으면 이생에 복을 받고 전생에 악을 행했다면 이생에 벌을 받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생의 선악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는 사상입니다.

당시 인도의 주 종교인 힌두교는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신이 간여하는 것으로 믿었으나 불교는 신을 믿지 않았으며 운명은 전생에 죄업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무신론적인 입장을 취한 것입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전생과 내세윤회를 주장하고 환생과 극락을 주장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처의 가르침은 인간 고통의 근본 원인인 애착과 욕심을 떨쳐버리고 마음의 평정높은 지식의 상태로 나아가 열반(涅槃)에 이르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참선을 통해서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만민평등 사상을 펴나갔던 것입니다.

오직 정진과 참선만이 유일한 득도의 길로 제시되었습니다.

해탈(解脫)과 득도(得道)는 오직 자신의 노력에 의한 대가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을 펴면서 해탈과 득도를 주장하고 극락(極樂왕생(往生)을 주장하는데영혼으로 왕생하지 않는다면 부활을 해야 하는데 극락이 있다면 그곳에 부활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득도를 위해서 정진과 참선을 하는데 생존의 수단으로 탁발행위를 하게 됩니다.

현대사회는 사이비를 막기 위해서 탁발은 금하고 있습니다.

탁발은 안 하지만 사찰에 들어오는 시주(施主)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보시(布施)하는 시주(施主)에게 복덕(福德)을 빌어준다는 명목으로 보시를 받는데 무신론적 사고에서 누구에게 복덕을 빌어준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열반송을 통하여 한탄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음은 성철스님의 열반송입니다.

 

生平欺誑男女群하야 彌天罪業過須彌

생평기광남녀군하야 미천죄업과수미라

活陷阿鼻恨萬端인데 一輪吐紅掛碧山이로다

활함아비한만단인데 일륜토홍괘벽산이로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일곱 이래 즉 사십구재를 지내고 천도재를 지내는데 신()은 부정하면서 제사는 지내고 풍수지리를 따라 집터를 보고 절터를 잡으며 묏자리를 정하고 심지어는 사주팔자를 보고 음양오행에 따라 작명을 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결론은 윤회설이란 죽음의 고통을 벗어나고픈 고육지책이었으며 해탈득도극락은 윤회설을 확고히 하는 도구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음양오행사주팔자 관상의 명리학과 팔괘풍수지리는 주자(朱子)가 집대성한 성리학(주역=周易)으로 통계학이라 해도 무방할 것인데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50.1%와 49.9%는 전자는 진리요 후자는 비 진리가 되는데 전자와 후자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이와 같은 진리를 상대적 진리라 합니다.

이와 같은 통계적 진리는 유동성으로 말미암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신빙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사주나 관상이나 점괘는 사람의 이성을 흐리게 하고 판단을 굽게 하며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여 일상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불교 사상이나 명리학(明理學)을 근간으로 하는 토속신앙을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유익을 주는 예도 있습니다.

예전에 시골길이나 특히 산 비탈길 어귀에 가다 보면 선왕당 돌무더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 돌무더기에 돌을 가져다 놓으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비탈길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를 주어다 돌무더기에 던지므로 돌에 미끄러지는 사람이 없게 하려는 선조들의 지혜였던 것입니다.

길에 돌이 없으면 나뭇가지라도 끊어다 던지다 보니 통행에 방해가 되는 나뭇가지까지 모조리 정리되므로 쾌적하고 안전한 보행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옛날에는 문턱을 밟으면 복 나간다고 문턱을 밟지 못하게 했었습니다.

옛날 집은 목조건물로 한번 지으면 길게는 수백 년 가는데 문턱을 계속 밟게 되면 달아서 못쓰게 되므로 밟지 못하게 하는 수단으로 문턱 밟으면 복 나간다고 했던 것입니다.

또 그릇을 포개놓고 먹으면 겹상(裌喪당한다고 하여 막았는데 옹기그릇을 쓰던 시절에는 그릇을 포개놓고 사용하면 깨지기에 십상이므로 금했던 것입니다.

마당을 쓸 때 빗자루질을 밖으로 하면 복 나간다는 미신도 있습니다.

계속 바깥쪽으로 빗자루질을 하다 보면 마당 안쪽 처마 밑이 깊어져서 비가 오면 물이 고일 것입니다.

그래서 마당 안쪽이 높아지게 하는 방편으로 그리 하였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은 사람의 잠재의식을 자극함으로 말 한 대로 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믿고 섬겨온 토속신앙이나 무속신앙은 긍정보다는 부정을 말함으로 대중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보다는 부정적인 말과 점괘로 겁박함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절망과 낙담불안과 초조 가운데서 위축되어서 하는 일마다 소극적으로 행동함으로 생활은 더 피폐해지고 사회는 더 흉흉해지는 삭막하고 불안정한 사회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사주는 통계인데 함정이 있고 관상은 그 사람의 지나온 환경에 영향을 받아 형성됨으로 지난날은 맞출 수 있어도 앞날은 알 수 없으므로 지난 관상에 빗대어 희망을 주기도 하고 절망을 주기도 하는데 듣는 사람의 잠재의식이 긍정보다는 부정 쪽으로 인도함으로 부정이 작동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토속신앙(土俗信仰)을 국어사전은 그 지방에 내려오는 고유한 신앙이라고 합니다.

무속신앙(巫俗信仰)은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토속신앙이라고 정의합니다.

토속신앙이라면 그 지방에서 자생하여 발전하고 보존되어 전승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액운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무당들이 그려주는 부적은 불교나 도교(중국의 혼합종교한족의 민족종교)의 전유물입니다.

무속인들의 전유물인 굿은 불교의 천도재(遷薦齋)와 유사합니다.

불교의 천도재 중 대표적인 영산재(靈山齋)는 짓소리 등 전문적인 범패 소리와 바라춤이나 나비춤 등의 의식 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무속의 굿판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민속놀이라는 미명으로 명절 때면 행해지는 사물놀이의 사물은 원래 불교 악기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범종(梵鐘)이었으나 나중에 태평소목탁을 일컫는 말로 바깥채비 소리에 쓰이는 악기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사물은 꽹과리장구북으로 절 걸립패들이 절 신축이나 중수를 위하여 탁발 시주를 걷으러 다니는 행위였으나 나중에는 서당이나 사당 같은 공동 건축 및 수리를 하는데 필요한 자금 모금을 위한 방편으로 행해졌습니다.

이후로 농악으로 변절 되었는데 악기는 사물에 더하여 태평소피리소고를 여건에 따라 더 하였고의상은 색동이 가미된 팔괘와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꽃으로 장식된 무당 고깔을 쓰거나 상모를 쓰고 묘기를 보이며 풍요와 안녕을 비는 굿판으로 당굿당산굿마당밟기걸림굿두레굿판굿기우제 굿배굿등으로 무속 행위의 일종입니다.

이 모든 행위가 서로 연관되어있음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딱히 독립된 종교로 구분하기보다는 혼합종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종교 행위와 무속 행위를 보면 대상이 모호하다는 공통점과 측귀(廁鬼)로 말미암는 치료와 축복우완해소가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성철스님의 열반송으로 소견을 대신하겠습니다.

사주 관상에 부적으로 액운이 떠나가고 종교 행위와 무속 행위로 악귀가 물러가고 병이 치료되고 가난이 물러가고 우완이 떠났다면 가난한 사람병든 사람고난 당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사신숭배와 무속신앙에 의지하고 만사형통한 경우는 보기 어렵습니다.

도리어 더 얽히고설킴으로 고난과 역경에 빠지고 패가망신하는 경우까지도 종종 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귀영화(富貴榮華)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가난도 질병도 있을 수 있고 죽음이라는 인생 마감은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必須 不可缺)의 법칙입니다.

삶 가운데 환란과 역경에 맞닥뜨렸을 때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22:9))” 우상숭배는 도리어 화를 키우며 멸망의 길로 걸어감으로 불안 가운데 살게 되고 보장되지 않은 사후세계알지 못하는 사후세계로 말미암아 죽음의 공포에 떨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환란도 기근도 위험도 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그리스도인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유일신 하나님이 계시고 약속의 말씀이 있으므로 소망 가운데 꿈꾸며 살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는 말씀으로 천국에서의 영생을 약속받았으므로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허상을 보고 불특정 다수의 귀신에게 절하고

그리스도인은 실상을 보고그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글 : 안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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