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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of Hoolis

나의 훌천 회고록,가장 기억에 남는 20명의 사람들 (by 드가모프 06. 03 HOF)

작성자슈플|작성시간08.12.09|조회수1,113 목록 댓글 8

나의 훌천 회고록,가장 기억에 남는 20명의 사람들,내가 훌리들에게 하고 싶은말

By 드가모프



사람은 늘 어떠한 세상에 존재하고. 그 어떠한 세상에 존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된다. 훌천은 나에게 인터넷 공간에서의 "어떠한 세상"이었다. 필자가 훌천을 한지 벌써 3년가까이 되어가고있다.

 

 

사실 2003년 6월경 처음 이곳을 알게된 계기는 가히 우연스러운 것이었다. 입시정보를 얻기위해 간. 수능뽀개기라는 카페 에서 어떤 사람이 "여기 사람들 이상해요 서열싸움하고 막 음담패설하구-_-" 라는 글을 클릭하고 링크를 누른것이 시초였다.

 

 

사실 그당시엔 대학서열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냥 활동은 안하고 구경만 가끔씩 했다. 한 일주일에 1,2번? 어쩔뗀 그냥 1달을 안하기도 하고.. 그리고 2004년은 고3 수험생시절이었던 터라 그것보다 더 패턴이 길었다. 하지만 가끔와서 보는 훌리들의 익살스런 글들과 싸움질은 나에게 유쾌한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토론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역시 대학생들은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구나 싶었다. 필력 수준이 높은 글들이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엘리제 고경영 형님,훌리당자강 형님,나와 성향은 달랐지만 포커9단 등등.. 그러다가 2004년 11월 드디어 입시가 쫑났다.... 그리고 나서 이곳에 오니 더더욱 재미있는것이었다. 이참에 나도 활동을해볼까 하고 어디서 놀아야 하나 알짱거렸다.

 

 

사실 대학서열게시판에 가니 좀 맘에 맞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동경했던 연고대나 성한급 학교들 조차도 완전히 싸움에 말려들면 안까이는곳이 없던터라.. 그리고 애초에 대학훌리질에 관심이 없던터라... 그리고 자유게시판에 가보니 이곳은 눈팅하기엔 즐거운 곳이지만 내가 직접 글을 쓰기엔 딱히 별로 재미가 없어보였다. 그러다 나의 눈길을 끄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토론대결게시판 이었다. 그리고 2005년 1월 "한국 사회의 잘못된 극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 비판" 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것이 결국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처음에 토론대결게시판에서 논박을 벌였던건 "김창룡의 부활"이라는 훌리였다. 지금은 뭐하나 모르겠지만 당시에 토론대결게시판에서 위대한 황군~~ 이라고 외치고 다니며 독립투사들을 모조리 역적으로 몰고, 친일파와 한국침략에 앞장선 일본인 들을 애국자와 선지자로 묘사하고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쳐댔던걸로 기억했다. 결국 한판붙게 되었고 그것이 5일간 지속되다가 김창룡의 부활이 더이상 보이지 않게되었다. 최초의 승리? 였던 셈인가... 잘모르겠다.

 

 

사실 토론이란 것이 누가 누굴 이기고 지고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상대의 입장과 상대가 가진 정보와 지식을 듣고 자신의 식견을 넓히고 양자 모두 인정할수 있는 타협점을 찾음으로써 발전적으로 나가는데에 있다는것이라고 생각하건마는 나름대로 승부욕이 있는편이라 아직까지도 토론을 일종의 말싸움으로 생각하게 되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수양이 부족함을 느끼게된다.

 

 

여하튼 이렇게 토론게시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애초에 내가 추구하는 성향자체가 자유주의 사고를 기반으로한 민족주의 청년우파였기에 진보적 성향을 가진 훌들과는 대북문제라던지,한미동맹으로 많이 충돌하였고 보수적 성향을 가진 훌들과는 근현대사 논란, 군사독재에 대한 정당성 문제로 많이 충돌하였다. 나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스스로 청년우파라 자처하는 내가 토게에서 해온주장 주장들은 크게 7가지로 볼수있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발전 및 보완적 개선. 둘째. 악독한 독재자이자 민족반역자인 미치광이 김정일과 그의 하수인들을 처벌 하고 그들에게 핍박받는 2000만 북한동포의 해방과 자유통일. 셋째.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고 미국과 최대한 협력하면서 주변국의 위협에 대비한 군비증강과 경제력 향상이 꼭 필요하다는것. 넷째. 역사서술은 공정하고 자유로와야 한다는것 이데올로기나 일부 이익집단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오염시키지말것. 역사의 연구와 조사,탐독과 해석에 부당한 강압을 하여 자유를 훼손하지 말것. 다섯째.구태한 정치인들이 만든 말도 안돼는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화합과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것 여섯째. 단순한 적개심으로 세뇌받는 애국심이 아닌. 자기 주변의 존재들과 환경에 대한 관심과 사랑 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애국심이 더욱 더 위력이 크다는것. 일곱째.극좌와 극우세력들은 나라를 좀먹는 세력이라는것.

 

 

토게활동을 1년간 해오면서 나에게 찬사를 보내준 이도 많았고 이따금씩 따끔한 충고를 해줬던 사람들도 많았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찬사를 얻음으로 써는 글을 쓰는 기쁨을 더 느껴서 쓰는것에 매진할수있었고 충고를 받으면서 그 충고가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더 발전적으로 나아갈수있었던것 같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토론이라는것은 무지 어렵다. 조금만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의견을 내놓으면 "너 혹시 불순한 좌익적 의도를 가진 빨갱이 아니야!" 조금만 보수적이고 강경한 의견을 내놓으면 "이새끼 이거 완전히 수구꼴통이네" 선진민주주의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토론문화가 척박했으며 또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받지 못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음도 사실이기에 아직 토론문화가 성숙하지 못했다.

 

 

나 또한 이것을 좀 안타깝게 여긴다. 간혹 사람들이 나에게 스마트하다,글을 잘쓴다라고 평가해줄때 마다 부담스러운것이 사실이다. 내 스스로 돌아보기에 난 아직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할것이 많은 21살의 얼빵한 대학생일뿐이다. 나 정도로 알고있는 자들은 길거리에 지천으로 널렸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사회의 유독 나서기 싫어하는 특성 때문에 굳이 자신이 많이 알아도 표현을하지 않을뿐이라 생각한다.

 

 

여하튼 이렇게 1년의 세월동안 토론게시판에서 활동하였고 많은 훌리들과 담론을하기도 했고 때론 리플 100개가 넘어가도록 경합을 벌인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점을 떠나서 한가지 희망을 볼수있었던 일은, 점점 개인주의적 사고가 만연하고 사회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요즘 대학생의 사회적 이미지가 실은 좀 과장된것이라는걸 느꼈기 때문이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나 그밖에 여러분야에 에 관심이 있다는것을 이곳의 토론게시판을 통해 확인해볼수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게 해준 나의 토론게시판 활동을 요약하자면 2005년 1월부터 토론게시판 활동을 하다가 6월에 토론게시판 강훌로 선출되고 그로 부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운영자 까지 오르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9월경 난 나름대로의 개인사정 때문에 더이상 훌천을 하기가 귀찮았고 들어오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루핀교수라는 닉네임을 아예 탈퇴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수능을 다시 보고 "드가모프"라는 닉네임으로 다시 2005년 12월에 복귀한다. 닉네임 드가모프로는 전처럼 활발한 토론게시판 활동을 하진 않았고 자게 죽돌이중 한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의 카페이전사태. 사실 난 이번 카페이전사태.-간혹 훌리들이 1-19 혁명이라고 부르는-_-;; 에 대해 주도자로 참여하기 보다는 성명문을 쓰고 단순하게 그상황 자체를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맡았다. 나로썬 운영진 형,누나분들을 외면할수없었고 나름대로 1년간 훌천토게밥을 먹으며 운영자 까지 올라봤던 내가 이 일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양심이 허용할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1월19일 첫날 긴급하게 그자리에서 10분 정도에 시간을 들여서 자게에 공지성명문을 작성하였다. 후일 훌리의 역사 서술이 그 성명문을 쓰고 이번 카페이전의 조력자 역할을 한 나를 어떻게 평가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훌리생활을 회고해 보면 단순히 토게활동,자게활동만 있었던것은 아니었다. 언제는 몇날 몇일 주구장창 새벽에 카페 채팅방에서 훌리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초창기 내가 술에 취해 이른바 "음주 채팅"을 하던시절엔 나도 마구 방폭을 하고 하던 시절이있었다. 해처리와 같이 공동작전?ㅋㅋ 을 한것이 참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1:1대화로 여러 고민을 게시판에 올린 사람들을 직접 상담해 보기도 하였다. 그것은 아마 과거에 과거에 청소년 또래상담사 인터넷 게시판에서 상담사 역할을 했던 전력이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어느정도 작용하는 모양이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훌천 오프모임..(하반기에는 거의 나가지 아니하였으나 상반기에는 자주나갔다.) 도 자주나갔는데 모두 괜찮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오프 에피소드로 가장 기억에 남는것이 세가지가 있다면 푸딩형을 경희대 앞에서 만난일과 서강고,아이리버와 함께 건대근처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다가 옆 식당에 싸움이 터져서 그걸 말렸던일. 로드맨 형과 (현닉은 인포메이션~) 와일드카드형 그리고 이나대형과 밤새서 술마시고 이야기를 했던일등이 기억에 남는다. 오프모임에 나가고 느끼게된점은 훌천사람들도 일상에선 평범한 대학생들이라는 점이었다. 또한 대부분 무난한 외모의 소유자들이다. 내가 오프로 본사람중에 못생긴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다 선남선녀들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격들이 괜찮았다.

 

 

여하튼 다사 다난 했던 나의 훌리 생활들. 웃을때도 있고 울때도 있던 훌리생활들에 대해 간략히 요약하였다. 기억에 남는 훌리 20인을 써보고자 한다. 20인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섭섭해하거나 그런 사람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 맘같아선 당연히 모두 써주고싶다. (2006년 3월 26일 새벽 현재 엠에스엔이나 핸드폰에 등록된 훌리들은 총 31명으로 내 엠에센 전체 등록인원인 102명중 약 29%의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하지만 모두를 쓰려면 우선 타이핑이 압박이거니와 그사람과 나만알고있는 사적인 부분들도 있기에 쓰기가 곤란한 측면도 있다. .

 

 

나 드가모프, 루핀교수는 나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훌리들을 "훌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에게 나의 "친구" 혹은 "형님" 혹은 "누님"의 개념이다. 그렇기에 나와 평소에 친하였는데도 여기에 쓰이지 않아서 섭섭함을 느끼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하튼 써보도록 하겠다. 20인들의 번호순서는 선호도와 관계 없이 쓰는것이다. 난 이 20명 모두 내 가슴속 깊이 기억에 남아있기에..

 

 

1.pudding 현재 위원장이 되었다. 푸딩형과 나의 첫 인연은 일기장의 기록으로 보아 아마 2004년 12월 초경으로 추측된다. 당시에 푸딩형은 챗방에 자주있었고 나 역시 챗방에서 방폭을 일삼거나 찌질거리는것을 낙으로 삼았던 터라 ㅎㅎ 그리하여 챗방에 가서 깝싸다가 푸딩형에게 안드로메다행 특급열차를 타게된다. 그후로 챗방에서 자주대화도 하고 토론게시판에서 서로 리플도 달고 해서 상당히 친해졌다. 우선 푸딩형과 나는 관심사들이 많이 겹친다. 사회문제라던지,밀리터리, 그리고 K-1이나 ,프라이드 같은 이종 격투기. 작년 프라이드 남제때는 난 노트북키고 푸딩형은 피씨방에서 남제를 생중계로 보면서 서로 MSN으로 대화했던것이 기억이 난다.ㅋㄷㅋㄷ 푸딩형과는 작년 5월경 경희대학교 앞에서 만났었다. 푸딩형은 나에게 치킨을 사주었다 ㄲㄲ 난 맛있게 먹었다. 사실 푸딩형을 보면 예비역 병무게 본좌라는것이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군대에가서 피부관리를 따로 한건지 어떻게 그렇게 실제나이보다 상당히 어려 보이는 얼굴을 가지게 된것인지 믿기지 않는다 ㅋㅋㅋ 또한 푸딩형은 굳이 토론게시판에 글을 안쓸뿐이지 상당한 토론의 달인이고 아는 지식도 많다. 내가 많은것을 물어보는 푸딩형이다. 앞으로 위원장도 되고했으니 더더욱 훌력을 발휘 하시길~

 

 

2.高經營 全示眼 원래 전시안 형님의 전닉은 엘리제-고경영이었다. 형님과의 첫 만남은 정확히 몇월인지 내가 기억을 하 지 못한다. 일기장을 뒤져보았으나 형님과의 첫만남에 대한 기록을 찾을수없었다. 여하튼 확실한것은 챗방에서 이루어졌다. 시간은 새벽쯤으로 기억한다. 그때 지금은 군대에 가있는 제독형과 나와 형님은 여러가지 문제로 이야기를 했다.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각종 분야에 관한 지식들. 형님과 여러번 챗방에서 대화를 하면서 확신하게 된것은 이 분은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사람들중 가장 많고, 가장 다방면에 지식이 있는 분이라는 것 이었다. 강훌공채기념으로 HOF의 글에 올라온 전시안 형님의 필력을 보면 알겠지만 지식도 많으시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글을 쓰고 구성하는 능력도 뛰어나신 분이다. 여러번 대화를 해가면서 많은 정신적,학문적인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 남을 만한 많은 말들을 많이해주셨다. 무엇보다도 전시안 형님께 이자리를 빌어서 내가 감사드리고 싶은것은 나에 대해서 노력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셨으며 자신의 능력에 대해 선을 긋지 말고 발전하라는, 무한대로 발전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신점. 그리고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높게 평가해주시고 많은 조언을 해주신점 들이다. 부디 형님께서 하시는 일들마다 성취를 이루고 행복이 가득하셨으면 좋겠다^^ㅋ

 

 

3.Information Lible 인포형의 전닉은 Rodman 73 이다. 푸딩형과 함께 누가뭐래도 병무게의 본좌를 차지하고있는 분이다. 초반에 병무게시판이 처음생겼을때 "내가 이게시판의 본좌를 먹겠다"라고 당당히 공언했던 푸딩형은 정말 본좌급을 먹게된다. 하지만 로드맨형의 등장으로 양분구도를 겪게 ?다는 ㄲㄲ 내가 군대 신검이나 기타 문제들로 고민을하고있을때 친절하게 상담해 주셨다. 그리고 작년 내가 많은 고민으로 시름하고 있을때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질꺼라고 위안을 해주시기도 하고.. 그리고 2월의 운영진 정모 당시에 실제로 뵈었는데 난 푸딩형을 봤을때의 충격처럼 또 다시 충격을 느낄수밖에 없었다-_-;; 프라이버시상 인포형의 현재 나이를 말할순없다. 그렇지만 인포형의 인상은 인포형의 나이와 매치가 안?다;; 인포형은 키가 크고 잘생긴편이었다. 전형적인 선남선녀할때의 선남 이랄까? 그리고 말솜씨가 상당하셨고, 아는것도 되게 많으셨다. 경영학을 전공하신다고 했는데 인포형이 경영학과 관련되어 여러 가지 이론들을 설명해주시는 걸 보고 나도 한번 내가 그동안 무지했던 경영학쪽에 지식을 쌓아볼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여하튼 인포형은 정말 좋으신 분이다. 미국에서 공부와,일을 하기 위해 최근 뉴욕에 도착하셨는데 하시는 일마다 큰 성취를 이뤘으면 좋겠다는 필자의 소망이다^^~ㅋㅋ

 

 

4.시계태엽오렌지 최근 형은 상근으로 군복무중이다. 골치아픈 선임들과 맘씨착한 시태오형으로 하여금 야삽들고 머리를 찍고싶다는 상상을 하게 만들만큼 난감한 동대장. 그래도 현역육군이 아닌 상근이란것에 위안을 삼는 시태오형이다. 작년 8월에 훌천 채팅방에 있을때 서로 2차세계대전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친해졌다. 시태오형과 나는 FPS나,세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에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많이 친해졌다. MSN에서 자주 대화를 나누는편인데 되게 좋다. 시태오형은 사상적으로도 우파란점이 나와 상당히 일치할 뿐더러 나와 "열혈 축빠"라는 절대적인 공통점이 있다. ㅋㅋ 위닝 PC버젼으로 같이 해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완전히 발렸다 ㄲㄲ 시태오형은 한때 축구게임 프로게이머도 고려해볼정도의 실력소유자였으니까. 여러모로 재미있고 즐거움을 주는 좋은형이다. 남은 상근 복무기간들이 얼른 휘리릭 지나가고 시태오형에게도 해방의 날이왔으면 좋겠다.

 

 

5.로벌 로벌누님은 내가 힘든시절에 나한테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반수가 뜻대로 되지 않자 나는 작년 하반기에 상당한 마음고생을 했는데 그 당시에 나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올해 원하는 대학에 잘 입학하신것 같고 즐거운 대학생활과 원하는 꿈들을 이뤄가는 로벌 누나가 ?으면 좋겠다.

 

 

6.아흑~해처리! 내가 해처리를 처음알게된건 2004년 12월경이다. 그당시에 난 해처리를 처음알게?다. ㅇㅇㅇㅇㅇㅇㅇ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ㅇㅇㅇㅇㅇㅇㅇ<- 해처리의 트레이드 마크~! ㅋㅋㅋ 난 ㅇㅇㅇㅇㅇㅇㅇㅇ를 반복하는 해처리가 퍽 유쾌하고 재미있었고 해처리와 함께 방폭을 일삼기도 하였다. 그당시 챗방에서 나의 방폭에 피해를 봤던 아흑~나프타!,이화향기,금다래산머루 등등등에게 미안할따름이다 ㅜ_ㅜ ㅋㅋ 난 해처리에 대해 전혀 아는 정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해처리가 좋다. 해처리는 훌천의 귀여운 악동과 같은 존재다. 때론 너무 심하게 질서를 어지럽히는 훌리들을 자신의 해킹기술로 위협해서 그만두게 만들기도 한다 ㅋㅋㅋ 최근 동사무소에서 공익근무요원을 한다고 한다. 뭘하든 잘되길 바란다 해처리! ㅇㅇㅇㅇㅇㅇ

 

 

7.DUVET 작년 6월경 자게에서 눌러있다가 알게된 듀벳 형님 ㅋㅋ 작년 힘든시절 늘 날격려해주셨다. 맘속으로 늘 고마워 하는 분.. 한편으로 듀벳 형님에게 훌천보다는 생활에 전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무엇을 하든 다 성취하시길^^

 

 

8.★惡★ 악이형과의 첫인연은 참 재미있는 이벤트가 계기였다. 내가 작년 모월모일. 훌천 자게에 "아 건국대 앞인데 존나 심심해 같이 밥먹을사람" 하고 글을 올리고 폰번호를 올렸는데 두루루루룩 하고 전화가왔다. 덜컥. "헉 정말 걸줄이야;;; 누굴까;;" 그 "하이 루핀 나 파이악 이33" 악이?님이었던 것이다. 그뒤로 내가 강훌이 된후 악이형님과 함께 운영위에서 있고.. 또 운영자시절 같이 여러업무를 수행했다. 나의 첫 운영자 시절은 상당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 악이형이 여러모로 충고도 해주시고 도움도 주셨다. 악이형은 나에게 "쓴소리"를 많이 해줬다. 사실 첨엔 그것때문에 내가 많이 속상하기도 했는데 어디까지나 날 위해서 충고를 해주신거니 이젠 덤덤이 이해한다. 일을 맡았을때의 책임감 이라던지, 한번 결정한건 끝까지 해야한다는 그런 나에게 부족한 점들에 대해서 많이 충고해주셨다. 악이형의 대학은 CIA도 추적을 포기한 상태이니 나조차도 알지 못한다. 다만 악이형은 모대학의 ROTC과정을 수행하고 계신다. 하시는 일마다 다 잘되길 바라며, ROTC과정을 잘마치고 소위임관도 하고 제대도 잘하시길^^

 

 

9.이화향기 첨에 이화?자와 만났던 계기는 2004년 12월 챗방에서의 "전쟁 " 이었다. 3대사학 연고한 ?자와 이화?자가 마구 다투고 있었고 당시에 페미니즘을 토게에서 격렬하게 비판했던 나는 감정적으로 이화?자에게 연고한 말이 맞다는식으로 연고한 편을 들었고 이화?자는 챗방에서 나가게 된다 그러다가 챗방에 오래눌러있다가 어느덧 어색한 사이도 많이 없어졌고 이화?자가 먼저 나에게 용서를 했기에 나도 응하게 된것이었다. 그동안 서로 많은 고민들을 이야기 하고 친하게 지내왔다. 2학년때 전공을 선택한 이후로 ㄷㄷㄷ 한 학점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걸로 안다. 무엇을 선택하든 어떤길을 갔던지 간에 최선을 다하고 발전적인 이화?자가 되길 바란다^^ㅋ

 

 

10.훌리당자강(현 예까쩨리나) 훌리당자강 형님과 직접 얘기를 해본적은 없다. 다만 난 그의 무수한글들을 통해 그와 간접적으로 대화를 해본 셈이다. 그가 썼던 무수한 양질의 글들은 나의 지식향상에 막대한 도움을 주었다. 내가 그글을 읽고 가지게된 지식이라는것은 굳이 기능적인 측면의 양 측면의 지식이 아닌 "질"적인 측면의 지식이었다고 말하고싶다. 역사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 근현대사라는것이 시중의 근현대사 책들 처럼 단순하지 않다는점을 나에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간 내가 읽어왔던 학자들의 글이나, 논문들처럼 마치 논문급의 글을 읽는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역사공부를 오래해왔다고 자부한 그런 것들이 자만으로 가기 전단계의 시기에 마치 내 정수리에 일침을 놓는듯한 강력한 글들이었다. 역사관련 글을쓸때는 반드시 그 역사적 사료의 출처를 꿰고있어야 한다는 그런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룰수있었다. 곧 훌당형님은 사시에 돌입하신다. 부디 사시에 꼭 합격하시길! 문운이있길 바랍니다!

 

 

11.아흑~나프타! ?타?자와의 인연은 2004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타?자는 챗방에 자주왔었고 나와도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친해진뒤 엠에센을 서로등록하였는데.. 그러다가 해처리와,나의 방폭행각이 결국 나프타를 화나게 만들었다 ㄷㄷㄷ 그리하여 나는 나프타에게 엠에센을 차단당하게 된다 그런데 어쩌다가 다시 대화를 하게되고 수능후, 내가 먼저 다시 ?타를 등록하고 서로다시 등록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지한 대화를 몇번 나누어 본적이있다. 직접 만나보고 싶은데 나프타도 요즘 학교생활에 바쁜것 같고, 나도 요즘 도서관에 수업다듣고 6시간씩 풀로 처박혀있는중이라 ㄷㄷ 아무튼 성격이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나프타의 꿈인 행시합격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문운이 있기를!

 

 

12.니말이오™ 날 이해해주고 자주 내 글을 읽고 칭찬해주었던 고마운 친구다. 진짜 공부할량이 많은 공대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 3.5를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니말이와는 토론게시판에서 처음 만났었다. 챗방에서 대화도 몇번하고 ㅋㅋ 니말이는 요즘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해경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부디 군생활이 잘풀려서 몸도 마음도 편했으면 좋겠고, 몸건강히 제대하였으면 좋겠다.

 

 

13.서강고등학생 서강고와의 첫인연은 작년 챗방에서 였다. 당시에 나는 REAL,sweetlife,DAO~(지금 이분의 현닉이고 그당시엔 닉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이 세사람과 함께 챗방에서 역사릴레이퀴즈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서강고도 참여하게 되서 알게되었다. 서강고와 자주 그렇게 대화하고 친해지고 우린 작년 모월 모일 건대 앞에서 만났다. 서강고,지금은 연락이 안되는 아이리버 이 두사람과 함께 난 건국대 앞 고깃집에서 같이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한창 맛있게 먹고있는데 오른쪽 식당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왠 사람들이 술먹고 흥분해서 싸우는것이었다;; 결국 우린 고기 먹다말고 싸움을 말리게 되는 ??한 경험을했다 ㅋㅋ 물론 대충 진정되서 다시 끝까지 고기먹긴했지만 하기 힘든, 참으로 우스꽝스런? 경험이었다 암튼 서강이와 나는 많이 친하게 지냈는데 서강이는 나와 성향도 많이 일치했었다. 후일 서로 바빠져서 만날수가 없었다. 서강이는 과외로 용돈을 버는 입장이었고 당시의 나는 무척방황하던 시절이었기에. 서강이는 언론사쪽으로 가는것이 꿈이라고 한다. 부디 서강이가 얼마전 작고하신 한국학의 대가였던 조선일보의 이규태씨나, 유신독재 시절 박정희정권의 탄압에도 끝까지 진실을 알리려 했던 동아일보의 천관우씨 일제의 조선일보,동아일보 통제속에서도 끝까지 꿋꿋하게 할말을 했던 민족사학자 안재홍씨 처럼 진정한 참 언론인이 되길 바란다. 역시 문운이 있기를!

 

 

14.DAO~ 기억이 하도 희미해서 DAO~?의 전닉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형에게 나는 "오리형"이라는 호칭을 자주쓴다. 그형의 별명이 오리형이기 때문에 ㅋ 나와 역사퀴즈를 하면서 서로 알게?고 엠에센도 등록하고 이젠 완전 친해진 사이다. 오리형은 역사,지리,수학,과학,일반상식등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한때 작년 여름 챗방에서 내가 초고난이도급 역사퀴즈를 3문제 낸적이 있었는데 오리형은 그 3문제를 모두 맞춤으로써 나를 포함한 챗방의 모든 퀴즈인들을 경악시켰다. 오리형은 모 국립대 의대생이다. 현재 예과 2학년 이라는데 시간표를 ??하게 짜서 주 한 두번은 6시간이 들은 아스트랄한 날이 있다. 난 오리형에게 자주 CALCULATER 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오리형은 되게 수치계산이 빠르다. 오리형은 그동안 정치사,문화사 적 측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나와는 달리 데이터적으로 나와있는 각국의 경제사같은걸 잘알고 있다. 나에게 역사 설명에 있어서 객관적 수치또한 중요하다는점을 일깨워준 그런 계기가 된 사람이다. 근데 한가지 나에게 웃음을 준 사실은 객관적이고 판단력이 좋고 수치계산을 해내는 오리형이 로또복권을 매주 산다는것이다 ㅋㅋ 더군다나 오리형은 로또맞은 후의 계획이 다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안걸렸다는 ㅠㅠ ㅋ 오리형은 성격또한 참좋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자주만나보고 싶은데 형의 거주지가 부산이라서;; 그래도 여름방학땐 KTX 한번 타고 내려가볼 생각이다. 얼마전 오리형이 소개팅 나갔는데 여자분이 오리형의 맘에 안들어서 결국 허탕만 쳤다는 안쓰소식을 들었다. 부디 오리형과 내가 올 2006년에 죽음의 솔로부대를 탈영하여 자유의 커플부대 품에 안기길 바란다 ㅠㅠ 더불어 오리형이 멋진 의사가 되길!

 

 

15.뽕브라단속반 단속반형과 알게된 계기는 재작년 12월 챗방에서 였다. 당시에 아직 토게에 나와 형 모두 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챗방에서 자주 대화했다. 후일토게에서도 자주 서로 글을 썼었고 우파라는 공통점은 있었으나 몇몇가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관이 다르다는것이 나와 단속반형의 차이점이라 하겠다. 그래도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자유해방통일의 전개,(자유해방통일의 전제는 김정일의 제거를 베이스로 깔고있다.)를 비롯하여 나와 일치하는점들도 많다. 과거의 많은 토게인들이 공감했겠지만 가끔 부담스러울때가 있다. 챗방에서 잘 대화하고 친하게 지내다가 토게에서 의견이 충돌될 경우가 그것이다. 몇몇가지 견해에 관해 충돌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난 단속반형이라는 사람을 싫어하진 않기 때문에 그것을 맘에 담아두고 있진 않다. 형은 모 대학 부동산학과에 다니고 있고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시는 중이다. 겨울에 알바하느라 바빠서 훌천도 잘못오시고 ㄷㄷ.. 요새 무슨 시험을 하나 준비중이시라고 들었는데 부디 문운이 있길!

 

 

16.sweetlife 스윗이 형 나 그리고 DAO형 이 세사람은 작년 상반기 챗방 역사퀴즈의 주최자들이었다. 스윗이형은 그렇게 DAO형과 나와 자주 대화를 나누었고 친하게 지냈다. 명문대 경제학도 답게 많은 지식을 가진사람이다. DAO형과 스윗형은 이미 훌천이전에도 모사이트에서 자주대화를 하며 인연이있었던 사람들이다. 두사람이 가끔 대화했을때 고전 하오체를 쓰는걸로 보아 대략 디씨로 짐작하고있다 ㄲㄲ 그러던 작년 상반기 어느날.. 스윗형은 조국의 부르심을 받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훌쩍 군대로 가버렸다. 그후 가끔 휴가나오면 DAO형 나, 스윗형 이 세사람은 엠에센에 모여서 서로 대화를 한다. 그럭저럭 남들보단 약간 편하게 군생활을 한다니 다행이다. 부디 몸건강히 제대하고, 지금 원하는 스윗이형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17.중위권 중위권은 나와 1:1대화를 몇번해보았고 토게에서 자주 서로 역사글에 리플을 달던 사이다. 나이는 나와 동갑으로 알고있고 모 국립대 생이다.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이다. 나와 취향이 매우 똑같에서 첨엔 중위권도 역사학도가 되려 했으나 집에서 반대해서 결국 합격했으나 역사학과에 진학하지 못하고말았던.. 역사학을 꿈꾸는 우리나라의 모든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그런 좌절을 나와 똑같이 겪었던 친구다. 나 역시 그런경험이 있기에 마음이 많이 통했다. 중위권은 폭넓은 역사지식을 가진사람이다. 나의 가치를 많이 존중해 주고 내글에 많은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라 정말 늘 고마워 한다. 사실 중위권은 나보다 훨씬 더많이 알고있는데 늘 나를 높여줘서 내가 부담스러울때가 많다. 특히 고대사 부분쪽에서 그의 역사적 지식은 가히 방대하다 할수있겠다. 글쓰는 솜씨까지 추가하면 그 지식에 필력까지 배가되어 더더욱 실력이 업될꺼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글쓰는 것도 딱히 못쓰는건 아니지만서도. 중위권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역사공부를 해나가는것이 꿈이라고 한다. 부디 그꿈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적극적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그런 모습이 멋진 친구.

 

 

18.진짜엥 사실 짜엥이와는 대화를 자주나눠본 경험은 없다. 언제 서로 알았는지에 대해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다만 챗방시절에 알았던것까지는 기억한다. 짜엥이와는 한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올해 초 합격자 발표시기 짜엥이가 교대원서를 썼다고 하길래 내가 대학합격 꼭 하도록 기도해주마 라고 했었는데, 진짜로 그 기도가 먹혀버린것이었다. 그당시에 난 내 고딩때 재수한 친구 3명과 짜엥이 딱 4명을 위해서 정말로 성당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했었는데 얼마뒤 진짜로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난 마치 내가 합격한듯 정말로 기뻤다. 하나님이 있다는걸 확인한... 그런기분?.. 감히 어찌 그분을 확인하겠느냐만은.. 기도 보다는 사실 하늘은 정말 노력하는자를 돕는 모양이다. 짜엥이는 작년 한해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었고 결국 합격을하게되었다. 작년 어느날 술에 쩔어 집에 쳐박혀서 컴퓨터를 하다가 챗방에서 신세한탄을 하는데 짜엥이가 나한테 "못났다는 사람치고 못난놈"없더라 라고 말해줬던게 기억난다. 자주대화를 해보진 못했지만 가끔할때 마다 나와 내가믿는 가치들을 존중해주고 나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던 고마운 친구다. 하는일마다 잘 풀리고 어렸을때 부터 늘 장래희망이었던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밝은 웃음과 사랑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19.안먹어. 안먹어와는 작년 봄에 알게되었다. 안먹어는 모 대학 공대생이다. 근데 공대생임에도 불구하고 문과적인것에도 관심이 많은 그런친구였다. 서로 마음이 많이 맞았고 요샌 서로 바빠서 자주대화를 못하지만 그래도 곧 만날 계획이다. 안먹어랑 처음만난건 그 친구의 학교축제때 였다. 작년에 난 호기심반,심심해서 반으로 그친구 학교축제에 가서 그친구네 동아리술집에서 맥주1병을 마셨던 기억이있다. 그리고 고대에서 열렸던 진보단체들의 강연회에도 같이 가본적이있었다. 이친구나 나나 우파쪽을 지향하지만 과연 진보좌파들의 논리가 어떤것인지 궁금했었다. 홍세화나,한홍구같은 그쪽 계열에서 명망이 좀 있는 사람들도 나온다고 하길래 가봤었다. 나름대로 저쪽계열사람들은 나와 의견이 상당히 다르다. 그렇지만 상대를 상대하려면 상대의 의견과 논지도 알아둬야하는법. 많은 걸 알수있었다. 그런 자리를 알려줬던 이친구에게 참고맙다고 말했었다. 그 후 같이 고깃집가서 왕창 고기먹고 그랬다. 이친구의 꿈은 컴퓨터 관련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것인데, 부디 그러한 꿈이 달성되길 바란다. 안철수급의 본좌가 되길 기원한다~

 

 

20.영길선생 수험게시판 공식 본좌 영길형이다. 장수생이고 영길형이 직접 밝혔듯이 예전 여자친구가 농협대가 뭐야라는식의 말을한것에 충격을 먹어서 수능을 다시 보기로 결심한게 수능을 많이 보게된 계기라고 한다. 이번수능에서 연대 법대에 합격하였다. 사실 많은이들이 영길형을 변훌로 알고있고 별로 진지하지 않은 사람으로 알고있지만 영길형도 실생활에선 이 진지하고 많은 관록을 가진사람이다. 나름대로의 철학도 있고 결심한것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도 가지고 있다. 사실 엠에센을 서로 등록하고 영길형과 첫대화를 나누었을때 그 에피소드를 아직도 잊을수없다. 엠에센 윙크 기능으로 "키스"를 보내서 나를 진짜 배꼽잡게 만들었다 ㅋㅋ 그후로 나도 가끔 심심하면 영길이형에게 키스 윙크를 보내곤 한다 ㅋㅋ 그형이 나에게 해줬던 말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건.. "너가 아직 해보지 않은것에 너가모르는 너의 재능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은 평소에 내 관심밖의 것들에 굉장히 겁부터 먹고 자신감이 없었던 나에게 많은 자신감을 가질수있게 해주었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간 전혀 문외한이었던 행정과목에서 최근 어느정도 부담감을 덜게되었다. 형은 요새 사시를 준비하고 있다. 부디 문운이 있기를 바라며, 또한 형의 절정의 연애스킬을 책으로 편찬해서 이땅의 많은 솔로부대들을 구제해주는 메시아가 되셨음 하는 바람이다 ㅋㅋ (물론 농담 ㅋㅋ) -------------------------------------------------------------------------------------

 

 

 

회고록을 마치며... 생각해본다. 훌천이란곳은 어떤곳일까. 난 이곳이 고삐풀린 망아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무한대의 자유가 보장되면서도 어느정도 룰이있는 그러한 곳이다. 어떤 단체든,어떤 조직이든 그 단체와 조직을 이끄는 철학이라는 것이있다. 훌천의 철학은 무한대의 자유다. 백범 선생님의 말씀 처럼 "산과 들에 여러 꽃이피듯이" 훌천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곳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유를 끊임없이 누리고 즐기면서 이 공간이 유지되는것이다.

 

 

난 훌리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지 무얼할지는 모른다. 다만 이곳이 20년후 30년후에라도 여러분들이 이곳을 생각했을때. 피식하고 웃음이 나올수있고 추억으로 남을수있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랄뿐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안타깝게도 점점 더 힘들고 경쟁이 심해질꺼라는것이 각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는 우리나라의 무능한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이 사회에 신자유주의식의 여러 방략들을 들여왔으나 정작 들여와놓기만하고 환경적 토대를 만들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1,2년 계약직으로 하고 짤려도 능력만 있으면 취업할곳이 천지에 널린 미국과 박사학위를 따고도 수천명이 썩고있는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환경적 토대가 다르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린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결국 자기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키우는 수밖에 없다.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을 잘받고, 토익도 잘하는등등 스펙도 키우고 고시에 뜻이있다면 고시를 보고, 공무원 시험에 뜻이있다면 공무원 시험을 보고 그렇게 자기 살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혹시 수험게시판 학생들이 이글을 읽는다면 해줄말이지만 진짜 우리나라는 완전 학벌사회다. 학교가 이상하면 원서를 바로 쓰레기통에 넣는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최대한 공부해서 최대한 한단계라도 좋은대학에 가야한다. 대학을 다닐동안 실력을 최대한 배양했으면 좋겠다. 또한 훌천에 몇몇존재하고 있을 애국청년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있다. 동지들은 공감하겠지만 지금 조국의 형세는 매우 화급하다. 사방을 믿을수없는 강대국들이 감싸고있고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마지막 발악을하고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나라의 정치인이란 무리들은 이런 화급한 형세에도 별다른 대책을 세우고 있지않다. 마치 과거 조선말엽에 무능한 정치인들이 국제정세를 읽지않고 무대책으로 일관하다가 개박살난것과 참으로 비슷하다 하겠다.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때의 무능한 조선과는 달리 상당한 경제력과 국방력을 가지고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우리를 감싸고 있는 믿을수없는 존재들이 너무나도 강력하기에 걱정이 안될수가 없는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늘 그랬지만 무능한 윗사람들이 나라를 망칠때마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망쳐져 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왔고 그러함으로서 수천번의 침략을 받고도 우리는 살아남아 왔다. 민족반역자 김정일과 그 하수인들로부터 2000만 북한 동포들을 해방시키고, 강력한 경제력과 국방력을 가진 헌법에 명시된 안으로는 국토의 방위와 밖으로는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그런 우리나라를 만드는것은 여러분들에게 달려있다. 각자 맡은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을 어느덧 다썼다^^.. 훌천을 하는 동안 난 많은 시간을 날리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얻기도 한것같다. 최근에 난 참 바쁘게 지내고 있다. 시험공부도 하고있고 토익공부도 하고있고 자격증 공부도하고있다. 훌천생활을 그간하면서 사람들에게 가끔 국가주의자다,파시즘이다 라는 소리도 들어본적이 있었다. 그런사람들의 입장조차도 난 존중한다. 한국에서는 애국심이란 것이 늘 대북 적개심을 기반으로 몇몇 권력자들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심었던 수동적 애국심이었기에.. 하지만 지금 우리 또래 청년우파들은 점점 "수동적 애국심"이 아닌 "주변사람과 자신을 둘러썬 환경에 대한 사랑" 으로 부터 저절로 우러져 나오는 그런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번 나라에 자부심을 가지면 그 자부심을 포기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나또한 그렇고. 내 목표는 언제 어디에 있든 조국을 사랑하고, 내 주변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는것이다. 자 여러분들의 목표는무엇인가! 그것이 어떠한것이든 건전한 가치이길 바라며 그 목표가 성사되어 여러분 개개인들 모두가 행복하였으면 좋겠다! 2주-3주뒤에쯤 다가올 중간고사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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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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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존설경 | 작성시간 08.12.24 글 참 잘 썼네 ㅋ 진솔하고 느낌이 있어 ㅋ 명문이다 ㅋ 이왕 훌천하는 거..많이 얻고 가길 바래~
  • 작성자셋둘하나 | 작성시간 09.01.06 아..정말 다 아는 사람이네..예전 훌천 많이 올떄 유명했던 강훌들 다있네..특히 푸딩, 로므댄. 영길. 나프다.니말이오.중위권 이런사람들 많이 봤는데..ㅋㅋ
  • 작성자[철팸]中立國 | 작성시간 09.06.04 난 왜 없어 시발
  • 작성자제독 | 작성시간 09.07.07 기억나네 하나하나
  • 작성자늅늅 | 작성시간 15.03.09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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