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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of Hoolis

훌리건의 역사-by 훌리건-

작성자황보래용|작성시간06.01.20|조회수736 목록 댓글 1

훌리건의 시발점은 우리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1963년 진학지의 탄생으로 시작됩니다. 그때부터 지난 93년도, 마지막 학력고사가 있을 때까지는 모든 수험생을 일렬로 줄 세워서 대학을 보냈기에 서열에 대한 딴지를 걸기 힘들었습니다. 기껏해야 후기대학생들이 전기 연고대보다 점수 높다고 하는 정도였죠.

85년 포항공대의 설립 이후 포공 초기 아해들이 훌리건적인 면모를 띄기도 했지만 모든 언론 및 고교입시전담 선생들이 포공도 설공 못지 않은 명문으로 인정해 줌에 따라 잠잠해졌습니다.

97년 본고사도 폐지되고 수능이 강화됨에 따라서 수능을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갈리는 일이 시작됩니다. 이제껏 지보다 공부 못했던 아해들이 수능대박으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기가 간 대학보다) 좋은 대학을 가게 되면 열등감으로 몸부림치다 점점 훌리건으로 바뀌어갔죠.

90년대 중반 이때는 하이텔 대학입시토론방에서 한동대생의 난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계로써 포공총장 동생이 시작한 한동대는 당시 사이버상에서 홀린 수험생들이 연고대냐 한동대냐를 놓고 갈등할 정도로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98년 가장 권위있던 진학사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야후와 손잡고 진학정보를 제공하게 되었는데 이때 여기 게시판에도 상당한 훌리건이 날뛰었지만 지들끼리 화목하는 분위기였습니다.

98-99년 아주대생이 pc통신과 인터넷을 비롯 모든 넷을 점령하고 맙니다. 주로 활동하던 곳은 하이텔과 진학사였으며 연공발끝까지 쫓아가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00년도 pc통신의 약화와 인터넷의 엄청난 발전으로 다음에 '훌리건 카페'가 열렸습니다. 진학사와 더불어 훌리건계의 쌍두마차를 이루던 곳입니다. 초대 주인장은 외대 영문과를 다니던 '외영소녀'님으로서 상당한 미모를 간직해 온 훌리들의 선망을 받았습니다.

허나 훌리카페에서 놀다보니 안되겠는지 삼수해서 서울대를 가고 맙니다. 01년도 성균특공대님이 언급한 캠퍼스비전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엄연한 마이너그룹으로 긱스, 첨단전자공, 좆밥24(제비24;jb24) 등등의 고급훌리는 하이텔에서 그들 특유의 멋진 글을 남기며 훌리건 전성시대를 열었습니다.

다음카페를 시기한 대배토 등등의 짝퉁 훌리사이트도 기승을 부렸습니다.

01년도 후반 - 02년도 진학사의 대대적인 개편으로 진학사에서 놀던 이시대의평판신, 가리봉동 등등의 잡훌리건들이 모두 다음카페로 흡수됐으며 다음카페의 훌리건 통일을 이룹니다. 현재 이들은 긱스와 더불어 원로훌리 까페를 만들어 비공개로 놀고 있습니다.

간략히 훌리건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반복하지만, 성균특공대님이 언급한 캠퍼스 비전은 정통성에서 다음카페를 따라갈 수 없으며 지금 이 까페가 훌리건의 전통을 이은 적자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앞으로 이 까페에 대한 위엄을 손상케 하는 행위 발생시 맞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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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0.9 | 작성시간 06.02.01 지랄을 해라.. 포공은 90년대후반까지 연공상위학과에도 잡혔는데.. 무슨 85년도에 설공 못지 않는 명문으로 인정해... 제길... 학력고사시절에는 설공>>>>>>>연공>>>>>포공이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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