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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of Hoolis

[스크랩] 내가 기억하는 운영위원들... 그리고 사건 & 사고들

작성자베킨세일|작성시간08.11.11|조회수313 목록 댓글 0
 

기억에 남는 사건 사고들...



1. 고급훌리건 정리


처음 운영위원이 되었던 2월 기존의 고급훌리건은 약 10여명 정도였다.  이들은 명문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고급훌리건이 되었다.  훌천에서 명문대생이면 무조건 등업을 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운영위선출 방식과 고급훌리건 자질에 대한 의혹이 많은데 이런 공식적인 제도가 정착된 건 불과 2년 남짓이다.  운영위원이 되면서 고급훌리건들에게 메일을 보내 신상정보를 파악하고 훌대에 작문 한편씩을 부탁했다.  그리고 반응이 없던 고급훌리건은 정회원으로 강등했고 그렇게 약 1/3이 탈락했고 이후의 고급훌리건들은 위원장이 직접 뽑은 자들이었다.




2. UK와의 혈전.


위원장과는 별 상관이 없는 글이었는데 유독히 기분 나쁜 글이 있었다.  위원장은 계속해서 글을 지웠고 UK는 또 쓰기를 반복했다. 위원장의 삭제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강퇴시켰다.  강훌이던 UK는 이미 여러 세컨닉을 가지고 있었고 자게와 익게는 위원장의 신상 정보로 도배가 되었다. 매크로 도배라 삭제 할 수도 없었다.  등업을 중단하고 도배범은 강퇴하고 익게는 아예 삭제해 버렸다. 그 와중에 라인이 UK편을 들었고 라인도 강퇴시켰다.  결국 운영위원이던 대학서열의 중재로 운영진의 삭제 권한을 무조건 수용하는 대신 복권해 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위원장의 권위는 확인받았으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3. 익게폐쇄.


위원장은 익명의 자유가 보장된 훌천에 익게과 왜 필요한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2~ 3차례 익게 폐쇄를 추진했지만 반반이 너무 강해서 1주일만에 다시 복원해야 했다.  그리고 5월 설송의 민증 사진이 익게 공개되었다.  그 바보가 훌천회원을 메신저 친구로 등록했다가 사진이 유출되었다.  설송의 부탁도 있었고 대세가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렇게 익게는 없어졌다.  익게 폐쇄는 훌천의 언어순화와 변태제거에 큰 역할을 했다.




4. 엠프크리스탈 강훌 등업사건


9~ 10월경 수많은 고급훌리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은 훌리건의 지지를 바탕으로 엠프크리스탈의 고급훌리건 등업을 추진했다.  이대의 입장을 대변하는 몇몇 가지 글들은 충분히 토론과 윤독의 가치가 있었고 대결장에 등재된 상태였다.  그녀의 필력과 당시의 활동성은 등업 요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노매너한 행동으로 고급훌리건 및 정회원들의 강한 반반을 샀고 마침내 운영위원이던 일감호가 정회원으로 강등했다.  위원장은 그녀를 카페 활성화의 키워드로 사용하고 싶었으나 더 이상은 그녀를 고집 할 수 없었고 침묵해야 했다.




5. 훌카에다 테러 사건


바밥밥바가 훌혁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도배를 하고 병킬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뒤 가입 탈퇴를 반복하며 도배에 열을 올렸다.  위원장은 처음으로 서게 올라온 1만 건의 글을 지워봤고 훌리건과, 운영자, 일감호도 매일 수 천 건의 글을 지웠다.  바밥밥바는 놀라운 사칭력으로 운영진과 고급훌리건 여러명을 바보로 만들곤 했다. 이들은 훌카에다를 결성 약 한 달간 훌천에 매크로 도배를 퍼붓고 운영위와의 협상을 요구했으나 운영위는 무시로 일관, 결국 훌카에다는 스스로 지쳐 떨어져 나갔다.  위원장은 단 한번도 그 불순한 이름을 입에 올린적이 없었다.


   


6. 11.11 농부와 결별


위원장은 운영위원 시절부터 몇몇 여자 회원들과 카페온을 즐겼다.  그것은 카페분위기를 파악하고 정회원의 이야기를 듣기위한 방편의 일환이기도 했다.  위원장은 접속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날아오는 메시지에 정신이 없었다.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말투에 여러 정회원들이 질려버렸다.  그런 위원장과의 카페온을 여자회원들은 특별하게 받아 들였다.  어느날 위원장은 야상화와의 대화 도중 농부의 신상정보 일부를 화제 거리로 삼았고 그 대화내용이 복사되어 메신저를 타고 여러 여자회원들에게로 번졌다.  농부는 이걸 문제삼아 공개 사죄를 의뢰했고 위원장은 온갖 개망신을 다 당한 후 사과문을 공지로 지정하고 백기투항했다.




7. 탈지와의 결별.


위원장은 탈지를 등업해 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메일도 위원장이 먼저 보냈고 서로 사적으로 메일도 주고 받았다.  탈지는 서로에게 솔직할 것을 요구했다.  위원장은 항상 진실하게 대했지만 밝힐 수 없는 단 한가지가 있었다.  위원장의 거짓말과 농부사건의 오해로 탈지는 위원장에게 결별을 선언했고 위원장은 딱 한 차례의 변명말고는 입을 닫았다.  위원장에게 변명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위원장은 사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회원과 결별했다.  그 오해가 위원장은 지금도 안타깝다...




8. 훌당과의 인촌논쟁.


훌당은 그 보수적인 성향과 고대생이라는 학연 때문에 인촌의 친일을 변호하려 했고 위원장은 인촌이 민족주의자로 둔갑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약 3~ 4차에 걸친 논쟁을 펼쳤고 이것은 바로사 이후 위원장을 가장 흥분하게 만든 승부였다.

 

 

위원장이 기억하는 운영위원들.



1. 대학서열 그 경향과 대책:


삼수 한 서울대 비법대생으로 사시를 준비중.  법대와 고시문제 관심이 많았고 조용하지만 논리적이었고 치밀한 행보가 믿음직스러웠다.  훌천 최초로 최 단기간에 명문 3편을 훌대에 등재, 강훌이 되었고 다시 3편을 등재해 특훌이 되었으며 가입 한달만에 운영위원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약 한 달간 훌천을 원만하게 운영했고 위원장과 UK와의 불화를 중재했다.  그리고 곧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떠났다.  고급훌리건 중 탈퇴 후 유일하게 돌아오지 않고 있는 회원이며 위원장이 꼭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회원.  위원장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며 그의 패스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 No chase- INT


가입탈퇴를 반복하던 서강대생.  처음에는 무난한 활동을 보여주었으나 카페충성도가 높지 않았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자기 자신의 시간을 훌천을 위해 희생하려고 하지 않았다.  위원장은 수시로 고급훌리건 중에서 운영위원을 발탁하고자 했으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인력난에 허덕이며 부적합한 것을 알면서도 울며겨자먹기로 그를 수시로 등용하고 강등했다.  지금도 끊임없이 훌천을 떠돌고 있다.




3. 준어빠


제주도에서 공익근무를 서고 있고 곧 임무가 끝난다.  강훌로서 운영위원이 되었고 2003년 여름 위원장의 한달간의 공백을 매워주었다.  그 공백을 매워주었기에 훌천은 계속될 수 있었으나 이후 위원장은 그의 무성의함에 무척 실망하고 특훌로 강등한다. 




4. 일감호


다음 훌천 1기 시절 운영위원.  과거 경력을 인정받아 운영위원이 되었고 2003년 여름 훌천의 운영에 큰 힘을 보태주었다.  이후로는 활동이 잠잠한 상태.




5. 훌리건


훌천의 개창자.  위원장에게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쳐내야 그 도도한 흐름을 계속 할 수 있다’며 위원장직을 넘겨주고 야인으로 물러났다.  위원장은 그에게 특훌을 선물한다.  특훌은 전운영진에 대한 의전예우였다.  그런데 일감호와 진학사, 진딩크가 돌아오자 훌리건은 이들과 교감하고자 운영진 복귀를 희망했고 이후 운영위원으로서 유학을 갈 때까지 성심성의껏 카페를 운영한다.  믿음직하고 기술직에 능했던 그를 위원장은 항상 신뢰했다.



6. 로렌스가이


연사를 포기한 한법 장학생.  여친이 이대생이라 친여대적 성향을 다소 가미하고 있었다.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고 모교입시카페를 운영했다.  위원장은 그에게 훌천 운영위에 합류해 줄 것을 제의했고 그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거의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모교일에만 매진했고 고시문제로 훌천과는 점점 멀어진다.  위원장 최악의 인사조치였다.




6. 눈깔


유일한 미대 출신.  시사, 역사, 예능 등 박학다식했고 누구보다도 훌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다.  훌천 최고의 정보통으로 폭넗은 인맥을 고루 갖추고 있었고 유머와 진중함을 함께 겸비하고 있었다.  위원장의 그의 연륜을 신뢰했고 종종 카페에 대한 자문을 구했으며 그가 휴학을 하자 운영위원직을 제의한다.  그는 운영위원직을 성실히 수행했고 그 결과 지금의 위원장이 된다.




7. 운영자


훌천 운영에 많은 노력을 했던 재수생.  훌천에 대한 충성도가 놓아 위원장의 신뢰가 남달랐고 수시로 카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고 자문을 했다.  재수 망하고 방랑하던 그가 운영위원이 되어 카페를 위해 봉사한다.  위원장은 운영자를 차기 위원장감으로 생각해둔 시절이었다.  그러나 결국 눈깔의 노련한 운영이 막판 역전을 가져왔다.




8. 미네르바


별훌과 함께 동시에 특훌이 된 외대 훌리건.  위원장의 등업 중 가장 바람직했던 등업이었다.  역사와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논리적이고 필력이 독보였으며 카페 정보에 밝았다.  별훌과 함께 위원장의 카페 운영에 많은 자문을 주었으며 운영위원은 아니었으나 그에 준하는 인물로 훌천의 보석과 같은 존재.




수 만명의 회원을 가진 훌천은 최고․최대의 수능 입시 카페를 지향하며 카페의 존속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수 만명의 회원은 각기 카페에 대한 충성도가 다르기 때문에 모두의 권리를 똑 같이 들어 줄 수가 없다.  그리하여 훌천은 소수의 운영위에 의해 운영되고 위원장의 강권에 의존한다.


위원장이 가장 카페의 존속을 바라며 그것을 위해 가장 많은 것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원장은 카페존속을 유지하는 책임에 대한 반대 급부로 무한한 권력을 가지며, 위원장의 권한 남용은 용인되어야 한다.  단 카페존속과 활성화에 저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무한한 자유여야 하며 누구도 그 권위에 도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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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베킨세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1.11 History of Hoolis에도 등재되어 있어야 할 글인거 같아 HOF에 과거 훌천 운영위원장이었던 寸鐵殺人분이 지난 훌천에서의 일을 회고하며 쓰신글을 스크랩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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