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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10회 평택 생태시문학상 대상 당선작품&심사평&당선소감

작성자목화(배두순)|작성시간22.07.07|조회수648 목록 댓글 0

 

2022년 제10회 생태시 문학상 공모전 당선작품 심사평

 

심사평: 김영자(시인)

 

소비문화의 편리함에 길들어진 사회구조로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에 전 인류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어서 이제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은 일상이 되었다. 자연을 지배하고 산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교만과 이기심은 지구를 환경위기에 놓이게 하였다. 자연 생태계와 인간의 관계도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 속에 초여름의 폭염은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가운데 생태지에 대한 관심과 응모한 작품의 열기도 치열했다. 수년간 당선작으로 오른 작품과 비슷한 소제나 모티브의 작품은 수상작에서 제외 시켰다.

수백 편의 응모작품 중에서 심사위원들의 신중한 논의 끝에 유춘상의 「행성은 허락해 주지 않았다」를 선정했다. 인간에 의해 버려져 처참한 모습으로 전봇대 한구석에서 목이 조인 채 자신의 뱃속으로 버려진 온갖 것들이 ‘한곳에 모여 이웃으로 포개집니다’ ‘서로를 조이고 가득가득 버리며 홍수처럼 떠밀려가고’ ‘그 바다에는 ~~ 썩으며 자라고 있는지/ 어떤 것들이 헤엄치며 숨 헐떡이고 있는지’ 마침내 자신의 뱃속은 /토마토처럼 내장이 무르고 진물이 터지기‘에 이르고야 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서 흔하게 목격하게 되는 일상 속의 사물을 섬세한 관찰력으로 사유화하여 작품을 형상화하였다. 진부한 소재를 끌어와서 눈에 띄기 어려운 모티브를 가지고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능력과 참신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인간들의 탐욕에 의하여 사회 환경 질서를 상실하여 불안한 생태계의 위기의식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이 돋보였다. 생태시의 주제 의식이 뚜렷하고 사물에 대한 상징성과 신선한 시적 직관이 탁월한 시인에 대한 기대가 크다. 다만 언어의 압축미가 다소 아쉬웠지만 일상적인 감각을 포착하여 시적 진술을 잘 구사하였기에 이 작품을 선정했다. 감동과 여운이 긴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거론되었던 작품 중에는 시적 완성도는 높으나 생태시의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거나 남들이 자주 써온 소재나 모티브를 활용해서 작품의 독창성이 떨어져 당선권에 들지 못했던 안타까운 시작품도 여러 편 있었음을 밝힌다.

제10회 생태지 공모전 당선자 유춘상님께 축하를 드리며 생태문학에 대한 관심과 뜨거운 열정으로 많은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심사위원: 성백원. 우대식. 김영자. 진춘석. 배두순. 김복순

 

제10회 생태시문학상 당선작품

 

행성은 허락해주지 않았다

 

유춘상

 

전봇대 밑, 목이 꽉 묶인 채색 봉투가 옆구리에 숨구멍을 내 겨우 속삭일 때, 나는

몸이 동그르르 말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묶는 선입니다, 검은 개 한 마리

샐쭉 돌아봅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비루먹은 짐승처럼 봉투는 짓눌려 있습니다.

 

뱃속엔 찢어진 지문, 잘린 식탐, 뱉어진 체액, 떨어져 내린 주소, 색색의 머리카락,

깨진 생활비, 마른 청춘, 부러진 상다리와 터진 수박껍질이 잘못 맞물린 채 숨 참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어젯밤의 혈투와,

눈 부은 질투로 팽창한 그를 묶어 갖다버려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버려진 것들은 이렇게 다 한 곳에 모여 이웃으로 포개집니다

쓰러지고 버려져 바람이 불 때마다 가늘게 신음까지 내고 있습니다

 

버리는 것은 막다른 곳에 다다르는 일

버리는 사람은 버린 사람에 이르는 길

자신을 내다 버릴 때, 목은 힘껏 조여오지요

나의 목

숨의 목

행성의 푸른 목

 

한 번도, 마음대로 살아라, 허락받은 적 없이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풀빛 행성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이고 가득가득 버리며 홍수처럼 떠밀려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흘러가 어디에 쌓이는지

그 바다에는 어떤 것들이 썩으며 자라고 있는지

어떤 것들이 헤엄치며 숨 헐떡이고 있는지

행성은 어느 반짝이는 별의 슬픈 그늘을 가득가득 태우고 있는지

 

나는 토마토처럼 내장이 무르고 진물이 터져 싹 나지 않을 내일을 보듯, 몸이 동그르르 말려버리는 버릇으로 오싹해집니다

우월한 손들이 무심코 던지고 간 채색된 봉투가 텅빈 하늘을 마주 보고 있는 아침

마다

팔랑이는 나비를 보는 일, 쥐며느리 발걸음 따라 살금살금 걸어보는 일처럼

하늘은 우리가 잃어버린 간절한 곳,

그 너머 빛으로 반짝이는 곳이어서

딱지 없이 버려진 냉장고의 열린 냉동 칸을 보며 경배의 마음이 서늘하게 비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한 번도 허락해 주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내어준 이 행성에서 나는

그가 내민 청구서, 내일을 주섬주섬 찾고 있습니다.

 

당선 소감

 

기후 환경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지진, 이상 기온, 폭우 폭설 등으로 예전과는 사뭇 다른 기후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 초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가장 정치(精緻)한 무기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로 인한 식량과 에너지난은 전 지구적 위기의 목소리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장 옆을 지날 때마다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조각조각 쌓여 있었습니다. 저것들은 어디에서 온 것들이지? 저 플라스틱은 어디가 종착점이지? 탐욕스레 쓰고 버리는 우리로 인해 얼마만큼 빨리 이 행성이 폐가가 될지 두렵고 부끄러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시를 습작하면서, 평소의 이러한 고민거리들을 모아보고, 생활을 되짚어보는 계기를 가졌습니다.

이태 전에 ‘동리목월 문예대학’에 등록하여 시에 다가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긴밀한 언어 표현, 핍진한 진술, 세밀한 묘사, 긴장감 있는 문장으로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시가 내게 자연스레 다가오기를, 나 또한 시에게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기를 걸음걸음 문장에 마음의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진실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 이전의 텍스트를 뒤집고 뛰어넘는 것, 이것이 요즘 생각하는 저의 습작 과제입니다.

90년대 후반에 『녹색평론』이라는 책을 대하고 오랫동안 읽어왔습니다. 때론 우리가 생태주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과거로 무한회귀해볼 수 있을까? 등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 서정시의 기능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가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복적 회귀가 아니라, 발전적 회귀, 고통을 수반하는 긍정의 회귀에서 무엇인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여름 낮에 받은 수상 소식으로 몸과 마음에 불이 일었습니다. 이 뜨거운 마음 잊지 않고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수상의 기쁨을 안겨주신 평택문인협회 생태시문학상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곁에서 헌신해주시는 가족들, 동리목월 문예대학 교수님과 문우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뒤에서 밝은 눈으로 지켜봐 주시는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그리고 시의 시 자도 모르는, 여든의 농부 시인 두 분께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약력 / 유춘상

 

1967년 경북 영천 출생

1992년 2월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2020년~2022년 동리목월 문예대학 수강

2022년 강원문학교육 신인문학상 공모 최우수상 수상

현재 경주예일고등학교 교사 재직 중

 

                                      사진 유춘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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