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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낭송]수라ㅣ백석

작성자이나읊|작성시간24.01.15|조회수111 목록 댓글 2

 

 

수라
- 백석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내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 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느 샌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갓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 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 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시 해설]

이 시는 방에 들어온 새끼 거미를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잠시 후 그보다 큰 거미가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그때 화자는 '아, 이들이 혹시 가족이 아닐 까?라고 생각하며 첫 번째 들어온 거미처럼 밖으로 내보낸다. 그런데 다시 알에서 갓 나온 듯한 새끼거미가 들어오자, 화자는 이때 거미들이 가족임을 확신한다.

참 간단한 이야기다. 거미 세 마리를 밖에 버린 이야기. 시인은 특정 상황 에 대한 묘사와 서사를 통해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고 독자들이 그것에 공감 하게 만든다.

대체적으로 백석의 시는 화자의 정서를 절제하여 표현한다. 상황을 서사 적으로 표현하고, 그것만으로 화자(시인)의 마음에 공감하게 한다. 다시 말해 서 절제의 미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슬픔을 담백하게 표현함으로써 그 슬 품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백석의 다른 시들과는 좀 다르 다. 화자의 정서가 감정의 과잉으로 드러난다. 상황이 아니라 화자의 정서 가 중심에 놓이는 것이다.

백석의 다른 시들은 대체로 상황을 중심으로 해서 읽어야 제맛이 나는 데 이 시는 화자의 정서를 중심으로 읽어야 제맛이 난다. 화자의 정서를 나 타내는 표현뿐만 아니라 상황 속에서도 화자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2행의 ‘차디찬 밤'이라는 표현은 상황 속에 녹아든 화자의 정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차디찬 밤'은 단순히 시간적 배경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어둡고 차 가운 현실에 대한 화자의 인식과 그러한 상황으로 내몰린 새끼 거미에 대한
연민이 담긴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는 화자의 정서를 드러내는 표현이 여섯 번 나온다. 이 가운데 서 러워한다, 서럽게 한다','슬퍼한다'는 상황에 대한 화자의 정서이다. 이는 백석의 다른 시에도 자주 드러난다. 상황에 대한 화자의 정서를 담백하게 표현하여 읽는 이들을 그 정서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와 달리 화자의 정서를 직접 드러내는 표현도 있다. '가슴이 짜릿하다‘, '아린 가슴',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등이다. 짜릿하고 아리고 메이는 가슴.

방 안으로 들어온 거미 세 마리를 문 밖으로 쓸어 버린 것에 대해 가슴이 메 이는 듯하다고 표현한 것은 감정의 과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냥 거미가 아니라, 누나나 형이었던 거미와 엄마였던 거미와 새끼 거미인 한 가족을 헤어지게 한 것이라면 화자의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 지만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이다. 그러니 가슴이 짜릿하고 아리고 메이는 듯한 것이다.

거미의 삶만 그랬을까? 가진 것 없고 나라 잃은 사람들의 삶 역시 아수라장 같았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아수라장 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도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짜릿해지고 아리고 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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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도도 | 작성시간 24.01.15 윤동주 시인과 백석 시인!
  • 답댓글 작성자이나읊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16 두시인 다 너무 값진 분들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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