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처럼 순결한 상고대여!
(가지산 산행)
목구멍까지 숨이 차오를 무렵
정면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인다.
저기가 가지산 정상인가
주위에 더 높은 봉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중봉(1167m)이었다.
어릴 때 산에 오르는 꿈을 자주 꾸었다
눈앞에 보이는 가장 높은 산을 오르면
그 뒤에 더 높은 산이 나타나고
그 산을 오르면 또다시
더 높은 산이 뒤에 나타나곤 했다
가지산 정상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중봉을 지나 산 너머 산을 향해 오른다
정상 가까운 곳에 이르니
하얀 꽃이 나뭇가지마다 피어올랐다
상고대였다
하얀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맨
가지산 정상에 서서
다시 상고대를 내려다본다
지난여름 폭우의 모습으로 거칠게
우리 곁에 왔다가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려갔었지
석남사 옆을 지나칠 때
수승한 법문을 들었나 보다
칼날처럼 순결한 상고대의 모습으로
오늘 다시 돌아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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