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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상념(想念)의 힘(3) - 한민족, 중국, 일본

작성자시즈(경산)|작성시간23.12.21|조회수267 목록 댓글 0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이어서 합니다 

이번 게시글은 아무래도 동의못하시는 분들이 꽤 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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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共業)은 그 범위를 넓혀보면 가족이상으로 마을(현재는 아파트), 행정구역, 도시 그 이상으로 국가, 지구행성 전체가 해당됩니다

 

본인의 별업과는 상관없어도 지역사회나 나라에 정화해야할 공업이 클 경우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안좋은 일에 휘말릴 수 있는데 그때는 선한사람도 예외는 없습니다

이사가 쉽지 않은데 이민은 더 어렵죠

그래서 범위가 넓을수록 업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주에는 대운이 있고 세운이 있다던데 세운이 좋아도 대운이 나쁘면 그 운신의 폭이 좁아지듯이 아무리 한 개인이 선하고 남좋은일을 많이 한다할지라도 별업보다는 공업이 우선하기에 공업이 좋지 않으면 거기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겁니다

 

국가의 공업에 대해 조금 더 적어보겠습니다

국내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에 안좋은 감정을 가지신 분들이 많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국을 툭하면 괴롭힌다고요

중국, 일본 두 나라 모두 비호감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쪽 나라를 유난히 싫어하는 분도 있습니다

나이든 세대일수록 일본에 비호감을

젊은세대일수록 중국에 비호감을 가지는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이라기보다는 한반도에서 먼저 시작했을 수 있어요

우리가 역사책에서는 고조선시대 중원대륙으로 진출해서 영토를 확장했고 삼국시대는 우리가 일본보다 우월해서 일본에 우리 문물을 많이 전파해서 그 영향력이 컸다고 배웠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수백년간 영토를 빼앗기는 울분의 역사였을 수 있고 일본의 입장에서는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된면은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1000년이상 무시, 멸시를 당한 서러움의 역사였을 수 있습니다

그런 울분과 서러움, 분노, 증오가 쌓이고 쌓여 고려말기부터는 수백년간 중국을 상국으로 섬기게 되었고 일본은 임진왜란7년전쟁으로 전국토가 쑥대밭이 되었고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빼앗기게 된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과응보의 시각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

 

현재 지금도 힘있는 쪽에서 갑질이 많은데 현재보다 더 미개했던 과거에 그런 일이 없었을까요?

 

게다가 일본의 경우 임진왜란과 을사조약을 주도한 세력이 한반도에서 쫓겨난 백제의 후손이라는 말이 있던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한반도가 과거에 저질렀던 일들을 이렇게 돌려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꼭 그렇다기보다는 그렇게 봐도 무리는 없다는 거죠

나이든 세대는 지금도 일본보고 왜놈이라고 부르는데요

왜놈으로 부르는 이유는 작고 왜소하다고 하네요

왜의 본 뜻은 왜(倭)일텐데 왜(矮)의 뜻으로 사용하죠

아무튼 얕잡아 보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불렀다고 합니다

일본이 이런 사실을 모를까요?

 

그래도 일본은 우리가 지배는 커녕 침략한적 없고 일본은 직접적인 침략을 했기에 너무한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요

업장을 쌓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무시하는 말과 비웃음, 그리고 엷고 싸늘한 표정으로 상처주는 것도 악업을 쌓는겁니다

왜냐하면 당하는 사람은 물리적인 고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주로 직장내 괴롭힘이 여기에 해당되죠

이런 정도가 심하면 당사자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먹거나 퇴사하거나 심하면 자살까지 합니다

 

가끔가다보면 말로서 표정으로 상대방을 잘도 엿멕이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_-;;

누군가 어설픈 모습을 보이면 아주 재미가 좋아죽어 잘도 놀려댑니다 

그러다가 한 대 맞으면 말로하지 왜 폭력쓰냐고 하는데...... 본인도 아주 폭력적인 인간이라는걸 인지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인 폭력의 문제점은 인지하면서도 언어폭력, 정서적 학대, 심리적 압박같은 것에 대한 문제점은 물리적 폭력만큼 인지하지 못한 거 같습니다

아무리 인과응보라지만 일본은 한민족에게 도가 지나쳤다라고 할 수 있겠으나 구업(口業)도 신업(身業) 못지 않습니다

 

구업, 악업으로 인해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비웃음으로 장애를 겪는 전생이야기를 몇 가지 적어보겠습니다

(또 전생이야기하냐고 하실지 모르나 전생이야기는 이번 게시글이 마지막임)

그리스 로마시대의 귀족으로 현생(1900년대)에서 고통받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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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45세 부인인데, 36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모든 살림을 햇으며, 집안에서 오가는 데에도 도움을 받아야 했다.

리딩에 따르면 그녀는 당시 귀족의 일원으로서 투기장에서 다쳐 절름발이가 된 사람을 비웃어댔다. 그래서 지금 그와 같은 일이 자기 자신의 몸에 생긴 것이다

 

34세의 부인으로 그녀는 태어난지 6개월만에 소아마비에 걸려 곱사등이에 절름발이가 되었다. 농부인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그런상태에 전혀 무관심했고 그녀가 애써 닭을 쳐서 번 돈을 멋대로 써버렸다. 운명은 이 여성에게 두 번씩이나 불행한 연애 사건을 가져다 주었다. 첫 연인은 1차 세계대전때 전사해 버렸다. 그 뒤 다른 남자와 약혼을 했지만 그도 아주 심한 병에 걸렸다. 그런데 그는 그 병이 낫자 돌보아 주던 간호사와 결혼해 버리고 말았다. 부모는 끊임없이 부부 싸움을 해댔으며 엎친데 덮친다고 돌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안그래도 굽어있는 등뼈를 다쳐 몸져눕게 된, 그야말로 살아있는 지옥도였다

리딩을 하니 로마시대 귀족으로서 자주 투기장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인간의 사움이나 인간과 맹수와의 싸움을 특등석에 앉아 즐겼다. 현생에서 그녀가 받는 육체적 고통의 대부분은 그 당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의 처참한 상태를 보며 흘린 비웃음에 있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의 21세 청년으로 그의 부모는 그가 신부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부모의 희망에 따르지 않았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억누를 수 없는 동성애 충동이었다.

리딩에 따르면 전생은 프랑스 궁정의 풍자가였는데, 궁정 안에서의 동성애 스캔들을 타고난 풍자적 재능으로 폭로하기를 재미있어 했다

 

이처럼 남을 비웃는다는 대단치 않은 행위에 대하여 이렇게 큰 보상을 치르게 하는 것은 어쩌면 형평이 맞지 않는 일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나 남의 괴로움을 비웃는 자는 자기로서는 알 수 없는 상대방의 속사정을 보지 못하고 비웃음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부당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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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데 두 번째 이야기가 최악이군요

글만 봐도 어질어질하네요

그래서 입으로도 죄짓지 마라고 하는건가 봅니다

 

다시 돌아와서 그런 중국도 일본도 힘있을때 주변국들에 많은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현재 중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은 제국주의 시절당시 조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점령하면서 많이 저질렀습니다.

한편으로 일본은 삼국시대 비록 우리가 많은 문물을 전파하면서 받은것도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예언가들에 의하면 그 업장으로 중국은 그 영토가 쪼개지고 일본은 열도가 침몰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구의(身口意) 중에 지난 게시글에이어 신구는 알아보았고 끝으로 의를 보는데요

현재는 사형제도가 사실상 폐지된 상태이지만 지난세기까지만 해도 전세계에 사형제도가 있었습니다

사형제도가 있으면 사형집행관도 있는데요

사회제도상 그런일은 누가 맡아야 합니다 

 

만약 집행관이 시행하면서

‘비록 중범죄로 사형을 받았으나 너의 생명을 앗아간거에 대해선 유감이다. 죽고나면 좋은곳에 가고 다음에는 좋게 태어나라’

는 생각과 마음으로 시행하면 악업이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 같은 쉑히는 사회악이고 있어봐야 피해만 끼칠 뿐 아무짝에 쓸모도 없다. 죽어라’

‘사실 옛날부터 사람 죽여보고 싶었어. 법을 핑계삼아 내 손으로 죽이니 졸라 재미있다 쿠헬헬~~~’

이런 마음으로 시행하면...

또 망나니가 있던 과거에는 이런 일도 많았다죠

망나니가 죄인 가족들에게 뒷돈을 받고 한방에 깔끔하게 시행하고 뒷돈 안주면 고통스럽게 시행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이러면 악업으로 쌓입니다

그래서 이런면에서 보면 신구(身口)보다 가장 중요하고도 무서운게 의(意)입니다

 

끝으로 두 번의 사형집행관으로 생을 살았던 한 남자가 현생에서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를 적어보겠습니다

고인이 된 차길진 법사의 전생리딩인데요

스포츠 신문에 칼럼을 게재한 이력이 있다보니 영혼세계에 관심이 없었던 분들도 차길진이라는 이름 석자정도는 아실거 같네요

 

다음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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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전생서 사형집행관... 불운 따라다녀

 

 

Y씨는 정말 운이 없는 사나이였다. 태어나자마자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양친이 모두 죽고 어린 그 사람만 남았다.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는데 이상하게 그를 돌봐주는 친척마다 몸이 아파 일찍 죽거나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결국 고아원에 맡겨졌다.

 시설 좋은 고아원도 많은데 하필 그가 간 곳은 악덕 고아원 중 하나였다. 학교도 보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노동을 시키고 매질도 심했다. 온갖 고생을 다하다 뜻이 맞는 원생끼리 집단 탈출해 사회로 나왔다. 하지만 그에겐 사회도 만만치 않았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오로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끝내는 동안 노동이란 노동은 모두 다했다.

 그에게 한 가지 재주는 10대 때 우연히 배운 도배일이 전부였다. 도배 기술로 전국을 누비며 하루 종일 목이 부러져라 도배지에 풀을 붙여 생계를 이었고 같은 일을 하는 아내를 맞아 살림도 차렸다. 한동안은 정말 행복했다. 식구도 늘었고 보금자리도 장만했으니 더 이상의 불행은 없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첫 번째 불행이 찾아왔다. 어느 날 도배를 하던 중 천정에서 석면가루가 떨어져 왼쪽 눈에 들어갔다. 눈이 약간 충혈되고 간지러웠지만 병원 갈 시간과 돈이 없었기에 무심코 넘어갔다. 설마 가루 좀 들어갔다고 별일 있겠나 싶었는데 그만 실명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불행은 아기가 없었다는 것. 아기를 낳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석면 뜯는 일을 했던 것이 불임의 원인인 듯 했다. 2세를 포기하고 부부끼리 의지하고 살던 중 세 번째 불행이 찾아왔다. 그만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었다.

 "아내가 허망하게 떠난 뒤, 제 수중엔 땡전 한 푼도 없었습니다. 아내의 병원비로 모아둔 돈마저 모두 날리고 말았죠." 그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법사님, 지하철 한쪽 벽에 '거센 파도는 일등 항해사를 만든다'는 문구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말만 보면 정말 울화통이 터집니다. 도대체 저는 얼마나 훌륭한 일등 항해사가 되려고, 살면서 거센 파도만 줄기차게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쓴 장문의 편지를 전달하며 "희한하게도 죽을 마음은 안 생겼습니다. 요즘 걸핏하면 자살하는데, 그럼 저 같은 사람은 벌써 1000번도 넘게 자살했을 겁니다"라고 했다. 그의 구명시식 부탁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기구한 Y씨의 업장은 전생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에게나 전생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둠은 빗자루로 쓸어내는 것이 아니라 불을 밝히면 자연히 달아나듯, 전생도 필요한 사람은 꼭 알아야 한다. Y씨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전전생(前前生)에 살수, 즉 사형수의 목을 베던 사람이었다. 1905년 참형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조선은 사형에 있어 참형을 실시했다. 엄연히 살수로서 자신의 직분을 다한 것이 죄라고는 할 수 없지만 수많은 이의 목숨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업은 너무도 컸다.

 일제 때 환생했지만 사형장의 그늘을 벗어나진 못했다. 이번엔 교도소 사형집행관이었다. 이렇듯 무의식 중에 중대한 업을 지었던 전생의 비밀을 말해주자 그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늘 꿈을 꾸면 목을 맨 사람들이 천정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왜 그런 끔찍한 꿈을 꾸었는지 의문이 풀렸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동안 Y씨는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전생에 지은 업으로 마흔 다섯 해 동안 숱한 고난을 겪었던 그는 영적으로 크게 성숙해있었다. "극한 괴로움은 큰 깨달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제 인생의 일등항해사가 되십시오." 얼마 후 Y씨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수행을 위해 산으로 떠난다는 짧은 전갈을 남기고 속세를 떠났다

 

출처: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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