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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생존법/ 메뉴얼

[라디오 생존법] 일본 쓰나미 생존경험

작성자코난.카페장(경기)|작성시간17.11.29|조회수1,152 목록 댓글 3

1월부터 한 라디오방송에 매주 출연해 '재난시대 생존법'이란 프로를 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일어날수 있는 재난이나 사고등은 물론 범죄와 전쟁까지 다루고 있죠  그주에 특별한 사건이 있다면 주로 그걸 다룹니다

도시재난에 대해 중요하고 요긴한 정보들을 얘기하니 시간되시면 많은 분들이 라디오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과서적이거나 뻔하지 않은 정말 실질적이고 생생한 재난대처 정보 및 생존법으로 사람들에게 알리려합니다

다행히 방송국쪽 반응이 좋네요

그간 카페에는 알리지 않았는데 라디오로만하고 끝내기엔 정보가 너무 아까워 지난 대본을 매주(화,금) 카페에도 올려보겠습니다


또 제가 자료를 찾아 저 나름대로 분석해서 대본을 만드는데 혹시 틀리거나 관점이 다를수 있을것입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거나 반론이 있는 부분 혹은 더 더루었으면 하는 정보들이 있으면 아래 댓글로 달아주십시요
회원분들과 같이 한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는것도 재미있고 유익할것같습니다


라디오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30분부터 10분간 교통방송(95.5mhz)에서 들으실수 있습니다
창원,경남쪽에서 방송되며 다른곳에 있는분들은 라디오 어플로 들으실수 있습니다


                                       저번 라디오방송국에서...




생존21-도시재난연구소 코난 우승엽 소장

전화연결 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조: 몇일전 3월11일이 동일본 대지진이 난지 6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당시 엄청난 높이의 쓰나미가 내륙 깊숙히 밀고 들어오며 온천지를 삼켜버리는 끔찍한 모습을 보여줬었는데 오늘은 이에관한 얘기를 해주신다면서요


-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 앞바다에서 규모 9.1의 역사적인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강진도 전례없던것이지만 이후 수십미터 크기의 거대한 쓰나미가 육지를 덮쳐 큰 피해가 났죠 이때 19,000명 가량이 사망실종했고 3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이중 2천500여명은 실종된후 여태 시신을 못찾아 무덤조차 없는 분들이죠 당시 대부분의 피해자가 바로 쓰나미로 인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당시 쓰나미에서 수천명의 사람을 구한 2명의 영웅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조: 6년이나 지났지만 저도 당시의 뉴스영상을 보던 충격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나 많은 사망 실종자가 났다니 놀랍습니다 수천명의 사람을 구한 영웅이라니 영화에서처럼 힘쎄고 젊은 남자인가요


- 아니요 어린 아가씨와 노인, 두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갑작스런 쓰나미에 가장 큰 피해를 낸곳은 일본 북동부 미야기 현의 게센누마 일대입니다. 당시 15미터급 쓰나미가 방파제를 넘어 항구안으로 밀려들어올때 미야기현 남부의 어촌 마을에는 경보 싸이렌과 함께 한 아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퍼졌습니다.


"주민 여러분 빨리 도망가세요. 쓰나미가 항구가 오고 있어요. 빨리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항구의 동사무소 청사에서 일하던 25살의 여직원 엔도 미키씨였습니다 결혼한지 얼마안된 새댁이었죠 그녀는 청사 건물에서 일하다 멀리 큰 쓰나미가 항구로 밀려오는걸보자 대피하지 않고 바로 마이크를 잡고 주민들에게 필사적으로 대피 명령을 외쳤던거죠. 항구 안쪽에 있던 주민들은 상황을 몰라 잠시 머뭇거렸지만 방송의 목소리가 너무나 다급하고 서두르라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근 야산으로 달려갔죠 그리고 잠시후 쓰나미가 3층 청사건물을 덮칠때까지 방송은 계속 되었습니다.


조: 항구 깊숙히 있던 사람들은 영문을 놀라 많이 어리둥절 했겠네요 그 아가씨도 대피는 잘 했나요


- 당시 청사안의 직원들 30명은 건물 옥상으로 급히 올라갔고 이중 10명만 옥상의 통신철탑에 매달려 간신히 살수있었습니다 쓰나미가 건물 옥상까지 쓸어버린거죠 하지만 어린 미키씨는 그때까지도 피하지 않고 큰소리로 대피방송을 했던거죠

‘빨리 고지대로 피하세요 빨리요’ 누런 파도가 청사를 덮칠 때 그녀의 마지막 방송 멘트였습니다. 그렇게 안타깝게도 미키 씨는 실종됬고 52일만에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그녀의 엄마와 마을주민의 절반가량인 7천명이 살수 있었습니다.



여기가 거기... 역사적 교훈을 위한 보존과 철거 논쟁속에 결국 올해 철거됬다고



조: 저도 방송을 하는 입장에서 만약 쓰나미가 우리 방송국까지 다가오면 끝까지 방송을 할수 있을런지 자신이 없네요 그런데 근처 해안도시중 유일하게 쓰나미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있었다구요?


- 네 동일본 해안지역은 과거로부터 쓰나미 피해가 종종 있어서 마을마다 10미터가량의 쓰나미 방벽이 대부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쓰나미는 15미터였기 때문에 이걸 타고 넘어온것이죠

그런데 근처 후다이라는 마을이 30년전에 만든 15.5m 높이의 방조제 덕에 당시 그일대에서 쓰나미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유일한 마을이됩니다. 여기에도 한사람의 영웅담이 있습니다.

1960년대 이 마을도 쓰나미 방벽을 만드는중이었습니다. 물론 높이는 다른곳처럼 10미터였죠 그런데 당시 이마을 이장이었던 고토쿠 씨는 제방높이를 10미터는 불안하다 15미터로 높이자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과거 100년간 2번 이곳에는 큰 쓰나미가 덮쳐 마을주민들이 몰살됫다는 기록이 있었거든요 두 번 있었던 일은 세번도 있을수있으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비해야한다라는 신념에서였죠.


조: 해안을 따라 마을외각에 10미터 방벽을 만든다는것도 엄청난 일인데요


- 네 그렇게 마을 주민들과 지역의회는 제방이 10미터도 충분한데 15미터는 오바다.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라고 이장을 비난했던거죠. 그렇게 주위의 비난에도 와무라 이장은 제방공사를 강행했고 1984년 겨우 완성됬습니다. 그래도 1997년 사망할때까지도 마을사람들로부터 너무 높아 시야를 가린다. 흉물스럽다라는 비난을 끊임없이 받아야했습니다.

근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마을사람들이 흉하다고 투덜거리던 그 거대 제방이 2011년 쓰나미에 결정적 방패가 된거죠. 15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다른곳도 쓸어버리고 여기까지 밀려왔지만 이곳에선 제방에 아슬아슬하게 막혔던것이었습니다.

당시 이 제방끝까지 쓰나미가 차올라 파도물이 좀 제방뒤로 좀 넘쳤지만 결국 가까스로 물을 막아냈습니다. 50센티정도의 여유로 막은것이죠 이 제방 뒤에는 학교와 주택단지가 있어서 큰 피해가 날뻔했지만 촌장 덕으로 마을주민 3000명은 전부 무사할수 있었던것이죠 이후 촌장을 기리는 기념비가 워졌습니다.




조: 영화같은 일이 있었군요 재난대비는 지금 좀 불편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하는것이군요


-네 부산 마린시티앞의 제방을 보기좋게한다고 낮게만들었다가 작년 가을 태풍피해때 큰 피해를 입은것과 비교되죠 쓰나미는 우리나라도 닥칠수 있고 수위가 작다고 안심해서도 안됩니다 쓰나미는 그자체로 무서운거거든요

연구기관에 의하면 일본대지진이 발생하면 몇시간후 한반도 동.남해안과 제주도에 1미터의 쓰나미가 닥칠수 있다고합니다 

쓰나미나 물길은 무릎높이 약 50센티만 되도 사람이 넘어져 쓸려가기 때문에 작다고 무시하면 안되고 피해야합니다 아울러 해변이 U, V자형으로 되있으면 해수면이 중첩되서 훨씬더 높아집니다


네, 얘기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도시재난연구소 우승엽 소장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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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duma | 작성시간 17.11.29 15미터 높이면 참참참 입니다.
    이장님 욕을 무척 살아생전 드셨을듯
  • 작성자바보들의 행진(서울) | 작성시간 17.11.29 한국 토목학회 에서 발간한 cd에서 홋카이도 근해 에서 지진해일 발생시 동해안 으로 닥치는건 2시간이 체 안됩니다. 동해안 사정도 여러가지 이지만 평균으로 우리에겐 한시간 30분 정도의 여유...대피시간은 더 짧죠. 흐르는 급류물살 30cm만 되어도 잘 서있지 못하니 1.2미터 파고로 2.3파가 도착한다면 상당한 인명손실이 발생 하는거죠.

    강원도 고성 관광지도엔 쓰나미 대피소라고 표식이 있는데 제가 생각 하기엔 작은 쓰나미 정도의 대피소지 정작 4.5미터급 정도면 죽을 수도 있다 생각 합니다.
  • 작성자백두산 조의선사(동이12족) | 작성시간 17.11.29 세월호에도 여승무원 여선생님 학생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생존한 분들은 트라우마를 겪죠

    이런 인재는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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