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리더스 칼럼

갑질의 천국!

작성자비빔밥(경기)|작성시간14.12.10|조회수1,878 목록 댓글 28

요즘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사건으로 많이 시끄럽더군요.

덕분에 과거 라면 상무와 SK 최철원의 야구 방망이 사건이 재조명 되며

과연 누가 갑질의 최고봉인가를 놓고 말이 많습니다.

혹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타고난 국민성을 말하기도 하고

또 혹자는 일제 강점기 때 유입되어 우리의 문화가 되어버린

상명하복의 일본의 왜곡된 유교 문화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타의 모범을 보여야 될 일부 고위층들의

이런 무분별한 사회적 일탈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갑질 문화는

재벌 2세들이나 일부 고위층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저급한 갑질 문화는

이미 한국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굳이 최근 발생한 서울대 교수의 성추행 사건이나

대한항공 땅콩리턴 사건을 애써 들추지 않아도

조금만 물을 휘젓거나 작은 돌멩이 하나만 들추어도

그 안에 쌓여있던 더러운 오물들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런 갑질은 대한항공 항공기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평범한 직장이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흔한 일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갑질 앞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절망,, 그리고 말 못하는 분노..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그렇게 병들어 왔던 것입니다.

..

한국 사회의 폭력성은

하나의 문화가 되어 우리들 속에 내면화 되었기에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악순환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독 질 떨어지는 한국의 갑질 문화는

일부 고위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역병과 같은 것입니다.

군에 갓 입대한 신병은 군생활에 적응하는 내내

선임병들의 갑질에 시달려야 하고

시간이 지나 군생활에 적응하고 나면

이제 새로온 신병들의 군기를 잡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내무반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부조리를 알면서도

군대 간부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갑질을

좀 더 편하게 발휘하기 위해

그러한 부조리에 눈을 감아 버립니다.

문제는 이러한 부조리에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될 젊은이들이

너무 쉽고 빠르게 적응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에게 해주는 조언의 대부분은

가서 잘 적응하라이지 가서 변화시키라가 아닙니다.

잘 적응하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악습이라 하더라도 저항하지 말고 잘 받아들이라는 얘기지요.

그리하여 군에서 제대하고 첫 직장을 잡을 때쯤 대부분의 청년들은

변화에 대한 열정은 찾을 수 없는 애늙은이가 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갑질 문화는 군대 이전에 학교에서 찾을 수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부모의 육아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곳은 첫 단계의 공식적 사회화가 진행되는 학교입니다.

한국의 학교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고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 또한 그런 과거의 잔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단지 관행이나 예절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갑질의 마인드를 기반으로 포장된 예절은

진정한 의미의 예절이 아니라 그냥 갑질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진정한 예절은 반드시 상호적인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예절은 항상 일방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지켜야 되는 예의는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반대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되는 예의는 쉽게 무시되곤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예절’이 부족한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 군대에 신병이 들어오면

그 신병에게 그 누구도 ‘예의’를 지키지 않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반말을 하고

인격적 비난과 모욕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병보다 나이가 어린 하사관이나 초급장교들도

자신들이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사병을 하대합니다.

교사는 별 생각 없이 아이들을 하대하고

상사는 자신의 부하직원을 진짜 부하로 착각하곤 합니다.

매장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소비자란 이유로 판매자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고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돈이 있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역시 ‘예의’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몰지각함의 정점에는

우리의 세금으로 생활하면서

정작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국민들을 무시하는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국민들 서로가 서로에게 기본적 예의가 없다보니

국민들은 그들에게 당연히 요구해야 될 ‘예의’를 요구하지 못합니다.

사실 내가 내 삶에서 누리고 있는 약간의 정치적 권력이

바로 그 ‘예의 없음’의 문화에서 나온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큰 사건들에는 유감을 표하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 잔존하고 있는 갑질 문화에는 관대해 지고 맙니다.

그런 식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지도자들의 예의 없음에 암묵적으로 동조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권력의 맛은 그렇게 달고도 짭짜름한 것이지요.

사실 사회의 한 분야, 한 곳만이 썩고 부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곳이 썩었다면 이미 모든 곳이 병들어 있다고 봐야 겠지요.

..

조현아 사건은 결국 우리사회의 거울일 뿐입니다.

조현아를 욕하는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부하 직원에게 하는 말투가 예의바른 것인지,

그리고 업무상 내리는 지시가 당연한 것인지

스스로 반성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리고 이번 조현아처럼 금수저 물고 태어나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문제지만

과거 포스코의 라면상무처럼

말단 직원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 상무까지 승진한

어쩌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에 더 가까운 사람이 보여준 추태는

우리의 추악한 현실을 더 잘 드러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라면상무가 라면상무가 되기까지

그 사람 위에 수많은 라면상무가 있었고

그 또한 자신이 꿈꾸던 라면상무가 되어

구태를 재현한 것뿐입니다.

그 수많은 라면상무가 상무가 될 수 있는 세상

그곳이 이 곳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입니다.

..

최근 드라마 미생이 많은 인기라고 하더군요.

저는 책도 드라마도 보지는 못했지만

주위에서 하도 얘기를 많이 해서

대충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전쟁터와 같은 직장에서

매일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수많은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으나

그 이전에 자신들의 직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것은

정작 본인들임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굳이 전쟁터로 만들 필요가 없는 공간을 전쟁터로 만들어 놓고

피투성이가 되어 살아남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과거 군생활을 하면서

어차피 사병의 신분으로

고생을 피할 수 없는 젊은 사병들이

자신의 그 작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힘을 합쳐도 힘들 군생활을

결국 서로가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서로가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부정적인 경험들을 하며

서로 악업을 쌓는 것은 정신적인 건강은 물론

사회 발전의 관점에서도 결코 좋은 선택이 될 수 없지요.

..

복학 후 학교에서 홉스의 사회계약설을 공부하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표현을 보고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회계약설의 핵심은 그러한 개판 오 분 전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서로가 자신의 권력을 양보하여 국가를 만들었다는 논리인데,

국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느니만 못한 사회가 되어 간다면

계약서상의 '갑'에게 계약이고 나발이고 환불을 요구하거나

최소한 의미 있는 AS라도 추구해야겠지요.

그 또한 하지 못하고 을들이 서로 갑질하며 아귀다툼만 하고 있다면

'사회계약설'이 아니라 '사회사기설'이 맞는 상황일 것입니다.

..

마무리 하겠습니다.

아이들은 미래의 갑질을 위해 공부를 하고

부모들은 자식들이 ‘을’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칩니다.

그러니 성공하여 갑이 된 아이들 눈에는 뵈는 게 없고

실패하여 을이 된 아이들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회 전체가 갑질의 병폐에 빠지게 됩니다.

이미 한국 사회는 그놈의 갑질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병이 들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과거의 구습을 타파하고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가

대한제국 붕괴 후 100년이 지난 지금

사회의 붕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나마 과거의 경제 성장에 대한 환상이

아직까지 ‘을’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있습니다만

그 환상이 결국 진짜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그 많은 ‘을’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슈퍼 갑질에 질린 작은 갑들은 이민이라도 갈 수 있겠지만

늘 갑질만 당하는 그 많은 을들의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정치인들과 회장님들이 한 번 깊게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비빔밥(경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2.15 감사합니다.. 갑을 사고는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최근 경비원 자살 사건이나 서울대 교수의 제자 성희롱 사건들도 다 갑문화의 폐해지요..
  • 작성자4륜구동 | 작성시간 14.12.12 나 자신도 혹시나
    하찮은 갑질을 하면서 우쭐해하지 않는지
    다시 돌아봐야 할것 같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비빔밥(경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12.15 네! 감사합니다..
    저도 사회 생활하면서 저에게 주워진 작은 권력을 남용하고 있지 않은지 늘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진만 볼 수 있습니다.
  • 작성자안전요원 | 작성시간 14.12.27 갑과 을이 없는 게 맞는 세상사람사이이긴 한테.. 그러나 현실의 관계성에서는 참 씁쓸힌 경우 많지요?
    깊게 생각해보면 조현아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나 생각도 들고...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