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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

내일의 날씨는 300℃입니다.

작성자비빔밥(경기)|작성시간13.03.24|조회수550 목록 댓글 10

우리는 틀리는 것을 알면서도 늘 미래를 예측하고자 노력합니다.

때론 미래의 암울한 예측에 압도되어

마땅히 누려야 할 현재의 즐거움을 잊고 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암울한 미래를 예측하여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간 분들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삶의 터전에서 나름대로 준비하고자 고분 분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그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의미가 있다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탈리아 작가 Dino Buzzati의 작품 ‘Il deserto dei Tartari(타타르 사막)’에서

오지도 않을 적들을 기다리다 국경의 한 요새에서 일생을 마친

비극의 주인공인 Giovanni Drogo의 이야기처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또한 정작 오지도 않을 경제 재난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

위대한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훈련이 안되어 있는 사람은

독단적이 예언가들에게 휘둘리고 만다.

어떤 덕목이든 그것을 얻으려면 적절한 훈련이 있어야 하며,

판단을 유보하는 능력을 길러 주는 최선의 길은 철학이다.“

..

버트란드 러셀의 이 말에 대해 철학자 나심 탈레브는 다음과 같이 응수합니다.

“우리는 판단을 유보하는 능력을 가르칠 수 없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이미 어떤 식으로든 판단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바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자기 견해를 갖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틀리더라도) 예견을 피하지 말라.

나는 더 이상 바보가 되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재적소에서 바보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가 피해야 될 것은 거창하고 위험천만한 예측에

쓸데없이 의존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협할지 모르는 거창한 주제도 멀리하라.

작은 일에 바보가 되어도 좋지만 큰 일에는 금물이다.

경제 예측가나 사회과학 분야의 예측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라.

(그들은 단지 연예인일 뿐이다.)

다만 놀러가는 날의 날씨는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기 2040년 사회보장 상황에 대한 정부의 전망치는

귀담아듣지 말아야 한다.“

..

우리는 경제 예측의 세계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경제라는 표면상 매우 명확해 보이는 대상의 뿌리가

실상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심리와 역사의 그물망 속에

매우 깊게 박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차피 공부는 끝이 없고

내가 올바른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경제를 예측한다는 것은

인간의 광기를 예측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로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의 말처럼

차라리 날씨를 예측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

사실 오래전부터 역사학계에서는 역사의 법칙화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왔습니다.

나름 체계적이고 의미심장한(사실 매우 정치적인) 이러한 노력은

영국의 철학자 Karl Popper와 같은 예리한 철학자들의 비판을 받았지요.

칼 포퍼에 따르면 역사적 법칙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사가 과학과 유사하다는 가정 하에서나 가능한 것인데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개인들의 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역사가

예측 가능한 법칙을 갖는 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일의 날씨는 예측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예측할 수 없는 법입니다.

..

그렇다면 미래를 향한 우리의 모든 예측은 시간낭비일까요?

나심 탈레브 말처럼 경제적 블랙스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인만큼

내일의 날씨 따위에나 신경쓰면서

하루하루 성실한 일개미처럼 살아가는 게 최선일까요?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의 위의 주장은

마치 불확실한 세상은 불확실한 세상에 맡겨두라는 말인 것처럼 들리지만,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소한의 행운이 나를 향해 오게 할 수 있는 길은

결국 열심히 이곳저곳을 쑤시며 다니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세상은 확률이 지배하는 곳 아니겠습니까?

로또를 사는 것이 확률적으로 미친 짓일지 몰라도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은 모두 로또를 사는 미친 짓을 한 사람들인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어쩌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 자체로 재미와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또 혹시 모르죠? 로또에 당첨이 될지!!

..

지난 주 키프로스의 사태가 이번 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표면상 어떻게든 마무리 되겠지만

키프로스 사태가 어떤식으로 어떻게 번져서

그 결과 경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계량적인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수많은 예측이 난무하고

그러한 예측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역시 예측 불허입니다.

키프로스 국민들의 반응,

그리고 키프로스를 둘러싼 러시아와 독일의 대응,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벌어질 수많은 변수들이

유럽의 소국 키프로스를 EU 붕괴의 도화선을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뉴스에서 사라지며

동시에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양치기 소년이 되느냐 아니면 선지자가 되느냐는

예언자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실 운명의 장난에 더 가깝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키프로스 사태 속에서 무엇을 읽어내고자 노력해야 할까요?

..

사실 엄청난 양의 자료가 전혀 쓸모없는 경우도 있지만

반면 단 하나의 정보가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구분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이지요.

앞서 언급한 칼 포퍼는 인간의 정신을 폐쇄적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플라톤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플라톤적 태도,

즉 어떤 목적지와 거기에 가기위한 지도를 혼동하는 경향을 비판하고

세상이야 말로 근본적으로 치유 불가능한 예측 불가능한 곳임을

논리적으로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우리가 진실에 가까이 가기 위한 방법은

진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처음부터 불가능 하므로)

반증 사례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어떠한 주장이든 반증 사례가 발견되면

그 주장의 오류를 쉽게 찾을 수 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해 줄

근거만을 찾아 헤매기 때문에 플라톤의 늪지대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확인편향의 오류라고 부르지요.

일반인들은 ‘정상화 편견’에 빠져서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전문가들은 ‘확인편향’에 빠져서 사실을 왜곡합니다.

하지만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담구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키프로스를 둘러싼 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가 찾아야 되는 핵심 정보는 있을 것입니다.

그 핵심 정보는 결국 인간들의 심리,

즉 그들의 합리적 행동을 제한하고 광기를 유발시킬

내면 속 두려움이 아닐까요?

그 두려움에 일단 불이 붙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럴듯한 문명으로 포장된 현대의

끔찍한 이면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

사실 제가 과거 역사를 자주 인용하는 이유는

지금과 비슷한 과거의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어떠한 주장에 대한 반증 사례로 이용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두 가지 관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역사가 반복된다’라고 말할 때

그 반복이 물리적 법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점,

둘째, 역사적 조건이 과거의 상황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 조건의 토대가 되는 배경이 절대로 같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역사를 운운해도 그 또한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역사적 사건들 중에서 어떠한 사례를 뽑아내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확인편향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모든 조건이 다 다른 것은 아닙니다.

모든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동일하게 같은 조건이 항상 존재합니다.

바로 100년을 살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과

그들이 갖고 있는 광기입니다.

그래서 사회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은 인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어쩌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답은

정작 내 마음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욕망과 두려움이 인류의 욕망과 두려움을

대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때

무엇보다 사람들의 심리를 읽어내고자 노력해야되고

수많은 오류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입으로는 흔들림 없는 자신감 넘치는 말을 뱉어도

이미 눈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의 행동이 흔들리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인정하기 싫을수록 더욱 확신에 찬 말과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사실 내적 불안함의 반영일 뿐입니다.

주식시장의 붕괴는 항상 주식 비관론자들이 사라진 직후였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이 지나치게 낙관에 의존하고 있다면

이는 블랙스완이 등장할 무대장치가 준비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양치기 소년들의 경고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면

아직까지는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주위에서 비관론자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면

이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지요.

..

역사는 거대한 흐름이지만

그 흐름은 오직 짧은 시간 동안 역사에 영향을 끼치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작은 인간들의 연결로 이루어집니다.

겉으로 봤을 때 크게 요동치며 상향을 향해 발전해가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늘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유한한 인간들의 무한한 욕망의 패턴 때문입니다.

..

사실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의 생이 유한하기 때문에

인간은 무한한 욕망을 꿈꾸게 됩니다.

무한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고대 그리스의 신들은

서로 질투하며 겨우 주색잡기나 하면서 무한한 삶을 허비하고

그들을 향한 인간들의 태도 변화에 올곧이 집착했던 반면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삶을 부여받고

더군다나 그 짧은 삶의 많은 부분을

성장과 노화의 과정에 쏟아 부어야만 하는 유한한 인간은

오히려 신들의 질투 속에서

거대한 도시와 운하를 건설하고

감히 무한한 신들에게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이 신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아름다움은 잠깐 폈다 지는 꽃처럼 일시적이었고

신들 또한 그 아름다움을 움켜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신의 막강함과 변덕 앞에서 절망했지만

신들 또한 인간의 유한한 아름다움과 무한한 욕망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인간의 생명의 유한함과 그에 반비례하는 욕망의 무한함은

모든 문학과 예술의 원동력이 되어왔고

거대한 인간 문명의 역사의 원동력이 되어 왔던 것입니다.

결국 유한한 인간이 가진 무한한 욕망이라는 무기가

인간을 시샘했던 불멸의 그리스의 신들을 물리치고

멋진 인간의 문명과 거대한 역사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

하지만 이런 인간의 유한함이 긍정적인 요소만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상 발생한 모든 정치적, 경제적 실패는

유한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그 무한한 욕망의 추구에서 발생하여

인간들의 결코 무너지지 않는 욕망을 오히려 더 자극해 왔고

결국 그 끝을 볼 때까지 멈추는 법이 없었으니까요.

(사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실패를 연료삼아 발전해 온 것입니다.)

육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실로 어마아마하고

절대로 포기시킬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는데,

플라톤에서 중세 기독교를 거쳐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실로 ‘공허한 것’으로 인식해온 육체적 실체가

정작 실제 인간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무한한 욕망의 화신이 되어 역사를 주도해 왔습니다.

중세 기독교는 육체와 욕망의 껍데기를 버리고

육체 속의 영혼의 고귀함을 기르기를 천년동안 설파했지만

그 기나긴 천년의 세월 동안 인간들이 육체의 껍데기 속에 쌓아 간 것은

정작 교회가 설파한 고귀한 종교적 미덕이 아니라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욕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데카르트가 인간의 신체를 신의 속박에서 풀어준 순간

천년 동안 억눌려온 인간의 욕망이 일시에 쏟아져 나오면서

근대적 이성이라는 미명아래 욕망의 신기루를 세웠던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근대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서 벗어나 무제한 욕망의 시대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스스로 감당할 수도 없고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광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세요!

현대인들 대부분들은 자신이 왜, 무엇을 위해서 사는 지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100년도 못사는 인간들이 마치 만년을 살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요.

인간의 광기는 결국 인간을 그리스 신들의 위치에 올려 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

실제로 인간의 역사상 최악의 범죄는

악마 같은 범죄자들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자칭 지성인들 현실적 행동에 나섰을 때 돌발적으로 일어나곤 하는데,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서 일본군에 의한 남경대학살,

스탈린의 쿨락 계급 아사정책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세상 혹은 이상적인 세상을 이루기 위한

지성인들의 광기가 남긴 피의 흔적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전쟁과 굶주림으로 얼룩진 피와 광기의 세계사의 이면에는

무절제한 권력과 부에 대한 집착이 있었고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았다는 주장에 근거할 때,

인류가 집단 각성을 통해 과거의 과오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존과 평화를 추구할 것이란 기대는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한 제 관점에서 역사는

인류에게 유토피아의 희망을 전해 주기 보다는

피할 수 없는 악령의 존재를 경고하는 것 같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비는 사리분별을 하는 이성의 기능을 잃고

철저히 몸의 욕망에만 집착하는 괴물인데,

좀비를 만드는 좀비 바이러스의 실체는 사실

인간 내면에 잠자고 있는 ‘광기’ 그 자체인 것이지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약간씩 다 좀비입니다.

‘이웃집 살인마’로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진화 심리학자 David Buss의 ‘악의 회로’ 개념은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도서관에 가셔서 Colin Wilson의 A Criminal History of Mankind

(잔혹 : 피와 광기의 세계사)를 찾아 읽어보신다면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의 고민으로 잠 못 이루실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관심이 더 있으신 분들은 심리학 박사 Scott Peck의

People of the Lie(거짓의 사람들)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다만, 이런 부류의 책을 읽고 나시면 잠자리를 함께 하는 배우자가

딴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물론 David Buss의 '이웃집 살인마'를 보시면

좋은 손도끼를 하나쯤 구입할 충동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ㅋㅋ

..

아쉽게도 하버마스가 꿈꾸었던 이성의 시대,

합리적 공동체의 이념은 자본주의의 광기에 의해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생각이 드는군요.

가끔 경제 붕괴를 통해 반인간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이 붕괴되고

더욱 인간적인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주장들이 보이는 데

그들의 주장이 맞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

쓰다 보니 별 내용도 없는 글이 길어진 듯합니다.

(제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오히려 그런 면을 좋아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ㅋㅋ)

내일 날씨?

아마도 오늘보다 조금 더 덥거나

아니면 조금 더 쌀쌀할 것입니다.

어차피 저는 내일 소풍갈 생각이 없으므로

내일의 날씨를 정확히 예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왠지 그보다는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간질간질 하군요.

정말 인류 최대의 실패와 혼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과거보다 약간 더 심한 두통으로 끝날까요?

내일의 날씨는 그럴 듯하게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인간의 광기지수는 늘 예측불허일 것입니다.

..

끝으로 미래의 일기예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수치들을 보겠습니다.

..

1. 미국 모기지 부채 : 10,012,800,000,000달러

2. 미국의 GDP : 15,094,000,000,000달러

3. 미국 공식부채 : 16,749,269,587,408달러

4. 미국 총부채 : 56,280,790,000,000달러

5. 세계 GDP : 70,000,000,000,000달러

6. 전세계 부채규모 : 190,000,000,000,000달러

7. 인간의 광기 : 무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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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코난(경기) | 작성시간 13.03.25 개인의 행동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모여 집단이 되고 사회가되면 또 가능하기도한다죠 특히 집단이 거대할수록 관성을 갖게되고 물리법칙에 영향받습니다 특히 지나온 역사를 보면 미래도 어느정도 예견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봅니다^^ 굳이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지금 많은 분들이 우리사회가 뭔가 잘못되어 가고있다라고 느끼는데 언제다시 제갈길을 찾아갈지 모르죠
  • 답댓글 작성자비빔밥(경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3.25 관성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특정한 국민성이 존재한다고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동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의 생각이 비스한 부분이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상당한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수십년간 위만 바라보고 살아온 한국인들이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어떤식으로 받아들이게 될지 궁금하네요..
  • 작성자고림자(서울) | 작성시간 13.03.25 잘 읽고 갑니다.~
  • 작성자리즈(광명) | 작성시간 13.03.25 오지도 않을 적을 기다리다 일생을 바치는일..ㅎㅎ
    공감글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hoho | 작성시간 13.03.26 인간의 광기를 볼일이 없었으면.. 바래요. 글잘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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