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리더스 칼럼

도시 문명의 붕괴 : 선실 탁자위의 물컵 (무지 길어요~)

작성자비빔밥(경기)|작성시간13.05.09|조회수582 목록 댓글 25

어렸을 때 제가 살던 곳은 서울 인근의 한 위성도시로

빽빽이 들어선 허름한 주택가와 아직 도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논과 밭, 풀밭들, 그리고 아이들이 아지트로 삼을 만한

다양한 공간들이 공존하던 곳이었습니다.

자생적으로 존재하던 주거지역에

정부의 결정에 의해 추가적으로 지정된 주거지역이 중첩되면서

매우 밀집된 도시의 형태를 갖추어가게 되었지만

그 도시 중간 중간에 과거의 녹지와 산림들이 자리 잡고 있어

자연과 도시의 오묘한 결합이 이루어져 있었기에

모험을 좋아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공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덕분에 시멘트로 도배된 삭막한 도시에서 컸음에도 불구하고

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뒷산에 개구리, 가제, 도롱뇽 등을 잡으러 다녔고

가을이 되면 밤을 따러 다니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지요.

밤이 되면 도시의 가로등 밑에 온갖 날벌레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넋을 잃고 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당시의 도시란 20평 남짓한 땅에

제대로 된 마당하나 없이 지어진 2층짜리 주택에

적게는 두 세대 많게는 대여섯 세대가 모여 사는 방식으로

여름이면 옆집 안방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싸움이 나면 남편이 뭘 잘못해서 부인이 화가 났는지

그 스토리를 원하든 원치 않던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되는 그런 구조였지요.

주산학원과 태권도 학원 외에는 갈 곳이 없었던 당시 아이들은

방과 후엔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골목으로 빠져나왔고

길고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창안해 낸 다양한 게임을 하며

해가 질 때까지 밖에서 뛰어놀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상하수도와 같은 도시 기반시설이 비미했던지라

겨울만 되면 수도관이 파열되곤 했고

몰지각한 어른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연탄재로 빙판을 덮어버리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썰매를 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래도 당시의 어른들은 동심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었던지

아이들이 바글바글 내는 한나절 동안은 빙판을 그대로 방치하곤 했지요.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려보면

학교와 학원으로 이어지는 요즘 아이들의 삶이란

모험과 도전이 없는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아마 어른들의 삶도 많이 달라졌겠지요.

당시에는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거의 없었고

가장이 혼자 벌어 5~6씩 되는 가족들을 부양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니까요.

물론 과거에 비해 많이 편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옆집 신경 쓸 필요 없는 사각형 아파트 속의 삶은

마음속에 무언가 허전함에도 불구하고 이 보다 더 편할 수는 없지요.

우리는 분명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

짐멜(Georg Simmel)은 ‘대도시와 정신적 삶’이란 저서를 통해

산업자본주의 발달이 대도시의 탄생을 낳고,

그로인해 인간의 내면세계 또한 과거와 다르게 변모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대도시인들이 ‘상호무관심’이나 ‘속내 감추기’등의 태도,

그리고 ‘정서적인 태도’보다 ‘지적인 태도’를 우선시 하면서

시골 사람들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도시의 발달과 그 도시가 가져온 사람들이 태도 변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변화를 동반하게 되었는데,

도시화의 과정은 결국 ‘군중’이라는 개념의 재평가를 통해

정치적 관점에서의 ‘군중’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게 되었습니다.

르봉(G. Le Bon)이 ‘군중심리’라는 저서를 쓰기 이전부터

정치인들은 군중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저지하고

그들이 원하는 논리에 의해 대중을 응집시킬 필요성을 깨닫고 있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이성이 지배하는 근대 시대의 개막은

인간의 개별성을 파괴하고 파편화하며 그들을 가축화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착취 시대의 시작이었고,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

문화, 경제, 정치, 종교 등 모든 것들이

정확히 짜여진 각본에 의해서 움직여 온 것입니다.

근대 이성의 이러한 이면을 파악한 철학자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서 근대의 지배적이며 은밀한

거짓 이성의 음모를 밝혀낸 바 있습니다.

사실 근래에 FED의 음모나 달러의 음모와 같은

거대 금권세력들의 대중 지배 음모들 또한

인간 세계의 거대한 농장화, 즉 인간의 가축화라는

야비한 근대화 과정의 일부인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음모론에서 다루는 많은 내용들이

역사나 철학, 혹은 인류학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인간 조작의 오랜 역사와 일맥상통합니다.

..

저는 이번 글을 통해

근대화의 필연적인 과정인 도시화가

현대인들의 삶에 어떠한 정치, 경제적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고

과거의 분석틀이 지금의 도시화된 문명을 분석하는 데

어떠한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알아 볼 것이며

글로벌화를 통해 동질화된 거대도시들이

인간의 역사발전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알아보고

21세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제 문제들의 본질을 점검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전체주의가 남긴 역사적 비극을

역사적 진보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과거의 유산,

혹은 일부 후진국들의 사례로 치부하며

통일되고 발전된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상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를 검토해 볼까 합니다.

아마도 제가 이번에 쓰는 글은

워낙 방대한 내용들이다 보니

분명 용두사미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앞 뒤 개념 없이 복잡하게 뒤섞여서 말 그대로 비빔밥이 되겠지요.

하지만 상기 주제들은 과거 제 글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쓰게 될 글들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들인 만큼

오늘의 글을 통해 근대화가 갖는 맹점들에 대한 대략적인 그림을 갖게 된다면

현재의 경제 문제를 놓고 이루어지는 갑론을박들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

일단 우리는 역사를 일방적인 진보의 과정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Llya Prigogine이 주장하는 ‘국면의 전환’

즉, 안정 상태에서 또 다른 안정 상태로 이전하는

과정으로 볼 것이냐를 고민해 봐야 합니다.

전반적으로 역사는 진보한다는 관점을 견지하더라도

일방적 ‘역사진보의 관점’을 요구하는 세력들의

정치적 의도가 무엇인지는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일단, ‘지속적 진보’의 관점을 갖게 되면 현재의 난국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단계가 되며

이는 국가적 관점이나 개인적 관점에서

사회와 개인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즉 진보사관은 현재의 문제점을 감추기 위해 악용되거나

지배와 피지배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동시에 대중들을 획일화시키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줍니다.

즉, 획일적 이성에 기반한 진보는 전체주의에 입각하여

대중들의 착취를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역사는 발전한다는 믿을 갖고 있는 개인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선형적 세계관과 역사관이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신 개념에서 파생된 자연스러운 개념이기 이전에

일부 타락한 성직자들이나 정치적 욕망을 갖고 있는 교단들의

일방적 권력 형성에 도움이 되어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내세관을 중시하는 기독교가 오히려 가장 정치적인 종교로 변질되어왔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역사관으로 인해 기독교의 핵심 교리라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의 개념이 오히려 크게 훼손되어왔다는 점은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일부 기독교 권력자들은 신을 ‘절대권력’의 울타리 안에 가두고

그 신의 대리자로서 일방적이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름으로서

가장 세속적인 권력과 부를 찬탈해 온 것입니다.

그들은 사실 성직자의 탈을 쓴 야비한 정치인들로

자신들이 원하는 전체주의적 세계를 종교를 통해서 이루어낸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외에 다른 종교도 이러한 타락의 과정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어찌됐건 기독교가 세속적 관점에서 가장 성공한 종교이다 보니

오히려 정치적 관점에서 일방적인 매도를 당하는 억울함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처럼 종종 종교를 비판하는 이유는

특정 종교에 대한 편견 때문이 아니라

가장 신성해야 될 종교에 조차 인간의 탐욕과

정치적 욕망이 녹아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통해

본질적으로 세속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의 다른 부분을

좀 더 냉철하게 비춰보기 위함입니다.

..

은밀한 정치적 욕망을 배태하고 있는 선형적 역사관은

일방적인 발전의 관점을 사회와 개인에게 요구하는 바

과거 역사 속에서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전체주의로 발현된 사례가 있습니다.

라이히(Wihelm Reich)가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피통치자가 자신들이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오히려 망각하고

그 수탈을 외부에 의한 결정과 의지로부터가 아니라

자기 내적인 의지와 결정에 의거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것처럼 착각할 때

‘나치즘’이 작동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과거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악몽은

과거 무지한 인간들의 거대한 역사적 실수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나치즘은 21세기를 사는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질긴 생명력을 갖고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국익과 대의라는 명분, 혹은 종교적 열정이라는 이름 뒤에 자신을 숨긴 채

반복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 속에서 여전히 이성과 합리의 가면을 쓴

전체주의의 모습을 빈번하게 목격할 수 있는 바,

인간의 역사를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정치적 권력 싸움으로 볼 때,

우리가 여전히 목숨을 걸고 싸워야 될 대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이러한 전체주의의 악령인 것입니다.

나치즘은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며

근대라는 이름 속에, 혹은 합리화와 이성이라는 이름 속에

숨어서 여전히 우리의 삶을 통제하고 기만하고 있는 것이지요.

1971 스탠포드 대학 Zimbardo 교수에 의해 실시된

‘감옥실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현대의 사회는 관료제의 일방적 소통 속에서

자기반성의 네트워크가 파괴된 무정하고 냉정한

전체주의의 논리가 통제하는 사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전체주의의 발생 원인이 결국 ‘인간의 무사유’에 있음을 주장했을 때,

이성적 존재임을 자청하는 인간들의 끔찍한 ‘무사유’ 가능성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전체주의는 개인들의 무사유를 먹고 자란다고 전제했을 때,

우리의 지도자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들의 무사유를 유도하고

통제하고 관리하기 쉬운 대중들을 형성해 왔던 것입니다.

깨어있는 소수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좀비 바이러스가 아니라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인 것처럼

우리의 적은 소수 권력자이기 전에 우리와 같은 모습의 대다수 대중들이며

안타깝게도 좀비 바이러스는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우리와 우리 이웃들의 삶 깊숙이 파고들어 온 것입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제가 신용화폐에 대해 비난을 해온 가장 큰 이유는

신용화폐가 갖는 편리함과 거대 시장 형성이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바로 신용화폐가 갖고 있는 전체주의적 속성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대상이 전체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다면

우리의 일방적 사랑은 결국 배신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합니다.

전체주의의 전제 조건이 아도르노(Theodor Adorno)가 말하듯

편협한 이성의 논리 자체이든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하듯 ‘무사유’라고 하든,

이는 전체주의의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우리는 전체주의의 양분을 논하기에 앞서

전체주의가 자라날 수 있는 배경,

즉 토양에 대한 좀 더 근원적인 성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렌트가 지적한 전체주의의 요건으로서의 ‘무사유’는

그 ‘무사유’를 키운 토대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몬 베일(Simone Veil)이 ‘자유와 사회적 억압의 원인들에 대한 성찰’에서

사회의 분업화와 체계화의 핵심에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이분법이 존재하고

평등하고 억압이 없는 사회, 즉 인간적인 문명을 위해서는

육체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문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현문명의 문제점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어떻게 우리사회가

고도의 분업화와 체계화의 과정을 거쳤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과정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심화하기 위해서

도시의 생성 프로세스와 네트워크라는 다소 낮선 개념들을

비선형 역사관이라는 틀 속에서 분석해 나갈 것입니다.

..

일단 우리가 역사라고 말할 때,

이 역사는 ‘인간’의 역사임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선형적 역사관에서는 우리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이기 이전에

생명의 역사이며 광물의 역사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즉, 역사의 주체는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으며

우리가 역사의 주체를 변경함으로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감추어진 역사 변화의 원동력을 감지하고

인간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일단 인간의 역사는 거래, 무역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의 핵심은 정치와 사회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거래의 변화, 즉 화폐의 변화에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생물학적 진화론 관점에서도 생물은 단세포에서 진화하여

골격을 갖추고 결과적으로 척추라는 골격 진화의 최종 결과물로 가는데

이 척추는 발달한 뇌와 신체의 각 부분을 유연성 있게 연결하여

진화론적 관점에서 신체의 기능을 최적화 할 수 있는 최종 모델이 됩니다.

유연한 뇌와 척추의 기능을 통해 인간의 손은 거의 무한한 활용도를 갖게 되는데

그리하여 인간이 도구 사용의 최적자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갖는 ‘광물화(mineralization)’의 과정은

문명의 형성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바

인간은 물렁한 마을의 개념에서 단단한 도시를 창출하여

‘사회적 광물화’를 거치게 됩니다.

..

이러한 사회적 광물화 과정은 주거의 형태에만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요소, 각종 재화와 음식과 의복, 그리고 문화와

도시 구성원의 감정에까지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이러한 도시화는 도시의 성벽과 상하수도의 건설이라는

도시 인프라의 구성의 필요성과 함께,

도시 시민들에 대한 안정적인 식량공급이 전제되어야 했고,

인류학자 아담스(R.N.Adams)가 사회적 진화란

자연환경을 가로지르는 에너지의 자기 조직화라고 언급한 바,

곡물의 경작을 통한 태양에너지의 축적과 이용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즉, 농업을 통해 인간 사회가 흡수하고 저장할 수 있는

태양에너지가 증폭함으로써 사회 전반을 흐르는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이 크게 늘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 도시의 ‘광물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지요.

역사가 화이트 주니어(L. White Jr.)의 주장처럼

11세기 이전의 다양한 농업 기술 혁신은

단단한 도시의 형태를 구성하는 데 기여했던 것이지요.

이 시기를 농업의 발전을 통한 1차 ‘강화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면

태양에너지가 고농축 되어 있는 석유 자원을 개발하여

폭발적인 도시화를 이룬 19세기는 화석연료를 통한

2차 ‘강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도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생적으로 형성되거나

경우에 따라서 권력자들의 의도에 의해 계획적으로 형성됩니다.

자생적 도시의 경우 주거 공간과 상업공간, 시장 공간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표면상 비효율적인 공간들과

유휴공간들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과거의 재래시장이 지저분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때,

자생적 시장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자생적 도시의 경우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며

이형이질적 특성을 갖게 되는 데,

이는 권력자들의 입장에서 통제의 한계와 어려움을 의미합니다.

반면, 어떠한 목적을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형성된 도시들의 경우

자생적으로 발생한 도시들과 달리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간섭과 통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바

자생적 도시의 자연스런 그물망 네트워크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역동과 창조의 프로세스를 기대하기는 힘들지요.

하지만 권력자들은 자생적 시장의 비효율성을 빌미로

자생적 시장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파괴하고

수직적 위계질서를 만들어 갑니다.

그리하여 결국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는 재래시장은

깔끔한 현대식 건물로 대치되지요.

..

이처럼 권력자들 입장에서 자생적 도시의 확장된 시장을

눈의 가시처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데,

그들 입장에서는 시장이 갖고 있는 폭발적 잠재성을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통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권력자들은 자생적 도시에 위계적 프로세스를 강제로 주입하여

예측 불가능한 도시의 역동성을 통제하고 노력해 왔으며

때로는 의도적인 계획도시를 만들어 자생 도시와 경쟁시킴으로서

자생도시의 파멸을 의도해 왔습니다.

윌리엄 맥닐(Willian McNeil)은 권력의 위계구조가

도시의 자생적인 그물망 구조를 압도할 경우

자연 발생 도시의 자연스러운 기능인 역동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18세기 청나라의 실패와 유럽의 팽창이라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서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는

명나라보다 훨씬 강력한 쇄국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유럽에 대한 무시정책에 근거했을 뿐만 아니라

반청복명의 세력들이 외국세력과 결탁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럽 국가들은 청나라와의 교류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불리한 요건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해안의 특정 도시만 개방하여

그 도시를 통해서만 무역을 허락하고

외국인들의 거주와 이동을 철저하게 통제하여

외국인들이 정해진 중국 상인들과만 거래를 하며

내륙으로 들어가거나 다른 중국인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실로 무역 대국답지 못한 일방적이고 불공정한 관례가 아닐 수 없었지요.

물론 중국의 차와 비단이 너무나 필요했던 유럽상인들은

이러한 청나라 관료들의 고압적인 자세와 무시를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모멸감을 느낀 외국 상인들이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자생적인 시장 네트워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중국의 무역항은

일종의 거대한 중국 관료제의 하부조직으로서

완벽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외국인들에 대한 그러한 부당한 대우는 변화가 없었지요.

더군다나 당시까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하고 부유한 나라로서

유럽인들의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유럽 상인들은

중국 관료들과 상인들의 말에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하지만 결국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건륭 57년에 건륭제의 생일 파티를 명분삼아

영국의 사절단이 중국 내부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그들이 직접 두 눈으로 본 중국의 현실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하고 부유한 나라가 아니라

중세 봉건주의의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후진적인 시스템의 국가였던 것입니다.

당시 사절단에 합류했던 배로(John Barrow)는

그의 ‘중국여행기’에서 중국의 관료제의 문제점과

심각한 부의 편중 등의 중국의 사회구조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이러한 사실이 유럽인들에 알려지며

중국을 찬미하던 목소리는 곧 중국을 경멸하는 목소리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본 가장 중요한 현실,

즉, 중국이 자생적 도시 프로세스를 갖고 있지 못하고

관료제에 입각한 일방적이고 위계적인 도시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중국을 공격하는 가장 중요한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중국은 전쟁(아편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이미 ‘통치’에서 진 것입니다.

..

앞서 언급한 맥닐(William McNeill)이 그의 저서

‘The Pursuit of Power; Technology, Armed Force, and Society since A.D 1000'에서

서구 사회가 11세기 이후 천 년간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 내부에 존재하는 위계적인 의사결정과 도시 자체의 네트워크 의사결정 시스템이

다양하게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도시의 폭발적인 성장은 이슬람과 중국이 유럽보다 200년 정도 앞섰지만

중국과 이슬람의 도시는 유럽의 도시들과 달리 자생적이기 보다는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에 의해 자율적인 네트워크의 역동성이 억제되어 온 것이지요.

물론 19세기 이후 유럽의 도시들도 강화된 위계질서의 영양 하에 놓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생적인 시장 기능이 크게 위축될 정도는 아니었지요.

실제로 유럽을 여행해보면 도시와 시장의 기능이

근대화 과정에서 획일화 된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별로 시장의 색깔이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별로 매우 특색 있는 다양한 시장을 접할 수 있는 데,

이는 시장이 도시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공간이자

활력과 소통, 그리고 정체성을 제공해 주는 공간임을 의미합니다.

유럽인들은 지금도 자신이 한 국가의 국민이기 이전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시민임을

자신의 정체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일제 식민지와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의 정체성은 큰 혼란을 겪게 되었는데,

지금처럼 지역적인 것은커녕 한국적인 것조차 찾을 수 없는

획일화된 도시와 시장에서 동질적인 소비자로서만

자신을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즉,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것이 무엇이냐의 주체적 고민 없이

근대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정체성 또한

무엇을 소비하는 어떤 존재인가의 질적 관점에서

얼마큼 소비할 수 있는 존재인가의 양적 관점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

과거 일제 식민지 과정에서 이루어진 근대화는

일본에 의한 한국적인 것의 말살을 목표로 이루어진 바

자생적으로 발달한 지역의 개성을 말살하고

다양한 소통의 네트워크인 시장을 파괴할 목적으로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근대적 도량형과 유통시스템을 강제했던 것입니다.

즉, 한국의 전통시장은 기존의 자생적 기반아래

합리적 위계구조의 질서가 융합하며 발전해 간 것이 아니라

이질적 집단의 의도적 단절 속에서 그 생명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일제 30년 동안 한국의 자생적 도시는 철저히 파괴되어 획일화 되었으며

그와 함께, 과거 조선의 정신, 또는 한국적인 것들도 함께 파괴되었던 것입니다.

..

문제는 해방 후에도 이러한 일방적 시장 재편 과정이

근대화라는 미명아래서 지역 기반 네트워크의 반발 없이

정부 주도로 빠르게 이루어져왔고

일제 식민지와 미국의 신탁통치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서울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중앙 도시화 되어

일종의 통합적인 게이트웨이로 작동하면서

서구의 문물을 분별없이 받아들여 왔다는 점입니다.

자연스러운 도시의 네트워크는 강제적인 획일화 과정 없이도

이형이질적인 요소들을 통합하여 자신의 문화를 만들어 내지만

우리나라처럼 각 도시의 자생 기능과 네트워크 기능이 붕괴 된 상태에서

정부 주도하에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서구 문화 유입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우리의 것들을 대체해 나갔던 것입니다.

알렌(Peter Allen)과 덴드리노스(Dimitrios Dendrinos)는

‘도시 시스템의 자기조직화’를 통해

도시구축의 주체는 정부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개개인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활동임을 밝히며

도시의 발전은 경제 효용성에 따른 최적화 요소가 아니라

도시간의 협력과 마찰의 역동학에 기반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의 근대화된 도시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발전적인 마찰과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모델의 한국 도시들은

자신만의 역동성과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지 못한

위성도시이거나 서울의 서포터의 개념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한국의 도시들은 서울과 서울이 아닌, 서울과 비슷한 도시들로만 존재합니다.

..

아마 지금까지 재미없는 제 글을 읽느냐 고생을 하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왜 갑자기 뜬금없이 도시 형성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글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방식은 우리의 환경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즉, 급속한 도시화의 과정,

특히 중앙정부에 의한 위계적인 질서의 확장은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바꾸기 위해서는 물질적 토대를 먼저 바꿔야 하는 법이지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5천년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획일화된 도시문화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의 한 명으로서 큰 의미를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럽에서 1천 년간 이루어진 도시화와 근대화의 역사를

거의 100년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좋은 모델일 뿐만 아니라,

대중 통제를 위한 매우 의미 있는 시험장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잠시 2002년 월드컵 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 4강에 오른 우리나라는 거의 전국이 붉은 악마로 변신하는

놀라운 대중 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특정 계급이 정치적 목적으로 사회전복을 노린 경우도 아니고

전체주의 국가의 강제 동원 명령이 내린 것도 아니었으며

정치적 열정에 빠져 특정 정치인의 주술적인 메시지 듣기 위해

모인 대중들도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스포츠, 그것도 ‘축구’라는 단 하나의 스포츠 행사를 기념하고

자축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수많은 대중들이었으며,

그 대중들은 그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붉은색 티를 입고 붉은 색 두건을 썼던 것입니다.

그것은 한민족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닙니다.

진정한 역동성은 다양성과 이질적 요소들의 충돌에서 오는 것이지요.

오히려 한국 월드컵의 대중 현상은 과거 대중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사례로

앞서 언급한 정부주도의 일방적 도시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오히려 한국인의 정체성이 철저히 분해 해체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체성이 해체된

21세기형 노마드형 민족으로 변화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우리는 ‘애국’이라는 명분아래 붉은 악마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애국’은 사실 ‘축구’에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해방이후 한국은 글로벌 엘리트 세력들에 의해

강제적 근대화와 문화해체(도시의 획일화),

그리고 동시에 개인들의 파편화를 실험하기 위한

거대한 시험장이었던 것이며,

그 실험은 한국적인 것의 말살과

글로벌 문화가 된 ‘한류’로 꽃피우게 된 것입니다.

..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류’란

실상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이루어진 한국 문화 말살과

해방 후 미국과 친미 정권에 의해 이루어진 일방적인 서양문화의 이식,

그리고 획일화된 도시의 생활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 들어간

싸구려 대중문화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21세기 문화의 몬스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뿌리 없는 신문화가

어느샌가 우리를 대표하는 대표 아이콘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물론 한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요소들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인들은 언제가 부터 놀고 마시고 뛰고 노래 부르는 것에

뛰어난 민족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것을 가장 빠르게 버린 민족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 자체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동경해온 서양 사람들이 우리 것에 열광한다는 것 자체에

더 열광하는 피해보상 기제를 발동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에서 가장 크게 성공하는 방법은

싸이처럼 서구에서 먼저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간 우리는 정부 주도의 획일화된 도시문화 속에서

아무런 고민없이 너무 쉽게 ‘표준화’된 삶의 모습을 선택했고

21세기의 한국인들은 사각형 아파트에 갇힌 채

대중문화와 명품을 소비하는 싸구려 소비자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또한 한민족이라는 근사한 타이틀의 문화적 근거가 사라진만큼

다문화사회로의 이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

사실 ‘우리의 공간이 우리를 결정한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도시는

획일화된 아파트라는 동일한 상품으로 뒤덮였으며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삶은 표준화되고

교환 가능한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앞에서 언급한 짐멜(Georg Simmel)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대한민국의 아파트 숲이 우리의 정서 변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도시 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급속한 아파트 숲 형성은

대부분의 도시들이 동일위계수준으로 평준화 되면서

도시간의 커뮤니케이션 양이 줄어들게 되고

시스템적으로 안정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파트로 획일화 되는 주거문화의 변화과정에서

개별 도시의 개성이 말살될 뿐 아니라

모든 도시인의 삶이 획일화 되고 코드화 되게 됩니다.

즉, 도시와 아파트, 개인 모두가 치환 가능한

하나의 상품으로 변질되게 되는 것이지요.

정리하자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도시의 위계질서 변화,

특히 도시의 개성을 말살하고 자율적 시장의 기능을 파괴하여

시민들의 삶을 표준화 하고 치환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소비 지향적인 대중문화를 형성해 온 모든 과정은

과거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지적했듯이

독점 자본주의 철저한 계획 하에서 이루어져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러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도시화 과정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던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사실상 오늘 글의 결론이 될 것입니다.

..

앞서 도시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인류는 경작과 석유 자원 사용이라는

태양에너지의 활용 방법을 새롭게 찾아냄으로서

문명의 강화과정과 광물화를 이루어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문명의 강화과정과 광물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금속화폐'의 탄생입니다.

경제의 발전 혹은 문명의 발전은

태양 에너지의 축적과 이용 방법의 발전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식물이 다소간의 태양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고,

석유가 수억 년의 축적된 태양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문명의 강화과정에서 ‘경화’, 즉 화폐야 말로

그러한 농축된 태양에너지가 교환되고 저장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즉, 화폐를 통제하는 사람은 인류가 농축한 태양에너지를

통제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권력자들 입장에서 자생적 도시의 확장된 시장을

눈의 가시처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데,

이는 자생적 도시의 시장이 갖고 있는 폭발적 잠재성을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통제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들은 자생적 시장에 인위적 위계질서를 도입하고자 합니다.

관료제 주입을 통한 각종 규제와 관리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위계질서 도입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도시의 시장들이 공유하는 중앙 화폐의 존재입니다.

즉 중앙 화폐란 철저히 정치적 목표에 의해서 발생한 것으로

분산된 도시들의 기능을 통합하고 수직적 관계로 재편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따라서 화폐를 관리하는 정부는 거래라는 경제적 목적보다는

세금징수와 시장통제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화폐의 흐름을 조절하게 됩니다.

사실 원시적인 화폐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네트워크 속에서 자연발생하지만

도시의 위계화 과정에서 결국 국가 권력에 의해 흡수 통합되어

국가가 지정한 화폐만이 합법적으로 유통되게 되는 것이지요.

권력자들은 지역화폐들을 말살하고 중앙 화폐만을 유일한 화폐로 인정하여

완벽한 시장 통제권을 잡게 되고 그 과정에서

도시의 자생적 네트워크를 축소시키며

다양한 도시간의 이형이질적 요소들을 파괴해 나갑니다.

우리나라의 사례만 보아도 과거 자생적으로 발생한 수많은 시장들이

근대화의 과정에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기업형 대형 마트들이 들어갔지요.

사실 이는 도시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변화 과정이 아닙니다.

오랜 도시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에 가보면

마을광장이 자연스럽게 주민들간의 교류를 위한 시장으로 재편되는

주기적 형태의 시장이 존재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거대 마트와 도시내의 자생적 시장들이 공존하는 형태를 갖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도적으로 자연발생 시장들을 붕괴시켜

더 쉽게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업형 주도의 시장으로 변경시켜 온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에게는 여러 가지 특혜가 주어졌던 것이지요.

어쨌든 다양한 이질적 도시들이 동질적 도시로 변경해 가고

다양한 시장들 사이의 이질적 요소들이 사라지면

정부의 시장 통제력은 강화되고 중앙 화폐는 더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인류의 도시화 과정은 광물화와 강화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온 반면,

20세기에 꽃피운 근대 자본주의 시장은

권력자들의 의도아래 자생적인 시장들의 파괴를 통해서

상당부분 계획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그들의 무기는

바로 중앙 화폐였던 것이지요.

..

문제는 그들의 가장 강력한 도구인 화폐가

사실 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그들의 무기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화폐는 도시화에 따른 교환과정의 광물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도시의 도구이자 시장의 교환 수단이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화폐는 본질적으로 친시장적인 성향을 갖게 됩니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권력자들은 화폐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를 채우고자 했지만

중앙 화폐가 시장을 배신할 때마다

자생적으로 형성된 시장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화폐의 법칙에 따라

중앙 화폐를 거부하며 그들의 화폐로 돌아갔고

권력자들의 공든탑을 일시에 무너뜨리곤 했던 것이지요.

이리하여 권력자들은 도시 통제, 즉 시장 지배를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전제 조건을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는 친시장적인 화폐를 반시장적인 화폐,

즉 정치적인 목적으로 완벽히 사용될 수 있는 새로운 화폐로 치환할 필요성이고

두 번째는 도시의 획일화를 통해서 시장의 자기조절 기능을

완벽하게 제거 중앙 정부에 의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목표는 무려 천년이 넘는 시행착오를 거쳐

20세기에 들어와 완벽하게 성공했던 것입니다.

먼저 금속과 분리된 완벽한 신용화폐를 만들어 냄으로서

본래의 것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화폐의 고유한 특성을 제거하였고

글로벌화라는 미명아래 세계의 도시들의 삶의 방식을

표준화하고 획일화함으로서 시장의 자생적 기능을 제거해 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화폐와 시장의 변화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도시 문명을 이룬 화폐는 거래의 ‘광물화’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금속 화폐입니다.

화폐가 광물화 과정을 거쳤던 것은

비유적 관점에서 도시의 발달 과정과 일맥상통하기도 하지만

화폐란 농축된 태양에너지를 거래하기 위한 수단이기 전에

태양에너지의 남용을 막기 위한 주술적 의미도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표면상 금속 화폐를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금속화폐야 말로 정형화된 화폐 시스템을 만들기 용이했기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는 신성한 광물인 금과 은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즉, 귀한 광물을 화폐로 쓴다는 것은 거래 과정에서

거래 자체에 대한 무게감을 더해 줄 뿐만 아니라

농축된 태양에너지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갑옷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은 화폐로서 금과 은이 우연한 선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간의 변덕에 의해 쉽게 다른 대상과 치환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이는 문명과 도시의 형성, 그리고 경화의 등장 과정의

역사, 문화, 상징적 맥락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도시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하는 자생적인 화폐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흡수하여 계획화폐로 변질시켜

시장 통제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순간

중앙 화폐의 화폐로서의 순수한 기능은 크게 저하되었고

더 나아가 화폐의 자정기능을 없애버림으로서

정부 스스로 화폐는 생명력을 끊어 버린 꼴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화폐의 역사를 보면 정부 주도의 계획화폐가

시장의 자생화폐를 억누르는 데 성공할 때마다

오히려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격곤 했는 데

결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화폐의 실패로 인해 좌절되곤 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화폐를 자생적 시장에서 분리하고 했던 과거의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폐는

생명이 없는 가짜 화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짜 화폐가 지속적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화폐의 파괴와 함께 자생적 시장의 파괴가 함께 이루어져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완벽한 신용화폐와 획일화된 도시 문명은

국가, 도시, 개인을 평준화시켜 예상 가능한 존재로 격하시키고

대중들에 대한 통제력이 강화시키게 되지만

자생 시장의 역동성이 사라지면서 외부 변화의 충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심각한 문제점을 갖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수많은 돌들로 쌓아올린 탑은 일부가 유실될 지언정

그 전체가 붕괴되는 일은 쉽게 생기지 않는 반면,

단 하나의 돌로 높이 세운 오벨리스크는 일단 쓰러지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법입니다.

즉, 정부 주도의 완벽한 신용화폐는

과거 시장 자생적 화폐들이 일으키는 소소한 문제들을

표면상 완벽히 차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계획화폐로서의 내적 문제점들이 누적되어 임계점에 이르게 되면

획일화된 도시문명과 함께 완전히 붕괴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생물의 예를 들면 모든 생물들은 서로 이질적인 유전자간의 교합을 통해

서로 이질적인 다양한 유전자를 갖춘 후손들을 배출하는 데,

종의 다양성이 확보될수록 그 종이 환경변화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때로는 유전적 실패로 보이는 개체나

종의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잉여개체가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살아남아 종의 번식을 책임지기도 합니다.

이 처럼 생물학적 다양성은 종의 실패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종의 전략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도시들과 시장,

그리고 자생적 화폐는 다양한 변화 속에서

생성소멸을 반복하며 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반면에

의도적으로 획일화된 도시들과 시장,

그리고 계획 화폐는 외적으로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경쟁하며 자시들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 같아도

갑작스런 외부 변화에 순식간에 멸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

현대 경제학의 가장 큰 단점은

철학적 사고와 역사의식의 부재로 인한 단조로움입니다.

공급과 수요라는 단선적인 개념에서 출발한 현대 경제학은

희귀 자원의 대안적 사용이라는 최적 결론에 도달한

이기적 행위자가 가장 이상적인 시장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 자체의 예측 불가능성과 비이성적 행위자들의 돌발 행위,

그리고 부정확한 시장 정보에 따른 부수적 비용 등을 고려할 때

기존의 선형적 경제학 모델은 경제 분석 및 예측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실제로 비선형적 시장역동학 모델 하에서는

완벽한 의사결정 자체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지요.

따라서 비선형적 역동학의 시뮬레이션은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어림짐작, 대충의 규칙, 적응적 행동 패턴의 요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즉, 시장을 선형적인 모델이 아니라 비선형적인 모델로 간주할 때

우리는 어떠한 정확한 결론이 아니라 적절한 현실이 반영된

결론만을 유도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 권력자들은 시장의 획일화를 통해

예측 불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

시장의 동인인 대중들을 역시 대중 교육과 문화, 언론을 통해

획일화시킴으로서 시장 통제의 과정에서

비선형 역동성의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노력해 왔지만,

사실 그들의 노력이 통제 기간 동안에야 성공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본질상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통제력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파괴시키고 또 너무 많은 것들을 죽여 왔던 것이지요.

..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장역동학의 모델은 과거 아담스미스에서 시작한

합리주의적인 의사결정 모델과 전혀 다르며

시장역동학이 말하는 균형이란 Multiple Dynamical Stability로

그 안정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즉, 현대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안정이란,

그리고 우리가 지난 100년간 경험해온 경제적 균형이란

사실 선실 안에 고정된 탁자위에 올려진 물 컵과 같은 것입니다.

누가 의도적으로 물 컵을 치지 않는 한 컵의 물이 쏟아질 일은 없겠지만

거센 파도에 배 자체가 흔들린다면 선실바닥에 고정된 탁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부 주도의 계획화폐와

강력한 위계구조하에서 구성된 인위적인 도시문화는

표면상 잡다한 변수와 그로인한 크고작은 실패들을 제거한 것 같지만

그 자체가 심각한 핵폭탄인 것입니다.

..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이질적인 것을 배제하는 것이 습관화되었습니다.

하다못해 남들과 다른 옷을 입는 것조차도 쉽게 인정하지 못합니다.

과거에 여성들이 외출복으로 자주 입던 한복은

우리들의 이러한 근대적 습관에 의해 어느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기성복 개념은 없었지요.

최소한 양복은 양복점에서 맞춰 입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테일러의 노동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뿐만 아니라

체촌과 가봉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소소한 커뮤니이션의 즐거움도 있었지요.

즉, 과거의 소비는 옷을 맞추던 과일을 사던

이웃들과의 커뮤니케이션과 친밀한 관계가 거래의 기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이상적인 ‘패턴’으로 무장한 기성복들이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함으로 무장하여 양복점들을 몰아내었고

그 결과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상적인 패턴이

이상적이지 않은 자신의 몸을 맞춰야만 하지요.

더군다나 내 체형의 문제점과 피부색에 맞는 원단의 색과

내가 고른 원단의 차이에 대해 전문적인 조언을 해줄

가까운 이웃도 잃게 된 것입니다.

..

이처럼 이형이질적인 것, 다양성 아래 번거롭고 귀찮은 것은

근대화의 과정에 해가 된다는 획일적 이성의 계몽아래서

우리는 ‘동형동질화 과정’을 인간을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적 이성을 빙자한 통제의 욕망은

결국 역사의 주체인 인간을 오히려 역사에서 소외시키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봉사자로 타락시키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 결과 화폐 또한 인간의 삶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현재의 신용화폐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존재하게 되었지요.

..

사실 우리는 편리함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과거의 소중한 것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의 사탕발림에 속아

과거의 소중한 것들을 내팽개친 것입니다.

..

의학의 발달과 교통의 발달, 편리해진 현대인의 삶이

우리가 잃어버린 자생적인 시장과 복잡하지만 활기 넘치는 시장,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금속화폐의 추억을

완벽히 보상해 줄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다가가고 있는 것이

편리함이 주는 완벽한 게으름의 세상이 아니라

아무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절벽이라면,

그 때는 누구에 욕할지 그 대상을 찾을 여유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100년간 새로운 개념의 전체주의의 씨를 뿌려왔으며

편안함에 젖어 내일 없이 오늘을 즐기며 사는 대중들이 깨어나지 않는 한

결국 과거보다 진일보한 새로운 전체주의의 악령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

반면 우리가 자생적인 도시와 시장 기능,

그리고 권력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았던 건강한 화폐에 대한 기억을 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온 거대한 획일적 문명의 붕괴는

오히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갑갑한 껍질이 깨어지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즉, 붕괴가 아니라 새로운 국면 전환이 되는 것이지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미기(여수) | 작성시간 13.05.16 저는 비빔밥님 이글을 읽고.. 절 수탈의 대상으로 여기는 조직에 저항하여 행동에 옮겼습니다. 권리는 투쟁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기에 상처가 남을 지언정 함부로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고 유린하는 조직에 맞서 머리를 빳빳이 세우며 관련 법률에 의지하여 제 권리를 찾기위해 행동하는데 님의 글이 용기를 주었습니다.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비빔밥(경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5.21 앗!! 미기님! 뭔지 모르겠지만 매우 의미있는 일을 실행하신 것 같네요..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작성자자스민혁명(서울) | 작성시간 13.06.04 오늘에야 이글을 읽었네요. 제겐 매우 집중을 요하는 방대한 스케일의 글입니다.
    정치,사회,역사,철학,경제 종횡무진으로 누비시는 바람에 쫒아가기 바빴네요.
  • 답댓글 작성자자스민혁명(서울) | 작성시간 13.06.04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것들을 명확하게 밝혀주십니다.
    더 많은 사유와 공부로 귀한 글들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비빔밥(경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6.15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내용이 지나치게 철학적이라 올릴까 말까 고민도 많이했습니다만
    이 글을 다른 제 글의 기본 베이스가 되는 내용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게도 매우 중요한 글이지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