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원리강론

유튜브판/전편(원리강론 1시간용)

작성자훈독왕|작성시간19.03.21|조회수69 목록 댓글 0

원리강론 1시간용 - 전편



전편


총  서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 치고 있다. 그 행복은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느끼게 된다. 인간에게는 선의 욕망을 성취하려는 본심의 지향성과 악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사심의 지향성이 있다. 이것이 인간의 모순성이며, 따라서 인간은 파멸상태에 놓여 있다. 인간의 이러한 파멸상태를 기독교에서는 타락이라고 한다.

 

인간의 무지

인간의 타락을 지적인 면에서 본다면, 인간이 무지에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마음과 몸의 내외 양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지에도 내적인 무지와 외적인 무지가 있다. 내적인 무지에서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종교이다. 외적인 무지에서 외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과학이다. 그것들이 역사과정에 있어서는 서로 상충하여 왔으나 인간이 그 양면의 무지를 완전히 극복하여 본심이 요구하는 선의 목적을 이루자면,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주는 새 진리가 나와야 한다.

 

새 진리의 사명

역사 이래의 모든 주의, 사상, 종교를 하나의 길로 통일시킬 수 있는 진리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 부부의 통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타락인간을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진리여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이 땅 위에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셨으니, 그 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이시다.

  

전  편

 

창조원리


인생과 우주에 관한 근본문제는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으로 계시는가 하는 것을 모르고서는 풀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신성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신성은 피조세계를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다. 작품을 보아 작자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것같이, 피조만물을 보아서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다.(롬1:22)

 

피조세계에 간직되어 있는 공통사실

피조세계에 간직되어 있는 공통사실을 찾아보기로 하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사이에서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외형과 내성을 갖추고 있으며, 외형은 보이지 않는 내성을 닮아 난 것이다. 내성을 성상이라 하고 외형을 형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틀어서 이성성상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이성성상

삼라만상의 제1원인되신 하나님도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로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제1원인으로서, 그 모든 것들의 주체적인 성상과 형상을 갖추고 있다. 그 주체적인 성상과 형상을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형상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인 동시에 본성상적 남성과 본형상적 여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며 피조세계에 대하여는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로 계신다.

 

피조세계와의 관계 

피조세계는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창조원리에 의하여 상징적 또는 형상적인 실체로 분립된 개성 진리체로서 구성되어 있는 하나님의 실체대상이다.

 

만유원력(萬有原力)

만유원력은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영원, 자존, 절대자로 계시기 위한 근본적인 기대이다. 또 이것은 피조물이 존재하기 위한 모든 힘의 근본이기도 하다.

 

수수작용(授受作用)

모든 존재의 주체와 대상이 만유원력에 의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잘 주고 잘 받으면, 그 존재를 위한 모든 힘 즉 생존, 번식, 작용 등을 위한 힘을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힘을 발생케 하는 작용을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

하나님을 정으로 하여 그로부터 분립되었다가 다시 합성 일체화하는 작용을 정 분 합작용이라고 한다.

 

3대상목적(三對象目的) 

정분합작용에 의한 정(하나님)과 주체와 대상과 합성체가 제각기 주체의 입장을 취할 때에는, 각각 나머지 다른 것들을 대상으로 세워 3대상기준을 조성하여 서로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주체들을 중심으로 각각 3대상목적을 완성하게 된다.

 

4위기대(四位基臺) 

정(하나님)을 중심하고 이성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주체와 대상과 그의 합성체가 각각 3대상목적을 완성하면 사위기대를 조성하게 된다. 사위기대는 하나님의 영원한 창조목적을 완성한 선의 근본적인 기대이다.

 

창조목적(創造目的)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중심한 사위기대를 완성하고 3대 축복(창1:28)의 말씀을 이루어 천국을 이룩함으로써 선의 목적을 완성한 것을 보시고 기쁨을 누리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3대 축복(三大祝福) 

하나님의 제1축복은 개성을 완성하는 데 있다. 개성을 완성하려면,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대상으로 분립된 마음과 몸이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개체)함으로서 하나님을 중심한 개체적인 4위 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제2축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성 완성한 아담과 해와가 부부가 되어 자녀를 번식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적인 4위 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제3축복은 만물세계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 완성을 의미하며, 인간과 만물이 합성일체화(피조세계)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주관적인 4위 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피조세계의 창조과정 

창세기 1장에 있는 천지창조 완료하기까지의 6일이란, 일출 일몰의 횟수로 계산되는 6일이 아니라, 창조과정의 여섯 단계의 기간을 표시한 것이다. 이것은 피조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각 개성체가 완성되는 데 있어서도 어느 만큼의 기간이 소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피조물의 성장기간 

피조물의 성장기간은 소생기, 장성기, 완성기의 질서적 3단계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성장기에 있을 때에는 간접적인 주관을 하시므로, 이 기간을 간접 주관권 또는 원리결과 주관권이라고 한다. 만물은 원리자체의 주관성 또는 자율성에 의하여 성장기간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한다. 그러나 인간은 여기에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면서 이 기간을 경과하여 완성한다.

 

무형실체세계와 유형실체세계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인간을 본으로 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피조세계에는 몸과 같은 유형실체세계와 마음과 같은 무형실체세계가 있다. 이 두 세계를 합친 것을 천주라고 부른다. 인간이 육신을 벗으면 그 영인체는 무형실체세계에 가서 영주한다.

 

 타락론

이제까지 죄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기독교 신도들만이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죄의 뿌리가 된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어 왔을 뿐이다. 그들은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 어떠한 나무의 열매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성경의 많은 주요한 부분이 상징이나 비유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선악과는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이것을 해명하기 위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함께 있었다고 하는 생명나무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보자(창2:9)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생명나무는 바로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이다. 그것은 결국 완성한 아담을 비유한 말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한 그 나무는 창조이상을 완성한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완성한 해와를 비유한 말이다.

 

뱀의 정체 

해와를 꼬여서 범죄케 한 것은 뱀이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창3:4-5) 뱀으로 비유한 이 영물은 원래 선을 목적으로 창조 되었던 어떠한 존재인데 타락되어 사탄이 되었다. 이 뱀은 천사를 비유한 것이다.(벧후2:4)

 

천사의 타락과 인간의 타락

유다서 1장 6-7절을 보면 천사가 간음으로 타락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3장 7절을 보면 아담과 해와가 하체로 범죄 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인간과 천사와의 사이에 행음관계가 성립되었으리라는 것을 긍정할 수 있다.

 

선악과(善惡果) 

선악과는 해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탄을 중심한 사랑에 의하여 서로 혈연관계를 맺어 악의 자녀를 번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죄의 뿌리는 인간시조가 뱀으로 표시된 천사와 불륜한 혈연관계를 맺은데 있다.

 

하나님이 인간 조상의 타락행위를 간섭치 않으신 이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인간 조상의 타락행위를 모르셨을 리가 없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간섭하여 막지 않으셨던가?

 

1. 창조원리의 절대성과 완전 무결성을 위하여

2. 하나님만이 창조주로 계시기 위하여

3. 인간을 만물의 주관위에 세우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 시조의 타락행위를 간섭치 않으셨던 것이다.

 

인류역사 종말론

 

말세의 의의 

타락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말세가 오게 된다. 사탄주권의 죄악세계가 메시아의 강림을 전환점으로 하여, 하나님주권의 창조이상세계에로 교체되는 시대를 말세라고 한다. 따라서 말세는 지상지옥이 지상천국으로 바꿔지는 때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는 기독교 신도들이 믿어 온 대로의 천변지이가 일어나는 공포의 때가 아니고, 기쁨의 한 날이 실현되는 때인 것이다. 현세가 바로 말세다.

 

말세의 징조 

베드로후서 3장 12절에 말세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야고보서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요라고 한 말씀에 의하여 불 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그것은 곧 말씀 심판임을 알 수 있다.

 

말세와 새 진리와 우리의 자세 

하나님은 타락으로 인하여 무지에 빠진 인간을 신령과 진리로써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여 나아가는 섭리를 하신다. 신령과 진리는 유일하고 영원불변하지만, 무지한 상태로부터 복귀되어 나아가는 인간에게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나 방법은 시대를 따라 달리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성인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고차적인 내용과 과학적인 표현 방법에 의한 것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새 진리라고 부른다.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십자가에 의한 구원섭리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목적은 지상에 천국을 건설 하시려는 데 있었다. 그러면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모든 성도들이 창조본성(완성인간)을 복귀함으로써 지상천국을 이루게 되었는가?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일체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속죄와 기도의 신앙생활이 필요하며, 자식에게 원죄를 유전하고 있다. 그것은 창조본성을 완전히 복귀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의 한계와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여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살해되었으므로 신도들의 육적 구원은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십자가 대속의 부활로 영적 구원의 기대를 완성하여 영적 구원의 혜택만을 받게 된다. 따라서 예수님은 영육 아우른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지상에 재림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예정이었는가? 성경상에 나타난 사도들의 언행을 보면, 예수님의 죽음을 분개하고 서러워했다.(행7:51-53) 하나님의 섭리로 보면, 이스라엘 선민을 부르시어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셨다. 예수님 자신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메시아로 믿을 수 있도록 언행 하셨다는 것을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요6:29, 마23:37, 요10:38)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의 결과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 요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아의 강림에 앞서 엘리야를 보내마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엘리야의 재림을 갈망해 왔다. 세례 요한이 바로 재림한 엘리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증언이었다.(마17:13, 마11:14)

 

세례 요한의 불신

당시의 제사장이나 전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을 숭경하던 마음은 그를 메시아로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눅3:15) 그러나 끝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주장한 세례 요한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무지는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주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 길을 가게 된 큰 요인이 세례 요한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활론(復活論)

 

부활은 다시 산다는 뜻이다.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은 죽었기 때문이다. 죽었다는 것은 타락으로 인한 죽음을 말한다. 타락으로 인한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사탄주관권 내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의 의의

부활은 인간이 타락으로 초래된 죽음 즉 사탄주관 권내에서 하나님의 직접주관 권내로 복귀되어 나아가는 그 과정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활섭리는 어떻게 하시는가? 

부활섭리는 복귀섭리이므로 재창조섭리이다. 따라서 부활섭리는 창조원리에 의하여 섭리하신다. 첫째로 후대의 인간들은, 그 이전의 선지선열들이 쌓아 올린 심정적인 기대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게 된다. 둘째로 부활섭리를 위한 말씀을, 인간이 자신의 책임분담으로서 믿고 실천해야만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셋째로 영인체의 부활도 지상의 육신생활을 중심하고서만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넷째로 섭리기간의 질서적인 3단계를 거쳐서야 완성하게 되어 있다.

 

예정론(豫定論)

 

예정설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혼란을 일으켜 왔다. 성서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긍정)에 의하여 되는 것으로서 해석되는 성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정설을 부정할 수 있는 성서적인 근거도 많이 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가 원리로써는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뜻에 대한 예정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루지 못한 창조목적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뜻은 곧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유일하고 영원불변하신 절대자이시므로 그 뜻도 유일하고 영원불변하며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다.

 

뜻 성사에 대한 예정과 인간에 대한 예정

복귀섭리의 뜻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관여할 수 없으나, 그 뜻 성사에는 인간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뜻의 성사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95%의 책임분담에, 중심인물(인간)이 담당해야 할 5%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어서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정하신다. 그러므로 뜻 성사에 대한 예정은 상대적이고 인간에 대한 예정도 상대적이다.

 

예정설을 세워주는 성구해명 

로마서 8장29-30절에 하나님은 미리 아신 사람을 미리 정하사, 미리 정하신 이를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를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신 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고, 그 인물은 자기의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도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도록(뜻 성사) 예정되는 것이다.

 

기독론(基督論)

 

기독론에서는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와 성신과의 관계, 예수와 성신과 타락인간과의 관계, 중생과 삼위일체 등 기독론에 관한 제 문제를 다루게 된다.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의 가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조본연의 인간의 가치가 어떠한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첫째, 하나님적인 가치를 가지게 된다. 둘째, 우주 간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셋째, 천주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과 예수님 

예수님이 지니신 가치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완성한 남성이 가지는 가치 이상의 것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오신 분이시다.(딤전2:5)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인가?

빌립이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였을 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라고 대답하셨다. 이러한 성구에 의하여 많은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완성한 인간으로서 하나님과 일체이시기 때문에, 그의 신성으로 보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으나 하나님 자신이 될 수는 없다. 몸을 제2의 마음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몸이 마음 그 자체는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제2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하나님 자신이 될 수는 없다.

 

중생론과 삼위일체론 

예수님은 중생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3:3) 인간은 왜 중생해야 되는 것인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인류의 악의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악의 자녀들을 번식하였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들은 원죄가 없는 선의 자녀로서 두 번 태어나야 한다. 예수님은 타락한 자녀들을 원죄가 없는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주시기 위하여 참 아버지로 오신 분이고, 성신은 참어머니로 오신 분이다.

 

삼위일체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합성일체화함으로써 4위 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이때에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일체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삼위일체다.

 

영적 삼위일체와 실체적 삼위일체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을 중심한 영적 삼위일체를 이룸으로써 영적 참부모의 사명만을 하시었다. 예수님(재림주)은 하나님을 중심한 실체적인 삼위일체(참어머니)를 이루시어 영육 아우른 참 부모가 되심으로써 타락인간을 영육 아울러 중생케 하시어 원죄를 청산하고 실체적인 삼위일체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시게 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