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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세상사는 수다

순서 정하기

작성자바른세상|작성시간20.09.01|조회수115 목록 댓글 2
"오늘은 내가 앞자리~”라고 말하며 민경이가 재빠르게 앞자리 조수석에 앉는다.
“왜 언니만 매번 앞자리에 앉는거야~ 오늘은 홀수날인데~ 언니 너무해~ 언니 싫어~”
“누가 어디 않든지 뭐가 그리 중요해~ 너희들끼리 자리 순서 잘 정해봐~” 난 이렇게 언성을 조금 높여 말한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우리집의 숙제다. 차를 탈 때마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언니 싫어~”라는 말이 추가 되었으니 반 걸음 쯤 더 나간 것이다. 사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우리 공주들에게는 특별한 것 같다. 사실 공주들의 나이 때는 사소한 것들로 많이 싸운다. 나도 어릴 때 동생과 사소한 것들로 많이 싸웠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 우리들에게 했던 푸념섞인 잔소리를 지금 내가 우리 공주들에게 할 뿐인 것이다. 이 나이 때는 이런 문제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사소한 것에 기분이 좋아지고 사소한 것에 기분이 나빠지고 한다. 어찌보면 그게 이 나이 때의 정상적인 행동인 것 같다. 그 당시 우리 형제는 열심히 싸웠고, 외갓집에 가서도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당시 많이 싸우는 우리형제를 향해 외갓집에 오지말라고 말하시던 외할머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잠시 스쳐간다. 작은 추억이지만 왠지 가벼운 미소가 내 얼굴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런 싸움의 시간이 지나고도 우리 형제는 평범하게 자랐으니 우리 공주들도 아주 평범하게 잘 자라고 있는 듯 하다.

요즘은 이 순서 정하기가 좀 더 발전하여 더 많은 부분으로 확장되어 말을 한다.
“오늘은 갈 때, 올 때, 그리고 집에 와서 씻는 것까지 내가 먼저~”오늘도 민경이는 잽싸다.
“언니 그런게 어디 있어~ 혼자 다 먼저 하면 나는 언제 먼저해~ 아~ 언니 진짜로 너무해~”
한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2부제를 실시했다. 마침 우리 공주들은 3살 터울이라 민경이는 홀수년에 민채는 짝수년에 태어났다. 그래서 홀수날은 민경이가 앞에 앉고 짝수날은 민채가 앞에 앉도록 했다. 하지만 엄마랑 있는 것이 좋은 민채는 2부제와 관계 없이 대부분 뒷좌석에 앉곤 했다. 그러다가 민경이가 혹시나 짝수날에 앞자리를 빼앗길까봐 날짜에 관계 없이 먼저 선수를 치면 민채는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 이런 말이 없는 시기에는 둘 사이에 자연스레 민채는 뒷좌석, 민경이는 앞좌석에 앉았다. 속담중 “하던 것도 멍석 펴 놓으면 안 한다”는 말처럼 아무말 없이 그냥 앉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욕심을 부리고 하면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일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리 공주들은 참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 싸움의 순간순간은 나도 아내도 짜증이 나서 공주들을 혼내면서 말을 하지만 속마음은 다를 때도 많다. 그리고 한 번만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자매들의 이런 다툼은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다행히 공주들은 싸우다가 또 이내 잘 논다. 우리가 언제 싸웠냐는 듯이~ 이렇듯 우리 공주들도 우리 부부도 모두 금방 잊어버리니 이게 또 가족이다. 마음속에 섭섭함을 쌓아두지 않으니 그게 또 가족이다. 이런 속에서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 조금씩 더 무르익어 간다. 어쩌면 싸우니 기억에 남고, 싸우니 정이 더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게 쌓여 자산이 되니 우린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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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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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단잠 | 작성시간 20.09.04 멀미해서 앞자리는 제 차지라 뒤에서 애들은 다투기도 하고 ㅋㅋ
  • 답댓글 작성자바른세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9.07 ㅋㅋㅋ
    그것도 재미 있는 일이 많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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