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갑사에 상사화
낭독-이의선
거룩한 분노는 종교 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 논개)
불갑사에 상사화가 만개했다.전국 최대 상사화 군락지에 들어선 순간 이 시가 왜 떠오른 것은 무슨 연유일까? 상사화의 그 진한 붉은 색깔이 내 망막에 맺힐 때 그 붉음은 어디에 비할 수가 없었다. 순간 양귀비꽃이 생각나자 상사화의 붉음은 논개의 마음으로 연결되었다. 그렇다,지금 불갑사의 상사화는 양귀비꽃보다 붉고, 논개의 마음 같은 처절함의 절정이다.
절과 상사화?무슨 인연이 있는 것인가. 이럴 때는 보통 설화가 있는 법. 찾아보니 아닌 것도 아니라 산사의 상사화에는 여러 설화 버전이 있다. 그중에서 넘버 원은 이런 것이다. 옛날 한 여인이 절에 가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탑돌이를 하였다. 한 젊은 스님이 그 여인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말도 못하고 애만 태우다가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떴다. 이듬해 그 스님의 무덤 위에 꽃이 하나 피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상사화라 불렀다.
상사화(想思花).꽃의 이름에 상사병의 ‘상사’가 들어가니 심상치 않다.꽃말 자체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입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그리 붙여졌다고 한다. 정말 자세히 보니 수만 송이 상사화가 꽃만 피었지 잎이 없다. 녹색의 긴 순은 각각 붉은 왕관을 쓰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불갑사의 상사화의 정식 명칭은 순 우리말로 꽃무릇, 한자로 석산(石蒜)이다. 꽃무릇은 상사화속(屬)에 속하니‘붉은 상사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불갑사 상사화 축제는 매년 9월 중순에 열흘 정도 개최된다. 이 때가 되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붉은 꽃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만추의 계절 내장사 단풍놀이가 부럽지 않다.이곳에서 잠시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꽃 상사화 속에서 옛 추억을 소환해 보고, 현실로 돌아와 가족들과 30여 분 떨어진 법성포에 가서 굴비정식을 먹는 것도 한 번 쯤 해볼만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