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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방

뇌려타곤(懶驢駞坤)< 5 부> -138

작성자눈동자|작성시간24.04.26|조회수173 목록 댓글 12

과거의 생각에 사로 잡혀 있던 왕질악은 눈앞에 보이는 넓고 푸른 동정호를 바라보았다. 많은 수의 배들이 멀리 동정호의 한 가운데에 보이는 군산이라는 섬으로 가고 있었다. 왕질악은 배를 타고 군산에서 멀어져 악양으로 가는 중이었다. 
운룡회의 계획대로 무림인들이 동정호의 한 가운데 있는 군산으로 몰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왕대인, 도착했습니다." 
악양루의 점소이 장팔이 노를 내려놓으면서 말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왕질악은 배에서 내려 나루터와 연결되어 있는 악양루의 화려한 문안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다시 옛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꼬마야, 여기서 뭐하니?" 
산 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을 때였다. 갑자기 들려온 사람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을 때 소년이 본 것은, 한 마리의 커다란 호랑이를 깔고 앉아 있는 한 명의 늙은 거지였다.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말을 하면서 소년은 도망칠 기회만을 엿보기 시작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소년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고 있는 아주 위험한 순간이었다. 
"나? 하하, 지나가는 거지야."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늙은 거지가 안심하라는 듯 말했지만, 산중의 왕이라 불리는 호랑이를 깔고 앉아 있는 늙은 거지는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전, 여기서 자는 중이었어요. 제 잠자리가 탐이 나시면 여기서 주무세요. 전 다른 곳에 가서 잘 테니--."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소년은 옆으로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이 휘영청 떠 있던 달 밝은 밤이었다. 깊은 밤이었지만 환한 달빛이 온 세상을 비춰지고 있기에 소년은 말을 걸어온 늙은 거지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호랑이를 깔고 앉아 있고 한 손에는 잔뜩 피가 묻어 있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널 해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니. 그래 이름이 무엇이냐?" 
도망치려는 소년을 향해 늙은 거지는 도망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늙은 거지의 말은 소년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아무도 소년을 향해 이름 같은 것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거지 아이로 취급받았을 뿐, 사람 대접이란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소년이었다. 
"이름 같은 건 없는데요." 
소년은 지저분한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그래?" 
늙은 거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것이냐?" 
"그냥 대충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살았는데요." 
소년의 대답은 늙은 거지를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놀란 얼굴로 잠시 소년을 바라보던 거지는 바로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왔다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 생각이냐?" 
"지금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무슨 방법이 있어요?" 
"하긴--. 그래 여기서 어디로 갈 작정이냐?" 
"몰라요. 대충 밥을 굶지 않을 수 있으면 어디로든 갈 생각이에요." 
"그럼 나하고 같이 돌아다닐래? 내가 이래봬도 힘깨나 쓰는 사람이니 나와 같이 다니면 짐승들에게 당할 일은 없을 게다." 
그렇게 늙은 거지와 함께 돌아다니게 되면서 소년은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잡혀 먹을 일은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거기에다 굶는 일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때로는 사흘에 한끼의 식사도 하기 힘들었던 처지에서 날마다 먹을 것이 생겼으니까. 
소년은 늙은 거지와 함께 천하를 일년 이상 떠돌다 개봉이라는 땅에 들어서게 되면서 선택을 해야 했다. 
"아이야, 넌 평생 거지로 살 수 있겠느냐?" 
늙은 거지가 개봉 땅에 들어서면서 던진 질문이었다. 
"평생 구걸만 하다 살다 죽으라고요?" 
"그럼 넌 장차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냐?" 
"아직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그래? 그럼 질문을 달리해 보자. 넌 진흙탕을 굴러서라도 살 수 있다면 진흙탕을 구르겠느냐?" 
소년은 어이없는 얼굴이 되어 늙은 거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하고 한 일년 같이 다녀 보았으니 아실 것 아니에요? 땅바닥을 굴러서라도 살 수 있다면 언제든지 굴러야지요. 저 같이 힘없고 배운 것 없는 무식한 놈이 살아 남으려면 무슨 짓이든 못 하겠어요?" 
열 살이 갓 넘은 나이였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이리 저리 구걸하며 굴러다니는 삶을 살아온 소년이었다. 혹독한 세상의 인심을 실컷 맛 본 소년에게 땅바닥을 구르라는 이야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음--, 확실히 --, 좋아! 그렇다면 넌 준비가 되었다. 지금까지 널 데리고 일년 이상 같이 천하를 떠돌면서 너를 살핀 것은 네가 내 제자가 될만한 아이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너의 행동 거지를 보면 거지가 천성이야, 그러니 내 제자가 되거라." 
소년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고아신세인 소년이었지만 평생 거지가 되어 살라니----? 
"가자." 
늙은 거지는 대답도 필요없다는 듯 손을 잡아끌고 간 곳은 개방이라 불리는 거지들의 소굴이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혼자서 돌아다니다간 굶어 죽던지 누군가의 식량이 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소년이었다. 거지 무리에 섞여서라도 살아 남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게다가 거지 생활이라면 지금 까지 해 오던 것이니 잘 적응해서 그곳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히 실수였다. 개방의 거지는 거지라고 불릴 뿐 거지가 아니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소년이었다. 
개봉에 있는 거지들이 잔뜩 모인 관제묘에서 소년은 정식으로 개방 장로 협개 왕소팔의 제자가 되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사제지연의 시작이 구배지례라는 것 또한 그 때 처음으로 알게 된 소년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거지가 무슨 의식이 필요하고 무슨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가지만 개방의 거지가 되기 위해서는 구걸을 할 때에도 규칙을 따라야 하고, 무공이라는 것 또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게 된 소년이었다. 
협개 왕소팔에게 아홉 차례 절을 한 후 소년은 무릎을 끓고 앉았다.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던 왕소팔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름도 없이 그저 꼬마라고 불리던 아이에게 이름을 주는 일이었다. 
"산처럼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 네가 오늘 가입하게 된 개방은 천하에서 가장 의로운 문파이다. 부귀도 명예도 바라지 않고 오직 의(義) 하나만을 생각하면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부터 네 이름은 질악(秩岳)이다. 너는 성도 없으니 내 성인 왕을 주마." 
"그럼 이제부터 제 이름은 왕질악이 되는 것입니까?" 
"그래. 이제 너의 이름은 왕질악이다. 부디 이름처럼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 
소년은 그렇게 열 한 살의 어느 여름날 왕질악이라는 이름을 얻고 협개 왕소팔의 제자가 되었다. 

백초당에 머물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 한밤중이었다. 
방소구는 조용히 침상에서 일어났다. 한번 잠들면 결코 쉽게 깨어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소구였기에 취하와 취앵은 안심하고 잠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두 하녀의 모습을 보면서 소구의 얼굴에 희심의 미소가 감돌았다. 이대로 조용히 떠난다면 당분간 이 두 하녀에게 시달리지 않게 된다는 생각에 즐거워지는 소구였다. 오늘 소구에게 필요한 정보를 일러주었기에 얌전히 그녀들과 같은 침상에 올랐지만 그뿐이었다. 귀신 몰골을 한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 생기던 욕정도 사라지는 판이었다. 그녀들이 사람이 되려면 정사(情事)라는 행위와 함께 그녀들이 아까 낮에 말해준 무슨 음양교환천락대법인지 뭔지 하는 괴상망측한 내공을 운기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도저히 그녀들과 정사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소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각 사부가 한기 따위에 져서 죽어 있다고는 생각 할 수 없어. 사부도 형처럼 어쩌면 동면 상태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살금살금 걸어서 문 앞에 이른 소구의 손이 방문의 문고리를 잡는 순간 뒤에서 한마디의 말이 들려왔다. 
"어디가요, 도련님?" 
무표정에 무감각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취하와 취앵이 언제 깨어났는지 소구의 뒤에 서 있었다. 
"어? 깨어났어? 잠시 뒷간에 좀 가려고---." 
어물거리면서 소구가 대답했다. 
"그런데 왜 옷을 다 입고 있어요? 돈주머니는 왜 차고 있고요?" 
취앵이 질문을 던지고 소구는 대답할 수 없었다. 
"혼자 몰래 북해로 가려고요? 북해가 얼마나 넓은 곳인데---, 혼자서 빙궁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어요?" 
취하의 입에서 현실적인 말이 흘러나오면서 그대로 방 밖으로 도망치려고 하던 소구의 몸은 그대로 정지했다. 북해 어디에 빙궁이 있는지 알아야 그곳을 찾아가던 말던 할 것이 아니겠는가? 
"알려줘." 
소구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왔지만 취하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에 옆에 서 있는 취앵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위로 올라가 있었다. 
"도련님은 저희한테 해 줄 일이 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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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지키미 | 작성시간 24.04.27 즐감하고 감니다
  • 작성자대보름49 | 작성시간 24.04.28 즐독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작성자다락방 | 작성시간 24.04.28 감사합니다
  • 작성자유수행 | 작성시간 24.04.28 감사
  • 작성자나또한 | 작성시간 24.04.29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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