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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소설방

기인총사 2권 13장-1

작성자눈동자|작성시간24.05.14|조회수288 목록 댓글 21

13장 두 개의 얼굴

신목부(神木府)의 밀실이다.
"오늘 밤 그녀를 구출해 낼 것이오."
천우는 담담히 말했다.
그 말에 하순영은 안색이 변했다.
"연령,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알아냈단 말입니까?"
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녀는 중대한 관건을 쥐고 있소. 그녀를 구해 내면 상황은 급전될 것이라 생각하오.""그럴 리가...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아내셨단 말입니까?""후후... 믿지 못하겠소?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소. 원주는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하순영은 더듬거렸다.
"물론입니다, 허허... 소도주님의 놀라운 지혜에는 벌써부터 감복하고 있었습니다.""그렇다면 이런 일도 내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아야 하오.""그렇지만... 부도주가 그렇게 쉽사리 그 아이가 있는 곳을 드러낼 리가......."천우는 히죽 웃었다.
"원주는 마치 나보다 그를 더 신임하는 듯한 말투구려?"하순영은 펄쩍 뛰었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노신은 단지 너무 놀라서......."천우는 담담히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오. 삼안수사는 정말 무서운 인물이오. 적어도 그의 측근들에는 말이오."하순영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이어 그는 고개를 들며 궁금한 듯 물었다.
"하오면 어떻게 그 아이를 구출해 내실 생각입니까? 그 아이가 있는 곳이라면 필시 삼엄한 경비가 있을 텐데......."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점을 소홀히 할 순 없소. 또한 그 일은 너무도 중대한 일이므로 우리측 지지자들을 동원할 생각은 없소.""......?"
하순영의 노안에 의아로움이 어렸다.
"왜냐면 나는 그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오. 만약 누설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오.""그러시다면... 대체......."
하순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소도주께서 직접 혼자 그 아이를 구출하시겠단 말씀입니까? 그건 너무도 위험합니다."천우는 눈을 찡긋했다.
"나는 그렇게 어리석진 않소. 내가 비록 무공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결코 한 손이 많은 손을 당할 순 없다는 진리를 모를 리가 있겠소?""그러시면......?"
하순영은 도대체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천우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후후...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단 말이오? 이곳에는 믿을 만한 귀여운 전사(戰士)들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인원은 필요 없소. 오직 고도로 훈련된 전문적인 고수 십여 명이면 되는 것이오. 그것도 인간병기화된 투지만만한 젊은 고수들 말이오. 알고 보니 이곳에는 그런 젊은 고수가 십 이 명이나 있었소.""......!"
하순영은 흡사 쇠뭉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그는 한 동안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그럴 수가... 그렇다면 소도주께서는 그 사이 십무광사를 끌어들였단 말입니까? 그... 미친 늙인이를?"천우는 히죽 웃었다.
"뿐만 아니라 만기서군도 이제는 나의 지지자가 되었소. 실상 이번 일의 공은 그가 세운 것이었소."하순영의 얼굴은 여름 날씨처럼 흐렸다 개었다 했다. 그는 도무지 천우의 속내를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그 고집불통의 두 괴물을 소도주께서 이토록 빨리 끌어들이셨다니......."이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삼안수사마저 포기한 괴물들을......."
"하하하... 그럼 눈으로 확인시켜 줘야 믿겠구료."
천우는 호탕하게 웃은 다음 손을 들어올렸다.
"두 분 그만 들어와 하원주의 마음을 가라앉혀 드리는 것이 어떻겠소?"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허공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허허허허... 소도주님의 말씀은 허언이 아니외다."
"핫핫핫핫......!"
두 줄기 웃음소리와 함께 휘장이 걷히면서 두 명의 대조적인 인물이 들어섰다. 그 중 한 명은 언뜻 보면 마치 미치광이처럼 보였다. 나이는 오순 가량 되어 보였으며 머리칼은 붕두난발이었다. 옷은 넝마나 다름없이 너덜거리는데다가 머리는 새끼줄로 질끈 동여매었고 발은 그대로 맨발이었다.
얼굴은 사각에 가까웠으며 고리눈에 말코, 그리고 하마같이 큰 입에다 이빨은 싯누랬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게 만드는 용모였다. 하나 눈만은 마주 직시할 수 없을 정도로 번쩍거리고 있었다.
"핫핫핫...! 하원주, 안녕하시었소? 당신들의 그 썩어빠진 원로원에서는 요즘 장기나 두고 있다는데 그러다간 늙은 뼉다귀들이 녹이 슬고 말겠소. 어떻소? 나와 한 번 놀아 보는 것이?"십무광사 태을부(太乙夫)였다. 그는 껄껄 웃으며 비무(備武)라도 할 양으로 자랑스레 팔뚝을 걷어붙여 보였다. 하나 드러난 그의 팔뚝은 우람하기는커녕 앙상하게 뼈만 불거져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 그들의 출현에 멍청한 표정을 짓던 하순영은 곧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태을부, 이 늙은이는 이제 늙었소. 아마 당신과 놀다간 뼈도 못추릴 것 같구려."그 말에 태을부는 헐헐 웃었다.
금이빨(?)이 유난히 번들거렸다. 그가 들어서자 방안에는 이상한 향기가 났다. 천우는 콧등을 벌름거리며 말했다.
"태노인, 대체 이빨은 닦고 있소?"
태을부는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 발은 씻은 지 이 년이 넘었어요 이빨은 한 달 전 깨끗이 닦았는데... 혹 소도주의 코가 잘못된 것이 아니오?"맙소사......!
하순영은 그만 그제서야 코를 움켜쥐었다.
놀람 때문에 미처 악취를 느끼지 못하다 비로소 콧등이 부러지는 듯한 심한 향기(?)를 느끼게 된 것이었다. 밀실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순영은 감탄을 연발했다.
"정말 소도주님의 재간은 하늘도 놀랄 것입니다. 그 새 이런 일들을 모두 해치우시다니... 그리고 게다가 천서원 앞에서 그렇게 기막힌 연극까지......."그는 흰 수염을 쓰다듬었다.
"허허... 정말이지 모두를 소도주께서 화를 내며 천서원의 문을 발로 차고 나오는 모습에 실패라고만 생각했었지요."천우는 히죽 웃었다.
"남을 속이려면 자신부터 속여야 하는 법이오."
하순영은 궁금한 듯 천인보에게 물었다.
"한데 삼안수사에게도 넘어가지 않은 자네가 소도주에게 굴복한 이유는 무엇인가?"천인보는 빙긋 웃었다.
"간단하오. 그 아이가 마시지 않은 차를 소도주께서 드셨기 때문이었소.""......?"
하순영이 그 말의 의미를 알리 없다. 그는 더욱 더 멍청해졌고 천인보와 태을부는 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하순영은 원로원에 돌아온 이후 웬일인지 안절부절하지를 못했다. 그는 방안을 서성거리면서 좀체로 안정을 하지 못했다. 무엇인가를 그는 풀지 못해 애쓰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믿어야 좋을지... 아니면......."
그는 흰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다급해진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하나 만약 사실이라면......."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어렸다. 천인보와 태을부가 소도주의 수하로 들어갔다면 앞으로 남천신도의 갈등은 더욱 깊어져 마침내 어느 한 쪽이 두 손을 들 때까지 피를 볼 것이었다. 그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어쨌든 그들 두 괴물이 이쪽에 가담한 사실만은 알려야 하지 않은가?"문득 이렇게 중얼거린 하순영은 지필묵을 꺼내더니 곧 먹을 갈아 무엇인가를 종이에 급히 휘갈겨 썼다.
글을 쓰는 순간 그의 얼굴은 전과는 딴판인 것 같았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음침하고 사이한 기운이 가득했다. 마치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이 본래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노출시키는 것 같았다.
종이에 글쓰기를 마친 하순영은 그것을 면밀히 검토한 후 종이가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여러 겹으로 접었다. 이어 그는 소매 속에 집어넣은 후 밖으로 나갔다.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주방이었고 마침 주방은 한참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점심의 내용은 여러 가지였다. 
주방 안에 원로원주 하순영이 들어서자 주방에서 일하던 세 명의 요리사는 모두 놀라 그에게 허리를 굽혔다.
"원주께서......."
하나 그는 손을 저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허허... 신경 쓰지 말게. 노부는 그저 지나다 잠시 그냥 들렀을 뿐이네."그는 주방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이미 조리된 음식은 여러 개의 운반용 선반에 나누어져 있었다. 개인의 입맛과 식성에 따라 분류된 것이었다.
하순영의 눈은 그 중 유난히 큼직한 고기만두가 놓여 있는 접시에 가 닿았다. 그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먹음직스럽군......."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쩍 그곳을 지나쳤다.
순간 아무도 눈치 못 채게 그의 손이 만두에 닿았다 회수되었다. 그 순간은 너무도 빨랐고 또한 그의 몸에 가려져 있어 볼 수조차 없었다.
"허허... 그럼 수고들 하게나."
하순영은 웃음을 흘리며 주방에서 나갔다.
"아니, 소도주께서......!"
하순영은 예고 없이 자신을 방문한 천우를 보고 당황을 금치 못했다. 주방에서 돌아와 쉬고 있는 참이었다. 웬지 평소와는 달리 그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은 후 눈을 감고 있었다. 곧 잠이 밀려들 것 같았다. 한데 막 잠이 스르르 빠져들기 직전 그는 천우의 방문을 받은 것이었다.
천우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원주께서 오수를 즐기실 줄은 몰랐소이다."
하순영은 급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계면쩍은 듯이 말했다.
"노신도 이제 늙었나 봅니다."
"하하... 그 무슨 말씀이오? 원주는 본도의 기둥인데 벌써 그런 말을 하면 쓰겠소?"천우의 낭랑한 말에 하순영은 짐짓 탐스러운 흰 수염을 쓰다듬었다.
"별 말씀을... 한데 소도주께선 무슨 일로?"
천우는 담담히 말했다.
"주방을 지나는 길에 마침 먹음직스런 음식이 있기에 원주와 함께 들려고 가져 왔소이다.""......?"
"가지고 들어오너라. 식기 전에 들어야겠다."
순간 한 소녀가 쟁반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바로 초초였다. 한데 그녀가 들고 있는 쟁반 위의 물건을 본 순간 하순영의 얼굴은 그만 하얗게 탈색되고 말았다.
"그... 그건......!"
그는 안색이 백지장이 된 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천우는 태연히 말했다.
"왜? 만두를 좋아하지 않소?"
그것은 만두였던 것이다.
"그... 그렇습니다. 노신은 만두를 별로 좋아하지 않......."천우는 쟁반 위에서 큼직한 만두를 한 개 집어들며 이상한 듯 중얼거렸다.
"거 참 기이하군. 주방 요리사의 말로는 곧장 원주가 만두를 들라 했다는데......."그는 만두를 입으로 가져갔다.
하순영의 얼굴은 보기 딱할 정도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 말투가 어떤 말투인가?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은... 부도주에게 갈 만두인데......."
천우는 이상한 듯 반문했다.
"그걸 어떻게 아시었소? 그렇잖아도 요리사가 내게 그렇게 말했소.""그건... 그가 만두를 유난히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하하... 원주는 별걸 다 알고 있구려. 그래서 나는 요리사에게 꼭 이 만두를 먹고 싶다고 했소. 그리고 그에게 갈 만두는 따로 만들라고 시켰소. 그러니 걱정 말고 이 만두를 드시는 게 어떻겠소?""무... 물론입니다."
하순영은 갑자기 식욕이 당긴 듯 손을 뻗어 쟁반 위에 쌓인 만두 중 하나를 낚아채듯 집었다. 그것을 집은 순간 그의 얼굴에는 미미하게 안도의 기색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자, 드시구려."
천우의 말에 하순영은 만두를 입으로 가져갔다. 한데 그는 그 큰 만두를 한꺼번에 입에 틀어넣어 억지로 삼키려 드는 것이 아닌가?천우가 놀란 듯했다.
"아니... 그걸 통째로 삼키려는 것이오?"
"그... 그렇... 컥!"
대답하다 사래가 들린 듯 하순영은 기침을 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입 속에 틀어넣었던 만두가 그만 애쓴 보람도 없이 토해져 나오고 말았다.
바닥에 만두조각이 흩어졌다.
"저런... 저런!"
천우는 안됐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 안된 정도가 아니라 하순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흩어진 만두조각으로 시선을 돌렸고 다음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없다......!'
이때 천우는 들고 있던 만두를 한 입 베어물고 느긋하게 맛을 음미하면서 우물거렸다.
"음... 이 만두는 유난히 맛이 있군. 한데... 음?"
그는 입을 벌려 무엇인가를 뱉어 냈다.
"이건 또 뭔가? 종이 같은데?"
천우는 손위에 놓인 잘 접은 종이 조각을 펼쳤다. 그 순간 하순영의 몰골이야말로 비참함 것이었다.
"소도주, 노신은 급한 볼일이 있어 실례를......."
그는 천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방밖으로 걸어나갔다. 아니 걸어갔다기보다는 신형을 날렸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그는 신형을 날렸으며 그 속도는 그의 평생 가장 빠른 것이었다.
하나 어찌 알았으랴?
"핫핫핫...!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오? 원주영감!"
듣기 거북할 정도로 갈라진 웃음에 무례한 말투, 그와 동시에 하순영은 콧등이 주저앉는 듯한 악취를 맡았다.
"태... 태을부... 난......."
그의 앞에 십무광사 태을부가 만두를 그 더러운 손으로 들고 한 입 우물거리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하순영은 안절부절했다. 태을부는 문득 손에 쥐고 있던 만두를 와락 움켜쥐었다.
"제기랄! 맛도 더럽게 없네. 영감, 들어갑시다."
하순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만두는 태을부의 손에서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것은 무언의 암시였다. 보통은 물렁물렁해서 으스러지기 마련인데 태을부는 가공할 내공으로 순식간에 그것을 돌처럼 굳게 만들었다가 다시 그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하순영은 뒷걸음질 쳐 도로 방안으로 밀려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지독한 구취를 느낄 수 없었다. 인간이 어떤 급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면 감각이 마비되는 것일까?방안에 들어오자 천우가 탁자 위에 종이 조각을 펼친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호... 이건 낯익은 필체인데? 그리고 이 내용은 무척 재미있군. 아! 원주, 왜 도로 들어왔소? 이것 좀 보시오."천우는 종이를 들어 하순영에게 보여 주었다. 순간 하순영은 뭐라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냅다 밖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번쩍!
흡사 뇌전 같은 속도였다. 어찌나 빨랐던지 태을부조차 그를 어쩌지 못했다. 하나 오늘은 그의 평생에 재수없는 날이었다.
그는 또 하나의 벽에 부딪쳐야만 했다.
"허허허... 원주,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오?"
촤라락!
선(扇).
공작의 깃털로 만든 부채는 부드러운 것이다. 하나 일단 그것이 펼쳐지자 무형의 강기막이 형성되었다.
펑!
"억!"
하순영은 강기막에 부딪치자 다급성과 함께 도로 퉁겨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뒤따라 만기서군 천인보가 섭선을 흔들며 들어섰다.
삼면초가의 형세 속에 하순영은 고립되었다. 스스로 천령개를 내리찍고 자결하고 싶은 순간이었으리라. 천우와 태을부, 천인보가 이룬 삼각형의 진세(?)에 갇혀 그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천우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그에게 차갑게 말했다.
"하순영, 그대는 이제 가면을 벗는 것이 좋겠다!"
"소도주......!"
"후후... 아직도 발뺌을 할 셈인가?"
천우의 입가에는 차디찬 냉소와 살기가 어렸다. 이때 천인보의 입에서도 준엄한 일갈이 터져나왔다.
"하원주, 당신은 까맣게 잊고 있었겠지만 오 년 전 이미 나는 당신의 두 개의 얼굴을 파악하고 있었소.""......!"
천인보는 질시할 것 같은 안광을 내쏘며 말을 이었다.
"기억하오? 구관사(丘官士)의 죽음을?"
하순영은 체념한 듯 일순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당시 구관사는 신목부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직책을 갖고 있었소. 따라서 그는 누구보다도 도주와 그 당시 도주 곁에 있던 호불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위인이기도 했소. 그런 그가 죽기 직전, 아니 살해되기 직전 내게 뭐라고 말했는지 아시오?"하순영의 얼굴이 흔들렸다.
"내 생각이 틀림없다면 나는 살해될 것이다. 내가 죽는다면 자네는 나의 추측을 확신해도 좋네-- 그렇게 말했소. 당시 그는 도주의 와병이 호불위의 짓이라고 확신했소. 그리고 또한 당신을 의심하였소. 그래서 그는 그것을 당신에게 발설한 후 내게 말한 것이오. 만일 자신이 죽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밀고 때문일 것이라고. 이제 알겠소? 나와 십무광사가 그 이후 오늘까지 줄곧 괴팍하게 변해 남천신도에서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고립되어 지낸 이유를?"
드디어 밝혀졌다.
만기서군과 집무광사는 사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천우에게 가담하지 않은 이유도 천우의 측근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하순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순영은 완벽한 이중(二重)의 인간이었다. 그는 줄곧 신목가의 충실한 가신(家臣) 노릇을 해 왔고 그로인해 그나마 신목가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원도원에게 중립을 지켜 줌으로써 그는 존경을 받았고 도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호불위에게 제거되지 않았단 말인가?그것을 벌써 생각해야 됐었다. 하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너무나 완벽한 연기를 해냈기 때문이었다.
천우조차도 천인보가 천서원에서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겨우 깨달았다. 
천우는 처음 남천신도에 왔을 때 보인 하순영의 그 감동적이고 듬직한 태도를 너무 믿고 있었다.
그 한 순간의 인상으로 그는 하순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경계심을 늦춘 것이었다.
"그... 그랬었군......!"
하순영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천우는 종이를 읽은 후 구겼다.
"이것으로 그대는 내게 두 번째의 큰 도움을 주게 되었소."그것은 무슨 뜻인가?
첫 번째는 그로 하여금 신목부에 안주하도록 그가 도와 준 것을 말한다. 그것이 비록 하순영의 가식이었다 하더라도 그의 행동으로 도주를 따르는 무리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 두 번째의 경우일 것이다. 
"내게는 당신 같은 자를 다루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오."천우는 손을 저었다. 그 순간 하순영은 머릿속이 텅 비는 것을 느끼며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천우는 담담하면서 차갑게 말했다.
"그를 신목부로 데려오시오."
그는 사라졌다. 그가 먼저 나가자 천인보와 태을부는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을부가 맥없이 서 있는 하순영을 향해 괴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껄껄껄......! 사람을 잘 본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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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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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암촌 | 작성시간 24.05.17 즐독 합니다!
  • 작성자지키미 | 작성시간 24.05.18 즐감하고 감니다
  • 작성자다락방 | 작성시간 24.05.18 감사합니다
  • 작성자거여 | 작성시간 24.05.22 즐감하고 갑니다.
  • 작성자초원의향수 | 작성시간 24.05.24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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