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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山公 묘소 보존의 일등공신 玉壺 趙章夏(여주)·景魯 趙重參(가주)

작성자행정 松山 조덕선|작성시간14.08.09|조회수113 목록 댓글 1

1. 西山公 묘소의 수난

 

순창 조씨 문중은 시조부터 10세(世)까지 조상의 묘 모두를 실전

고 10세(世) 西山公의 묘소만 기적적으로 실존하고 있다.

西山公의 묘소는 1416년 양주, 장흥, 일현(일명 西山)에 모셨는데

1739년, 같은 묘역안에 온릉(중종왕비. 단경황후의 묘)이 들어섰다.

西山公의 묘소(4대(代)분묘)가 능성안에 들어가면서 출입도,벌채도, 제례도 금지되어 급기야 무덤은 무너지고 비석은 쓰러지고 수풀이 우거져서 산소를 덮었다.

 

2. 西山公 묘소 보존을 위해 행차하는 임금님 어가 앞에서 읍소한

    玉壺 趙章夏(23世·(1760-1810))·여주

 

1792년 봄! 여주의 유학 조장하공은 현륭원(사도세자의 묘)참배

하기 위해 행차하시는 정조대왕의 어가 앞에서 기막힌 사정과

원통함을 읍소하고 온릉으로 인해 금지된것을 풀어줄것을 글로

올렸다. 이 간절한 호소는 임금님의 마음을 움직여 곧 윤허되고

원상회복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한분의 극진한 위선하는 마음이 온나라를 감동시키고 문중의

영원한 등불이 되어 앞을 밝히고 있다.

 

후손 : 28세(世)- 운상, 긍상, 유상, 덕상 

         29세(世)-  병춘, 병현, 병범, 병택, 병우

 

3. 西山公 묘소 보존을 위해 지성으로 위토를 마련한

    景魯 趙重參(22世·1747년생·생가는 행정)·가주

 

1793년 봄. 가주의 조중삼공은 西山公의 묘소를 복원하고 길이

보전하고자 하는 괴산 충주 종인들의 참뜻과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을 가지고 西山公의 묘소가 있는 양주, 장흥, 가마동으로

달려가서 논 13두락과 밭 하루가리를 사서 西山公의 묘소관리와

봉제사 받드는 위토로 삼았다.

西山公은 東萊公의 생가 조부이시다. 그러므로 300여년전 입양한분의 생가 조부의 묘소 관리와 제사를 받들도록 위토를 마련해준 일은 훌륭하게 잘한일이며 순창조씨 문중에서만 볼수있는 숭조

목족의 영원한 등대이시다.

 

후손 : 가주파 전체 종인

 

                                                      (행정 松山 조덕선 편집)

 

-추신-

오늘로서 나의 글을 마감한다.淳昌趙門의 "천년 역사"에 들어가

보니 우리 선조께서 후손에게 물려준 물질적 유산은 없지만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에 대한 훌륭한 유산(교훈)은 많이 남아

있어 자랑으로 여기며 또한 이것이 참된 "淳昌趙門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중한 유산을 골라내서 찬양하고 널리

알려 교훈으로 삼게 하려는 뜻에서 8회에 걸쳐 편집했으나 워낙

아는것이 없고 글재주가 없어서.......

기왕에 편집했으니 더 손질해서 영구불멸의 교훈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편집된 내용중 잘못되거나 누락된 분이

있으면 연락바랍니다. 안녕~~

                                                   2014년 08월 09일

                                                                 87세 노병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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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사무국장 조대주 | 작성시간 14.08.18 조덕선 원로 전 대종회장님! 10세손 서산공 조경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실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순창조씨 후손들이 선조들을 알아갈수 있는 귀한 자료인것 같습니다. 덕선 대부님 저희 문중과 후손들을 위해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기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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