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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조상

옥천부원군-조원길(호남파-시조 조장의 증손)

작성자사무국장 조대주|작성시간14.08.14|조회수193 목록 댓글 0

조원길(趙元吉, ? ~ ?)은 고려 말기의 문신, 정치인으로 자는 성중(聖中)이고 호는 농은(農隱)이다. 본관은 옥천. 시호는 충헌(忠獻). 문하시중 조장(趙璋)의 증손이며 조전의 아들이며, 두문동 72현의 한사람인 조유(趙瑜)의 아버지이다.

1389년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데 기여한 공로로 벽상공신 1등관에 책록되고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군되었으며, 후일 이성계조선건국에 반대하였다. 전라북도 순창군 옥천 출신.

 

생애[편집]

조원길은 고려에서 문하시중을 지낸 조장(趙璋)의 증손이며 후일 그의 영달로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광록대부 옥천부원군(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輔國光祿大夫玉川府院君)에 추증(追贈)되고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추봉조전(趙佺)의 아들이다.

1389년(창왕 2년)에 정몽주, 설장수, 1345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관직이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이르렀는데 이때 이성계·포은 정몽주·독곡 성석린·운재 설장수 등과 함께 공양왕(恭讓王)을 추대하는데 가담하였다. 그 뒤 공양왕을 추대한 공로로 추충분의익대필성극복 삼중벽상공신(推忠奮義翼戴弼成克復 三重壁上功臣) 1등관에 책록되고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1392년 7월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이씨조선을 건국하자 이성계는 그를 불렀으나 사양하였다. 이후 조원길은 고향인 순창(옥천)에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이후 조선왕조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고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그러나 뒤에 그의 후손들은 조선의 관직에 출사한다.

사후 충헌(忠獻)의 시호가 추증되었고, 전라북도 순창의 무이사(武夷祠)에 제향되었다.

사후[편집]

1735년(영조 12년) 후손 조명신(趙命臣)이 비석을 세웠다가 후일 고종때 비석을 다시 세우면서 면암 최익현이 비명을 지었다. 또한 승지 이재윤이 글씨를 쓰고, 도사 송병순이 새긴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대한민국에 와서는 그의 묘소 근처에서 묘표가 다시 발견되면서 전라북도 기념물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증조부 : 조장
  • 아버지 : 조전
  • 부인 : 옥천군부인 조씨

기타[편집]

목은, 포은, 도은, 야은과 함께 은(隱)을 호로 사용하였으나 고려3은이나 고려4은에는 포함되지 못하였다.

아들 조유(趙瑜)는 이성계조선건국에 반대하여 개경의 두문동에 들어간 두문동 72현의 한사람이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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