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무례한 겨울(1)

작성자시골버스|작성시간09.10.02|조회수535 목록 댓글 4

겨울은 무례하다. 인정머리 없고  모멸차고 예의를 모르고 염치를 모르고 경멸스럽다.

헐벗고 굶주리고 손어리고 오갈 곳없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더더욱 무례하다.

지긋지긋하던 겨울 삶은 나에게 악마의 웃음이었고 파멸의 유혹이었고 원형경기장의 네로황제였다.

 

나는 지금 중국에 와있다. 아니, 중국에서 살고 있다.  앞으로도 나의 삶은 중국에서 이어질 것이다.

아이들에게 혹은 아내에게 중국에서의 삶은 잠시 쉬어가거나 있거나 말거나 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절대가치를 지닌, 모든 것을 걸고 살아볼 만한, 그래서 고려장을 당해도 괜찮은 그런 곳이다.

 

오래 전에,

그러니까 일정시대에 할아버지께서 북경인지 천진인지를 방랑한 적이 있다.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른다. 

돌아가신 아버님 말씀으로는 큰할아버지와의 재산싸움때문에 몹시 속이 상해 집을 나간 것이라고 한다.

일정 때 공부를 많이 하셔서 고향에서는 꽤나 잘나가시던 분인데 돈이 뭐라고 그거 가지고 큰할아버지와

의가 상해서 돌아다니고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왔는데 할머니는 그나마 남아있던 전답을 보증서서 날려버리고...

집안 망할려면 잘따르던 개도 나가서는 안돌아온다더니 화끈하게 망해버렸고 알거지가 되어 고향을 떠났다. 

 

할아버지의 역마살이 나에게 끼친 것인지 늘상 돌아다닌 삶의 연속이었다. 어지간히도 돌아다녔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  많이 보고 많이 겪고 많이 당하고 많이 깨지고...

나름대로 이력이 나면 그런대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돌아다니는 장점이기도 하다.

싸움에서도 많이 맞아보면 맞는 것이 두렵지 않고 두렵지 않으면 싸우는 것이 무섭지 않다.

그래서 돌아다님이 중국에서 멎어버렸다.  혹은 모를 일이다.

아프리카 오지로 바랑메고 갈 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으로 감자심고 산다며 날아갈 지.

사람의 한 치앞  미래를 누가 겠는가?

 

겨울이야기 하다가 중국으로 엇나갔다.  그래도 이야기의 내용이 과거의 겨울과 현재의 중국으로 이어지니

반드시 엇나간 건 아니다.  그냥 실타래 이어지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제에서 내일로 오늘에서 백년 전으로

중구난방으로 낡고 찢어진 옷 여기저기 꿰메듯, 이야기가 이어질 수도 있다.

 

나의 고향은 충북과 강원도와 경북이 이어지는 경계지역이다.

그러니까, 충북 충주와 강원도 원주와 경북 영주를 정삼각형의 꼭지점으로 본다면 그 중심점에 해당한다.

지독하게도 색갈이 없고 특징도 없고 인물도 없고 자원도 없고 역사도 변변찮고 별볼일 없는 산골하고도 깡촌이다.

그러한 곳에서 나는 지독히도 가난하고 지독히도 무식하고 지독히도 못나고 지독히도 원초적이던 마을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한국에서 수도없이 보았던 중국영화 "귀주이야기(秋菊打官司- 1992년 상영)"의 배경장소만큼이나 을씨년스럽고 촌스럽고 썰렁하고 환장할만큼 어수선하고 법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인생막장들이 갈 곳없어 살림세간 몇개 들처업고 무허가 집을 짓고 살던, 그래서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호구조사나오면 '나없다 그래'라며 이불뒤집어 쓰고 숨어야 했던 그곳.

 

그곳은 무례한 겨울의 찬바람과 살을 벗겨내는 추위와 송곳으로 찌르듯 사람들의 험악한 언어폭력과 마을반장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무식한 깡패들의 무식한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어 그나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마음껏 지배하던 겨울의 그곳.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탓인지 그때의 삶이나 지금 북한에서의 삶이나 별반다르지 않아 어디에 내던져놓아도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그때의 경험이 늘 고맙다. 

 

지금도 잘난 교수질을 해대는 친구가 있다.  지식의 교만함으로 스스로 무례한 겨울의 얼음 속에 집어넣은 딱딱한 삶을 살아가는 친구이다.  이 친구는 본래 가정환경도 좋고 머리도 좋고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 초등학교부터 대학, 대학원 석사박사를 승승장구하여 30대 초반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의 유명대학에서 30대초반에 박사학위를 딴 적은 그학과가 생긴이래 처음이랜다. 

 

재수 좋은 놈은 앞으로 엎어져도 처녀 배때기에 엎어지고.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이 인간은 돈많은 아버지가 계시니 아무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었고, 대학원다닐 때는 중학교교사인 아내가 학비를 대주어 박사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비교가 안될 더 좋은 환경에 사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에 비해 이친구는 그랬다.

 

초등학교부터 그랬지만, 고등학교 내내 아르바이트, 대학내내 아르바이트, 대학원 내내 아르바이트... 공부를 죽기살기로 한 덕택에 장학금은 악착같이 타고 다녔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것이었다.  그랬는데도 이친구는 늘 울상이었고 우는 얼굴이었고 우울한 표정이었고 그래서 매일 툴툴거리며 지냈고 그것이 성격으로 굳어서 남에게 이유없는 심술을 부렸다. 특히 나에게 심통을 잘 부렸다.  내가 늘 받아주고 친구이니 내가 이해해주고 하니까... 그때까지는 그랬다.

 

그 친구의 말은  이랬다.  박사학위를 따고 모교인 모 국립대학의 교수로 해당대학의 교수진에 의해 만장일치로 임용결정이 되었고 총장의 인준을 거쳐 교육부로 올려졌고 정식 임용장(국립대학교수는 대통령이 임용함)만 받을 일만 남았다.  그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임용장왔다는 기별이 없고 개강일자는 다가오고 하기에 학교에 찾아가 학과장을 만나니 이런 날벼락같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자신의 대학교수 임용이 결정된 후에 당시 학과장이던 모 교수가 마침 미국으로 교환교수로 떠나면서 친구의 모든 서류를 후임 학과장에게 넘겨주었고 그 서류를 교육부로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본래는 자신이 했어야 했는데 동료교수이니 믿거라 하고서 서류를 넘겨준 것이다. 후임 학과장도  이미 결정된 일이고 본인도 전임 학과장의 부탁을 '그러마'하고서 승낙을 하였으니 당연히 교육부로 친구의 서류를 송부했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전임학과장도 실수한 것이고 후임학과장은 더더욱 큰 잘못을 저질렀다.

 

후임학과장은 이제부터 자기가 학과의 일을 담당할 터이고 친구는 아직 교수가 된 것이 아니니 친구의 서류에 하자가 있을 지 모르므로 처음부터 친구의 서류를 다시 검토하겠노라 하였고 같은 과 교수들에게 그사실을 알리고 친구의 교수임용심사를 다시하였다.  그것도 친구에게 알리지도 않고 서류심사만 하였고 최종결과 그친구는 교수임용자격이 부적격이었고 그와 같은 동기인 다른 친구가 교수로 임영되어 최종적으로 정식교수 임명을 받았다.

 

다른친구는 친구보다 실력이 많이 떨어지고 능력도 떨어지고 친구가 학위를 딴 대학보다 몇단계 아래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시쳇말로 학기만 마치고 논문만 제출하면 박사학위를 주는 대학이었다.  실력이나 능력으로 보면 당연히 친구가 교수가 되고도 남았지만, 후임교수의 말을 빌면 "자기를 지도하고 가르쳐준 스승도 모르는 무례한 놈."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친구는 서울의 유명대학을 다니며 승승장구하여 우수한 실력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지만, 자신을 가르친 교수를 몰라보고 오만하고 찾아와 인사도 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었고 그런 제자에게 대학교수로 임용한 들, 무례함만을 가르칠 뿐이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다른 친구는 능력과 실력이 훨씬 떨어지지만,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어른을 알아보고 자기스승을 찾아 고맙다며 인사를 다니고 스승님을 존경하는 인간성이 제대로 박힌 것이었다.

 

결과론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나 판단기준이 달랐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후임학과장도 실수하였고 친구도 실수한 것만은 사실이다.  친구는 친구대로 억울하였고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자기들의 잣대로 친구를 판단하였고 이미 결정된 일을 번복하였으니 사실 법적으로 해결했어도 진작에 해결했어야 할일이다.  친구의 전공도  법관련이므로 마음먹고 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참지'하면서 포기하고 말았지만, 전임교수도 교환교수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니 자기가 아끼던 제자가 아니라 다른 제자가 교수로 임용된 것을 알고 난리를 쳤지만, 엎질러진 물을 도로 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고 혼자 떠들고 나팔을 분다한들 다른사람들이 모른체 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친구는 그날로 마음이 비틀어져서 이불뒤집어 쓰고 울고불고 세상을 철저히 외면하고 모교에서 박사학위 기념으로 만들어준 10돈 짜리 기념패고 감사패고 나발이고 전부 파기하여 불질러 없애거나 재래식 화장실에 버리거나 두문불출하였다.  기껏해야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 낚시나 하러 다녔다.  보다못한 아내가 모 국립전문대학에서 교수모집을 하자 친구몰래 대학교수임용서류를 제출하였고 합격하였으나 친구가 쓸데없는 짓했다고 난리를 쳤으나 친구아내가 울고불고 가족을 생각해달라는 호소에 그냥 전문대학교수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껏 "다락방 철학자"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모교의 교수로 임용되지 못한 것이 못내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고 그렇다고 모교스승을 어쩌지 못하는 현실을 견디기 어려워 극히 부정적이고 냉소적이고 자신을 딱딱한 얼음덩어리 속에 가두어 놓고 지낸다. 

 

그래서 내가 보다못해 이런 말을 해주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필터전문가 | 작성시간 09.10.05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항상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작성자인의산 | 작성시간 09.10.07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좀 씁쓸함이 남는... 우리가 자라온 한국사회를 생각해 보면 좀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공부하여 인생을 개척해 오신 분들에게 세상은 때로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도 하는 가혹함이 있는가 봅니다... 공감이 많이 가는 얘깁니다.
  • 작성자상하이우먼보스 | 작성시간 09.10.07 지극히 현실적 얘기있데 글로서 다시 보면 풍경을 그리며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항상 감사 드립니다.스스로 어릴적 동심으로 돌아 볼수 있는시간이 되네요..감사 합니다.
  • 작성자물결 | 작성시간 09.10.08 배은망덕에 무례함이라고 이유를 댈지 모르겠지만...실력을 평가하기보다 자기 아랫사람 연줄로 교수만들고 교수임용시에도 수천만원 든다는(왜 드는지는 아시겠죠?) 그 사회의 이야기를 넘 많이 들어서일까요? 친구분이 자신의 환경 고마운줄 모르고 편안하게 공부해온 분이라는 것 떠나서 그 분은 뭔가 우리사회 관행이라는 이름의 비리의 희생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