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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

"Mad" 마이크 호어

작성자titanis|작성시간07.05.04|조회수828 목록 댓글 4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세이셸 작전을 구상할 무렵인 1979년(?)에 찍힌 호어의 사진.

(완전 부시삘이군요.)

주의!

전 절대로 이 사람을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쓴게 아님을 밝힙니다.

 

마이크 호어 (본명은 Thomas Michael Hoare) 는 1920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났습니다.

2차대전때는 기갑병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싸웠으며 대위의 계급으로 종전을 맞았습니다.

종전 후에는 남아공의 더반으로 이주해서 용병으로의 삶을 살기위해 밀림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호어가 유명하게 된 것은 두차례의 콩고 분쟁입니다.

첫번째 분쟁때는 콩고에서 독립하려는 카탕가 지역에서 싸웠습니다.

이 와중에 한 스튜어디스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_-?

 

그를 유명하게 만든 두번째 콩고 분쟁에서 그는 콩고 수상에게 고용되어 공산 반란군과 싸우다가..

나중에 벨기에 공수부대원(콩고는 벨기에의 식민지였음)과 몇몇 망명한 쿠바 조종사들과 함께

30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반란군에게 사실상 억류된 유럽인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계획합니다.

이 부대는 "5 코만도"란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작전은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으며 대부분(1400 - 1800명)의 유럽인들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000만명의 국민과 30만명의 정규군을 가진 지역이 단 300명의 용병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사실 이같은 작전은 콩고 정부와도 상당한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작전은 매우 잔인하게 수행되었습니다. 무수한 처형과 강간...

말그대로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범하고 어린것은 잡아먹어라. 이런 식이었죠.

호어의 부하들도 전투중 보행불가능자는 모조리 처형된 작전이었습니다.

 

나이지리아 내전에서는 비아프라 편에서 여러 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이후 이런저런 작전의 성공으로 주가가 높아진 그에게도 운이 다하는 날이 왔습니다.

 

1976년 세이셸은 인종차별적인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친소련적 정책을 실행하고 남아공에 대항하는 게릴라를 지원하는 등

남아공과의 관계가 아주 악화되었죠. (무려 북쪽의 모 공화국도 이 문제에 개입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세이셸의 전 수상이었던 제임스 만참 James Mancham 은 세이셸에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호어와 접근하였습니다.

이 즈음 호어는 "와일드 기스"라 불리운 53명으로 구성된 용병단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이 용병대는 전부터 그와 콩고에서 싸웠던 사람들, 로디지아가 멸망하며 도망쳐 나온 유럽 용병들,

그리고 몇몇 남아공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습니다.

9명이 먼저 세이셸에 입국했고, 호어와 나머지 인원들은 1981년 11월 25일에 세이셸에 입국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것이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하였으나...

부대원중 가장 어린 대린 (정확한 신원은 모르지만 10대 였다고 합니다.) 이 치명적 실수를 저지릅니다.

세이셸의 입국시스템은 옛 프랑스식으로, 신고할 물품이 없는 사람은 그냥 별도의 출구로

빠져나오는 방식이었습니다. (너무 사람의 양심을 믿는 시스템 같은데...)

 

당연히 호어와 다른 대원들은 이 별도의 출구로 유유히 빠져나왔으나..

이 어린 대원은 어리버리대다가 신고품 전용 출국대로 가버린 것입니다!!...

 

세관원들이 물품을 검사하는 도중 마침내 AK47이 발견되었고

곧바로 와일드 기스 부대원들과 공항 수비대원들간에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호어 측에서 한명이 죽고 수비대측에서 두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한명의 여성 대원을 포함한 6명의 대원은 포로가 되었고.

나머지 46명의 대원들은 인도국적 민항기를 납치해서 겨우겨우 탈출에 성공합니다..

포로로 잡힌 대원들은 후에 남아공 정부가 어마어마한 금액을 세이셸에 지불하고 찾아옵니다만..

마침내 그 다음해 세이셸에 파견된 유엔 조사회에서 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습니다..

남아공 군부가 이 사건에 개입된 증거를 포착한 것이죠.

 

악화된 여론 때문에 결국 호어는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10년 형을 언도받고 85년에 출소합니다.

 

그 이후의 호어의 행적은 잘 찾을 수가 없습니다.

가끔씩 CIA등과 접촉하는 그의 모습이 언론에 잡히는 것을 제외하면..

(Kweassa님은 알고 계시지 않을까...^^;;)

 

참고 : http://en.wikipedia.org/wiki/Mike_Hoare

         http://www.geocities.com/madmikehoare/

         [어둠속의 전사들]. 오찌하이 노부히꼬 저, 박정희(동명이인--;)역.  신우미디어, 1992.

         세이셸 부분은 이 책을 대폭 참고했음..하지만 읽은지가 오래되서 세세한 부분은 틀릴수도..

 

영화도 있군요...위키에서 보니 호어가 직접 이 영화 자문을 맡았고, 배우중 한명은

실제로 와일드 기스에 입단했다고 하네요..ㅡㅡ;;

지옥의 특공대 (The Wild Geese, 1978) -- 훌륭한 영화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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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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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굴러라돌 작성시간 07.05.05 흐음...AREA88 만화판의 그 용병대장은 이 사람을 모델로 만든 것 같네요. Wild Geese라든지 부하라도 걷지 못하면 죽여버린다든지 등등.
  • 답댓글 작성자titanis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5.05 예..일본쪽 사이트 뒤져봐도 자료가 제법 나오더군요. 흠...
  • 작성자ROK_CompanionOfficer 작성시간 07.05.05 근현대의 용병들도 살펴보면 재밌을텐데 말이지요... 샌드라인 이라던지... EO 라던지;;
  • 답댓글 작성자titanis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7.05.05 거긴 완전 다국적 기업이지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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