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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Academy

[심심해서 해석해보는 RS!!!] Legio III Augusta Iterum Pia Iterum Vindex

작성자로마시민|작성시간10.12.21|조회수492 목록 댓글 1

늘 그렇듯 오역 축약 있습니다.

ㅎㄷㄷ

 

 

 

Legio III Augusta Iterum Pia Iterum Vindex (Again faithful Again avenger)

 

 

 

아우구스타 Pia Vindex(충성하고 복수하는)3군단은 기원전 43년 아우구스투스가 창설한 군단이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까지도 아프리카 프로빈키아에서의 3군단의 중요 작전·전투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3군단의 상징은 페가수스나 염소자리 등이 있다.

 

아마도 기원전 42년에 아우구스타 3군단은 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를 살해했던 원로원의 군대를 격파했던 전투에 참가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승전 후 아우구스타 3군단은 아우구스투스의 지휘아래 섹투스 폼페이우스와 그의 아들 폼페이가 반란을 일으킨 시실리에서 있었을 것이다.

 

기원전 30년부터 아우구스타 3군단은 아프리카 프로빈키아에 계속 주둔했다. 3군단은 주로 건설작업에 동웠됐다. 아프리카는 전통적으로 제국의 평화로운 지역이었지만 기원후 17년에서 24년 사이 그들은 반항적인 누미디아인과 Mauritanian부족들을 상대로한 전쟁에 동원됐다. 18년 소규모 부대들이 게릴라 공격으로 피해를 받았다. 이 참사는 아마도 겁먹은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의 벌로 일부 병사는 사형(killing of every tenth legionary이런 사형, 진짜 10분의 일을 처형한다는 뜻이 맞나요?) 당했다. 이 처벌은 사령관이 그의 군사들에게 내릴 수 있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가장 혹독한 벌이다. 이베리아의 11군단이 아프리카에 지원군으로 파견되고 나서 24년까지의 반란은 진압됐다.

 

1세기때 아프리카는 원로원 의원이 총독으로 취임해 관리하는 유일한 프로빈키아였다. 그러므로 황제에게 아우구스타 3군단의 사령관이기도 한 아프리카 총독이 충성스러운 인물인가는 몹시 중요했다. 4황제 시기의 황제였던 갈바는 45년에서 46년 사이 아프리카 총독이었다.

 

네로 황제 치세의 막바지에 반역하고 다른 지역을 점거한 아프리카 총독 루시우스 클라디우스 마케르(Macer)는 3군단에 힘을 보태기 위해 Macriana Liberatrix 1군단을 창설했다. 69년 4황제 시기의 혼란에서 비록 이 두 군단이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한 적은 없었지만 처음에는 갈바를 그 다음으론 비탈리우스를 마지막으로 베스파시아누스를 지지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아우구스타 3군단의 병영을 Ammaedara에서 Thevest 근처의 Lambaesis로 옮겼다. 히드라아누스 황제의 치세(117-138) 때 3군단은 누미디아의 Lambaesis에 주둔하고 있었다. 3군단은 프로빈키아를 Berber로부터 지키며 다음 두세기 동안 더 주둔하고 있는다. 아우구스타 3군단의 일부는 파르티아를 상대로 한 몇몇 원정에 동원되기도 했다. 또한 이 아프리카 군단의 군단병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다키아 원정에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193년 3군단은 페르티낙스 황제가 살해당한 뒤 벌어진 내전에서 보여준 그들의 공로로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에게서 'Pia Vindex'(충직한 복수자)라는 별칭을 하사받았다.

 

3세기는 아우구스타 3군단에게서 위기의 때였다. 우선 3군단은 사막 부족들과의 전쟁으로 심각한 인명 피해를 입어 최근해 해산된 갈리카 3군단의 군단병을 편입시켰다. 238년 6황제의 시기에 3군단은 고르디안 1세, 2세의 봉기를 억눌렀으나 고르디안 3세에 의해 해산된다. 252년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Raetia, Noricum 출신들로 아우구스타 3군단을 재창설하고 Iterum Pia Iterum Vindex(다시 충성하고 다시 복수하는)라는 별칭을 준다. 군단 제 창설의 목적은 제국을 위협하는 Berber부족 연합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이 전쟁은 260년에 끝나지만 289년에서 297년 사이 다시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막시미누스 황제는 누미디아 군단을 지휘하기 위해 직접 아프리카로 갔다.

 

아우구스타 3군단은 5세기 초까지 아프리카에 주둔해있었다. Tertio Augustani인 Notitia Dignitatum에 따르면 한 comitatensis대원은 아마도 Dux et praeses provinciae Mauritaniae et Caesariensis 군대에 속해있었을 Comes Africae의 휘하에 있었다.

이뒤로 아우구스타 3군단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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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코쟁이22 | 작성시간 10.12.22 10명 중 1명씩 뽑아서 처형하는 거 유명하죠. 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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