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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er] 체첸항쟁사

코카서스의 늑대들 : 체첸- 52. 검은 과부

작성자jager|작성시간10.08.04|조회수3,046 목록 댓글 18

 

 

 

 놈들은 마치 그로즈니의 주인처럼 행동했다.
                                      - 아흐마드 카디로프

 


 더 이상 인질을 잡지 않겠다는 샤밀 바사예프의 공언이 현실화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2년 12월 27일, 아흐마드 카디로프가 이끄는 친러시아 체첸 정부는 그로즈니에 있는 정부 청사에서 행정 업무를 하고 있었다. 본관은 4층 건물이었고, 인근에 식당과 민원실이 있는 2층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민원실에는 신년 행사를 대비하여 체첸 정부측에서 발간한 안내 책자를 받기 위해 직원들이 몰려 있었고, 식당이나 매점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오후 2시 반, 북서쪽 나데르츠나 방향에서 1대의 카마즈(KAMAZ) 트럭과 1대의 우즈(UAZ)차량이 정부 건물을 향해 다가왔다. 어느 나라나 정부 청사는 최대의 보안을 자랑하는데, 하물며 전시의 체첸 정부는 더할 나위 없이 삼엄했다. 러시아군이 경계하는 4중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청사 건물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로즈니 시내의 러시아군

 

  러시아 경비병은 운전수들에게 통행증을 요구하였고, 트럭과 우즈의 운전수는 통행증을 제시하였다. 러시아 군복을 착용한 40대 남자와 뒤의 지프 차량에 탄 20대로 보이는 남자는 러시아 어로 대답하였고, 통행증은 러시아 군용 마크가 찍혀있는 정식 서류로 보였다. 신분증을 요구하자 러시아 내무군 소속 신분증을 보여 줬다. 트럭 옆 좌석에 여자 애가 타고 있었다. 검문소의 차단기가 올라갔고, 트럭과 우즈는 통과했다.

  

  이런 식으로 두번째 검문소까지 통과한 트럭은 세번째 검문소에 다가섰다. 역시 통행증과 신분증을 제시 받고 운전수는 똑같이 보여주면서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세번째 검문소의 경비병은 뭔가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중요 시설을 경계하는 입장에서 확실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트럭 안에 있는 짐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그로즈니에서 체첸인을 검문하는 경찰관들

 

  트럭 운전수는 뭔가 난색을 표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총을 꺼내서 경비병에게 발사했다. 그리고 정부 청사 건물을 향해 전속력으로 운전하였다. 러시아군은 우즈를 멈추려고 했지만 너무 순식간에 건물 가까이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청사 앞에 오는 차량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중앙 현관 앞에 도착하자마자 카마즈 트럭은 폭발했다. 트럭 뒤에 있는 1톤의 TNT가 폭발한 것이다. 트럭은 산산조각이 났고 그 자리에는 지름 7미터, 깊이 4미터의 구덩이가 생겼다. 연달아서 우즈에 있는 120킬로의 TNT도 폭발했지만 첫번째 폭음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그로즈니 정부 청사 테러

 

  폭발의 충격으로 4층 높이의 정부 청사 건물 전체가 반파되었고, 인근에 있던 2층 건물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정부 청사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던 공무원과 경비병, 직원 가족 등 83명이 죽고 210명이 부상당했다. 부상자 중에는 지나 바티체바 장관과  안보 수석인 루드니크 두다예프도 있었다.

 

  이런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 때 아흐마드 카디로프는 모스크바에 있었다. 상황을 보고 받은 카디로프는 이렇게 말한다.

 

  "놈들은 마치 그로즈니의 주인처럼 행동했다."

 

  폭발로 인한 사태를 수습하면서 러시아와 체첸 정부는 운전사의 신원을 확인하였다. 트럭에 탔던 40대 남자는 겔라니 투미레프이며, 지프에 탔던 20대 남자는 그의 17살이 된 아들, 트럭 옆에 탔던 사람은 그의 15살인 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가족 거의 전체가 그로즈니 정부 청사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체첸 측의 발표에 의하면 일가족이 모두 자폭 테러를 감행하게 된 동기는 그들의 어머니와 장남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죽게 된 것이라고 한다. 15살이 된 딸까지 같이 자폭을 하게 된 동기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지만, 다른 가족이 모두 죽게 되는 마당에 같이 죽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러시아 경비병의 경계를 누그러 뜨려서 쉽게 검문을 통과하기 위해 한 것으로 추정된다.

 

  샤밀 바사예프는 2003년 3월 12일 경 위의 자폭 테러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12월 27일로 선택한 이유로는 미하일 바비체프 총리와 전임 총리인 스타니슬라프 일라소프, 러시아군 사령부 측 대표인 코로베니코프 등 주요 간부들이 회의를 한다는 정보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비록 아흐마드 카디로프가 러시아 모스크바에 외유 중이었지만, 위의 간부들을 모두 암살한다면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좌측이 러시아군 트로체프 상장, 우측이 아흐마드 카디로프

 

 트럭이 돌격한 오후 2시 반은 회의가 열리기로 에정된 시간이었고, 샤밀 바사예프는 그로즈니 시내에 잠입하여 트럭이 움직이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트럭과 지프가 검문소를 뚫고 정부 청사까지 들어서는 것을 망원경으로 확인한 바사예프는 직접 폭파 스위치를 눌렀다. 폭발로 인해 건물에 타격을 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회의가 예정대로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위의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데는 실패했다.

 

  한달이 지난 2003년 5월 12일 오전 10시, 체첸 북서부인 나드테르츠나 주의 즈나벤스코예 마을에서 3명의 체첸인이 탄 카마즈 트럭이 주정부 건물과 FSB 사령부가 모여 있던 관공서 한가운데에서 폭발하였다. 당시에는 러시아의 5월 연휴가 끝난 첫번째 월요일 오전이었기 때문에 민원인이 붐비고 있었다. 질산 암모늄과 알루미늄 가루가 섞여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폭탄은 10미터 넓이에 5미터 깊이의 구덩이를 남긴 채 5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대부분이 민원을 위해 관공서에 모인 체첸인들이며 10명의 FSB 요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너진 10여채의 건물 잔해속에서 20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체첸 지도. 왼쪽 위의 붉은 부분이 나드테르츠나 주

 

  나드테르츠나 주는 전통적으로 체첸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 중의 하나였다. 죽은 자 중에는 그로즈니 테러에서 살아남고 안전한 곳을 찾아 이곳에 발령을 신청하여 온 공무원들도 있었다. 체첸군은 자신들이 원한다면 체첸 어디에도 친러시아 세력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흐마드 카디로프는 3일의 애도를 선포하고 이와 같은 테러가 자행될 수 있었던 부패한 검문 체계와 무너진 군기를 비판하였다. 불과 몇달러의 돈만 경비병에게 쥐어 주면 트럭 뒤의 짐을 확인하지 않고 검문소를 통과시켜 줬던 것이다.

 

 

 

 

 

즈나멘스코예 관공서 건물 잔해

 

 

  체첸인들은 위와 같은 자폭 테러에 병행하여 요인 암살도 감행하였다. 주로 친러시아 주요 인사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체첸 영역 내에서는 어느 가문의 누가 친러시아 성향인지를 훤히 알 수 있었고, 그들이 어디에 살고 어디에 근무하며 가족들이 어디에 있는 지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2003년 4월, 그로즈니 동쪽 구데르메스에 있는 야마다예프 가문의 집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친러시아 군벌인 야마다예프 가문의 장남인 즈하브레일 야마다예프가 앉아 있던 거실 소파가 폭발하였다. 즈하브레일은 현장에서 즉사하였고, 3명의 경호원도 같이 죽었다.

 

 

 

 

 

즈하브레일 야마다예프

 

  다른 야마다예프 형제와 같이 즈하브레일은 1차 체첸전 당시에 두다예프의 휘하에서 러시아군과 싸웠으며 준장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와하비 세력들과 갈등을 하면서 샤밀 바사예프와 서로 원한을 갖게 되었으며 2차 체첸전이 시작되면서 친러시아 세력이 되었다. 그는 야마다예프 가문의 사병 집단을 거느리고 체첸군과 교전하였고, 체첸인들은 그에게 ‘즈하바’라는 별명을 붙였다. 러시아어로 ‘두꺼비’라는 뜻이었다.

 

 

 

 

체첸군을 잡아 심문하는 '보스토크' 대원들

 

  그가 거실에서 죽은 뒤로 그가 지휘하는 ‘보스토크’ 부대 내에는 내통자를 찾기 위한 대대적인 내부 조사가 이뤄졌고, 술림 야마다예프는 체첸군과 내통한 혐의로 최소 5명의 대원들을 숙청하였다. 죽은 대원들은 구데르메스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암살은 곳곳에서 자행되었으며 주로 친러시아 체첸인과 고위 간부들이 대상이 되었다. 친러시아 진영의 최고위직인 아흐마드 카디로프 역시 예외는 될 수가 없었다.

 

 2003년 5월 13일 리스한 유르트의 이슬람 사원에서 종교 행사에 참석했던 카디로프에게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몰려왔을 때였다. 경호원들이 주변에 모여 있는 가운데 팔에 기자 완장을 차고 카메라에 마이크를 들고 있던 여자 한명이 카디로프에게 달려 왔다. “시간이 지체 됬습니다. 카디로프에게 가게 해주세요”라고 소리쳤고, 옆에 있던 경호원들은 ‘기자’의 접근을 제지하였다.

 

 

 

 

오른쪽 두번째가 아흐마드 카디로프

 

  여자는 허리에 있던 폭탄 벨트를 터트렸고,카디로프의 경호원 3명을 포함해서 16명이 죽었다. 인근에 예배를 보고 있던 26명의 체첸인들은 부상을 당했고, 그 중에는 카디로프의 옆에 있던 구데르메스 지역 이슬람 성직자(이맘)도 있었다. 카디로프는 경호원의 덕택으로 긁힌 상처 하나 없이 폭발 충격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샤밀 바사예프는 위의 일련의 테러를 ‘돌풍’이라고 비유하였다. 2003년 연말이 되자 ‘돌풍’은 체첸을 넘어 러시아까지 확산되었다.

 

   2003년 12월 5일, 북코카서스의 북쪽에 위치한 스타브로폴 주에 있는 예센츠키 역에서 아침 8시에 슬로보스크에서 미네라린 보디로 향하던 통근 열차가 폭발하였다. 승객 46명이 죽고 170명이 부상당했다. 조사 결과 체첸인 남자 1명과 여자 3명이 열차를 폭파하기 위해 탑승해던 것이 확인되었다. 여자 2명은 폭발 직전에 열차에서 내렸으며, 남자 1명은 시체의 잔해에서 발목에 묶어뒀던 수류탄이 확인되었고, 여자의 시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예센츠키 역의 테러 현장

 

 

   이후에도 열차 테러는 체첸인들이 불특정 다수의 러시아인에게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방식으로 자주 이용됬으며, 2009년 11월 2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하던 네프스키 특급 열차가 폭발하여 25명이 죽고 100명이 다쳤다.

 

  그로부터 4일 뒤인 12월 9일 오전 11시,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크레믈린 궁전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광장을 걸어 가던 어떤 체첸 여자가 지나가던 러시아인에게 “하원 의회(두마)가 어딨나요?”라고 물어봤다. 그 러시아인이 미처 대답을 해주기 전에 여자의 허리에 있던 폭탄 벨트가 폭발하였다.

 

 

 

 

모스크바 시내 지도. 네셔널 호텔 앞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인해 광장을 걸어가던 행인 6명이 죽고 44명이 부상당했다. 이는 러시아 하원 선거에서 푸틴의 정당이 승리하고 불과 이틀 뒤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체첸인들의 대답으로 판단된다. 폭발한 체첸 여자의 신원은 이후 확인되었는데, 체첸 쿠찰로이 마을의 체첸군 지휘관인 루슬란 만게리에프의 아내인 카디사 만게리에바였다. 1년 전의 교전에서 루슬란 만게리에프가 전사한 뒤에 아내가 폭탄벨트를 메고 러시아 모스크바에 나타났던 것이다.

 

 

 

 

븕은 광장 테러 현장 주변에서 파손된 차량

 

  이후에도 체첸인의 자폭 테러는 이어졌으며, 2010년 3월 29일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체첸과 다게스탄 여자 2명이 자폭을 하여 40명이 죽고 102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군사력으로 8만의 러시아군과 친러시아 군벌 세력을 힘으로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를 견딜 수 없게 만들어 전쟁을 계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론을 악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체첸인의 경우는 유독 여자들이 자폭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 10월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에서 19명의 여자가 검은 베일을 두르고 나온 때부터 언론에서는 이들을 ‘검은 과부’라고 불렀다. 이후에도 최근까지 자폭 테러를 감행하는 비율은 거의 절반에 달한다.

 

 

 

 

왼쪽이 즈헤넷 압둘아흐마노바. 2010년 3월에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자폭한 다게스탄인

 

  왜 체첸 여자들이 자폭 테러를 하게 되는 지에 대해서는 몇가지 가설이 있다. 우선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남편과 자식이 죽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복수를 위해 한다는 설명이 많다. 언론에서 ‘과부’라고 하는 이유도 이 가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무관하게 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삶에 희망을 잃어서 하게 되는 경우나, 궁핍한 환경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보상금이 지급된다는 약속을 믿고 하게 되는 경우, 심지어 체첸군의 강압에 의한 경우도 있었다.

 

 가장 특이한 사례는 모스크바 투시노 비행장의 크릴라(날개) 락 페스티발에서 자폭한 줄리한 엘리하제이바 이다. 2003년 7월 6 콘서트에서 자폭한 2명의 체첸 여자 중의 1명인 줄리한은  쿠찰로이 마을에서 유복하게 자라고 의대에 진학 중이던 장래가 촉망되던 19살의 대학생이었다.

 

 

 

 

 

줄리한 엘리하제이바

 

 하지만 줄리한은 자신의 의붓 형제인 다닐칸 광의 사랑에 빠졌고,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형제와 사랑을 하는 것은 체첸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금기였다. 다른 친척들이나 가족들이 알게 되면 생명의 보장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도저히 이 상황을 극복할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던 줄리한은 지상을 떠나 천국에 가기로 결심하였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금기를 범한 자신의 죄를 씼어야 했고, 순교를 해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줄리한은 자폭벨트를 허리에 매고 콘서트 장에 접근하다가 검문소에서 걸리자 그 자리에서 터트렸다. 폭탄은 제대로 터지지 않아 혼자 죽었지만, 반대쪽 입구에서 지나이다 알리에바가 터트린 폭탄은 14명을 죽이고 60명이 다치게 하였다.

 

 

 

 

 

 

  테러는 보복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상대에게 공포를 심어줘서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러시아 민간인의 희생에 대해, 체첸군은 그들의 정치적인 선택으로 인해 러시아의 대 체첸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들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체첸 민간인들이 자키스트카에 당하는 것과 똑 같은 공포와 고통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ABC 방송사와 인터뷰하는 샤밀 바사예프

 

 

이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은 다음과 같다. 샤밀 바사예프가 2005년 6월에 미국 ABC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한 말이다.

 

 “나는 나쁜 놈이고 도적이며 테러리스트다. 하지만 당신들은 러시아의 행동을 뭐라고 부르고 있나? 만약 그것을  ‘헌법의 수호’, ‘대테러작전’  따위로 부른다면 나는 그 모든 좋은 말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러시아측도 같은 논리로 대응하였다. 상대에게 공포를 심어줘서 저항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에 수행하던 자키스트카를 좀 더 확실하게 진행하는 한편, 테러의 배후에 있는 체첸군의 주요 간부들의 위치에 대해 더욱 철저하고 집요하게 파악하였다. 그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서였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Second_Chechen_War
         http://en.wikipedia.org/wiki/2002_Grozny_truck_bombing
         http://www.guardian.co.uk/world/2002/dec/29/russia.chechnya
         http://en.wikipedia.org/wiki/2003_Znamenskoye_suicide_bombing
         http://www.smh.com.au/articles/2003/05/12/1052591735804.html
         http://en.wikipedia.org/wiki/2003_Stavropol_train_bombing
        http://www.chinadaily.com.cn/en/doc/2003-12/05/content_287783.htm
        http://en.wikipedia.org/wiki/Red_Square_bombing
        http://www.kommersant.ru/doc.aspx?docsid=496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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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waterloo | 작성시간 10.08.05 연재가 슬슬 마무리되어가는 느낌이군요?! 여성들까지 테러에 나선다는 건 정말 갈 때까지 갔다는 얘긴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3월 이후 잠잠한가요?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8.13 최근은 잘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롱기누스 | 작성시간 10.08.06 물론 러시아의 진압이 무지막지하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이런 방식은 국제적인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질문이 있는데요. 유럽과 미국에서는 체첸 반군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고 있나요?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10.08.06 결국 복수는 복수를 낳네요..-_-..끔찍한 전쟁입니다..
  •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 작성시간 10.08.06 현재도 계속되고있는게 과연 전쟁인지 의문이 드네요. 서로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살육이 자행되는게 과연 전쟁인건지.....그저 학살인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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