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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er] 체첸항쟁사

코카서스의 늑대들 : 체첸- 57. 마스하도프

작성자jager|작성시간10.10.17|조회수3,489 목록 댓글 19

 

 

 


      "그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순교한 최초의 체첸 대통령이 아니었으며, 마지막 대통령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평화를 위해 진심으로 손을 내밀었던 최초의 그리고 마지막 대통령이 될 것이다."

                                                                                                                                                                                - 2005년 3월 9일, '카프카즈 센터' 중에서

 

2005년 2월 3일, 체첸 공보장관인 모브라디 우두고프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카프카즈 센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체첸 대통령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2005년 2월 1일부터 22일까지 모든 체첸군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본문에는 구체적으로 러시아 군기지와 차량, 러시아군과 '반역자 - 친러시아 체첸인' 들에 대한 공격 행동을 해당 기간 동안 중지하도록 명시하였다. 다만 러시아와 '반역자' 들이 산악 지역에 들어서서 체첸군을 공격할 경우에는 대응 사격이 가능하다고 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명령은 체첸과 그 외의 러시아 연방 전역에 있는 체첸군에게 하달되었다. 아슬란 마스하도프의 명령의 의미는 명확했다. 체첸군의 일방적인 '휴전'이었다.

 

 

 

 

아슬란 마스하도프

 

  베슬란 학교 인질극 이후 4개월 만에 나온 위의 명령은 서방 세계와 언론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아이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학살이 벌어지게 만들었던 미치광이들이 스스로 교전을 중지할 수가 있을까? 러시아 정부는 위의 글을 체첸 측의 '선전전'에 불과하며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도 않았다. "대응할 가치도 없다. '카프카즈 센터'는 공식적인 언론 기관도 아니다." 북 카프카즈 군관구의 러시아측 대변인의 말이었다. 심지어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며 체첸군 누구도 지휘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아슬란 마스하도프


  그러나 러시아의 예상은 빗나갔다. 2005년 2월 6일, 샤밀 바사예프는 체첸 내의 은신처에서 비디오 카메라 앞에 섰다. 먼저 자신이 부상이 악화되어서 죽었다는 러시아 측의 언론 보도에 대해 자신이 매우 건강하며, 자신의 발도 아주 양호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면서 샤밀 바사예프는 자기 의족을 칼로 꽂아 보였다.) 그러면서 아슬란 마스하도프의 휴전 명령에 따라 자신의 부하들에게 2월 22일까지 모든 공격 작전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비록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사건 이후 '리야드 알 살리힌' 부대 지휘관 외의 체첸 내 모든 공적인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샤밀 바사예프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마스하도프의 명령에 따를 것을 공언했다. 마스하도프의 명령은 힘을 얻었다.

 

 

 

 

 

마스하도프의 휴전 명령에 동참한 샤밀 바사예프


  아슬란 마스하도프의 휴전 명령과 샤밀 바사예프의 동참은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가? 2005년 2월 6일, 체첸 주둔 러시아 연방군 사령부는 '지난 24시간 동안 상황은 매우 조용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어느 러시아군은 기자들에게 2월에 들어서 러시아 군에 대한 공격이나 폭탄 테러가 거의 중단됬다고 말했고, 라디오 리버티나 로이터 통신 같은 언론사에서도 2월 이후의 체첸 상황이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고 보도했다. 휴전 명령은 실제로 실행되었다. 심지어 잉구세티야, 카바르다- 발카리아 같은 인근 공화국에 있는 반군들도 아슬란 마스하도프의 명령에 복종했다. 유일하게 다게스탄 공화국의 반군들이 위의 명령에 불복하고 교전을 계속하였다. "마스하도프의 명령은 체첸과 러시아 연방 내의 공격 중지였지만, 다게스탄은 러시아 연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05년 2월 2일, 수도 마하칼라에서 사살된 다게스탄 내무부 차관 마고메드 오마로프의 차량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자신의 휴전 명령은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해 자신의 '선의'를 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상황이 파국으로 가기 전에, 나의 선의를 러시아에게 보여서 같이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러시아 언론 '코머산트' 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마스하도프는 푸틴 대통령이 체첸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이 얼마나 처참하며, 이 사태가 체첸은 물론 코카서스, 러시아 연방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푸틴 대통령과 단 30분 만이라도 서로 원하는 것을 밝히고 협상을 할 수 있다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2차 체첸전 개전 초에 한 말과 거의 일치했다.

 

 

 

 

러시아와의 협상 대표로 지정된 체첸 보건복지부 장관 우마르 칸비에프

 

  러시아 군은 이 모든 게 체첸군의 재정비를 위한 속임수라고 말했다. 다가오는 봄의 공세를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을 휴전이라고 속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슬란 마스하도프의 평화 협상 제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2차 체첸전 직후인 2000년도에만 무려 4차레나 협상 제의를 하였다. 2001년과 2002년에도 각각 한번씩 러시아 측에 협상을 제안했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푸틴 대통령과 직접 면담해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밝히고 합의를 하자고, 심지어 체첸이 러시아 연방의 구성원으로 있어도 상관없으니 국가로서 존속할 수 있으면 자신들은 만족할 수 있으며, 적어도 지금 자행되고 있는 살상을 멈춰달라고 간절히 협상을 제안했다.

 

 

 

 

아슬란 마스하도프

 


  베슬란 학교 인질극에 대해,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위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샤밀 바사에프의 방식에 결코 동의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러시아 군을 대상으로 교전해야지 민간인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 전쟁이 끝난다면,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자들에 대해 국제 사법 재판소로 넘길 용의가 있으며 여기에는 바사에프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제안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동의한다면 협상 테이블 위에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엄청난 유혈이 발생할 것이며 여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어떻게 응했는가?

 


  휴전 기간이 종료된 지 2주가 지난 2005년 3월 8일,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의 국장인 니콜라이 파트루세프는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보고를 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연방 보안국 국장 니콜라이 파트루세프

 

 


  "금일 체첸 공화국 톨스토이 유르트 마을에서, 국제 테러리스트 아슬란 마스하도프를 러시아 연방 보안국의 특수 작전을 통해 제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어서 언론에는 지하실에 있는 아슬란 마스하도프의 시신이 보도되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지하실에는 체첸 3대 대통령이 상의가 벗겨진 채 쓰러져 있었고 그의 눈 밑에는 총상으로 보이는 상처가 나 있었다. 러시아 FSB 특수부대 요원들은 은신처 주변을 수색하다가 국기를 하나 발견하고 꺼내 들었다. 체첸 이치케리아 공화국의 국기였다.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지니던 체첸 이치케리아 공화국 국기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사살된 톨스토이 유르트는 1차 체첸전 때부터 반 두다예프 성향이 강한 마을이었다. 자연히 마스하도프가 이끄는 체첸군에 대해서도 거의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군과의 교전도 거의 없는 곳이었다. 왜 이곳에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은신해 있는 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으며, 일부에서는 그의 먼 친척들이 체첸 남동부의 노자이 유르트 마을에서 이 마을로 피신했기 때문에 은신할 수 있었고 주장한다. 물론 자신의 친척의 은신처에서 발견되어서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로즈니 북쪽의 이 위험한 위치에 체첸군의 수장이 위험을 감수하고 은신할 필요가 있었는 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아니었다.

 

 

 

 

 

톨스토이 유르트 마을 위치

 

  다른 설명은 그가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해 그곳에 왔다는 것이다. 2005년 2월의 휴전이 끝난 이후에 러시아 정부 측으로부터 협상 의사를 전달받고,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수도 그로즈니와 가까운  마을에 은신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마스하도프는 단 4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었다.

 

  은신처의 위치는 러시아에 의해 발각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을 감청해서 알게 됬다는 설과, 아코이 마르탄에서 생포된 체첸군을 고문해서 정보를 알게 됬다는 설이 있다. 톨스토이 유르트의 어느 한 주택 지하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러시아는 FSB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집을 포위하고 지하실에 있는 아슬란 마스하도프가 투항하라고 소리쳤다.

 

 

 

 

은신처로 내려가는 사다리

 

  이후에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군이 수류탄을 터트려서 마스하도프를 죽였다는 설과, 같이 있던 경호원에 의해 죽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언론에 공개된 마스하도프의 시신 상태가 수류탄에 의해 죽었다기에는 너무 깨끗하다는 점과, 같이 있던 경호원 4명은 모두 생포됬다는 점으로 볼 때 수류탄에 의해 죽었다는 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경호원에 의해 '부주의한 발사'로 죽었거나, 아니면 마스하도프의 요청에 따라 경호원이 그를 사살하고 난 뒤에 올라가서 투항했다는 설이 있는데 후자가 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슬란 마스하도프의 시신

 


  러시아 FSB 국장의 보고를 받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아직 해야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테러리스트로부터 러시아 연방을 수호하기 위해 아직도 많은 일을 해야 된다."

 

   기자들 앞에서 국장과의 대화를 끝낸 푸틴 대통령은 한번 멋젓게 웃은 다음에 자리를 끝냈다. 그들은 애초에 아슬란 마스하도프를 자신들과 협상을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체첸 이치케리아 공화국 3대 대통령은 그들에게는 단지 천만달러의 현상금이 붙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했다. 그 테러리스트가 자신들에게 수도 없이 평화 협상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없고 생각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보고를 마치고 기자들을 쳐다보는 푸틴

 

   체첸 이치케리아 공화국 3대 대통령 아슬란 마스하도프. 그는 소련 시절에 군사 교육을 받은 전직 러시아 포병대 대령으로서 독립 선언과 함께 체첸 공화국에 귀향했으며, 신생 체첸군 참모총장으로서 러시아군의 1차 침공에 있어 통솔하기 힘든 체첸군을 훌륭하게 지휘하고 놀라운 전과를 달성했다. 특히 그가 설계했던 그로즈니 방어전은 전사에 영원히 남을 시가전의 걸작이었다. 최종적으로 러시아군을 패퇴시켰던 그로즈니 탈환 작전도 그의 세심한 설계가 아니었으면 성공할 수 없었다. 옐친 대통령은 자기 휘하의 러시아 장군들에게 "대령 하나 상대 할 수 없냐'고 소리쳤다고 한다.

 

 

 

 

 

1차 체첸전 당시의 아슬란 마스하도프

 


   마스하도프는 뛰어난 군사 전략에 더해서 외교적인 유연성도 갖추고 있었다. 레베드와의 협상을 통해 러시아군의 철수와 체첸 독립 논의 유예를 맞바꾼 '하사 유르트' 협정을 체결한 체첸 측 대표가 바로 마스하도프였다. 그는 체첸 독립에 있어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파의 주장을 무릎쓰고 체첸 독립 논의를 5년간 유예한다는 조건으로 1차 체첸전을 종식시켰다. 이미 너무도 많은 전쟁을 경험했디 때문에 평화를 위해서는 상대와의 협상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협상을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것이 현재의 완전 독립이 아니라 단지 논의를 뒤로 미룬 것이라 해도 마스하도프는 선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사 유르트 협정서에 서명하는 아슬란 마스하도프

 

 

   러시아군이 물러난 뒤에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체첸인들은 최강의 무력을 자랑한 샤밀 바사예프 대신에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중요한 것은 대러시아 강경론이 아니라 협상과 외교와 평화라는 것이었다.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러시아와의 문제를 외교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러시아는 '독립'에 있어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체첸 이치케리아 공화국'과 외교 관게를 맺는 나라에 대해서는 러시아 정부 측에서 외교 단절까지 고려하겠다는 말을 다른 때도 아닌 하사유르트 협정 직후인 1997년 1월에 러시아 외무 차관 빅토르 포스발루크가 발언했다.

 

 

 

 

 

대통령에 취임하는 아슬란 마스하도프


   여기에 더해서 마스하도프가 충분히 러시아에 대해 발언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체첸 내 강경파들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각지에 있는 군벌들은 그의 지시를 무시했으며, 외국인을 대상으로 납치극을 벌여서 몸값을 뜯어내기가 다반사였다. 그는 이들을 제압할 충분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결국에는 체첸 국내의 강경파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샤밀 바사예프의 다게스탄 공격을 막지 못했다. 이어진 모스크바 아파트 폭파 사건 이후로 러시아군은 2차 침공을 시작했다.

 

 

 

 

 

 

 

 

  러시아의 '자키스트카'는 끔찍했고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동생이 2002년에 러시아 FSB에 의해 사살되었고, 그의 친형과 사촌, 조카, 누나까지 여러명이 끌려갔다. 하지만 마스하도프는 자신의 부하들이 러시아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전투는 어디까지나 군인과 군인 사이의 일이지 민간인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베슬란 인질극 때도 이를 '미친 짓'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직접 현장에 가서 교섭을 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썼다. 실제로 9월 3일 오후에 러시아 정부 측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고 베슬란 학교에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체육관에서 폭발음이 울렸고 수백명이 불타 죽었다.

 

 

 

 

 

 

 

  러시아는 체첸인들이 전멸하거나 투항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체첸 강경파는 러시아와의 협상을 원하지 않았으며, 민간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러시아군을 축복하고 성수를 뿌리는 사제들, 러시아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정부에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전쟁과 무관하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자신들을 살상하는 러시아군과 러시아 정부에 협조하거나 침묵하고 있는 자들은 민간인으로 볼 수 없으며 자신들의 적이라는 것이 체첸 강경파, 적어도 샤밀 바사예프의 생각이었다.

 

 

 

 

 

샤밀 바사예프와 아슬란 마스하도프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체첸 강경파와 러시아 정부 사이에서 평화적인 해결을 모색하던 유일한 체첸인이었다. 마스하도프의 죽음은 양 극단 사이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를 없애 버렸다. 남은 것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복종까지 계속되는 전쟁과 죽음이었다. 마지막 체첸군이 전사하거나, 마지막 러시아군이 체첸과 코카서스를 완전히 철수하는 날까지 전쟁은 끝날 수 없게 되었다. 양쪽 모두 불가능처럼 생각된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날이 올 때까지 수년, 수십년이 걸릴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체첸의 독립과 평화라는 거의 불가능으로 보이는 꿈을 위해 헌신하다 죽어간 아슬란 마스하도프. 그는 민간인에 대한 살상을 거부한 채 군인으로서의 자세를 굳게 지켰으며, 최후의 순간 러시아의 투항 요구를 거절한 채 체첸 3대 대통령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죽었다. 그의 시신은 '테러리스트의 시체를 돌려줄 수 없다'는 러시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어딘가로 사라졌지만, 그로즈니 전투와 하사 유르트 협정을 통해 역사는 그의 이름을 기록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전략가이자 누구보다도 평화를 추구했던 아슬란 마스하도프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Aslan_Maskhadov
              http://www.rferl.org/content/article/1057870.html
              http://www.guardian.co.uk/world/2005/mar/08/chechnya.russia
              http://www.guardian.co.uk/news/2005/mar/10/guardianobituaries.russia
              http://www.rferl.org/content/article/1057844.html
              http://news.bbc.co.uk/2/hi/europe/459302.stm
              http://www.kavkazcenter.com/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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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젤레돈 | 작성시간 10.10.18 러시아는 어쩌면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을 수도...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1.02 돌이킬 수 없게 됬죠
  • 작성자김 광 표 | 작성시간 10.10.18 체첸의 앞날이 더욱 가시밭길이 되겠군요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1.02 예 그렇습니다
  • 작성자타메를랑 | 작성시간 11.06.10 마스하도프가 체첸이 러시아의 자치 공화국으로 남아 있어도 좋다고 제안한 사실이 놀랍군요. 만약 러시아가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면, 체첸 전쟁이 빨리 끝나 양쪽 다 무의미한 살상을 그만둘 수도 있을지 않았을까요. 뭇내 아쉽기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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