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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er] 체첸항쟁사

코카서스의 늑대들 : 체첸 - 21. 지옥으로의 초대

작성자jager|작성시간09.01.10|조회수3,540 목록 댓글 16

     

 

 

 

Добро пожаловать в Ад  (도브러 빠좌빠바찌 브 아드)

 

                                                  -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의미의 러시아어

 

 

 

 

  1994년 12월 31일, 파벨 그라초프 국방부 장관의 명령에 의해 그로즈니 시내를 향한 일제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로즈니 외곽의 러시아 병력은 3만 8천. 여기에 230대의 전차, 454대의 장갑차, 388문의 대포와 박격포를 장비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이 생각하기에 이 병력은 두다예프의 체첸군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히 압도적이었으며,  오히려 지나칠 정도였다.

 

 그라초프는 불과 며칠내로 그로즈니의 상황이 정리되고, 육군에서 내무부로 치안이 넘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시당초 침공 당시만 해도 전쟁이 크리스마스 이전에 끝날 것이라 호언장담을 했지만, 이미 그 스케줄에서 상당히 늦어진 상태였지만 그는 향후 상황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았다.

 

 

 

그로즈니 시내의 러시아군 

 

 

  그로즈니 진격을 위해 러시아 군은 크게 4개의 제대를 편성하였다.

 

19 기계화 보병 사단장인 소장 페트룩이 지휘하는 서부군은  그로즈니 중심가에서 서쪽에 위치한 철도역을 점령한 뒤 북동쪽으로 진격하여 두다예프의 대통령궁을 남쪽에서 포위하기로 하였다. 자연스럽게 그로즈니 중심 시가지와 남쪽의 체첸군 보급기지의 연결을 차단하고, 남쪽에서 오는 체첸군 증원을 차단하는 임무도 맡았다.

 

 공수부대 사령관인 스타스코프 소장이 지휘하는 동부군은 그로즈니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뻗어있는 철로를 따라 진격하여 순자강의 다리를 점거하여 체첸군이 강을 건너 남쪽으로 후퇴하는 길을 차단하고, 역시 대통령궁 일대에서 서부군과 북부군과 연결하여 남동쪽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포위망을 형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공격의 핵심인 북부군은 2개의 제대로 나뉘었다. 볼고그라드 (과거 스탈린그라드)의 러시아 8군 사령관인 레브 로클린 중장이 북동군을, 아나톨리 크바신 중장이 북부군을 지휘하였다. 특히 크바신 중장의 북부군의 공격의 선봉이었기 때문에 '주력 공격 부대' (Main Assault Force)라고도 불렸다. 이들의 임무는 그로즈니 북부 시가지를 점령한 뒤에 대통령궁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러시아군 주요 공격루트

 

 

  결국 러시아군 작전 계획의 핵심은 그로즈니 시가지의 대통령궁 함락이었다.  과거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국회의사당에 깃발을 꽂았던 소련군의 후예인 그들은 중요 관공서의 점령을 통해 전쟁의 승리를 세계 만방에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빠르고 신속한 진격을 통해 두다예프의 반란군을 제압해 버리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이번에는 대통령궁을 선택하였다.

 

   1994년 12월 31일 새벽 5시, 그로즈니 외곽의 388문의 러시아군 대포, 박격포와 200대에 가까운 러시아군 전투기, 헬기들이 일제 포격을 시작하였다. 그로즈니 서쪽의 석유 저정고와 시내 중심가의 석유 정제 시설, 그리고 산업은행과 주변 주택가 일대가 파괴되었다. 폭격에 의한 사상자가 속출하였고, 얕궂게도 대부분이 체첸 거주 러시아인들이었다. 그로즈니에 거주하는 체첸인 민간인들은 이미 10만이 넘게 피난을 간 상태였고, 주변에 의지할 친척과 이동할 돈이 없었던 러시아인들이 시내에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체첸군

 

 

  시가지를 향한 폭격으로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러시아군은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체첸인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도시를 폭격했다는 믿을 수 없는 주장을 하였다. 물론 개전 초기에 체첸군 비행기가 거의 전부 파괴되었고, 야포 사격을 가할 만한 시가지 주변부를 러시아군이 포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거의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오히려 반 두다예프 정서가 강했던 우르스 마탄 등의 주변 마을에 대한 폭격으로 잠정적인 친러시아 세력이 될 수 있었던 몇몇 중요 거점들이 체첸군의 거점으로 돌아서 버렸다.

 

 

 

체첸군 1개 분대. RPG 사수가 들고있는 탄두는 화약을 덧붙인 것으로, 사거리를 낮추는 대신 파괴력을 높였다.

 

 

 

  민간인 사상자를 유발한 것 외에도 러시아 공군은 중대한 실수를 하였다. 그들이 1991년 미군의 걸프전의 전훈을 제대로 숙지했다면 결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간인 거주 지역과 석유 시설을 폭격하는 대신에 체첸군의 사령부와 통신 거점인 방송국, 전화국, 이동통신기지 등을 철저히 파괴했어야 했다. 심지어 대통령궁은 거의 폭격 흔적도 없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조기에 두다예프를 제압하고 자브가예프를 수장으로 한 잠정평의회에 체첸의 정권을 넘겨주기 위해 중요 시설들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설명도 있지만,  개전 초기의 중대한 시점에 체첸군의 통신과 지휘 계통 차단에 실패하였다.

 

   폭격이 멈추자 이제 러시아 지상군이 진격을 시작하였다. 작전 계획에 따르면 동, 서, 북 세개 방향에서 일제히 대통령궁을 향해 밀고 들어와야 했다. 그리해야만 러시아의 숫적 우세를 최대한 살릴 수 있고, 시내의 체첸군들이 포위된 채 공황상태에 빠져 항복할 것이다. 마침 다음날인 1월 1일이 파벨 그라초프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두다예프 대통령궁에 펄럭이는 러시아군 깃발을 바라보며 생일축하 파티를 할 생각이었다.

 

 

 

 

 

그로즈니 시내 주요 거점. 남서쪽 철도역과 중앙의 대통령궁

 

   러시아 공격의 핵심 부대를 지휘하는 크바신 중장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부군과 서부군이 예정대로 진격한다는 것을 무전으로 전해들은 그는 휘하 부대인 131 기계화 보병 여단과 81 기계화 보병 연대를 그로즈니 시가지로 진격시켰다. 특히 131 기계화 보병 여단은 부코카서스 아디게 공화국의 마이코프에서 왔기 때문에 흔히 '마이코프 여단'이라고 불렸다.

 

   대부분 징집병들이었던 그들은 심각한 전투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내에 들어섰다. 사령관부터 직속 장교까지 그들에게 상황이 어떻고, 지형은 어떠하며, 임무는 어떠하다는 식의 브리핑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기껏 한다고 해도 '체첸에 도적떼가 창궐하여 군이 투입되어 그들을 무장해제하고 치안 확보를 한 뒤에 내무군에게 시가지를 넘겨준다' 는 정도였지, 결코 정규군과 대적한다는 식의 심각한 언급은 없었다.

 

   그리하여 체첸 그로즈니 시가지를 거침없이 들어가던 북부군 휘하 병사들은 대부분 장갑차 안에서 잠에 들어 있었다. 어디 도착하면 알아서 깨워주겠거, 하는 심리로 앞서가는 전차를 믿고 있었다. 조금 자세히 알고 있었던 병사들도 두다예프의 반란군들이 수백대의 전차, 장갑차를 향해 덤벼들 엄두를 못낼 거라고 생각하였다.  마치 1959년 부다페스트 공격이나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 처럼, 이번일도 러시아의 무력을 보여주기만 해도 쉽게 정리될 거라 생각하였다.

 

 

 

그로즈니의 체첸군


   공격 제대는  순조롭게 그로즈니 시가지 중심까지 들어섰다. 서부군과 동부군의 진격 징후가 없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선두 전차부대에서 다시 연락을 취했다. 그들은 계속 진격하고 있다고 하였다. 좀 꺼림찍했지만 명령대로 북부군은 진격을 재개하였다. 어느덧 체첸 대통령궁이 보이는 근처까지 도착하였다. 정말 이렇게 손쉽게 끝나는 건가?

 

  갑자기, 마이코프 여단의 선두 전차부대의 연락 장교 헤드셋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Добро пожаловать в Ад  (Welcome to Hell)"

 
  연락 장교가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사방에서 대전차 로켓포가 어지럽게 쏟아지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던 장갑차의 러시아군들은 그대로 불구덩이 속에서 죽어갔다. 놀란 지휘관들이 급히 병력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체첸군이 최 선두와 최 후미의 러시아군 전차를 파괴하였다. 가운데 낀 기계화 여단은 꼼짝없이 체첸군의 정교하게 짜여진 포위망에서 하나하나 파괴되고 있었다.

 

 

 

 

 

 

'신년공세' 때 포착된 불타는 시가지

 

 

  선두의 지휘관인 아빈 사빈 대령은 본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사령부에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페르보마이스카야 거리를 통해 다른 방향에서 대통령궁을 향해 진격하던 81 연대도 이미 체첸군의 함정 속에서 아비규환인 상태였다. 거기에 진격하고 있다고 했던 동부군과 서부군도 거의 그로즈니 시가지에 들어서지 않은 상태였다. 동부군의 129 기계화 연대가 한칼라 비행장에서 시내로 진격하려 했지만, 바딤 올로프 소장의 104 공정 사단이 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난 한칼라 공항 전투에서 체첸군의 역습에 질려서 전투를 꺼려했던 것이다. 129연대는 체첸군의 동쪽 방어망을 돌파하지 못하고 다음날 후퇴해야 했다.

 

 

 

 

체첸군

 

  서부군의 19사단도 진격하지 않은 상태였다. 소장 페트룩은 아직 전투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휘하 부대를 시가지로 진입시키지 않은 것이었다. 거기에 공격제대를 엄호해줄 공군도 악천후로 인해 막상 공격 순간에는 그로즈니에 들어설 수 없었다. 유일하게 로클린 중장의 북동군이 북부군에 뒤이어 시내로 진입하였지만 그들도 체첸군의 강한 저항에 막혀서 선두 부대를 지원할 수 없었다. 수천에 달하는 러시아 육군 병력이 체첸군의 손아귀에 꼼짝없이 포위되었다.

 

   어느새 밤이 되자, 131 마이코프 여단의 사빈 대령은 부상자들을 마지막 남은 장갑차에 태운 뒤에 포위망을 돌파하려고 하였다.40명의 부상자를 태운 장갑차는 불행히도 시가전의 경황없는 와중에 시내 중심가를 향해 달려버렸다. 곧 체첸군의 집중 포화 속에 27명이 죽고 13명은 포로가 되었다. 전투는 1월 3일까지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악전고투 속에 부하들을 데리고 빠져나가려던 이반 사빈 대령은 결국 전사한다.

 

 

 

 

체첸군에게 잡힌 러시아군 포로

 


   결국 전투가 개시된 지 3일만에 러시아 '주력 공격부대'인 북부군은 파괴되었다. 81 기계화 연대의 절반이 죽거나 부상을 입거나 포로가 되었다. 131 마이코프 기계화 여단의 피해는 보다 심각해서, 사실상 전투부대로 운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1천의 병력 중에 800명이 전사하고 75명이 포로가 되었다. 26대의 전차중에 20대가 파괴되었고 120대의 장갑차 중에 102대가 파괴되었다. 마이코프 여단의 처참한 파괴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시가전의 중요한 사례로 남았다.

 

  체첸군은 어떻게 이런 전과를 올릴 수 있었는가? 우선 11월 26일에 반두다예프 파의 실패한 공세가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당시만 해도 '강대한 러시아'에 대항해 싸울 수 없다고 두려워하는 체첸인들이 많았지만, 막상 러시아군 전차가 손쉽게 파괴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시가전에서 전차나 장갑차를 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하르 두다예프는 러시아군 전차가 '성냥갑'처럼 쉽게 박살낼 수 있다고 하였고, 11월 26일날 그 실례를 두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지하에서 사격하는 체첸군

 

 

  또 하나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압하지아 병단'의 역활이 컸다. 아무리 조상 대대로 전쟁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도 막상 전차와 장갑차를 상대해본 경험이 없는 대다수의 체첸인들에게 그들은 훌륭한 코치가 되었다. 샤밀 바사예프와 루슬란 겔라예프 등이 지휘하는 전투 경험이 풍부한 압하지아 병단은 11월 26일 전투와 그로즈니 '신년 공세'에서 러시아군을 파괴하는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그리고 그 노하우를 급하게 소집된 다른 체첸인들에게 전수하였다.

 

 

 

 

체첸군 1개 분대. 2정의 RPG와 1정의 기관총, 1정의 저격총이 보인다.

 

 

  체첸인의 전차 격파 전술은 다음과 같다. 우선 6명에서 7명으로 한개 분대를 편성하고, 그들 중에 RPG 사수와 기관총 사수를 포함시킨다. 그리고 3개 분대를 포함된 25명 단위의 1개 소대를 편성하고, 여기에 위생병과 탄약 보급팀, 저격수를 포함시킨다. 그리고 3개 소대를 합쳐서 75명의 한개 중대를 형성하는 데, 중대에는 82mm 박격포 1문씩을 장비시킨다.

 

  1개 중대가 그로즈니 시내의 거리 한쪽 면을 장악하는 데, 절대 거리 양쪽면에 같이 매복하지 않는다. 서로 오인사격을 가할 수 있으며, 거리 뒷면을 통해 다른 부대의 증원을 받거나 후퇴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거리의  끝에 2개 소대를 배치하였고, 그들은 앞에 부비트랩을 설치하여 러시아군이 매복에 방해할 수 없게 하며, 필요시 다른 공격의 예비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가운데 회색은 러시아 부대, 전방의 검은 지대는 지뢰,
 
녹색은 25인의 지원팀, 파란 색은 '격파팀' 붉은 색은 다른 거리의 '격파팀'
 

 

  핵심부대는 거리 가운데에 매복한 1개 소대인데, 그들은 3개 분대를 건물마다 분산시켜서 러시아군 행렬을 기다렸다. 1개 분대마다 적어도 2대의 RPG와 2대의 기관총을 보유하고 있었는 데, 먼저 소대 저격수가 가장 위험한 러시아군 대공포 사수와 화염방사기 사수를 무력화하면 일제히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를 공격하였다. 그들은 건물마다 분산되면서, 동시에 한 분대는 건물 옥상, 또다른 분대는 건물 중간층, 마지막 분대는 지하에서 공격하는 식으로 높이도 분산하였다. 이럴 경우 러시아 전차포는 옥상을 공격하기에는 너무 높고, 지하를 공격하기에는 너무 낮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체첸군 참모총장 아슬란 마스하도프

 

 

   이 전술을 바탕으로 체첸군은 1995년 신년 공세에서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이 승리의 핵심 부대는 '압하지아 병단'이었지만, 승리의 설계자는 아슬란 마스하도프였다. 과거 소련군 포병 대령이었던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두다예프처럼 발트 연안에 근무했다가 체첸이 독립하자 군을 사임하고 내려왔다. 그는 체첸군의 참모총장으로서 대통령궁 지하 벙커에서 통솔이 힘든 각부대를 유기적으로 조직하였고 그들의 배치를 감독하여서 이러한 전과를 거뒀다.

 

  러시아군은 신년공세에서 투입된 120대 전차 중의 105대를 잃었고,  체첸의 마스하도프에 의하면 전차, 장갑차 도합 4백대 가까이 파괴되었다. 거기에 서부군과 동부군은 시내에 들어오지도 못한 상태였고, 그로즈니 시내의 유일한 러시아군 병력은 레브 로클린이 지휘하는 5천의 북동군 뿐이었다. 이들까지 몰아냈다면 분명 조하르 두다예프는 전투의 승리를 선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북동군 사령관 로브 로클린 중장


   그러나 러시아군에도 인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군 중장 중에 유일한 유태인이었던 로브 로클린 중장은 후퇴를 거부하고 시가지 북쪽의 주요 거점들을 지켜낸 것이다. 그의 선전으로 인해 공황에 빠진 러시아군은 다시 태세를 재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출처 :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library/report/1995/chechpt3.htm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library/report/1995/fel.htm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library/report/1997/thomas.htm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Grozny_(1994%E2%80%931995)
           http://fmso.leavenworth.army.mil/Red-Star/issues/JUL96/JUL96.HTML#THE%20NEW%20YEAR'S
           http://www.militaryphotos.net/forums/showthread.php?t=138436
           Moshe Gammer의 The Lone Wolf And the Bear 
           Sebastian Smith의 Allah's Mountains
           Yossef Bodansky의 Chechen Jihad
           Olga Oliker 의 Russia's Chechen Wars 1994-2000  Lessons from Urban Comb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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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가스가겐고로 | 작성시간 09.01.12 체첸도 중동에 용병수출하면...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1.12 아프간이나 이라크 전장에 체첸인들을 봤다는 미군측 자료는 있습니다. 특히 아프간의 다국적군이 체첸인과 조우했다는 말을 많이 하지요. 현지인과 비교해서 상당히 출중한 전투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입니다. 다만 체첸반군측은 자기들이 그런 전장으로 용병을 보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확실한 근거도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체첸 현지인이 아닌 중동에 거주하는 체첸인들이 아프간 등에 가서 알카에다에 가담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 작성자투창병 | 작성시간 09.01.29 체첸군이 깃발을 흔들며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 하는 분위기
  • 작성자임용관 | 작성시간 09.09.09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정말 멋진 표현이군요... 시가전은 역시 공격측에 많은 손실을 주는군요... 체첸 정규군의 놀라운 전술의 승리입니다...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09.12.04 허걱!!!..체첸군이 말그대로 러시아군을 지옥으로 초대했군요..러시아군이 너무 체첸군을 우습게 보고 방심한 것도 큰 피해를 냈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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