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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er] 체첸항쟁사

코카서스의 늑대들 : 체첸 - 45. 겔라예프 스페츠나츠

작성자jager|작성시간10.01.20|조회수3,624 목록 댓글 25

"   우리 발 밑은 불타고 있네

     그렇다고 나가지는 말게, 저격수가 우릴 노리고 있다네

     갑자기 쏟아지는 엄호 사격 속에, 우리는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네

     누가 우리를 보호했나?  겔라예프 스페츠나츠!

    

     집을 나와서 우리는 움직였네

     밤이 되어 다시 돌아왔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전차들

     그들은 우릴 노리고 있었네

      
      싸움은 길어질 것 같군

      모든 곳에 수류탄 소리가 들린다

      불탄 전차들은 불타는 시신들과 함께

      도로 곳곳에 버려지고 있었네

      

       갑작스럽게 나타난 굉음과 함께

       우리 후방에 나타난 2대의 전차들

       반격할 수 없었네. 이미 예비탄은 고갈된 상태

       하지만 번쩍이는 불꽃과 함께 녹아버린 전차들

       누가 우릴 구해줬나? 겔라예프 스페츠나츠! "


- 티무르 무크라에프가 부른 노래, '겔라예프 스페츠나츠' 중에서

 

 

 

 

 


   그로즈니를 철수한 지 한달 뒤, 체첸군은 극한 상황에 빠졌다. 서남부 마을 게키츄에 도달한 체첸군은 아르군 계곡을 중심으로 마지막 방어전을 수행했지만 1달에 걸친 러시아군의 공세로 인해 최후 거점 사토이 마을이 함락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숲 속으로 후퇴해서 은신하는 수 밖에 없었지만 눈 덮인 코카서스 산맥은 체첸인들조차 이동하기 힘들었고, 앙상한 겨울가지는 러시아 공군의 폭격에 무방비로 노출시켰다. 신설된 러시아 남부군은 그루지아 국경 지역을 봉쇄하여 체첸군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사토이 마을에서 방어전을 수행했던 함자트 겔라예프는 부하들과 함께 가까운 숲 속에 은신하였다. 그의 병력은 그로즈니를 탈출하던 병력과 아르군 계곡 지역에서 편입된 병력으로 총 1천에 달했다. 비축했던 식량이 없어 타고다니던 말을 잡아먹어야 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고, 계속된 격전 속에 부상병이 증가하고 전체적인 피로도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숲 속에 은신한 겔라예프

 


   절박한 상황인 겔라예프에게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그의 부대가 쉴 수 있는 은신처를 가까운 마을에 제공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로즈니 서남부 알칸 칼라에서 활약한 체첸군 지휘관 아르비 바라에프였다. 그는 부상병들을 후송할 버스까지 준비해준다고 하였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 죽어가던 겔라예프로서는 너무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래서 숲 속에 계속 은신하라는 아슬란 마스하도프 대통령의 명령도 거부한 채 바라예프가 지정한 장소로 부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접선 장소는 그로즈니 남쪽 25킬로미터 지점의 어느 마을 근처였다. 무기와 식량을 공급받기 위해 나타난 겔라예프를 기다린 것은 부상병들을 이송할 버스가 아니라 러시아군 로켓포였다. 속은 것이었다. 그로즈니를 탈출하려던 샤밀 바사예프를 속여 넘겼던 러시아 FSB는 아르비 바라예프를 매수했던 것이다. 영리했지만 농부처럼 순진했던 함자트 겔라에프는 러시아군의 공격 속에 가까운 마을인 콤소몰스코에로 후퇴하였다. 공교롭게도 그의 고향이었다. 2000년 3월 4일의 일이었다.

 

 

 

 

콤소몰스코예의 위치. 아르군 계곡을 빠져나온 겔라예프는 덫에 걸렸다.

  


  러시아 동부군 사령관 제나디 트로체프는 처음에는 불과 수십명의 체첸군이 마을에 진입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3월 6일에 투입한 스페츠나츠 병력은 16명의 전사자를 내고 후퇴해야 했다. 그제서야 트로체프는 마을에 진입한 체첸군이 예상 외로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어가 낚인 것이었다. 천명의 체첸군이 인구 5천에 불과한 마을에 진입하여 집과 집을 연결하는 참호를 파고 마을 곳곳에 진지를 구축하면서 러시아군을 기다렸다.

 

 

 

 

겔라예프를 포위한 러시아군

 

   러시아군은 포병 전력을 집결시켜서 콤소몰스코예를 향해 일대 포격을 가했다. 이 중에는 TOS-1 부란티노도  있었다. 이미 다게스탄 전역과 그로즈니에서 맹활약을 했던 이 가공할 무기가 한줌에 불과한 마을을 향해 치명적인 기화탄을 퍼부었다. 3일에 걸친 포격 끝에 2000년 3월 8일 24대의 T-72 전차를 앞세운 러시아군 보병대가 다시 마을로 진입하였다. 이미 숱한 시가전을 경험했던 러시아 전차대는 마을의 집 한채 한채를 사격하면서 진격하였고, 트로체프 사령관은 다음날인 3월 9일이면 체첸군을 궤멸시킬 것이라 공언하였다.

 

 

 

 

 

마을에 진입한 러시아군 전차

 

  그러나 마을에 진입하자마자 선두에 섰던 러시아군 전차는 파괴되었다. 체첸군 소규모 분대는 전차와 보병대 사이를 파고들어 기습하였고 RPG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를 파괴할 수 있었다. 열린 전차 해치 속으로 수류탄을 던져넣어 파괴하기도 했다. 러시아 내무군 병력은 중화기와 기갑 차량을 상실한 채 후퇴하였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쳤지만 체첸군은  러시아군의 녹녹한 상대가 아니었다. 마을에 들어선지 불과 며칠만에 콤소몰스코예 마을은 참호와 벙커가 거미줄처럼 연결된 요새가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포위망은 점점 견고해졌고 포격은 점점 거세졌다. 이미 마을에 들어서는 시점부터 바라예프의 속임수에 쉽게 말려들 정도로 지치고 굶주린 상태였다. 그로즈니와는 달리 러시아군의 기화탄의 세례를 견디기에는 콤소몰스코에는 너무 좁은 마을이었다. 러시아군 병력은 점차 증원되었고 기갑부대를 앞세운 공격 속에서 체첸군은 간신히 버텨냈지만, 한번 부상을 당해 쓰러지면 처치할 약도 인력도 없었다. 그래서 구석에 방치된 채 추위 속에 죽어갔다.

 

 

 

 

 

작전 중인 러시아군

 

   러시아 트로체프 장군의 공격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난 2000년 3월 19일, 체첸군 지휘관 겔라예프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렇다고 항복할 생각도 없었던 겔라예프는 아직까지 움직일 수 있던 체첸군500명을 마을 북쪽으로 집결시키고 그날 밤 중으로 탈출 작전을 감행한다.

   모든 군사 작전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탈출 작전이었다. 콤소몰스코예 전투도 에외가 될 수 없었다. 겔라에프의 부하들은 마을 북쪽의 러시아군 사격과 지뢰밭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350명이 전사한다. 하지만 겔라예프는 기어이 150명의 부하들과 함께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압하지아 전쟁 부터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겔라에프는 또 한번의 지옥을 빠져나온다. 하지만 그 뒤로 절반이 넘는 그의 부하들을 버리고 가야 했다.

 

 

 

 

사격하는 겔라예프, 그는 부상당한 부하들을 버리고 마을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마을에 남겨진 체첸군은 최후의 순간까지도 러시아군과 교전하였다. 마을에 진입하여 집집마다 수색하는 러시아군은 체첸군의 벙커에 수류탄을 던져넣었고, 안에 있던 체첸군은 받은 수류탄을 다시 되던지면서 저항하였고, 곳곳에 매복된 저격수들은 러시아군 장교들을 하나하나 저격하였다. 전사한  장교 중에는 러시아 서부군 소속의 내무군 지휘관인 미하일 레벤코 대령도 있었다.  항복하는 척 하면서 러시아군이 다가오면 수류탄을 터트려 자폭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겔라에프가 떠난 3일 뒤인 2000년 3월 21일, 콤소콜스코에 마을 위로 러시아 깃발이 휘날리게 된다. 그리고 다시 3일 뒤인 3월 24일, 러시아 국방부 이고르 세르게에프 원수는 콤소몰스코예 마을 대부분이 러시아군에게 장악되었음을 발표한다. 아직까지 수십명의 체첸군이 이젠 몇채 남지도 않은 건물 속에서 러시아군에게 퇴로가 모두 차단된 상태로 고립되어 있었다. 러시아군으로서는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벌써 50명이 죽고 300명이 부상당한 상태였다 가급적이면 더 손실을 입지 않고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콤소몰스코예의 폐허 속에서 교전하는 러시아군

 

    마지막 순간까지 마을에 남아 싸우던 체첸군은 이미 3주 가까이 교전을 치렀고 더 이상 움직일 기력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러시아군의 선전 방송이 들린다. 푸틴 대통령이 그들에게 사면령을 내리고 항복하면 목숨을 보장하고 부상병에게 치료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초췌해진 체첸군은 그 발표를 사실로 믿어버린다. 무기를 내리고 항복한다. 그들의 뒤에는 800구의 체첸군의 시신과 300필의 죽은 말이 널려있었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콤소몰스코예. 거의 지도 상에서 지워질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콤소몰스코에 마을에서 항복한 체첸군은 74명이었다. 체첸군이 대규모로 항복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들은 곧 자신들이 살아서 항복한 것이 큰 실수였음을 깨닫는다. 포로와 전사자 중에 함자트 겔라예프를 찾지 못한  러시아군은 광분하게 되고, 포로들을 철사로 묶은 다음에 권총으로 팔과 다리를 난사하였다.

 

   '자유가 그리워? 냄새라도 맡고 싶어? 그럼 왜 겔라예프가 있는 곳을 말하지 않나?'

 

   포로가 된 체첸군은 40일에 걸친 그로즈니 전투 이후로 그 끔찍한 알칸 칼라의 지뢰밭을 건넌 뒤에 한달에 걸친 아르군 계곡 전투를 치뤘다. 그리고 다시 3주에 가까운 콤소몰스코예 방어전을 치르면서 굶주리고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포로 대우를 제대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더 걸을 수 없게된 포로들이나 탈진한 포로들은 한쪽 구석에 짐짝처럼 쌓아두고 방치했다. 그들은 서서히 죽어갔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악명 높은 체르노코즈브 정화 캠프로 끌려갔다. 러시아군은 체첸인을 심문하고 고문하는 장소를 '정화 캠프 (filtration camp)'라고 불렀다.

 

 

 

 

 

 

 

콤소몰스코예 전투 후 포로가 된 체첸군. 걸어갈 수 없는 자는 구석에 쌓인 채 죽어갔다.

 


  콤소몰스코예 전투에서 생긴 74명의 포로들의 운명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이 현재까지도 실종 상태였다. 다만 러시아군 장교 한명이 포로들이 정화 캠프로 끌려가는 중간 과정을 촬영하였고, 이 동영상에 등장한 체첸군은 마치 나치 부헨발트 수용소의 유태인들처럼 뼈마디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였다. 러시아 기자 안나 폴리코브스카야의 끈질긴 노력으로 그들 중에 3명의 생존자를 밝혀내고 그들이 겪었던 학살과 고문에 대한 기록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들 중 2명은 자살하고 1명은 다시 실종된다.


    러시아군은 바라에프를 매수하여 함자트 겔라에프를 유인하였고 매복 지점에서 그의 병력의 80퍼센트를 파괴하였다. 비록 '검은 천사'를 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체첸군의 핵심 전력 중 하나를 제거하였다. 처음부터 숲에서 나오지 말 것을 명령했던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격분하였고 함자트 겔라예프를 중장에서 하전사로 강등시켰다. 하지만 그런다고 전사한 체첸군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숱한 전투로 단련된 '겔라예프 스페츠나츠'의 상당수가 그로즈니 남쪽 콤소몰스코에에서 녹아버렸다.

 

 

 

 

 

콤소몰스코예에서 살아 남은 겔라예프

 


   하지만 체첸군의 주력 부대 전체가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군 계곡에 있던 다른 주요 병력들은 남동부 산악지대로 이동하여 러시아군의 공세를 피하고 재정비의 시간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산악지대 곳곳에 배치된 러시아군의 포위망을 뚫고 자신들의 활로를 찾아야 했다. 반대로 그들을 아르군 게곡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는다면, 러시아군은 체첸군의 주력 부대를 전부 소멸시킬 수 있었고 그걸로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출처 : http://muedzin.narod.ru/gelaevskiy_specnaz_albom.html
          http://en.wikipedia.org/wiki/Second_Chechen_War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Komsomolsko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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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jag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1.24 한명을 죽이고 백명을 경계시킨다..는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런 차원을 넘어 최대한 많이 죽여서 병력을 소진시킨다는 전략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 작성자SuperElf | 작성시간 10.01.25 음 그래서 결국 안나 폴리코브스카야가 결국 암살된거군요?
    하긴 그럴만도 하겠습니다... 결국은 체첸쪽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게 만드는거니
  • 작성자푸른매 | 작성시간 10.01.26 안나 폴리코브스카야가 아니라 안나 폴리트코브스카야Anna Politkovskaya 아닌가요?
  • 작성자라인테 | 작성시간 10.01.30 저기 예거님(jager) 혹시 그 밀리터리군사무기카페에서 연제로 쓰시던 분 맞나요? ㅋ
  • 작성자카이사르 마그누스 | 작성시간 10.02.15 결국 전쟁을떠나서 서로간의 학살이되어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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