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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게시판

[판타지]공익 하면서 적은 폴아웃 소설 여섯번째

작성자토게피|작성시간17.07.12|조회수119 목록 댓글 0

저는 조용한 공익 생활을 보내고 싶습니다. 지금도 그랬지만 앞으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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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이 깨어난 곳은 아까 그 창고였다. 눈을 뜨자 보인 건 형광등이 몇 개 깨진 천장이었는데, 형광등이 깨진 곳에 인형들이 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가서 형광등을 바꾸러 올라가고 있었다. 소년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얀 매트리스. 소년은 바닥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창고의 바닥은 걸을 때마다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금속 바닥에서 풀이 무성한 잔디밭으로 변해있어서 인형들이 사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사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이 몸을 일으키자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스르륵 무너졌고 소년 옆에 누워 자던 소녀는 이불을 당겨 목까지 덮었다.

“어?”

침대에는 둘이 있었다. 하나는 방금 깨어난 세이커다.

“음냐…….”

하나는 누워 자는 여자애다. 자주색의, 풍성하고 뒷머리를 세 가닥으로 땋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좋은 꿈을 꾸는 지 미소를 짓고 자고 있었다.

“헤헤헤….”

…….

“누구야!”

“꺅!”

처음 보는 애가 옆에 누워있는 걸 본 소년은 기겁하며 이불에서 튀어나왔다. 소녀는 소년이 소리를 지른 것 때문에 놀라 깨어났는데, 이불을 뒤집어써서 앞이 안 보인다며 우왕좌왕하다가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뭐야아? 자알 먹고 있었는데에. 엄청 맛있었다고오”

소녀는 뒤집어쓴 이불을 벗고 뷔페에서 먹고 싶은 걸 많이 먹지도 못했는데 식사 시간이 다 돼서 퇴장하는 듯 시무룩한 표정으로 눈을 비비며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깨운 건 미안해. 그런데 너는 누구야? 왜 나랑 같이 자고 있었어?”

세이커는 소녀가 바닥에 널브러뜨린 이불을 침대에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소녀는 3초 동안 멍하니 소년을 쳐다보더니, “1시간만 더”라면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자려고 했다.

“저기, 너 또 자려는 거야?”

“응, 자다 일어나니까 졸려”

소년은 침대에 누운 소녀는 제쳐두고 방을 둘러봤다. 소년이 아이작과 하워드하고 같이 기둥과 대화했던 곳이었던 건 확실한데, 그 둘은 어디에 갔는지 안보이고, 소년이 손을 넣어 대화했던 기둥도 없었다. 지금 있는 건 형광등 수리를 마치고 떠나는 인형들과 소년, 자려고 하는 소녀뿐이었다.

“저기”

세이커는 누워있는 소녀의 볼을 살짝 찔렀다.

“너 혹시 프루루트야?”

“응”

“기둥이 아닌데?”

“몸을 만든다고 했잖아아, 그래서 이렇게 한 거고오”

외계소녀 프루루트는 그리 대답하고는 “더 물어볼 거 있어?”라고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세이커는 나머지 둘은 어떻게 됐는지, 다른 외계인 친구들이 있는지 물어봤다.

“아아, 내가 기둥에서 나올 때 다들 기절했었지? 아이작이랑 하워드는 세이커보다 빨리 일어났어어. 그래서 날 보고 ‘이렇게 이쁜 아이가 외계인일리 없잖아!’하면서 만화책에서 본 거랑 다르다고 신기해 하더라고오. 그리고 내가 볼트를 고치게 도와준다니까아, 고맙다고 하면서 인형들이랑 물건들 챙기고 같이 위로 올라가서 일하고 있을 거야아. 나 말고 다른 친구들은 이 별에 먼저 왔었다는데에,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집중을 해서 머릿속으로 말 걸면 대화는 할 수 있다?”

“머릿속으로 대화라면, 텔레파시같은 거?”

“응! 그렇게 불렀더라고. 텔레파시! 인간들이 전화라는 거 쓰는 거랑 비슷하대”

프루루트는 그러면서 전화를 하는듯한 시늉을 했다. 그런 말을 들은 세이커는 그 둘이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볼트는 이제 전등이 전보다 밝게 빛나고 인형 일꾼들 덕분에 시설들이 하나 둘 복구되고 있었다. 덕분에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대신 수리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볼트 밖으로 오랜만에 나오니 아이작과 하워드가 인형들이 숲을 돌아다니며 모아온 산딸기 같은 과일 열매나 식물 씨앗들을 종류별로 분류해서 이름이 적힌 바구니들에 골라 넣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작은 위험물질 방호복을 입고 양손에 장갑까지 낀 채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 왜 그런 옷을 입고 있어요?”

“일어났어? 방사능 때문에 그렇지. 아무리 약 2백년이나 지났다지만, 그렇다고 식물이나 땅에 묻은 방사능이 사라지진 않을 거라고. 난 볼트에서 살아서 외부 환경에 함부로 노출되면 쉽게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고 밑에서 키울만한 깨끗한 식물을 찾는 거라고”

“하지만 주인님, 제가 이 근방의 방사능 수치는 아주 적다고 했지 않았나요? 게다가 자연에는 아주 미세한 방사능이 있답니다. 바나나 하나가 1시간에 0.1나노시버트의 방사능을 배출하는 걸요!”

“바나나? 그게 뭐에요?”

“과일 이름이랍니다, 도련님. 대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과일이죠. 노란색 껍질의 길쭉한 과일인데, 껍질을 벗겨서 생으로 먹기도 하고 얼려서 먹기도 하고 튀겨서 먹기도 했답니다.”

“우와아 맛있겠다아! 그런데 여기는 바나나 없어?”

“아쉽지만 아가씨, 대전쟁 이전에 일어났던 과일 대기근으로 바나나도 멸종해버렸을 겁니다. 볼트 안에 가지고 들어왔다면 모를까요?”

하워드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인형들이 주는 열매나 식물들을 바구니에 골라 넣고 있었다.

“볼트에 들어갈 때 여러 가지 챙겨서 들어간 게 많나 보네요?”

“그렇겠지. 무기라던가 식품 합성기도 들여왔고, 파워아머도 들여왔는데 바나나 하나 안 들여왔을까?”

“하지만 주인님, 볼트 안에 무너진 곳이 많아서 창고에 바나나 종자가 있다고 해도 멀쩡하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바깥 음식보다는 낫지 않을까? 밖에서는 마른 옥수수나 돌연변이 과일 같은 걸 먹고 그랬거든.”

“그래애? 세이커는 또 뭐 먹어봤었는데?”

프루루트의 말에 세이커는 지금까지 먹어왔던 음식들을 떠올렸다.

“김이 완전히 빠진 누카콜라라는 거랑, 선셋 사르사파릴라 라고 하는 루트비어, 이구아나 꼬치구이, 다람쥐 고기, 선인장은 가시만 떼어내고 먹었고, 200년 지난 통조림도 먹었어.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야 했지. 늑대만한 크기의 큰 개미를 잡아서 개미고기도 먹고, 겍코라는 큰 도마뱀을 잡아서 먹기도 했는데, 맛은 괜찮더라고”

“2백년 지난 전쟁 전 인스턴트 요리와 돌연변이 동물 고기라니, 내가 볼트에서 먹어온 게 진수성찬이었네”

“개미고기? 별로 맛없었을 것 같아”

프루루트는 늑대만한 크기의 개미를 상상하고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여기 음식이 좋은 거야. 만들어서 내다 팔 수 있으면 돈 많이 벌 걸?”

“아, 도련님, 그럼 숲 밖에 펼쳐진 세상을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워드가 물어보자 세이커는 인형이 주는 과일을 받아 한 입 깨물어 먹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네. 난 캘리포니아의 어느 부족의 애였어. 부모님 얼굴은 본 적이 없고, 황무지 상단에 팔려서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일했어”

“캘리... 거기가 어디야아?”

“여기서 북서쪽 땅이야. 마르고 더운 땅이라고 하더라고”

“맞아요. 전 거기의 NCR, 그러니까... 뉴 캘리포니아 공화국의 상단 밑에서 일하면서 살았어요. 규모가 커서 여기 북쪽의 모하비 황무지에도 지부가 있는데, 거기서 숲 탐험대를 여기로 보낼 때 따라왔었죠. 저희 상단은 정부 지원을 받아서 왔었는데 저만 살아남은 것 같고, 독자적으로 탐험하러 온 사람들도 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도련님은 그 때 숲에서 동물이라도 만났었나요? 등에 상처가 심했었는데 말이죠?”

“시저의 군단... 때문이에요”

“군단?”


  프루루트가 겁먹은 듯이 움츠러드는 세이커를 보고 그 때 상처가 났었던 등에 손을 대면서 달라붙었다.

“시저라는 사람이 이끄는 집단인데, 고대 로마의 문화라고 하면서 약자를 노예로 부리고 온갖 무시무시한 짓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모하비 동쪽의 애리조나 지방에서 살았는데 서쪽으로 와서 NCR하고도 싸운 적이 있대요. 이번에 공화국에서 숲에 탐사대를 보내니까 ‘이 숲은 카이사르의 것이다’ 라면서 공격을 해온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였던가 봐요”

“많이 무서웠겠다아.”

소녀는 소년의 등에 달라붙은 채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위로를 해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하워드, 일은 이 쯤 하고 이만 내려가서 쉴 까? 견본도 모은 것 같으니까”

“아, 그게 좋겠네요. 주인님”

아이작은 둘을 위해서 식품생산기로 케이크라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볼트 밖에서 돌아다니던 인형들이 이곳저곳을 보면서 귀를 쫑긋거리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우르르 달려서 볼트로 돌아오고 있었다. 세 자릿수에 가까운 인형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으면서 총알처럼 달리면서 볼트로 모이는 것을 보니 커다란 생물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 얘들 왜 이래?”

“주인님! 기계의 반란이 시작된 걸까요?”

모두가 안절부절하던 도중, 프루루트가 인형들이 도망치는 곳과 반대쪽을 보더니, 양 눈에서 전구처럼 빛이 반짝이다 사라졌다.

“프루루트, 왜 그래?”

세이커가 걱정이 돼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인형들이 그러는데, 뭔가 오고 있어. 인형 하나가 걔들에게 잡혔대!”

“뭔가가? 사람이야?”

아이작의 질문에 프루루트가 눈을 감았다.

“아이작만한 사람이 다섯. 다들 뭔가를 들고 있어”

눈을 감고 있지만, 멀리 뭐가 오는 지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저기, 도움이 된다면 제가 볼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하워드가 자신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자, 소녀는 손을 하워드의 머리에 대고 자신이 본 것을 보여줬다. 그러자 하워드는 프로젝터 기능으로 입구 벽에 프루루트가 본 걸 비췄다. 비춰진 모습에는 고대 로마 갑옷처럼 보이게 이곳저곳을 붙여 놓은-미식축구 복장 같지만- 갑옷을 입고, 잔디깎이 기계의 칼날에 손잡이를 달아서 만든 것 같은 칼을 찬 병사들이 모여 인형을 불태우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세이커가 말한 시저의 군단 병사 같았다.

“쟤네들이 시저의 군단이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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