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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삼한벽상공신 ‘신숭겸 장군’의 후손이 지은 정자에서 유숙하다.

작성자Red eye|작성시간22.12.15|조회수234 목록 댓글 3



1597년 8월 7일

맑음. 이른 아침에 길에 올라 곧장 순천으로 가는데, 도중에 선전관 원집을 만나 임금의 왕명서를 받았다. 전라병마사(이복남)의 군사들이 모두 괴멸하여 돌아가는 것이 길에 줄을 이으므로 말 3필과 활, 화살을 약간 빼앗아 왔다. 곡성의 ‘강정’ 에서 잤다.


출처: 난중일기 유적편 (이순신 저, 노승석 옮김)


-‘곡성의 강정’은 ‘능파정’이라는 정자를 가르킨다고 합니다. 이곳은 고려 태조의 마군 장군이자 평산 신씨의 시조, 신숭겸 장군의 후손인 신대년과 그 아우들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고 낙향하여 지은 정자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 복직명령서를 1597년 8월 3일(음력)에 받고 수군 재건을 위해 순천으로 가는 여정 중 들러 친분이 있던 신대년과 그 형제들을 만나 시국을 논의했다고 전해지네요. 여담으로 평산 신씨들도 임진왜란에 많이 참전했는데 신립, 신각, 신호 등이 있습니다.

 

 

 

 




https://www.gokseong.go.kr/town/subPage.do?menuNo=101004002000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img_pg.aspx?CNTN_CD=IE003073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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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2.12.15 신숭겸 후손인 평산 신씨들이 임진왜란에 많이 참전했군요 신립이 평산 신씨였다니...
  • 답댓글 작성자多爾袞 | 작성시간 22.12.15 어쩐지 북방뽕 마군뽕
  • 답댓글 작성자Red eye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2.17 신각 장군은 해유령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최초의 육전 승전했으나 선조의 아둔함으로 처형되었네요. 신호는 낙안군수로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여러해전을 치룬 사람입니다.

    https://youtu.be/MixxxbJCI-U
    첨부된 유튜브 동영상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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