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8월 7일
맑음. 이른 아침에 길에 올라 곧장 순천으로 가는데, 도중에 선전관 원집을 만나 임금의 왕명서를 받았다. 전라병마사(이복남)의 군사들이 모두 괴멸하여 돌아가는 것이 길에 줄을 이으므로 말 3필과 활, 화살을 약간 빼앗아 왔다. 곡성의 ‘강정’ 에서 잤다.
출처: 난중일기 유적편 (이순신 저, 노승석 옮김)
-‘곡성의 강정’은 ‘능파정’이라는 정자를 가르킨다고 합니다. 이곳은 고려 태조의 마군 장군이자 평산 신씨의 시조, 신숭겸 장군의 후손인 신대년과 그 아우들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고 낙향하여 지은 정자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 복직명령서를 1597년 8월 3일(음력)에 받고 수군 재건을 위해 순천으로 가는 여정 중 들러 친분이 있던 신대년과 그 형제들을 만나 시국을 논의했다고 전해지네요. 여담으로 평산 신씨들도 임진왜란에 많이 참전했는데 신립, 신각, 신호 등이 있습니다.
https://www.gokseong.go.kr/town/subPage.do?menuNo=101004002000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img_pg.aspx?CNTN_CD=IE003073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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