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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2: Forum

모리가문기-7장 알려지지 않는 싸움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12.01.28|조회수220 목록 댓글 2

 

 

 

 

 

 

 

 

1558년 늦가을, 히젠국의 모리 모토나리님은

 

지쿠젠국에서 공작중이던 승려 유키아리로부터 서신을 받으니

 

지쿠젠국에 배치되어 있었던 이토 가문 주력군이

 

히고국에서 발생한 불교도들의 잇키(반란)을 진입하러 내려갔고

 

지쿠젠국에서 나가노 가게히라라는 자가 수천의 불만세력을 모아 잇키를 일으켰는데

 

이에 대항하는 지쿠젠의 이토군은 100여명도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모토나리님은 휘하의 군대에 부젠국에서 지원온 후쿠바라 다메미츠의 군세를 합하여

 

2500여명의 군세를 조직하고 지쿠젠국으로 출진하고 다메미츠를 선봉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모토나리님의 군대가 국경에 이를무렵, 정찰 나갔던 다메미츠가 보고하기를

 

"도노(주군)! 이토 치카하라님이 이끄는 이토군 1600명이 히고국에서 북상하여

 

가게히라의 반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나이다!"

 

라고 하니 이에 모토나리님이 말씀하시길

 

"양군의 군세가 각각 수천이라 하니 대전을 치루겠군.

 

이토군이 정규군이라 하나 치카하라는 애송이니

 

잘하면 내 이토군이 패퇴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전투상황은 어떠한가?"

 

라고 묻자 다메미츠가 대답하길

 

"가게히라가 처음에 휘하 병력을 3000이라 운운하였으나

 

전장에서 확인된 반군은 1000여명 남짓이여서 전황이 불리해보였나이다."

 

라고 하였고 곧이어 정찰부대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도노! 지금 이토군이 잇키를 격파하고 잔당들을 추격하고 있나이다!

 

곧 이토군이 이곳으로도 올 것이옵니다!"

 

라고 하고 다메미츠가 말하길

 

"도노. 어찌하올까요. 이대로 회군하옵니까.

 

아니면 진공하여 이토군을 섬멸하고 지쿠젠국으로 침공하옵니까."

 

하니 모토나리님이 답변하시길

 

"다메미츠, 이토군에 가서 나의 말을 전하라.

 

우리는 지쿠젠국의 혼란에 잇키들이 히젠국에 침입할까 염려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며

 

이제 우리는 이토군과 함께 잇키를 추적하여 섬멸할 것이라고 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쿠젠의 잇키들은 모리군과 이토군에 의해 섬멸되고

 

모리군은 다자이후성으로 회군하였으며

 

이토군은 지쿠젠국에 주둔하여 평정을 재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이토 가문은 모리 가문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되었고

 

그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모토나리님은

 

한동안 큐슈에서의 군사활동과 공작활동을 중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559년 내내 유키아리 같은 승려들은

 

아소교(카톨릭교)가 유행하는 히젠국과 부젠국에서 설교활동을 하고

 

모리군은 불만세력 단속과 치안을 담당했습니다.

 

 

한편 미마사카국의 모토하루님은 1558년 가을에 무라카미군 본대를 격파하여

 

미마사카 국경 밖으로 쫓아냈지만

 

모리군의 피해도 커서 전투 이후 1559년이 될 때까지 재정비를 해야 했습니다.

 

 

 

1559년 초봄,미마사카국 국경에서 사카키바라 다메스케가 지휘하는 무라카미군 후군이

 

모리 가문 닌자들에 의해 발견 되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1558년에 미마사카국을 침공한 무라카미 본대를 지원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무라카미 본대가 모토하루님의 매복공격에 격파되자

 

국경의 산림지대에 숨어있으면서 모리군의 정세를 염탐하고

 

약탈을 통해 모리 가문의 치안과 경제에 피해를 주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모토하루님은 닌자들을 동원하여 무라카미군에게

 

모리군 토벌대가 출발하지도 않았는데도

 

모리군이 출동했다는 정보를 흘려 무라카미군이 헛고생하게 만들고

 

무라카미군이 지칠때에 모리군이 당도하게끔 유도하였습니다.

 

 

 

결국 수도 적고 지쳐있던 무라카미군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모리군 토벌대의 공격을 받아 궤멸당했습니다.

 

모리군은 무라카미 후군을 궤멸시키는 과정에서

 

지난 가을 전투에서 패퇴한 무라카미 가문 당주 무라카미 무네카게님이

 

잔여병력을 데리고 산악지대에서 재편성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했습니다.

 

 

한편 지난 가을에 빈고국 성주 고바야카와 다다모토는

 

모토하루님의 편지를 받으니 내용이 이러했습니다.

 

"그간 안녕하시오. 나는 미마사카국에서 무라카미군을 격파했소.

 

2000여급 가까이 참수했으니

 

지금 비젠국의 무라카미놈들은 정신없을거요.

 

저들은 다시 미마사카국을 노릴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지금 지원병력을 모아 도와주시오.

 

계속 답신 보내리다."

 

 

 

이에 휘하 가신들이 이상하게 여기며 말하길

 

"여기서 미마사카국을 지원하려면 앗키국을 통해 북상하여 한참 가야하니

 

차라리 이나바국에 지원서신을 보내면 충분했을 것인데

 

왜 우리에게까지 병력 지원을 요청한 것일까요?"

 

라고 하니 이에 다다모토가 답하기를

 

"아키국 성주에게 지원군을 요청하고

 

빗추국의 오우치 가문에 사람을 보내 병력이동 양해를 구하라.

 

그리고 빈고국의 수성군 500여명을 동원하여 출전준비를 하고

 

도련님께는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하거라."

 

조만간 도련님께서 다시 기별할 것이다."

 

라고 하고 병력을 빗추국으로 이동시켰습니다.

 

 

 

빗추국의 오우치 가문은 동맹으로서 모리군 이동을 승낙해주었고

 

다다모토의 모리군이 빗추와 비젠 국경에 이르렀을때

 

모리 가문의 닌자가 다다모토에게 접근하니

 

다다모토가 수화문답(신분확인 절차)를 통해 신분을 확인하고

 

서신을 받아보니

 

비젠국의 무라카미군 병력 현황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었는데

 

무라카미군 주력은 미마사카 국경지대에 있거나 배치중이었고

 

비젠국의 거성 오카야마 성을 지키는 무라카미군은

 

250명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다다모토는 신속히 병력을 움직여 오카야마성을 습격하여

 

궁수부대로 적군을 무수히 사살하고 성문을 불태우고 공성을 감행하니

 

수성장 노다 모토요리는 천수각에 불 지르고 할복하려고 하다가

 

모리군 궁수의 사격을 받아 죽고

 

수성군은 모리군에게 제대로 창검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전멸하였습니다.

 

 

 

다다모토는 곧바로 무네카네님의 무라카미군에 대한 보급을 완전히 차단하고

 

증원병력도 다시 불러들이니

 

오야카마 성이 점령된지 몰랐던 무라카미 증원군은

 

영문도 모르고 오카야마성으로 되돌아왔다가

 

무장해제되어 집으로 돌아가거나

 

무의미한 저항 끝에 참살되었습니다.

 

 

 

비젠국을 장악한 다다모토는 봉화를 피워

 

미마사카국 국경의 모토하루님 군대에 신호를 보냈습니다.

 

 

신호로 비젠국 장악을 확인한 모토하루님은

 

1800여명의 모리군을 이끌고 미마사카국 국경 산악지대를 수색하다가

 

무네카게님의 무라카미군을 발견하였습니다.

 

모토하루님이 공격준비를 하자

 

무네카게님이 모토하루님께 서신을 보냈습니다.

 

"너는 여기가 너희네 땅인줄 아느냐?

 

나는 니 머리에 피마를 시절부터 이곳에서 살아왔다.

 

곧 수천의 증원군이 지원오면 너는 지난 가을때처럼 살아남진 못할 것이다.

 

좋은 말로 할때 물러남이 어떠한가?"

 

 

 

이에 모토하루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곳의 정세에 대해 잘 아시는 분께서 어찌 이곳 주변의 정세변화는 모르십니까?

 

그리고 전쟁의 도엔 인정이 없다합니다.

 

제가 지더라도 그대에게 구걸하지 않을 것이고

 

제가 이기면 그대가 저에게 구걸해야 될 것인데

 

어찌 싸움을 앞두고 이러쿵저러쿵 하십니까?

 

침략자는 잠자코 운명의 심판이나 받으십시오."

 

 

지난 가을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었던 모토하루님은

 

군대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우세한 궁수부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중앙에 궁수부대를 집중시켜 어느 방향에든 지원 사격을 할 수 있게 하였고

 

좌익과 우익에 보병부대를 분산 배치하여

 

무라카미군의 사격에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였습니다.

 

 

 

한편 무라카미군은 모리군의 궁수들이 중앙에 집중되고

 

보병들이 좌우익에 분산되어 흩어진 것을 보고

 

중앙에 병력을 집중하여 모리군을 격파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무라카미군은 모리군의 사격을 돌파하지 못했으며

 

모리군 좌우익의 보병들은 무라카미군의 좌우익을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무라카미군의 돌격을 독려하던 무네카네님은

 

슬그머니 하타모토들을 데리고 도망치려고 하니

 

그것을 눈치챈 모토하루님이 정예 야리 사무라이들과 하타모토들을 동원하여

 

무네카게님의 퇴로를 차단한 다음

 

집요하게 공격하여 무네카게님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이에 무라카미군이 흩어져 달아나니

 

모리군은 일제히 전진하여 무라카미군을 추격하고 하타모토들은 사냥하여

 

무라카미군 잔당들을 섬멸하였습니다.

 

 

 

모토하루님은 무네카게님과 무라카미군의 목을 모조리 베어

 

비젠국에 조리돌려 무라카미 가문의 멸망을 비젠국 백성들에게 알렸고

 

서신을 모토나리님께 보내어 비젠국에 대한 통치를 여쭌 다음,

 

자신은 군대를 이끌고 이나바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모토나리님은 빈고국의 군대로 비젠국 평정을 실시하게 하고

 

모토하루님의 군대를 이나바국에서 미마사카국으로 이동시켜 평정케 하였습니다.

 

 

1559년 겨울,부젠국에서 설교를 하던 승려 유키아리가

 

지역상인의 주선으로 분고국 불교도 토호 우에무라 구니히라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이토 가문의 카톨릭 정책과 과세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에 유키아리가 불교의 도로서 구슬리자 구니히라가 말하기를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일어나서 이땅을 혼란에 빠뜨린

 

서역인과 그에 물든 이토 가문을 쫓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옵니다.

 

허나 분고국 이남 이토 가문의 본거지 휴가국에 이토군 2500여명이 배치되어 있으니

 

분고국에서 잇키가 일어나더라도 곧장 진압군이 온다면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형세올습니다."

 

라고 하니 유키아리가 말하길

 

"그렇다면 휴우가국에 그대와 뜻을 같이 하는 사미들(남자 불교도를 일컫는 말)이

 

더 있소이까?

 

휴우가에서도 그대들과 뜻을 같이 하는자들이 일어나

 

서로 솥발처럼 서서 지탱한다면

 

진압군은 진퇴양난에 빠질 것이며 양국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소?"

 

라고 하자 이에 구니히라가 기뻐하며 유키아리에게

 

휴우가에서 뜻을 같이하는 유력자들을 소개하니

 

유키아리는 휴우가국의 유력자들과 불교도 무사들을 만나 설득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말하기를

 

"지금 빈고국은 방비가 허술하고 이곳 휴우가국은 이토 가문이 병력을 모집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먼저 거병한다면 우리는 불나방처럼 금방 소멸될 것이고

 

빈고국의 동지들은 고립될 것이오.

 

먼저 빈고국에서 잇키가 일어난다면

 

휴우가국에서 우리가 일어나 진압군의 발목을 잡을 것이니

 

빈고국의 잇키가 성공하여 우리와 합류한다면

 

휴우가의 이토군도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니 유키아리가 기뻐하며

 

이 제안을 빈고국의 구니히라에게 전하였고

 

구니히라는 이에 1559년 늦겨울에 1200명의 불교도 반란군을 이끌고 봉기하여

 

빈고국의 이토군을 섬멸하고 빈고국을 장악하였습니다.

 

 

 

이에 유키아리가 휴우가국에 가서 봉기를 촉구하자

 

휴우가국의 불교도들도 진압군을 편성하던 휴우가국의 거성을 포위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토나리님은 부젠국에 주둔하고 있던 다카모토님께 서신을 보내어

 

부젠국의 주둔군 900명을 동원하여 빈고국을 치게 하고

 

혼슈의 아키국과 스오국에서 병력을 징발하여 지원군을 편성케 하였습니다.

 

 

1560년 늦봄,다카모토님이 분고국의 거성에서 2일 떨어진 곳에 이를 무렵에

 

정찰부대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도노! 지금 빈고국을 이토 가문이 공격하고 있사옵니다!

 

히고국에 주둔하고 있던 이토군 2400명을 하지카노 츠네모리가 데리고 쳐들어와서

 

성을 포위하기 시작했나이다!"

 

라고 하니 다카모토님이 말하길

 

"내가 알기로 히고국 또한 평정이 끝나지 않은 곳이라

 

이토 가문이 대규모 병력을 항시 주둔시켜 유지해왔는데

 

지금 그 병력이 이곳으로 쳐들어왔다면

 

히고국은 누가 지키고 있단 말인가?"

 

라고 하고는

 

"어쨋든 츠네모리가 대군을 이끌고 왔다면 빈고국은 다시 이토의 수중으로 들어가겠구나."

 

라고 하고 이토군에 서신을 보내니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최근 빈고국에 잇키가 일어나 부젠국까지 불안케하니

 

우리 가문에선 히고국 평정과 휴우가국 잇키에 시달리는 이토가문이

 

빈고국을 평정하지 못할 거라 여겨 이렇게 진압군을 내어 평정코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압군을 내어 신속하게 공격하시니

 

이는 이토 가문의 복이자 우리 모리 가문에게도 기쁨입니다.

 

이제 저는 군을 물려 돌아가고자 하오나

 

큐슈의 명장이라 불리는 츠네모리님의 전투가 바야흐로 벌어진다하니

 

불초한 이 자가 한 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무사로서 영광일 것입니다."

 

라고 하니 츠네모리는 모리군의 참전을 허락하였습니다.

 

 

이토군 진압장 하지카노 츠네모리는 이토 가문 휘하에서 큐슈통일전을 수행한 무장으로서

 

오토모 멸문과 소니 멸문에 큰 공을 세운 명장이었고

 

그가 지휘하는 군사들은 각종 전투를 체험한 최정예군 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이토군은 포르투칼인들과의 무역을 하면서 화승총을 수입하여

 

병사들을 무장시켰습니다.

 

이때 다카모토님은 화승총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고 어느 정도의 위력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화승총의 위력보다 히고국에 있어야 할 이토군이 빈고국에 나타난 이유가 궁금했던

 

다카모토님은 그 이유를 츠네모리에게 물었습니다.

 

이에 츠네모리가 대답했습니다.

 

"모리가문이 이 큐슈에 발을 들인지 얼마안되어 이 땅에 대해 잘 모르는 듯 합니다.

 

큐슈를 통일한 이 이토 가문은 히고국이나 분고국에서 변란이 발생해도

 

그에 대비할 수 있는 예비군을 이웃국에 대기시켜 놓소이다.

 

아마 사쓰마국에 5000여명,오스미국에도 그만큼은 있을 것이오.

 

어떤 적이 무슨 수를 쓰던 간에

 

이토 가문에 칼을 겨누고 쳐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당할 수 밖에 없소."

 

 

 

그동안 이토군은 화승총병들과 궁수들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안전하게 성으로 접근하였는데

 

화승총이 뿜어내는 엄청난 소리에

 

다카모토님은 놀라서 물으니 츠네모리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저것이 바로 포도아인(포르투칼인)들로부터 사들이는 뎃포(화승총)이오.

 

새사냥할때도 방아쇠만 당기면 새가 떨어지니 조총이라고도 부른다오."

 

라고 하였습니다.

 

 

성 밑을 장악한 이토군은 질서정연하면서도 신속하게 성을 올라

 

수성군을 밀어붙이니

 

이에 반란군 수괴 구니히라는 성내에 대기시킨 기병들을 돌격시켜

 

공성군을 밀어내고자 했으나

 

오히려 이토군의 파상공세에 몰살당했습니다.

 

 

이토군이 수성군의 창진대형을 만나 접전을 치루는 동안

 

츠네모리가 다카모토님께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지난번 부젠국을 장악할때

 

모리 가문이 오우치 가문과 천수각 장악 내기를 했다고 들었소.

 

그대가 괜찮다면 우리 이토 가문과 모리 가문이 그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

 

모리 가문의 군사들이 천수각을 먼저 장악한다면 빈고국을 모리 가문에 넘겨주리다.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가 맡을 것이오."

 

라고 하니

 

기병부대와 훈련 잘 된 군사들을 데리고 있었던 다카모토님이 승낙하여

 

경기병대를 출격시켰습니다.

 

모리군 기병들은 반군의 화살공격을 돌파하고 성내로 진입했으나

 

천수각으로 이어지는 길 곳곳에 이토군이 몰려있었어서 진입을 방해했고

 

천수각에 모리군 기병들이 나타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이토군 병사들이 이토 가문의 깃발을 꽃고 장악했습니다.

 

 

 

결국 모리군 기병 20기만 의미없는 기동중 반란군 사격에 사살당하고

 

빈고국은 다시 이토 가문이 장악했습니다.

 

다카모토는 빈고국을 물러나면서 다짐했습니다.

 

`그대들이 믿고 있는 것들이 활용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패하게 만들어주리라.'

 

 

 

한편 모리군이 물러나는 것을 지켜보는 츠네모리에게

 

휘하 가신이 묻기를

 

"저 쥬코쿠에서 넘어온 모리 족속들은

 

낡은 구교를 신봉하는 자들이고 또한 야심 많고 모략을 잘 쓰는 자들이라 하옵니다.

 

지난번 지쿠젠국 일도 그러하고 저들은 큐슈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분명하옵니다.

 

차라리 여기서 저들을 섬멸하고 부젠국을 공격하여 쥬코쿠로 이어지는 길을 끊고

 

히고국과 휴우가국의 병력과 함께 히젠국의 모토나리를 주멸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니 이에 츠네모리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도 저들이 이 큐슈를 노리고 들어온 적이라는 것을 안다.

 

허나 여기서 우리가 먼저 싸우게되면 무라카미 가문처럼

 

모리 가문에게 전쟁의 명분을 줄 것이다.

 

비록 우리가 큐슈를 통일하긴 했지만 아직 평정이 끝나지 않았고

 

아소교가 널리 포교되지 못했고

 

포도아인들이 약조한 선교사들과 뎃포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외적과의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양면의 적과 싸우다 무너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항상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며

 

큐슈의 평정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저 모리 침략자들과의 싸움은 그 이후의 일이다."

 

 

한편 휴우가국에는 수천의 잇키들이 거성을 포위한채 이토군과 대치를 하고 있었고

 

빈고국의 이토군은 빈고국의 잇키를 섬멸한 뒤 곧바로 휴우가국을 지원하고자 했습니다.

 

그로인해 빈고국이 비워지자

 

휴우가국에서 포교하던 유키아리가 빈고국으로 다시 올라가

 

잇키 잔당들과 잔혹한 진압과정에서 발생한 불만세력을 규합하여

 

다시 잇키를 일으켰습니다.

 

 

큐슈에서 모략과 반란이 이어지는 동안,

 

모리 가문은 국가발전이란 가문간의 경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고

 

쵸소카베,오우치,이토 가문과의 지속적인 교역과

 

모리 수군의 교역로 보호는 모리 가문의 해운업 발달을 촉진시켰습니다.

 

 

1560년 가을,휴우가국과 빈고국의 잇키들은 이토군을 거성으로 몰아내고

 

포위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리군은 큐슈 동부 잇키의 유리한 전황에도

 

서둘러 군을 움직이지 않고 정세를 관망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휴우가국과 빈고국에 배치된 이토군의 전력이 만만치 않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런데 모토나리님은 이 상황에서 기존에 세웠던 큐슈 경략계획을

 

다시 실현하고자 하였으니

 

지쿠젠국을 장악하여 부젠국과 히젠국을 연결하고

 

조선과 명의 무역로를 독점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리 가문의 승려들이 다시 지쿠젠에서 공작을 벌였고

 

지쿠젠에서 잇키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이토와 잇키 중 잇키의 힘이 열세라고 판단한 모토나리님은

 

닌자들을 이토 가문 후방에 침투시켜 후방의 이토군의 발을 묶으니

 

그것은 잇키를 돕는 것과

 

모리 가문의 지쿠젠 장악을 방해받지 않게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리고 잇키들이 장악한 후쿠오카 성에도 모로카네라는 우수한 닌자를 파견하여

 

파괴공작을 하여 방어태세를 마비시켰습니다.

 

 

이토군이 큐슈 동부 잇키에 집중되어 있던 1560년 초겨울,

 

히젠국에 주둔한 모리군을 다시 움직였습니다.

 

후쿠바라 다메미츠를 선봉으로 내세운 모토나리님은 직접 모리군 2500명은 지휘하고

 

신속히 진군하여 지쿠젠국의 거성 후쿠오카성을 급습하고 포위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세한 병력과 지원사격을 바탕으로 제파식 공성전술을 펼쳐

 

반란군 수괴 하세쿠라 도키이에를 참수하고 반란군 1200여명을 몰살시키고

 

후쿠오카성을 함락함으로서 지쿠젠국을 장악하였습니다.

 

 

모리가문의 큐슈 북부 장악은 쿄토의 천황과 아시카가 막부에도 상주되었는데

 

이 소식을 받은 쇼군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모리 가문의 당주는 매번 천하 평정을 위해 이땅을 정복했다 저땅을 정복했다 하는데

 

그 천하 평정이 이 아시카가 막부를 위한 것인가? 모리 가문을 위한 것인가?

 

도대체 모토나리라는 자가 저렇게 팽창하여 무엇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인가?"

 

라고 하고 영토 팽창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이것을 받은 모토나리는 막부에 사죄하는 서신을 보내어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모리 가문 내에서 막부가 모리 가문을 경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1560년 겨울,다메카네라는 승려가 이토 가문이 다스리는 히고국에 들어가 설법을 하였고

 

그가 히고국에 입국한지 얼마 안되어 히고국에서 잇키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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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헬로모토 | 작성시간 12.01.29 오 필력이 엄청나시군요 !
  • 답댓글 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2.04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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