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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2: Forum

모리가문기-9장 난세에 춤추는 천하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12.01.29|조회수216 목록 댓글 2

 

 

 

 

 

 

1562년 겨울,다카가게님의 모리군은 동맹인 오우치 가문을 위해

 

나가토국의 잇키군을 토벌하러 스오국에서 나가토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모리군은 잇키들이 휩쓸고간 지역을 수색하며 추적하여

 

마침내 잇키들이 나가토국 북부 산악지역에서 근거지를 두고

 

산적질을 하며 웅거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쳐들어갔습니다.

 

 

 

모리군이 잇키들의 웅거지역에 이르렀을때

 

잇키들은 마침 분탕질을 하고 웅거지로 되돌아가던 시점 이었습니다.

 

이에 다카가게님은 전투대형을 갖추게하고

 

병사들에게 훈시한 후, 잇키들이 본거지로 갈 때 통과해야하는

 

고갯길 측면 산에 군대를 배치하였습니다.

 

 

한편 나가토국 잇키의 수괴 오쿠노미야 요시츠게는

 

휘하 병력을 데리고 나가토국 북방에서 약탈을 하여 식량과 돈,여자들을 챙기던 중

 

모리군의 등장을 파악하고 서둘러 본거지로 돌아가 숨으려고 하였는데

 

본거지로 돌아가던 중 모리군이 돌아가는 길에 배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들과 논의하니 부하들이 말하길

 

"모리군은 잘 무장되어 있고 수도 많으니

 

정면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우리가 불리합니다.

 

그러니 적과의 전투를 피하고 최대한 병력과 물자를 보존하여 본거지로 퇴각해서

 

근거지를 옮겨다니며 적을 깊숙히 끌어들이고 적의 보급과 통신을 차단한다면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요시츠게는 군대를 둘로 나누어

 

자신은 약탈품들과 정예병력을 지휘하고

 

다른 부대는 모리군쪽으로 투입시키니

 

한 부대가 모리군과 전투를 벌이는 동안

 

자신의 주력과 물자를 본거지로 옮길 계획 이었습니다.

 

 

 

모리군의 다카가게님은 잇키들이 둘로 나뉜 사실을 접하고는

 

군대를 도로 좌측면 산에서 도로쪽으로 내려가게하여

 

쳐들어오는 잇키들과 맞서싸우게 하였습니다.

 

 

모리군과 잇키들이 도로 측면 산 아래에서 교전하는 동안

 

다카가게님은 스오국에서 징병한 기병대를 출동시키니

 

모리군 기병대는 전장을 우회하여

 

도로를 통해 물러나는 잇키의 대열의 측면을 강습하였습니다.

 

 

이에 요시츠게가 병사들을 풀어 모리 기병을 몰아내려고 하자

 

모리 기병들은 재빨리 후퇴하여 도로 측면의 전장으로 이동하여

 

모리군을 견제하던 잇키들의 뒤에서 돌격하였습니다.

 

 

모리군의 후방 기병 돌격으로

 

잇키군은 반으로 나뉘어졌고

 

혼란에 빠진 잇키들이 무너져 달아나니

 

다카가게님은 도망치는 잇키들을 추격하되

 

요시츠게의 퇴각로쪽으로 패잔병들을 유도 했습니다.

 

 

한편 모리군 기병 습격을 막아낸 요시츠게는 대열을 수습하고 다시 달아나려고 했는데

 

산 아래서 돌격을 마치고 다시 습격해온 모리군 기병의 공격으로 다시 대열이 무너졌고

 

거기에 산에서 몰려오는 모리군과 도망쳐오는 잇키들에 의해

 

병사들은 겁을 먹고 흩어졌습니다.

 

 

 

이에 요시츠게도 약탈품을 모두 버리고 직속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아났으나

 

스오국의 명마를 탄 모리군 기병들은 그를 따라잡아 척살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리군은 도망치는 잇키들을 좌우에서 협격하여 모조리 죽여버렸습니다.

 

다카가게님은 요시스게와 그의 졸개 1000여명의 수급을 베어 오우치 가문에 보낸 뒤,

 

군대를 데리고 스오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1562년 12월,다카모토님은 1000여명의 병력을 데리고

 

분고국을 침입하여 분고국의 거성 후나이성을 포위하였습니다.

 

그런데 후나이성을 지키는 잇키들의 수가 모리군의 2배에 달하자

 

다카모토님은 포위진영에 허수아비와 깃발을 잔득세워 군세를 꾸미고

 

한편으로 히고국의 모토나리님께 서신을 보내어 지원요청을 하였습니다.

 

이에 모토나리님은 직접 1500여명의 병력을 데리고 분고국으로 출정하셨습니다.

 

 

 

12월 그믐,모토나리님의 군대가 분고국 국경을 넘고

 

다카모토님의 군대가 성을 포위한지 보름정도 지났을무렵에

 

후다이성에서 모리군을 둘러보던 수괴 요시다 가네타다는 부하들을 불러서 말하기를

 

"내 듣기로는 모리군은 기동하기를 순풍을 탄 배 같이하고

 

공성하기를 마른가지 만난 불 같이한다고 들었는데

 

저들이 이 성을 포위한지 보름이 되도록 성을 공격하지 않으며

 

적의 군세가 성을 포위한 직후 갑자기 수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니

 

아무래도 놈들이 허장성세로 뭔가 꾸미는게 아닌가 여긴다.

 

마침내 오늘이 그믐이라 달빛이 없어 병력을 은밀히 움직이기에 좋으니

 

오늘밤 기병 400여명을 동원하여 야습을 감행하자."

 

라고 하고 병력을 준비시켰습니다.

 

 

 

한편 다카모토님은 모토나리님의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 오후 성을 바라보가 돌아와 부하들을 불러서 회의하기를

 

"오늘은 그믐이라 은밀한 작전이 벌어지기 좋은 날이다.

 

그러니 적의 형세가 난데없이 변화하면 어떤 계략을 꾸미고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

 

내가 성을 살펴보니 항상 변함없던 수비병 배치 편제가 바뀌고 내부가 소란하니

 

야습이 우려된다.

 

지금 우리의 수는 적의 절반에 불과하니

 

적의 기습에 대비한다고 해서 이길 가능성이 많지 않을 뿐더러

 

적이 기습을 시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군세를 의심했다는 것을 의미하니

 

아버님이 오시기 전에 적이 출성하여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되면 우리는 패할 가능성이 높고 패하면 모리 가문 명성에 누를 끼치게 되니

 

차라리 오늘 밤에 부젠국으로 철수하여 히고국의 아버님과 다시 공격하는 것이 낫다."

 

라고 하니 이에 부하들이 다카모토님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철군한다면 잇키들이 추격할 것이니 어찌하올지요?"

 

라고 하자 이에 다카모토님이 대답하기를

 

"오후부터 우리가 철군하는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직 우리 수가 많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저들은 의심할 것이다.

 

여기에 밤에 우리가 불을 완전히 끄고 물러난다면

 

 적은 우리가 계략을 쓸 것이라고 의심하여 공격을 망설일 것이다.

 

설사 저들이 추격을 하더라도 아군의 철군속도와 기병의 추격을 계산하다면

 

적의 기병이 아군의 후방에 이를 지역은 거성 외각 병목지역이니

 

그 좁은 길목에 기병과 궁수를 배치해두면

 

적은 매복을 의심하여 더 이상 추격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밤 모리군과 잇키들은 다카모토님이 말한대로 행동하여

 

모리군은 피해없이 부젠국으로 물러났고

 

모토나리님은 다카모토님의 서신을 받고 분고국 국경으로 되돌아가

 

새로이 분고국을 공격할 계획을 궁리하였습니다.

 

 

1563년 봄,모리 가문은 쥬코쿠에서 공작활동을 재개하여

 

나가토국에서 다시 잇키를 일으켰습니다.

 

이에 빗츄국의 오우치군이 토벌군을 조직하여 출정하려고 하니

 

이에 모리 가문은 요키나요라는 승려를 빛규국에 파견하여

 

오우치가문의 아소교(카톨릭교)포교와 무리한 전쟁으로 인한 억압과 수탈을 비난하는

 

포교를 베풀게하니 이에 빗츄국의 불교도들과 하급무사와 낭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모토나리님은 빗츄국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자

 

미마사카국에 주둔하고 있던 모토하루님에게 2500여명의 군대를 데리고

 

빗츄국 국경으로 이동하여 대비하게 하고

 

반란군과 오우치군의 전력을 분석하게끔 하였습니다.

 

 

1562년 초여름,모토하루님은 반란군 토벌을 돕겠다고

 

오우치 가문에 서신을 보낸 뒤에 100여명의 병력을 데리고 빗츄국에 입국하고

 

빗츄국 거성을 거쳐 거성 인근에서 도로를 차단하고 약탈을 일삼는

 

다니 가타이에의 반란군을 정찰하였습니다.

 

그 결과 반란군의 전력이 오우치군의 전력보다 못하다고 판단한 모토하루님은

 

오우치 가문의 당주 오우치 요시오키님에게 말하길

 

"반란군이 일컫기를 10000여명의 대군이라고 하나

 

제가 적군을 정탐해본바 실제로는 오우치군보다 수가 적습니다.

 

저들을 아군이 대기하고 있는 쪽으로 유인한다면

 

적은 힘을 들여서 반란군을 섬멸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살펴보니 오우치 동쪽의 평원에 병력을 대기하기에 좋으니

 

그곳에서 반란군을 유인하여 섬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자 이에 요시오키님이 승락하여 병력을 데리고 기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모토하루님은 곧바로 지역주민으로 가장한 부하를

 

반란군 수괴 가타이에에게 보내어 말하길

 

"지금 요시오키가 빗츄국 동쪽의 농경지로 군사들을 보내

 

불교를 믿는 자들을 색출하여 죽이고 쌀과 주민들을 죄다 성으로 옮기려고 한답니다."

 

라고 하니 이에 가타이에가 기병들을 보내 정찰케하자

 

그들은 오우치군 선봉대가 동쪽 농경지로 이동하는 모습보고 가타이에에게 보고하니

 

가타이에가 군대를 움직여 진군하니 모토하루님의 기병대는

 

가타이에군 앞에서 모습만 보이고

 

곧바로 오우치군 후방으로 물러났습니다.

 

 

이후 모토하루님은 반란군이 무너지면

 

측면에서 적군을 습격하겠다고 오우치군에게 말하고

 

오우치군 후방에서 전투를 관전하였습니다.

 

한편 오우치군을 만난 반란군은 병력을 전개하여 회전을 치룰 준비를 하였습니다.

 

 

 

오우치군은 우세한 보병과 궁수전력을 앞세워

 

궁수들의 지원사격하에 카타나(검)으로 무장한 사무라이들을 돌격시켰고

 

가타이에는 창과 갑옷으로 무장한 낭인들로 사무라이들의 돌격에 대응하는 한편,

 

기병대로 오우치군 좌익을 공격하여 일부 궁수부대를 격퇴하였습니다.

 

 

양군이 한바탕 싸우다가

 

오우치군이 좌익에 사무라이들을 추가로 투입하여 반란군 기병을 격퇴하고

 

반란군 우익을 공격하니

 

반란군은 패퇴한 기병을 재정비하여 연속적으로 돌격하였으나

 

오우치군의 화살과 사무라이들의 돌격에의해

 

기병은 전멸하고 보병들은 삼면에서 압박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수괴 가타이에가 맞서 싸우다가 오우치군 사무라이에 의해 말에서 끌어내려진다음

 

참살당하자 힘겹게 버티던 반란군이 흩어져 달아나니

 

모토하루님이 이에 기병들을 데리고 출격하여

 

반란군 100여명을 베어 수급을 오우치 가문에 넘겨 주고 회군하였습니다.

 

그리고 빗추국 반란의 전말과 오우치군의 전력에 관한 보고서를 모토나리님께 올리니

 

모토하루님은 큰 피해가 예상되는 오우치군과의 전면전을 피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모토나리님은 오우치 가문을 병탄할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나가토국과 빗츄국의 반란 진압에 모리 가문이 도와줌으로서

 

모리 가문은 오우치 가문과의 관계가 돈독해졌습니다.

 

모토나리님은 속마음을 숨기고 겉으로 동국의 여러 가문과 관계를 개선하고자하여

 

호조 가문에 대항하여 분전하고 있는 다케다 가문에 비밀리에 자금을 제공하고

 

대신 무역협정을 체결하였으며

 

모리 가문의 성장을 경계하고 있는 아시카가 막부에도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쳐서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였습니다.

 

 

여러 가문과의 관계를 다진 모토나리님은 다시 큐슈의 정세에 관심을 돌리고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이토군이 휴우가국과 사쓰마국의 잇키로 묶여있는 동안

 

모토나리님은 히고국에서 후쿠바라 다메미츠와 군사 1600여명을 데리고

 

히고국으로 진격하고

 

부젠국의 다카모토님은 13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히고국으로 남하하여

 

다시 분고국의 거성 후야마성으로 쳐들어오니

 

이에 잇키 수괴 요시다 가네타다는 2000여명의 병력을 데리고 출성하여

 

모리군을 요격하였습니다.

 

 

가네타다는 우세한 기병을 이용하여 모리군 측면을 흔들고

 

대규모 보병의 공격으로 모리군을 무너뜨리고자 하였고

 

모토나리님은 중앙에 궁수부대를 집중배치하고

 

좌우익에 창병을 배치하여 반란군의 기병돌격에 대응하게 하였습니다.

 

 

 

반란군 기병들은 모리군 측면의 창진도 돌아서 모리군 본진을 공략하려고 했으나

 

사무라이들도 기병의 기동에 맞추어 창진을 이동시켜 맞대응하니

 

결국 돌격은 가로막혔습니다.

 

 

반란군 기병의 뒤를 이어 모리군을 향해 쇄도하던 반란군은

 

모리군 중앙부에 궁수부대가 포진한 것을 보게되었고 이에 가네타다는

 

패퇴한 기병을 수습하고 일부 투입되지 않는 기병 전력과 함께

 

모리군 우익에 배치하여 모리군 우익을 견제하게 하고

 

모리군 중앙부에 소규모 병력을 전진시켜 모리군의 관심을 이끌어냈으며

 

대부분의 병력은 상당수의 기병이 분전하고 있는 좌익으로 보내어

 

모리군 좌익을 붕괴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모토나리님은 중앙의 궁수부대 중 일부를 

 

좌익으로 몰려드는 반란군 후방으로 이동시켜

 

반란군의 측면과 뒤를 공격케하고

 

대부분의 궁수부대와 일부 우익의 창병부대와 궁기병 부대를 우익에 배치하여

 

반란군 기병에게 사격을 퍼부었으며

 

나머지 병력과 모토나리님의 하타모토들은 좌익의 반란군을 공격하였습니다.

 

 

 

결국 가네타다는 모리군 나기나타에 난도질당해 조각나버렸고

 

좌익에서 협공을 당한 반란군은 패주하였으며

 

중앙으로 전진하던 일부 반란군 보병들과 우익의 기병들은 

 

모리군의 사격에 궤멸당했습니다.

 

모리군은 패주하는 반란군을 추격하여 1800여급을 베었으며

 

가네타다의 부하 이노마타 모리모토가 200여명도 돼지 않은 반란군을 거두어

 

 후나이성으로 도주 하였습니다.

 

 

 

1563년 겨울, 큐슈의 어느 노승이

 

엄청난 폭풍이 장차 일본에 닥칠것이라는 예언을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이에 모리 가문에서 조사하고 이 예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논의 했는데

 

모토나리님은 이 예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풍신제를 개최하고

 

풍신제에 필요한 경비를 모리 가문에서 지원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에 다카모토님이 의아하게 여겨서 묻기를

 

"아버님은 정말로 그 노승의 예언을 믿으시옵니까?

 

굳이 우리 가문이 거창하게 지원하지 않아도 될 일이옵니다."

 

라고 하니 모토나리님이 대답하기를

 

"너는 조만간 일본에 불어닥칠 폭풍을 예상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이 풍신제에 바치는 정성은 닥쳐올 폭풍에서 모리 가문이 버티는데 기반이 될 것이다.

 

이 풍신제를 통해 큐슈에서 실추된 불교의 권위를 세우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이러한 미신도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1563년 12월 그믐, 후나이성을 포위한 모리군은 수성장 모리모토에게 항복을 요구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잇키들은 항복요구를 거절했습니다.

 

모토나리님은 궁수들을 전진배치하여 불화살을 퍼붓게 하였고

 

수성장 이하 140여명의 잇키들은 화살과 불에 의해 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잇키가 사라진 분고국은 모리 가문의 영지가 되었습니다.

 

 

1564년 정월,작년 봄에 나가토국에서 거병한 이노마타 다다야스의 잇키들이

 

나가토국의 항구와 농경지를 약탈한 후,거성 하기성으로 진격하여

 

오우치 수성군을 전멸시키고 나가토국을 장악하자

 

모토나리님은 이에 스오국과 아키국에서 군대를 출동시켜 나가토국을 점령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모리군의 나가토국 장악을 쉽게하기 위하여

 

요시츠케의 닌자단을 나가토국에 파견하여

 

하기성에 잠입시켜서 반란군의 방어체계를 교란하고

 

요시츠케는 천수각에 잠입하여 천수각에서 성을 감독하던

 

잇키의 수괴 이노마타 다다야스를 난간에서 밀어서 추락사시켰습니다.

 

 

1564년 초여름,1562년에 모리 가문에 임관한 무사 구치바 우지무네가

 

400여명의 병력을 데리고 아키국에서 출격하여 이와미국을 거쳐 하기성을 급습하니

 

스오국의 모리군에만 대응하고 있던 사카키바라 스케노리의 잇키군은 급히 병력을 움직여

 

간신히 우지무네의 하기성 함락을 저지하고 수성준비를 하였습니다.

 

 

 

우지무네도 자신의 병력만으로 하기성을 함락할 수 없음을 알고

 

다카가게님의 모리군이 하기성에 당도할 때까지 성을 포위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카가게님의 모리군이 하기성에서 3일 정도 걸리는 곳에 이를 무렵,

 

하기성에서 우지무네의 모리군과 대치하고 있던 잇키들은 작전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때 잇키 수괴 사카키바라 스케노리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쿠노미야 요시츠게처럼 비겁하게 삶을 구하고 싶지 않고

 

이노마타 다다야스님처럼 허무하게 죽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봉기를 할 때 패배와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성안에 죽치고 있다가 적의 화살과 불에 허무하게 죽으려고 일어난 것은 아니다.

 

지금 하기성을 포위한 모리군은 400여명에 불과하나

 

이 성안에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동지는 1300여명에 달한다.

 

다카가게의 모리군이 이곳에 오려면 며칠 더 걸릴 것이니

 

그전에 우리가 나가서 저 모리군을 섬멸하여

 

우리의 기상을 떨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그뒤에 다카가게를 상대하여 사생결단을 내자!"

 

 

 

이에 부하들도 모두 동의하여

 

잇키들이 성문을 열고 모리군을 공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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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Jerusalem | 작성시간 12.01.29 두편연재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2.04 감사합니다. 덧글은 연재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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