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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2: Forum

모리가문기-13장 양면전쟁

작성자제국의명장|작성시간12.02.08|조회수263 목록 댓글 4

 

 

 

 

 

 

 

 

 

 

1570년 봄, 하리마국을 장악하고 호죠군을 쫓아낸 모리 가문은

 

벳쇼 가문의 남은 인척들을 불러 벳쇼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그들이 하리마국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댓가로 벳쇼 가문은 수백의 하급 사무라이들을 바치고

 

거기에 연간 수입의 절반을 바치며 모리 가문에 충성을 다하기로 맹세 했습니다.

 

 

이에 모토나리님은 벳쇼 가문의 슈고 다이묘 벳쇼 치카노리님에게 말하기를

 

"지금같은 난세에는 오직 행동만이 진심을 보여줄 뿐이오.

 

지금 모리 가문은 호죠와 하타노의 부당한 침해를 받고 있소.

 

그대의 가문이 우리와 함께 그들과 맞서 싸우고 거기에 우리와의 교역을 한다면

 

그대의 가문은 우리의 확고한 동맹으로서 신의를 보일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하니 이에 치카노리님은 호죠와 하타노에 선전포고를 하고

 

모리 가문과 무역협정을 체결하여 충성을 증명하였습니다.

 

 

1570년 늦봄,사쓰마국에서 시마즈 부흥군을 상대로 공작활동을 벌이던 닌자단이

 

다카모토님께 보고하기를

 

"시마즈 부흥군의 막부에 닌자를 잠입시켜 수괴 요시히사를 참살하고

 

그의 수급을 베어 바칩니다.

 

요시히사가 죽은 후, 시마즈군의 지휘는 군대의 자금과 물자를 마련했던

 

다네가시마 사네도키가 맡고 있습니다.

 

그들의 군세는 2300여명 정도 되고 궁기병과 중무장한 사무라이들에

 

화살과 활도 넉넉하고 군량도 풍부하옵니다.

 

그들은 결코 스스로 흩어지지 않을 것이온즉,

 

토벌군을 풀어 섬멸하시어 사쓰마국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히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카모토님이 후쿠바라 다메미츠와 함께 토벌군 2900여명을 조직하여

 

시마즈군을 치러 출정하니 이에 모토나리님도 출정하여

 

그들이 섬멸되는 모습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카모토님이 말씀하시길

 

"아직 사쓰마국의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사오니

 

아버님마저 움직이신다면 우리 모리 가문이 반란군의 군세에 염려하고 있다고

 

사쓰마 백성들이 생각할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또다른 반란자들의 마음을 담대하게 할 것이오니

 

아버님께서 거성에서 편안히 머무시면서 민심을 다독이신다면

 

시마즈군은 충용스러운 모리군이 섬멸할 것이요,

 

백성들은 아버님을 보고 안심할 것이고, 음모자들은 기가 꺽일 것이니,

 

감히 아뢰옵니다."

 

라고 하자 모토나리님이 기쁘게 응하여 사쓰마국 거성에 남아서

 

전투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다카모토님은 요시히사님의 복수와 시마즈 가문 재건을 위해

 

거성을 치러 남하하는 시마즈군이 강을 건널때 공격을 감행하니

 

시마즈군은 궁수부대를 모두 투입하여 공격하는 모리군에게 화살을 퍼부어댔고

 

궁기병 부대로 우회공격을 실시하여 모리군을 압박하였습니다.

 

이에 모리군은 궁기병들을 경기병부대로 상대하여 패퇴시키고

 

퇴각하는 궁기병부대를 쫓아 강을 우회하여 적의 배후를 치니

 

시마즈군은 궁수부대로 모리군의 추격을 막는한편 상당수의 부대를 후퇴시켰습니다.

 

 

결국 모리군은 시마즈군의 절반 정도만 참살하였으나

 

다카모토님은 집요하게 그들을 계속 추격하여

 

마침내 1570년 여름에 시마즈 잔당들을 섬멸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네도키와 일부 수뇌부 무사들은 끝내 잡지 못했습니다.

 

 

1570년 여름, 오오쓰미국의 모리 가문 소속 중급 사무라이가 카톨릭을 믿고

 

백성들에게 포교하다가 붙잡히니

 

이에 오오쓰미국 슈고(성주)가 모토나리님께 보고하고 처결을 묻자

 

모토나리님은 단호하게 말하길

 

"내가 들으니 포도아(포르투갈)와 서반아(에스파냐)인들은 아소교를 선봉으로

 

타국을 집어삼킨다고 한다.

 

더군다나 아소교는 우리의 신들을 이단으로 여기고 상하관계를 부정하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자가 신앙을 포기하겠다고 맹세한다면 살려주되

 

그가 끝까지 아소교를 믿는다면 반역자의 형을 받게 하라.

 

그리고 그의 목과 몸뚱이를 큐슈 전체에 뿌려 경각케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 사무라이는 순교하였고

 

그의 순교 소식은 큐슈의 아소교도들에게 자극을 주었습니다.

 

 

한편, 혼슈의 모리군에게 교토는 바로 이웃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토의 아시카가 막부는 모리군의 공세에 대비하여

 

5000여명의 병력을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하타노 가문도 5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교토로 진군하니

 

다이묘 하타노 도모토키님이 직접 선봉대 2300여명을 데리고 진군하여

 

교토 인근 오미국에 이르러 병력을 대기시키고

 

자신은 하타모토들을 데리고 교토에 상경하여 천황과 쇼군을 알현하였습니다.

 

그리고 호죠 가문도 10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교토로 병력을 진군케하니

 

다이묘 호죠 스케노리님이 직접 선봉대 3000여명을 데리고 교토에 상경하였습니다.

 

그외에 다케타 가문도 6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교토로 출격하였습니다.

 

 

1570년 늦여름,스케노리님과 도모토키님이 요시하루 쇼군님과 교토에서 작전회의를 하니

 

요시하루 쇼군은 아직 하타노 가문과 호죠 가문의 군대가

 

집결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워 교토를 방어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도모토키님이 찬성하였으나 스케노리님이 반대하며 말하기를

 

"비록 하타노 가문과 호죠 가문의 군대가 교토에 집결하지 않았으나

 

지금 교토의 연합군이 10000에 이르렀고

 

모리군은 7000여명의 병력이 2국에 나뉘어 있으니

 

교토의 방비를 상경하는 군대에게 맡기고 나아가 모리 가문을 칠만 하옵니다.

 

지금 우리가 모리를 상대로 수동적으로 대처한다면

 

모리는 후방에서 더욱 증원군을 모아 군세를 키우며 때를 노리다가

 

불시에 기습을 할 것이니 결국 연합군이 상황을 주도할 수 없게 될 것이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토 방비를 지방 다이묘의 군대에게 맡기고 싸우기를 꺼림칙하게 여긴

 

요시하루 쇼군이 스케노리님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도모토키님이 스케노리님께 말씀하시길

 

"모리에 대한 스케노리님의 자신감이 넘쳐나시니

 

그렇다면 모리 가문에 대한 공격로를 스케노리님께서 직접 여시는 것이 어떻겠소?

 

나의 군대가 그대의 측면과 후방을 지원해드리리다."

 

라고 하고 쇼군이 2000여명의 막부군을 교토 국경에 배치하여

 

모리군을 견제하겠다고 하니

 

이에 스케노리는 단바국을 공격할 계획을 세워

 

도모토키님과 쇼군과 합의하고 군대를 움직였습니다.

 

 

1570년 초가을,호죠군이 단바국 국경안으로 쳐들어가자

 

정보원을 통해 호죠군의 침공을 접한 단바국의 다카가게님은 수비군 2600여명을 동원하여

 

그들을 요격하고 셋츠국의 모리군에 지원 요청을 하였으나

 

셋츠의 모리군은 셋츠 북부의 하타노군과 교토의 아시카가군의 견제로 발이 묶였습니다.

 

결국 다카가게님은 단바국의 군대만으로 호죠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호죠군은 중무장한 사무라이들을 주력으로 모리군을 공격하고

 

숙련된 궁수부대의 매서운 지원사격으로 모리군의 우익을 타격하였습니다.

 

이에 다카가게님은 궁수부대로 공격해오는 호죠군 보병대를 공격케하고

 

기병들을 우익에 투입하여 호죠군의 측면과 배후를 치게 하였으나

 

호죠군의 사격과 호죠군 예비병력의 반격으로 궤멸당했습니다.

 

 

전선에서 모리군과 호죠군이 뒤엉켜 격전이 벌어지자

 

다카가게님은 예비병력을 위태로운 우익에 투입하여 지탱하게 하고

 

궁수부대들로 호죠군 궁수부대를 상대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전황이 팽팽하여 양측의 피해가 누적되자

 

스케노리님이 모리군 측면을 공격하여 우익이 거의 붕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중앙의 전황도 팽팽하여 다카가게님은 직접 우익을 지휘할 수 없었기에

 

할 수 없이 궁수부대를 우익에 투입하여 백병전을 치루게 하였습니다.

 

 

궁수부대는 호죠군의 중앙과 우익 사이를 뚫고 스케노리님을 공격하였고

 

스케노리의 하타모토들이 필사적으로 맞서싸우며

 

스케노리님을 보호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모리군의 어떤 궁수가 칼로서 어느 호죠군 하타모토의 말을 찔러 쓰러뜨리니

 

무사가 말에서 떨어졌고 궁수가 재빨리 달려들어 단도로 목을 찔러 살해한 다음,

 

머리를 베고 말하길

 

"적장 스케노리의 목을 내가 베었다!"

 

라고 외치니 호죠군 하타모토 중 하나가 당황하여

 

기수의 깃발을 빼앗아 병사들에게 휘두르며 말하길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병졸들은 속지 말고 싸워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리군의 또다른 궁수 한명이 신속히 활을 쏘아 그를 말에서 떨어뜨리니

 

호죠군 하타모토들이 그를 보호하고자 하였고 모리군은 적장이 죽었다고 외치며

 

공격하여 하마모토들을 도륙내었으나 스케노리님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스케노리님이 전사했다는 소리에 모리군의 공세로 호죠군 우익이 붕괴되었고

 

중앙의 호죠군도 무너졌습니다.

 

이에 다카가게님은 모리군이 지치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죠군을 추격하게 하여 최대한 호죠군을 살육하게끔하고

 

전장을 수색하여 스케노리님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말과 시체 속에 깔려 있던 스케노리님을 발견하니

 

그는 낙마하여 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화살에 맞아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거의 죽기직전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다카가게님이 스케노리님께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느냐고 물으니

 

스케노리님이 남은 힘을 다해 말하길

 

"내 비록 패전지장이나 최소한 도망하다 죽었다는 오욕은 피하고 싶소."

 

라고 하니 이에 다카가게님은 그가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알리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의 숨이 끊어지자 목을 베어 승첩보고서와 함께 모토나리님께 보내고

 

갑옷과 그의 용감한 죽음에 대해 적은 서신을 호조 가문에 보냈습니다.

 

 

이 전투에서 모리군은 16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호죠군은 2400여명이 전사했습니다.

 

전투가 끝난후 모토하루님의 서신이 다카가게님에게 도착하니

 

다카가게님은 서신을 읽은 후 군대를 단바국 거성으로 이동시키고

 

재정비 및 수성준비를 하였습니다.

 

 

한편 세츠국의 모리군 5500여명은 모토하루님과 구치바 우지무네가 지휘하고 있었는데

 

하타노군과 아시카가군의 견제로 셋츠국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휘하 무사들이 말하기를

 

"셋째 도련님(다카가게님)이 단바국에서 호죠군과 하타노군의 공세를 받으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니

 

셋츠국의 방어는 벳쇼군에게 맡기고 북상하셔서 함께 싸우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라고 하니 이에 모토하루님이 말씀하시길

 

"지금 우리가 북상한다면 호죠군과 하타노군은 함께 뭉쳐서 다카가게를 칠 것이니

 

그러면 제아무리 다카가게라도 이기기 힘들것이다.

 

설사 내가 합류하여 합전을 치루게되더라도 승패를 예측하기 힘들며

 

이기든, 지든간에 우리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허나 우리가 여기서 금방이라도 교토와 단바 어디로든 출격할 듯이 있으면

 

하타노군와 막부군은 우리의 움직임을 두려워하여 대기할 것이니

 

이로서 다카가게를 도울 수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뒤 다카가게님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휘하 무사들이 단바국으로 가서 하타노군을 격멸하자고 청을 하니

 

이에 모토하루님이 말씀하시길

 

"지금 우리가 아무런 대비없이 군을 함부로 움직이면 하타노군은 우리를 피해

 

퇴로를 열고자 상한 다카가게의 군대를 칠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을 봉쇄하자면 사전공작이 필요하다."

 

라고 하고

 

나리스에와 요시츠게의 닌자단을 하타노군과 아시카가군에 침투시켜

 

도로 곳곳에서 불을 피워올리거나 북과 징을 쳐서

 

하타노군과 아시카가군의 봉화연락과 신호를 방해했으며

 

각 군에 거짓정보를 흘려넣어 그들을 교란시켰습니다.

 

 

그 결과 하타노군과 막부군 모두 셋츠의 모리군이 자신들에게 쳐들어 온다고 생각하여

 

더욱 수비태세를 취했습니다.

 

 

그동안 모토하루님은 3000여명의 군대를 데리고

 

단바국에서 도망쳐온 호죠군 잔당들을 추적하여

 

마침내 다이도지 모리히로가 지휘하는 100여명의 호죠군 잔여병력을 발견하고 공격하여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구치바 우지무네에게 명령을 내려

 

2500여명 구치바 직속군에 500여명의 증원군을 가와치국에 배치되게 하였습니다.

 

 

한편 모리 가문 승려 유키아리는 오미국에서

 

하타노 가문에 불만을 품은 토호들과 낭인들을 만나 자금을 대주며

 

하타노 가문에 대한 반란을 부추겼고

 

그 결과 잇키들이 일어나 하타노군의 보급로를 습격하고 세를 규합하여

 

오미국 거성을 노리게 되었습니다.

 

 

1570년 겨울, 지난 아소교 무사의 죽음으로 오오쓰미국과 사쓰마국의 카톨릭 신자들은

 

모리 가문에 대해 불만을 더 깊이 하였고

 

마침내 사쓰마국에서 수천의 아소교 신자들이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한 모토나리님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아소교도들이 불만을 품고 일어나겠다면 얼마든지 일어나라고 전하라!

 

아소교도들을 모조리 도륙내어 모리 가문에 반기를 드는자의 결말을 보여주리라!"

 

 

한편, 셋츠국 북방에서 모토하루님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던 하타노군은

 

모리 가문의 승려들이 전해주는 불리한 전황을 듣고 불안해하고 있었으니

 

단바국의 다카가게님의 군대를 재편성하고 모토하루님과 함께 하타노군을 공격하여

 

섬멸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이 심해지자 하타노군의 사령관이자 다이묘 도모토키님은

 

군대를 단속하여 소문을 퍼뜨리는 자를 참수하고 승려들의 출입을 막게하였으나

 

한편으로 그도 고립된 처지를 걱정하여 다카가게군이 공격해오기 전에

 

교토로 물러나기로 마음먹고

 

산길을 통해 교토 방면으로 병력을 조심스럽게 이동시켰습니다.

 

 

이에 모토하루님은 하타노군을 뒤쫓아서

 

마침내 따라잡고 공격을 하였습니다.

 

 

모리군의 공격에 하타노군도 진군하여 맞받아치니

 

하타노군 궁수부대가 먼저 맹렬히 사격을 퍼부어 모리군에게 타격을 입히고

 

공격 대형을 미치 갖추지 못한 모리군의 중앙을 공격하니

 

모리군은 대형이 뒤엉켰고 또한 전선의 양군이 뒤엉켜 혼전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모토하루님은 가타나(칼)에 사슬갑옷과 찰갑으로 거듭 무장한 기병대를

 

우회시켜 하타노군의 측면에서 돌격하게 하였습니다.

 

이 돌격에 하타노군 궁수들이 충격받았고

 

도모모키님은 휘하의 가로들과 하타모토들로 하여금 모리군 기병을 상대하게 하니

 

모리 기병들은 다시 모리군 대열쪽으로 후퇴하며 그들의 추격을 유도 하였습니다.

 

 

모리 기병들이 돌격하는 동안 모토하루님은 대열을 수습하여

 

일부 병력을 모리 기병들을 보조하는 데 투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타노 가신들의 추격을 받은 모리 기병들은

 

모리군 보병들 방향으로 추격병들을 유인하였고

 

추격병들이 물려나려고 할 때 화살세례로 타격을 주며 보병대로 투입하여

 

그들을 추격하게 하였습니다.

 

 

비록 모리 보병들은 하타노 가신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대신 하타노군 측면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모리 보병대가 측면에 이르자 하타노군 중앙을 공격하여 압박을 가하고

 

모리 기병대가 다시 출격하여 하타노군 궁수들을 밀어냈습니다.

 

 

도모모키님은 다시 가로들을 투입하게 하였으나

 

가로들은 물려드는 모리군 보병들과의 전투에 휘말려 하나둘씩 죽어갔고

 

모리 기병들이 후퇴와 돌격을 번갈아가며 하타노군을 교란하자

 

마침내 하타노군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모리군은 중앙과 양익에서 거의 완전히 대형을 갖추어 압박하고 있었고

 

거기에 모리군 기병이 후방에서 돌격을 감행하여 포위망을 형성했습니다.

 

 

모토하루님은 포위망 안의 모리가문이 아닌 무사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하였고

 

그 결과 하타노 가문의 다이묘 도모모키님과 가로 3명,

 

대부분의 하타노군이 도륙당했습니다.

 

단지 하타노군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하다가

 

모리 기병에 돌격에 큰 타격을 입고 후퇴한 궁수 부대 일부 만이

 

목숨을 건지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 전투에서 모리군은 하타노군 2200여명을 참살하였으나

 

모리군의 피해는 사상자 750여명에 불과 했습니다.

 

모토하루님은 하타노 가문의 다이묘와 그의 가로들의 수급을 승첩장과 함께

 

모토나리님께 보냈습니다.

 

 

한편 큐슈의 모토나리님은 다카모토님과 다메미츠와 함께 3100여명의 토벌군을 이끌고

 

야마오카 미치유키의 아소교 잇키 1800여명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토나리님은 다카모토님과 토벌군을 사쓰마국 거성으로 가는 길목에

 

방어대형으로 배치해두고 다메미츠를 잇키들에게 보내 그들을 비난하게 하였습니다.

 

 

다메미츠가 강가에서 도강하는 잇키들을 발견하고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너희 경전에는 하나님이 바다도 갈랐다고 하지 않았으냐!

 

그러나 너희들에게 바다는 커녕 강도 갈라지지 않는구나!

 

이는 너희들이 하나님의 편이 아니라는 것이니,

 

몰살당하기 전에 주동자의 목을 바치고 물러가라!"

 

라고 하니 야마오카 미치유키가 대답하길

 

"오늘 하나님이 누구의 편인지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하고 강을 건너 다메미츠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에 다메미츠가 퇴각하면서 잇키들을 도발하기를

 

"하나님이 돕는다는 자들이 말탄 자들도 못따라잡는구나~!

 

진정 싸우고 싶다면 저기의 토벌군과 싸워보아라!"

 

라고 하고 토벌군 대열에 복귀하니

 

잇키들은 토벌군을 향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왔습니다.

 

 

토벌군은 몰려드는 잇키들에게 화살을 잔뜩 퍼부은 다음,

 

맞돌격을 하여 잇키들을 상대하니

 

잇키들은 각종 전투 경험을 쌓은 모리군을 당해낼 수 없었으나

 

싸우다 죽으면 순교하리라 믿으면서 싸웠습니다.

 

 

한편 다메미츠는 토벌군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잇키들을 지휘하고 있는 수괴 미치유키를 발견하고 하타모토들과 함께 돌격하여 달려드니

 

미치유키 휘하의 무사들이 저항했으나 하타모토들에게 모조리 죽임을 당하고

 

다메미츠가 직접 미치유키를 베고 목을 자르면서 말했습니다.

 

"흥, 하나님이 너희 편을 들게하는게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편을 들었어야지."

 

수괴의 목이 잘리자 미친듯이 싸우던 잇키들이 살길을 찾아 도주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모리군이 삼면을 포위하고 기병대가 후방에 배치되어

 

도주하는 잇키들을 살육하여 전멸시키니

 

전투가 끝난후 피해와 전과를 계산하자 모리군의 피해는 사상자 200여명에 불과 했으나

 

모리군이 획득한 수급은 1758급에 이르렀습니다.

 

 

모토나리님은 수급들을 모두 사쓰마국에 조리돌려 경각케하고

 

군대를 오오쓰미국에 배치시켜서 아소교 신자들을 색출하게하고

 

신앙 포기를 강요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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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zombie | 작성시간 12.02.08 오 드디어 13편이 올라왔군요. 저도 직접 플레이를 해봤는데 식량관리를 제대로 못해 치안이 너무 낮아져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만 계속되다 끝났습니다. 다시 해봐야겠네요ㅜ
  • 답댓글 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2.09 전 쇼군2 처음 플레이 할때 막 발전하다가 식량이 마이너스 되고 예산 적자에 시달려 망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후 식량 확보를 우선시합니다.
  • 작성자난 어른이 되어도 | 작성시간 12.02.09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작성자월하백랑 | 작성시간 15.09.07 역시~ 식량이 최우선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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