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쇼군2: Forum

[스크랩] 호조 는 울지 않는다...24 (쿄토를 잃다.)

작성자쵸이스|작성시간11.07.09|조회수545 목록 댓글 9

 

 1609년,봄  우지마사의 시대는 가고

카네타다가 그의 뒤를 잊는다.

 

 

 오다가의 강력한 병력에 세츠와 가와치을 뺏긴다.

 

 하지만 세츠 전투에서 오다가의

다이묘, 오다 노부유키가 사망하고

 그의 뒤를 이어 도요토미 카타이에가

 

 오다의 다이묘자리를 차지한다.

오다가에 도요토미 시대가 열린것이다.

 

 

 

 

"시마즈가 왜 이곳에.."

 

호조의 유키 토키츠라 는 다케다 영지로

향하던중 시마즈의 매복에 걸리고 만다.

 

 유키 토키츠라는 매복이라는것을

느끼며 신속히 부대를 한쪽으로 돌격시킨다.

 

 

반대쪽에 있던

시마즈 타네가시마 아키나오 병력이

아군에 뒤를 공격.

 

 

 

 

 

유키 토키츠라 장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많은 병력을 잃어

노토로 가던 길을 돌아 나와야 했다.

 

 

 1610년,

오다가문의 무서움이 들어났다.

그들의 힘이 중앙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얼마 안가 호조는 쇼군의 자리를 오다가문에

넘겨주어야 할것이다.

 

  1610년, 카네타다의 아버지 우지마사가

죽음은 호조의 약화를 불러왔다.

 

1610년 겨울.

 

 강대국의 오랜 전쟁으로

호조는 징집한 병력이

 전사한 병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적은병력은 2-3배의 적병력과 싸워야

했다.

 

 결국은 병력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

지지 않는 악순한이 계속적으로 이루어

 졌다.

 

  거기다 호조의 

 영지는 적은병력으로

커버 하기에 너무 넓었다.

 

호조군, 2900명

 

다케다군, 4266명 (배치군 1976명,지원군 2290.)

 

 다케다에 기병과 근접병인 칼 사무라이 를

가지고 있지만

 

 호조는 창 병력과 원거리 병이 다였다.

 

 

 

 호조의 병력이 원거리병이 반을

차지 하고 있다는것을 알고

 기병과 사무라이를 돌격시킨다.

 

 

 

 

 적 배치군을 선멸했지만

호조의 피해도 크다.

 

 호조군이 얼마 없다는걸 안 다케다 병은

강행 돌파해 온다.

 

 

  쪽수에 밀린 호조 카네타다.

 카네타다는 카이성으로 퇴각하지만

결과는 성에 가치는 상태.

 

 

 

1611년 교토를 잃음

 

 

 3개의 가문 (오다,다케다,호조)이

등을 돌린후

 

 3개 가문중 가장 많은 영지를 잃은

가문은 다케다요.

 

 가장 많은 병력피해를 입은

가문은 호조다.

 

 그럼 오다는....?

오다가문은 이득도 없거니와

그리 피해도 없는듯 하다

 

 분열전에 16개의 영지

현재도 16개의 영지를 유지 하고 있다.

 

 영지 입장에서 보면 호조가

이익을 보았다.

 분열전 14개의 영지가 16개로 올랐다.

 

거기다가 가문이 계속 유지 돼고 있다.

 

  호조의   다이묘는 호조 카네타다.

  오다의   다이묘는 아케치 타케요시.

 다케다의 다이묘는 스와 마사츠라.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쵸이스 다이어리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쵸이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7.10 스샷 찍은후 포토샵으로 자르기.
  • 답댓글 작성자VOCARLOID 時代 | 작성시간 11.07.10 아항...
  • 작성자wwww3223 | 작성시간 11.07.14 어휴.....이 밀덕들...할일이 그렇게 없나...가상역사나 쓰고..쯧
  • 답댓글 작성자라인테 | 작성시간 11.07.20 참나 ㅋㅋㅋ 어디서 지나가던 호구가 ㅋㅋㅋ
  • 작성자라인테 | 작성시간 11.07.20 그나저나 어쩌면 쿄를 빼앗긴게 좋은걸지도 모르겠네요 쿄주변에 수비를 강화하고 다른지역을 먼저 토벌한다면
    승산이있을지도 모르고 또 와해됐던관계도 바뀔지도 모르겠네여 ㅋ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