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세이지브러쉬 운동, 레이건의 콘크리트.

작성자PANDA|작성시간18.05.24|조회수153 목록 댓글 0

1980년도 미국 대선은,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백악관의 지미 카터의 승부였다.

지미 카터 행정부는 안으로는 경제불황과 밖으로는 이란 대사관 인질극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난항을 겪고있었기 때문에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로널드 레이건이 서부 주들과 기업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급부상했다.

키터가 내외적으로 공격을 받는 것도 레이건에게 이익이었지만
레이건의 힘은 서부에서 나왔다. 기업가들과 개발업자들이 레이건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레이건이 서부 주들과 기업가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당시 미국 서부 주 정부들과 연방정부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었다.





서부개척이 이루어지고 개척민들이 캘리포니아, 네바다, 뉴멕시코, 텍사스, 오리건, 유타 등 미개척지를 개척해서 눌러앉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토지들은 주 정부가 아니라 연방정부가 소유권을 지니고 있었다.

1976년, 미 의회는 Federal Land Policy and Management Act(토지관리 및 정책 법안)을 통과하면서
국가 토지에 목장을 세우는 것을 강력하게 규제하기 시작했고
Bureau of Land Management (BLM, 편의상 토지관리국이라고 하겠다.)를 설립해서 서부의 주인없는 목초지를 관리했다.

당시 토지관리국이 미 서부 영토의 85%를 연방정부 소유로 관리하고 있었고
이 토지들은 개발이 금지된, 지금으로 치면 그린벨트 구역이었다.


(자주색의 인디언 보호구역을 제끼면 사실상 모두 연방정부, 토지관리국의 소유였다.. 대부분이 그린벨트)


이 지역에는 목축도 석유 시추도 광산 채굴도 불허됬기 때문에 이 미 개척지를 두고 주 정부와 기업가들 목축업자들의 불만이 많았다.

1970- 1980년도에 이 불만이 목축업자들을 중심으로 터졌는데, Sagebrush Rebellion 운동이었다.

Sagebrush Rebel들은 연방정부가 지나치게 서부의 토지들을 점유하고 있으며
연방정부는 주 정부에 이 소유권을 어느정도 양보하고 규제와 관련 법안들을 철폐 혹은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운동은 유타 주에서 시작해서 서부 전체로 퍼져나갔는데,
유타의 목장주들과 석유 시추업자들이 주류였다.
유타 주지사 스콧 매드슨은 옐로스톤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관리도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 운동은 서부 전역으로 퍼져나가서,
연방정부의 개발 규제에 짜증났던 목장주들 석유시추자들 광산 및 개발업자들까지 참여하기 시작했다


(스콧 매드슨, 유타 주 주지사)


캘리포니아 주지사 로널드 레이건 또한 이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면서
동시에 Sagebrush Rebel에 동참하겠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레이건의 선거 참모이자, 나중에 레이건 행정부의 내무부 장관 자리를 꿰차는 제임스 와트도 세이지브러쉬 운동의 중심 멤버였던 걸 보면...

운동가들은 강력한 대선후보였던 레이건의 규제 철폐와 개발허가를 믿고 레이건을 열렬히 지지했고
레이건은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카터의 자충수를 발판 삼아서 백악관에 들어가게 된다.


( 제임스 G 와트, 레이건의 선거 참모이자 측근으로 세이지브러쉬 운동의 중역 중 하나. 레이건 당선 이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된다.)


서부의 개발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낙수효과를 노리는 신경제정책, 레이거노믹스로
미국이 처한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던 레이건 행정부는 이 개발업자들이 나중에 치는 대형사고 때문에 곤욕을 치르게 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