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웨스트 버지니아 광산 노동 전쟁 (1) - 검은 금

작성자PANDA|작성시간19.08.17|조회수316 목록 댓글 2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주된 연료는 목재와 짐승에게서 채취한 기름이 전부였다.

순수한 목재조차도, 화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가공과정을 거쳐서 화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는데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목탄, 즉 숯이 된다. 


사람들은 목탄을 이용해서 화력을 끌어올리는데에 성공했으나, 목탄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주 연료로 쓰이는데에는 실패했다.

일단 목탄을 통한 강한 화력을 필요로 하는 곳은, 대장간, 유리세공소, 도자기 제작소 같은 공방에서나 수요가 있었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나무를 태워서 얻는 에너지로로 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화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기계들이 등장하고 생산의 주축이 되면서 상황은 돌변하였다.

대장간, 세공소 같은 소규모 공방들은 서서히 쇠퇴하고,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춘 공장들이 화석연료를 엄청나게 소비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목탄과 땔나무로는, 공장의 기계를 돌릴만한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목탄을 생산하고, 가정용 연료로 쓰기 위해 대규모로 삼림을 채벌하면서 목재가 부족해지기 시작했으니

공장주들과 기술자들은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수단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석탄이라는 지하자원을 발견한다.


나무를 심고, 그것이 충분히 성장한 뒤에, 벌목하고, 연소를 통해서 에너지를 얻던 것이 기존의 방식이었던데 반해

석탄의 경우, 땅만 파면 나오는 거무스르한 불에 잘 타는 돌이라서, 사람들은 이것을 기존의 연료를 대체할 대체제로 판단했다.

그리고,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석탄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모든 공장 굴뚝들에서는

석탄 태우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미 개발과 지하자원 탐색과 개발이 다 끝나가던 유럽에 비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메리카 대륙은 - 개발업자들, 공장주들, 철도 및 선박업자들에게 있어서 미지의 세계였다. 


대영제국으로부터 갓 독립한 미합중국은 무자비한 속도로 대륙 내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제퍼슨 임기 때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로부터 루이지애나를 구매하고, 애팔래치아 산맥 너머 서쪽으로 개척민들과 탐험가들을 보냈다.


이미 개발이 끝나가던 동부 해안가의 13개 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체로키족, 크로우족, 쇼니족, 쇼손족 등 원주민을 쫓아내고, 원주민들이 살던 그 자리에 눌러앉거나,

모험심 강한 사람들은 숲을 통과하고 산맥을 넘어, 눌러앉기에 적합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미국의 산업은 남북전쟁을 통해서 대규모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남부 연방군과 북부 연합군 양측 모두 대량의 군수물자들 (소총, 대포, 탄약, 강철, 건빵, 통조림)을 소비하면서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공장들과 수송을 담당하던 철도들 그리고 원자재인 제철산업이 돈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과 발맞춰서, 공장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연료, 석탄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남부 북부 가릴것 없이, 양측 모두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석탄은 웨스트버지니아의 광산에서 나왔다.


18세기 중반부터 웨스트 버지니아는 개척민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는 영역으로 부상했다.

1750년 미국인 탐험가, 크리스토퍼 기스트가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대규모 석탄 광맥을 발견하고

토머스 제퍼슨 또한 본인의 저서 "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 에서 버지니아 주의 풍부한 지하자원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1763년, 프랑스-인디언 전쟁이 끝나면서, 전쟁에 복무한 퇴역군인들이 살 곳을 찾아서 버지니아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블루 릿지(Blue Ridge) 계곡 근처에 살던, 원주민인 체로키족들을 쫒아내고, 그 자리에 정착지를 세웠다.

버지니아 개척민들 (퇴역군인들)을 따라서 펜실베니아 농부들, 노예 소유자들, 흑인 노예들, 외국인들 (독일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스코틀랜드은 등)이 버지니아 주에서 새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개척민들은, 매장된 광물을 채굴하기 보다는, 농경이나 수렵, 삼림 벌채를 주 업으로 삼았다.


그러나, 땅 밑에 묻혀있는 검은 금의 가치를 알아본 광산업자들과 브루주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광산업자들은 웨스트 버지니아의 카나와 카운티 (Kanawha County)의 캐빈 샛강 (Cabin Creek)을 중심으로,

헌팅턴 (Huntington), 찰스턴 (Charleston), 로건 (Logan), 블루필드 (Bluefield), 모건타운 (Morgantown), 페어몬트 (Fairmont), 클락스부르 (Clarksburg) , 파커스버그 (Parkersburg) 대규모 석탄 광산과 광산촌을 건설했다. 


철도업자들은 광산에서 채굴한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석탄 생산지를 가로지르는 철로를 강을 따라서 깔았다.

체사피크 & 오하이오 철도회사는 석탄 매장량이 가장 높은 그레이트 카나와 강을 따라서 헌팅턴 - 찰스턴- 리치몬드 - 체사피크 만 까지 닿는 철로를 깔았다.


동부의 금융가들은, 버지니아의 석탄 채굴업의 가치를 알아보고,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면서,

이들의 사업은 점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석탄 광산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이 검은 금을 캐서, 한몫 단단히 잡아보려는 순진무구한 꿈을 품은 순진한 노동자들이었다.

갓 군에서 제대한 퇴역군인들, 유럽의 정치적 난리를 피해서 이민 온 유럽인들, 

고향을 등지고 살길을 찾는 아일랜드인들과 갓 노예신분에서 해방된 해방노예들이었다.



(짙게 표시된 지역이, 석탄이 매장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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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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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19.08.17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석탄이 검은 금 으로 각광받았네요
  • 답댓글 작성자PAND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8.18 당시에 정유기술이 이제 막 태동하는 시기였지만, 석탄만큼의 화력과 에너지효율을 뽐내는 자원은 없으니까요.
    그나마 기름이 중요해진건 기름의 에너지효율을 최대한 뽑아먹을수 있는 내연기관이 나온 뒤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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